[서울=서울미디어뉴스] 배경동 기자 = 중국의 당 서열 5위인 차이치 중국 공산당 중앙서기처 서기에 대해 사실상 2인자로 부상했다는 외신 보도가 나오자 시진핑 국가주석은 당 서열 3위인 왕후닝(王滬寧) 중국인민정치협상회의(정협) 주석에 즉시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를 연출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25일 "지난주 중국공산당 제20기 중앙위원회 제3차 전체회의(3중전회)가 막을 내린 후 갑자기 왕후닝이 권력 구도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면서 "왕후닝은 중국 공산당의 이데올로기를 책임지는 인물로 25일에는 응웬 푸 쫑 베트남 국가주석의 장례식에도 참석했다"고 보도했다.
시 주석은 3중전회 결정문 작성에서 자신이 작성조장을, 왕후닝·차이치·딩쉐샹(국무원 부총리·서열 6위)이 부조장을 맡았다. 그런데 왕후닝이 '수석 부조장'으로 언급됨으로써 왕후닝이 차이치를 뛰어넘는 역할을 맡게 됐다.
이번 3중전회는 중국 공산당에 있어서 아주 의미 있는 행사였는데, 이러한 3중전회의 총정리를 왕후닝이 맡았다는 것은 그가 시진핑의 신뢰와 총애를 받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전에는 차이치 중앙서기처 서기가 수석 부조장 역할을 맡은 바 있다.
왕후닝이 부상하게 된 배경에는 중국 권력 2인자로 불려지는 차이치에 대해 시 주석이 견제하려는 의도라는 분석들이 나오고 있다. 차이치는 시 주석의 비서실장 격인 중앙판공청 주임을 맡으면서 당정업무를 총괄 조정하는 기구의 수장 자리를 꿰차고 있다. 여기에 중앙정치국 상무위원, 중앙서기처 서기와 함께 중앙 및 국가기관공작위원회 서기까지 겸임하고 있다.
지난해 4월에 시 주석이 차이치를 임명했을 때, 시 주석이 직접 당정 업무를 관장하고 지휘하겠다는 의지하는 뜻을 밝히는 한편 시진핑의 눈과 귀로서 차이치가 임명됐다고 외신들은 추정했다. 따라서 차이치가 사실상 중국의 2인자라고 인식돼 왔다.
그런데 차이치의 위상이 지나치게 부각되자 시진핑은 왕후닝을 차이치 앞에 내세움으로써 중국에는 2인자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분명히 일깨워줬다는 것이다.
시드니 기술대 펑충이 교수도 "왕후닝의 '위상 제고'는 차이치가 권력에서 부상하고 있다는 최근 언론 보도에 대한 대응일 수 있다"고 평가했다. 2인자가 존재하게 되면 독재자의 위상 또한 흔들릴 수 있기 때문에 이러한 모양을 차단하겠다는 뜻으로 보여진다.
펑충이 교수는 "시진핑은 차이치가 너무 많은 권력을 가졌고 자신에게 도전할 수 있다는 루머에 매우 민감하다"며 "그래서 그는 차이치의 권력 일부를 왕후닝에게 나눠줌으로써 자신이 차이치에 너무 의존하지 않는 사람임을 만방에 보여 주었다"고 분석했다.
펑충이 교수는 그러면서 "그(시진핑)가 뇌졸중으로 고생한다는 루머가 퍼지자 그는 해당 루머를 인식하고 있음을 보여주고자 베트남 대사관으로 가 조문을 했다"고 덧붙였다.
한편, 왕후닝이 이렇게 차이치를 견제할 수 있는 인물로 부상한 것에는 지금의 중국 상황에서 왕후닝의 역할이 중요한 때가 됐다라고 판단해 시진핑이 왕후닝을 전면에 배치했다는 분석도 나온다.
뉴욕 시티대 샤밍 교수는 RFA에 "시 주석이 덩샤오핑이 연 경제 개혁 시대보다 마르크스주의 하향식 경제 계획을 고집하면서 중국 경제가 실질적 결과를 내기 어려울 것임을 인지하고 있다"면서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이 맞닥뜨려야 할 난제들을 다양한 정치·선전 수법으로 돌파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고, 이러한 업무에 적합한 인물로 왕후닝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왕후닝은 '살아있는 제갈량(諸葛亮)'으로 불릴 정도로 시진핑의 책사라는 평가를 받는다. 시진핑이 그에게 여론·사상을 통합하는 기구인 정협을 맡긴 것도 '시진핑 사상'을 공고히 하라는 의도가 드러난 것이라는 평가다.
왕후닝의 책략 핵심은 기본적으로 '강한 국가'와 '강한 당'을 기반으로 한 권위주의적 정치체제를 세우는 것으로, 정치와 당(공산당)은 완전히 하나가 되어 물같이 흘러야 한다는 것이다.
정치 개혁이 없다는 것은 아니지만 그것은 중국이 처한 현 상황에 대한 것일 뿐, 중국의 기본 체제에 대한 개혁은 아니다.
이러한 권위주의적 사상은 시진핑 정권 들어 '시진핑이 곧 국가'라는 신념으로 발전했다.
결국 왕후닝의 사상은 제왕적 통치체제가 중국 발전의 기본이고, 이를 현대화하여 지금의 중국에 적용해야 한다고 믿고 있다는 것이다.
시진핑은 경제를 회복한다는 것 자체가 어려운 과제가 되어버린 상황에서 사상 통제와 새로운 선전·선동으로 흐트러짐없는 중국을 이끄는데 가정 중요한 역할을 할 인물로 왕후닝을 택한 것으로 보여진다.
중국에서의 강력한 반미운동도 왕후닝의 작품이다. 지난 2019년 6월 중국이 미국과의 무역분쟁이 본격화되는 시점에 왕후닝은 정치국을 총동원해 직위 고하를 막론하고 전 당원을 대상으로, 소위 '초심을 잊지 말고 사명을 기억하자(不忘初心 牢記使命)'는 주제로 교육을 시작했다.
이는 중국이 처한 위기를 사상전으로 돌파하자는 개념인데, 이 교육의 핵심에는 대미(對美) 선전전(宣傳戰)이 자리잡고 있었다. 왕후닝은 이 선전선동을 총괄하는 교육공작 소조 조장에 임명됐다.
이러한 전 당원 교육에 들어가기 직전인 5월 왕후닝이 지휘하는 중앙선전부는 중앙방송국과 전국 성급 위성방송국에 16일부터 저녁 골든타임에 항미(抗美) 영상을 매일 방송해 '항미 사기를 고취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왕후닝은 중국사회에 애국주의 열풍을 불러일으켰다. 그러나 중국 사회에 불어닥친 항미전쟁은 국제적으로 중국을 오히려 고립시키는 결과로 나타났다.
시진핑은 경제 위기를 정면으로 돌파하려 하지 않고 사상적 이데올로기로 돌파하려는 의지를 거듭 드러내고 있다. 그러나 이렇게 독재 체제를 강화하는 사이 국가의 속은 텅텅 비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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