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전공의 수천명이 사직서를 내고 병원을 이탈하면서 일선 현장 의료공백이 현실화되고 있다. 20일 정부에 따르면 100개 수련병원을 기준으로 사직서를 낸 6415명 중 25%에 해당하는 1630명이 근무지를 이탈했다. 이른바 '빅5' 병원은 주요 수술 일정을 취소하거나 축소했다. 정부는 이중 800여명 이상의 의사들에게 업무개시명령을 내렸다. 사직서를 낸 행위 자체를 퇴사가 아니라 집단행동으로 본 것이다.
그렇다면 집단행동으로 인해 의료 일손이 적어 수술, 응급조치 등에 막대한 지장이 발생할 경우 의사, 혹은 주동자, 의사단체 지도부 등에 법적 책임을 물을 수 있을까. 법조계에선 이에 대해 의료법 위반 소지가 발생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정부의 업무개시명령 불응 행위 역시 처벌 사유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죄 적용 가능
우선 쟁점은 이들의 사직을 법률이 규정한 ‘정당한 사유’로 볼 수 있는지다. 법조계에선 전공의들의 무더기 사직에 대해 정당한 사유로 보기 어렵다는 해석을 내고 있다. 사직이 같은 날 특정 시점에 동시 다발적으로 이루어진데다 이들이 수 차례 집단 사직을 예고하며 정부를 압박했다는 점이 근거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사직 후 이들이 긴급대책회의를 개최한 점 등도 통상적인 사직 행위로는 보기 어렵다는 시각이 많다.
보건복지부가 전공의와 병원에 각각 ‘진료 유지’와 ‘사직서 수리 금지’를 명령하고, 진료를 거부한 전공의들에 대해선 ‘업무개시명령’을 발령키로 한 것도 사실상 이 같은 판단을 전제로 했다.
정당한 사유의 사직이 아니라면 이후 진료지연, 부실진료 등으로 의료사고가 발생했을 때도 책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 이럴 경우 피해자는 의사와 병원을 고소하고, 검찰은 집단 사직과 의료사고 사이의 인과관계를 입증한 뒤 이들을 업무상 과실치사상죄로 기소할 수 있다. 형법은 제268조에서 업무상 과실로 사람을 죽거나 다치게 하면 5년 이하의 금고 또는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고 적시해 놨다.
업무상 과실치사상이 반의사불벌죄가 아닌 만큼 검찰의 직접 수사와 공소제기도 배제하지 못한다. 이미 검찰과 법무부는 사직서 제출, 집단휴진 등 집단행동 관련 엄정한 대응을 지난 19일 전국 일선 검찰청에 지시했다.
검찰 관계자는 “예컨대 생명이 경각에 달린 환자가 의료진 공백으로 특정병원에서 수술을 하지 못한 채 수일 내에 숨졌다면 인과관계를 증명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앞서 검찰은 2000년 의약분업 당시 의사들의 집단폐업에도 이 혐의를 적용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한 바 있다.
시민단체 고발 등 뒤따를 수도
업무상 과실치사상이 아니더라도 처벌은 가능하다. 의료법은 15조에서 의료인은 진료 또는 조산 요구를 받고 정당한 이유 없이 거부하면 1년 이하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하도록 하고 있다. 여기에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경실련)이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공정거래법)상 담합’ 혐의로 고발을 고려하고 있는 점, ‘업무개시명령 불응’만 놓고도 3년 이하 징역이나 3000만원 이하 벌금 처벌이 가능한 점, 형법상 ’업무방해죄‘ 또는 ’교사·방조범‘ 등 법에서 규정한 모든 제재를 정부가 천명한 점을 고려하면 죄명은 동시에 여러 개가 적용될 수도 있다.
민사 소송도 뒤따를 가능성이 크다. 통상 의료사고를 당한 피해자들은 형사적 책임과 함께 민사적 손해배상도 가해자 측에게 요구하는 경우가 많다. 현재 일선 병원에선 우려대로 환자 피해 사례가 속속 나오고 상황이다. 쌍둥이 출산을 앞두고 제왕절개 수술 연기를 통보받았다거나 부모님의 목 디스크 수술이 무기한 연기됐다는 사연 등이 보도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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