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피해자의 의사와는 무관하게 선고 직전 피고인이 기습적으로 형사공탁을 해 감형을 받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법조계에서는 금전으로 감형을 받는 '꼼수' 방지책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이어지는 가운데, 국회에서도 기습공탁을 막는 취지의 개정안 논의가 시작돼 향후 처리여부가 주목된다.
20일 법조계에 따르면, 지난 2022년 12월 형사공탁 관련 특례가 시행된 이후 기습공탁의 사례가 발생하고 있다. 기존에는 피해자의 이름과 주민번호 등 개인정보를 함께 기재해야 공탁금을 낼 수 있었지만, 특례 시행 이후 진행 중인 재판의 사건번호만 알고 있어도 공탁이 가능해졌다.
이같은 특례는 피고인들이 공탁을 하기 위해 피해자의 신상정보를 알아보는 등 2차 피해가 발생하자 이를 방지하기 위한 대책으로 시행됐다. 그러나 피해자들이 공탁금 수령 거부 의사를 밝히지 못하도록 선고 직전 기습 공탁을 행하더라도 감형에 반영되자 피고인들이 너도나도 기습공탁을 하고 나선 것이다.
대법원이 공개한 법원 통계 월보에 따르면 2023년 공탁금이 납부된 사건수는 2만9911건으로 2022년 공탁금이 납부된 사건수 2만3451건에 비해 27% 증가했다.
'강남 스쿨존 사망사고' 가해자의 호소
기습공탁의 대표적인 사례로는 '강남 스쿨존 사망사고'가 꼽힌다. 서울 강남의 어린이보호구역(스쿨존)에서 길을 건너던 초등학생을 음주 상태로 차를 몰다 치어 숨지게 한 남성 A씨가 항소심 선고를 앞두고 기습공탁을 한 사건이다.
A씨는 1심에서도 3억5000만원의 공탁금을 낸 점이 반영돼 검찰 구형량 징역 20년에 한참 못 미치는 징역 7년을 선고받았는데 A씨는 형이 너무 무겁다며 항소했다.
이후 항소심 선고를 11일 앞두고 1억5000만원을 공탁했고, 당시 재판부는 "피고인이 피해회복을 위해 상당한 금액을 공탁한 점을 일부 참작한다"며 "다만 피해자 유족들이 합의나 공탁금 수령에 부정적인 입장이라는 점도 함께 고려한다"고 밝혔다. 항소심 재판부는 A씨에 대해 징역 7년을 선고한 원심을 파기하고 징역 5년을 선고했고 대법원은 징역 5년을 확정했다.
피해자 유족은 항소심까지 5억원을 공탁한 것에 대해 "감형요소로 1·2심에서 고려된 건 확실하다"며 "피해자인 제가 공탁금이 필요하지 않고 용서할 의사가 없다고 여러 차례 밝혔음에도 재판부가 이를 감형요소로 고려하는 건 저 대신 용서라도 하겠다는 것이냐"고 말했다.
반면 피해자의 의사를 고려해 기습공탁을 감형에 반영하지 않은 사례도 최근 발생했다. 축구 선수 황의조씨의 사생활 영상을 유포하고 협박을 한 혐의 등으로 기소된 형수 이모씨는 선고 하루 전 기습공탁을 했지만 양형에는 반영되지 않아 징역 3년을 선고받았다. 이씨의 기습공탁에도 피해자 측에서 수령 거절과 엄벌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법조계 "제도 정비 필요"
법원이 피해자의 의사를 반영하는 듯 법원도 기습공탁에 대한 비판적인 여론을 고려하는 듯한 모습이지만, 법조계에서는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현재 공탁의 경우 대법원 양형위원회가 제시하는 양형 기준에 따라 감형에 반영하고 있지만, 판사 개개인의 판단에 따라 반영 여부가 달라질 수 있어 예측 가능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다.
부장판사 출신 한 변호사는 "법관이 양심에 따라 도립해서 재판하도록 헌법이 규정하고 있지만 양형 재량의 폭이 너무 커서 예측 가능성이 너무 없는 경우 문제가 될 수 있다"며 "제도적인 보완이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혐의에 따라 감형 반영 여부를 결정할 수 있도록 양형 기준을 세분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나왔다. 살인·성폭력과 같이 금전적으로 피해 회복이 불가능한 경우 공탁이 되더라도 피해자의 의사를 반드시 묻도록 하는 방식도 제시됐다.
국회에서는 형사공탁을 해당 변론 종결 기일 20일 전까지 할 수 있도록 명시하고 공탁 사실을 법원과 검찰에 통보하도록 하며, 법원이 피공탁자 또는 그 법률대리인의 의견을 청취하도록 하는 조항을 신설하는 개정안이 논의 중이다.
김은희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5일 이같은 내용의 '공탁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대표발의했다. 현재 개정안은 국회 상임위에 계류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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