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피의사실공표죄가 다시금 한국 사회에서 수면 위로 부상하고 있다. 경찰이 고(故)이선균씨와 지드래곤(본명 권지용)에게 마약 투약 의혹을 무리하게 제기하면서 수사를 이어왔다는 지적이 제기됐기 때문이다. 피의사실공표죄는 헌법에서 보장되는 알 권리를 침해한다는 비판이 있지만, 이것이 어떠한 가치를 보호하는가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다. 이에 따라 피의사실공표죄에 대한 가치 재정립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의견 분분한 피의사실공표죄
6일 법조계에 따르면, 피의사실공표죄로 기소된 사건은 최근까지 단 1건 없는 것으로 알려져있다. 실제 법무부가 2019년 발표한 검찰과거사위원회의의 자료에 따르면 피의사실공표 사건은 2008년부터 2018년까지 11년간 347건이 접수됐지만, 기소 단계까지 진행된 사건은 0건인 것으로 나타났다.
피의사실공표죄는 형법 제126조에 근거한다. 범죄 수사를 담당하는 사람이 피의자를 기소하기 전에 관련 내용을 외부에 공개했을 때 적용된다. 여러 사람에게 동시에 공표하는 것뿐 아니라, 외부인 한 명에게라도 직무 중 알게 된 피의사실을 누설하면 법 위반이다. 위반 시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5년 이하의 자격정지에 처한다.
문제는 수사기관이 이처럼 사실상 사문화된 규정을 악용해 필요할 때에는 피의사실을 흘려 피의자를 압박하고, 반대로 언론 보도가 부담스러우면 취재를 회피하는 수단으로 활용한다는 것이다.
피의사실공표죄는 헌법에서 보장하는 '알 권리'와 상충한다. 알 권리는 대한민국 헌법 제21조에 적시되어있다. 이같이 상충하는 지점이 명확한 피의사실공표죄이지만, 이 제도가 어떠한 가치를 보호하는지에 대한 해석은 학계에서 분분하다. 일각에서는 국가의 수사권을 중점적으로 보호한다고 하고, 다른 쪽에서는 공정한 재판을 받을 권리라고 말한다.
피의사실공표죄가 한국사회에 부상하기 시작한 것은 2009년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이 검찰 수사를 받던 중 극단적 선택을 하면서다. 이후 피의사실공표죄에 대한 피해자의 재정신청권이 보장됐고, 법 개정을 통해 제3자에 대한 재정신청권이 보장됐다는 것이 법조계의 설명이다. 재정신청권이란 검찰이 어떠한 사건 검찰을 불기소하더라도 고소인 등이 법원에 검찰의 불기소 처분이 타당한지를 다시 묻는 것을 말한다.
피의사실공표죄 가치 재정립 필요
일각에선 모호한 피의사실공표죄를 보완하려는 정치권 등에서 일고 있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소속 김승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12월29일 피의사실공표를 명확히 하는 형사소송법 일부개정법률안을 발의했다.
피의사실의 범위를 구체화하고 피의사실이 공개되면 피의자가 법원에 공개금지를 청구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개정안의 골자다.
한편 피의사실공표죄에 대한 개념 정립을 새롭게 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있다. 한상훈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피의사실공표죄는 1953년 제정형법 때 신설된 것으로 과거 의용형법(구 일본제국의 형법)에는 없는 것이었다. 당시에는 혼란했던 정국 속에서 경찰 등 수사기관이 여론전을 통해 선거에 개입하는 것을 막기 위해 신설된 것인데, 지금의 상황에서는 그 의미가 많이 약해진 것도 사실"이라며 "미국과 캐나다, 영국 등 영미권의 사례처럼 재판을 공정히 받을 수 있게끔 도와주는 제도로 개선해 나가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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