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공습으로 23일(현지 시각)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거대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다. 이·팔 양측은 온라인에서도 소셜미디어 등을 이용해 격렬한 심리전을 펼치고 있다. 실제 전투만큼이나 사이버 공간의 공방전도 치열하다는 평가가 나온다./AFP 연합뉴스
최근 하마스의 기습 성공으로 촉발된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양측 모두 엑스(X·옛 트위터)를 비롯한 SNS(소셜 네트워크 서비스)와 AI(인공지능) 등 첨단 기술을 활용해 치열한 가짜 뉴스와 심리전·여론전 공방전을 펼치고 있다. 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모두 소셜미디어 등을 활용해 ‘인지전(認知戰·cognitive warfare)’을 벌여왔는데 이번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은 이를 능가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인지전은 가짜 뉴스 등을 퍼트려 정부에 대한 불신을 부추기고 군의 사기를 떨어뜨리는 한편 민심을 교란해 적을 무력화하는 심리전·여론전 등을 포함하는 전쟁 개념이다.
지난 17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에 있는 알아흘리 병원에서 발생한 대규모 폭발 사고로 수백 명이 숨진 사건을 둘러싼 하마스와 이스라엘의 공방은 인지전의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사건 직후 하마스는 “이스라엘의 병원 공습으로 500여 명이 사망했다”고 주장했고, 이는 아랍권의 분노와 함께 세계적으로 이스라엘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켰다. 중동 지역 주요 통신사인 알자지라를 사칭한 소셜미디어 계정에 “하마스 미사일이 병원에 떨어지는 동영상이 있다”는 글이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알자지라는 해당 계정과 무관함을 밝혔고 이 계정은 곧 삭제됐다.
사건 파장이 커지자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소행이 아니라고 부인하며 폭발 전후로 알아흘리 병원 상공에서 촬영한 영상과 사진은 물론 감청 내용까지 극히 이례적으로 공개했다. 이스라엘군이 엑스를 통해 공개한 감청 내용 녹취에는 하마스 첩보원으로 추정되는 두 사람의 음성이 담겼다. 감청과 이를 막는 방어 수단도 모두 기술 전쟁이다.
대원 A가 “미사일이 이렇게 떨어지는 것은 처음 본다”고 말하자 대원 B는 “이건 이슬라믹 지하드 것이라던데”라고 답한다. 이에 놀란 A가 “뭐라고?”라며 되묻자 B는 “이슬라믹 지하드 것 같다니까”라고 대꾸한다. 감청 녹취는 대원 B가 “그들(이슬라믹 지하드)은 병원 뒤에 있는 묘지를 쐈고, 오발돼서 병원에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고 말하는 것으로 끝난다. 감청 정보는 어느 나라든 극비로 취급하는 사안인데 이스라엘은 사안의 중대성과 심각성을 감안해 극비 정보까지 신속하게 공개한 것이다.
알아흘리 병원 폭발 사고는 바이든 대통령이 “이번 폭발은 가자지구 테러 집단의 로켓 오발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우리가 수집한 증거들을 토대로 내린 결론”이라고 밝히는 등 서방세계 정부와 외신 보도를 통해 하마스 로켓 오발 사고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이번 전쟁 개전 초기에도 하마스는 치밀하게 준비된 가짜 뉴스 작전을 펼쳤다. 엑스에서 ‘이스라엘군이 사망자를 조작하는 모습’이라는 소개와 함께 올라온 영상은 200만회 이상의 조회 수를 기록했는데, 이는 이스라엘 점령 직후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떠난 지역을 조명하는 단편 영화 ‘텅 빈 곳’의 제작 현장을 소개하는 영상을 조작한 것이었다.
이스라엘군 고위 장성이 하마스에 생포된 장면이라는 영상도 틱톡과 엑스를 통해 유포됐는데, 실제는 아제르바이잔 보안국이 분쟁 지역인 나고르노카라바흐에서 아르메니아계 분리 독립 세력의 지도자를 체포했다며 유튜브를 통해 공개한 것이었다. 이스라엘 소셜미디어 보안 업체 사이아브라는 친하마스 가짜 계정이 4만개 이상이라고 밝혔다. 가짜 뉴스를 만드는 방법이 정교해졌지만 첨단 기술을 활용해 가짜 뉴스임을 신속하게 확인, 역공(逆攻)을 취하는 방식도 발전하고 있다.
앞서 지난 2021년엔 이스라엘이 하마스를 상대로 치밀한 인지전을 펼쳤다. 그해 5월 이스라엘 정부는 가자지구에 군사력을 투입할 것이라는 성명을 발표한 데 이어 다음 날 이스라엘군이 트위터에 가자지구에 대한 공격을 시작했다는 글을 올렸다. 이 뉴스가 전해지자 하마스는 지상전 준비를 위해 지하에 은폐했던 무기를 이동시켰다. 무인 정찰기를 통해 이를 포착한 이스라엘은 하마스의 무기 거점을 타격했다. 군 관계자는 “이스라엘·하마스 전쟁의 가짜 뉴스 등 인지전은 한반도에서 전쟁이 발발했을 때 북한이 쓸 수 있는 방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어 우리도 예의 주시하며 교훈을 얻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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