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 작전구역 아덴만 떠나 방역 열악한 아프리카서 식자재 등 보급
작년 백신 개발 전 오만 항구 20여 차례 입항했던 부대는 감염 無
작전구역 변경은 청와대 결정… 국방부 ‘셀프 감사’는 진상 규명 한계
지난 2013년 12월 남수단에 파견된 한국군 유엔평화유지군 한빛부대와 서울 용산의 국방부에 비상이 걸렸다. 반군 1000여 명이 한빛부대가 주둔한 남수단 종글레이주 보르로 접근하고 있다는 급보가 날아들었기 때문이다. 탄약이 부족했던 한국군은 유엔을 통해 현지 파견 일본 자위대의 소총탄 1만 발을 긴급 공급받았다. 해외 파병 한국군이 탄약 등 자위대의 무기를 제공받은 것은 처음이었고, 이를 둘러싸고 논란이 일었다.
군 당국에선 탄약과 보급 물자를 실은 C-130 수송기의 급파를 결정했다. 하지만 이 수송기는 출발 이틀 만에야 남수단 주바공항에 도착했다. 단번에 우리나라에서 남수단까지 비행하기 어려워 도중에 몇 차례 기착(寄着), 연료 보급 등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 군 내에선 “우리에게도 미국 C-17 같은 대형 수송기가 있었더라면 남수단 한빛부대에 신속하게 탄약 등을 공수할 수 있었을 텐데…”라는 얘기들이 나왔다.
과잉 홍보로 빛바랜 ‘오아시스 작전'
대형 수송기에 대한 공군의 꿈은 2015년 기종이 결정된 공중급유기를 통해 어느 정도 실현됐다. 새로 도입된 공중급유기가 공중 급유는 물론, 병력 300여 명도 수송할 수 있는 공중급유수송기 KC-330 ‘시그너스’로 결정됐기 때문이다. 2019년까지 4대가 도입된 시그너스는 실제로 대형 수송기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다. 지난해엔 6·25전쟁 유해 봉환, 코로나19 감염에 노출된 이라크 파견 근로자 및 교민 귀국 지원 등에 투입됐다.
시그너스는 최근 사상 최악의 집단감염 사태가 발생한 청해부대원 34진 조기 귀환을 위한 ‘오아시스’ 작전에서도 빛을 발했다. 시그너스 2대는 청해부대(문무대왕함)가 있는 아프리카 지역까지 19시간 동안 날아갔다가 6시간 만에 승조원 301명 전원을 싣고 다시 돌아왔다. 단 이틀 만에 1만㎞ 이상 떨어진 곳에서 후송 작전을 완료한 것이다. 시그너스는 도중에 급유 등을 위해 두 차례만 기착했고, 20여 국의 영공을 통과했다. 8년 전 한빛부대 사태 때엔 상상할 수 없었던 모습이다. 국방부가 국회 보고에서 ‘최단기간에 임무를 달성한 최초의 대규모 해외 의무 후송 사례’라고 강조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지만 틀린 팩트는 아니다. 이렇게 무리하게 후송 작전을 펴게 된 원인에 대한 반성 없이 ‘군사외교력이 빛을 발휘한 사례’라며 자랑질을 해 매를 벌었을 뿐이다.
군인 본분 끝까지 지킨 청해부대 장병들
오아시스 작전이 호된 여론의 비판을 받았지만 긍정적인 대목은 또 있었다. 청해부대 A 간부는 언론 인터뷰에서 “배를 두고 내려야 한다는 말이 나왔을 때, 병사들과 간부들끼리 ‘음성자들만 한국에 보내자, 양성자들은 면역 체계(코로나 항체)가 생기지 않겠느냐. 우리가 배를 몰고 가야 한다’고 하면서 울기도 했다”고 했다. 코로나 증상자가 속출하는 상황에서도 청해부대 승조원들은 끝까지 함정을 지키겠다며 군인의 본분을 다하는 모습을 보인 것이다.
그러면 우리 해군은 물론 세계 해군사에서도 초유의 사례라는 청해부대 집단감염 사태의 원인과 교훈은 어디서 찾아야 할까? 일부 전문가와 군 관계자들은 이번 사태가 발생한 근본 요인으로 갑작스러운 작전 구역 변경을 꼽고 있다. 아덴만을 작전 구역으로 삼고 있던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은 합참 지시에 따라 지난달 말 아프리카 모 지역으로 이동했다. 문무대왕함은 지난달 28일부터 7월 1일까지 3박 4일간 군수품 적재를 위해 방역 체계가 열악한 아프리카 해역 인접국에 기항했다. 당시 문무대왕함에 승선했던 도선사나 적재한 식료품 자재 등이 감염 경로로 보인다고 청해부대원 승조원들은 증언하고 있다.
백신이 개발되기 전인 지난해에도 청해부대 32·33진이 6개월 간격으로 아덴만에 파견돼 작전을 편 뒤 복귀했지만 코로나에 감염된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었다. 이 부대들은 2주마다 오만 살랄라항 등에 입항해 군수품을 보급받았다. 이 부대들이 최소 20여 차례 살랄라항 등에 입항했지만 코로나 감염은 없었다는 얘기다. 청해부대 34진의 경우도 아프리카로 급파되기 전 6차례나 보급을 위해 입항을 했지만 아무런 문제가 발생하지 않았다. 아프리카 지역으로 작전 구역이 갑자기 바뀌지 않았더라면 이번 집단감염 사태는 생기지 않았을 것이라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다.
함장에게 모든 책임 미뤄선 안 돼
이번 작전 구역 변경은 청와대 국가안전보장회의(NSC)가 결정했다고 한다. 이 과정에서 실제 작전을 맡고 있는 합참과 해군 등 군 당국의 의견이 얼마나 반영됐는지, 문재인 대통령의 지시가 있었는지도 규명돼야 할 사안이다. 원인철 합참의장은 26일 국회 국방위에서 “합참 의결로 작전 지역을 변경한 사례는 없고 통상 NSC에서 토의를 거쳐 이뤄진다”고 말했다. 일각에선 해군 수뇌부가 ‘과거 동일 지역에 급파됐던 경험에 비춰 해군이 가서 전혀 할 일이 없고, 오히려 외교적 노력으로 풀어야 된다’며 반대했다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이런 의혹들을 과연 국방부 ‘셀프 감사’로 규명할 수 있을까?
‘승조원 90% 감염’이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운 청해부대 사태에서 함장은 책임을 면키 어렵겠지만, 자칫 함장이 모든 잘못을 뒤집어쓸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청해부대 사태 파문이 커지면서 국방부는 합참에, 합참은 해군본부에, 해군본부는 청해부대로 책임을 미루는 듯한 모습도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다. 이 또한 국방부 셀프 감사로는 해소되기 힘든 부분이다. 마침 야당에서 이번 사태에 대한 국정조사 요구서를 국회에 제출했다고 한다. 이번 국회에서 제대로 된 조사가 어렵다면 다음 정부에서라도 철저히 이번 사태의 원인을 규명해 차기 대통령과 군 수뇌부가 교훈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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