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GC 2021에는 유독 흥미로운 스토리들이 많았다. 우승 후보로 점쳐지던 Soniqs와 Oath의 몰락, 젠지의 극적인 그랜드 파이널 진출, 유럽 팬들 사이에서 우승 후보로 거론되지 않았던 언더독 HEROIC의 각성, 이로 인해 우승을 확정지을 줄 알았으나 그들의 발목을 잡으며 역전승에 성공한 New Happy 등 손에 땀을 쥐는 스토리들은 자칫 지루할 수 있는 경기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아쉽게 우승을 놓친 HEROIC
극적으로 그랜드 파이널에 진출한 젠지
배틀그라운드 e스포츠 대회의 감상 포인트는 전반적 경기 진행의 흐름과 선수 개개인의 피지컬도 있겠지만, 이렇듯 여러 매치를 진행하며 쌓이는 스토리가 타 대회에 비해 뚜렷하다는 점 또한 주목할 만 하다. 더불어 이런 스토리를 연출해 낸 PGC 2021의 참가 팀들은 권역과 상관없이 모두 출중한 경기력을 보여줘 더욱 흥미로운 결과를 만들어냈다.
특히 이번 PGC 2021 그랜드 파이널에서는 생존 한 번, 킬 포인트 하나에 수억 원이 왔다갔다 하는 흥미로운 경기가 진행되어 눈길을 끌었다.
◇ Soniqs와 Oath의 몰락, 젠지의 미라클런 좌절
상당 수의 이용자가가 우승권 팀이라 점쳤던 한국의 '젠지', 아메리카의 'Soniqs' 등 많은 팀들이 PGC 2021에서 힘을 쓰지 못하고 있었다. 그중 강력한 우승 후보로 꼽히던 젠지는 기대 이하의 경기력을 보이며 '사실상 그랜드 파이널 진출이 좌절됐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상당 수의 이용자가가 우승권 팀이라 점쳤던 아메리카의
미국 내에서는 지난 시즌 우승팀 Soniqs가 건재하고, Soniqs의 아성을 깨뜨리고 양대 산맥으로 올라선 Oath가 높은 평가를 받은 바 있다. 더불어 TSM FTX 역시 무난한 파이널 진출이 예측됐다. Dignitas, Spacestation Gaming, KPI Gaming이 다크호스로 평가받아 전체적으로 높아진 북미팀의 평가를 엿볼 수 있었다.
그러나, KPI Gaming이 그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1주차 우승으로 손쉽게 파이널 대비를 할 시간을 번 반면에 Soniqs는 졸전 끝에 단 한 번의 파이널도 밟지 못했으며, Oath 역시 우승 당시의 명성에 비하면 아쉬운 성적을 내며 우승 후보로 꼽혔던 두 팀이 조기 탈락하는 이변이 일어났다.
오히려 자국 대회에서 이 두 팀에게 맥을 못 추리던 Spacestation Gaming이 선전하며 가장 높은 점수로 그랜드 파이널에 진출했다.
지난 대회 우승팀이자 PCS 4 우승팀 Soniqs의 폼은 절정에 달하던 전성기에서 조금 내려와 있었다. PCS 5에서 Oath에게 끌려다니다 우승을 내주고 말았고, 자국 대회인 ESL마저 내주고 말았다. 챔피언에서 다시 도전자의 입장이 된 Soniqs지만 전 시즌 챔피언이기 때문에 이번 대회 최상위권으로 평가받았으며, 젠지의 Pio와 라이벌로 묘사된 TGLTN을 PGC 인트로 영상에서도 집중 조명하며 기대치를 다시 끌어올렸다.
젠지의 Pio와 라이벌로 묘사된 TGLTN
젠지의 Pio와 라이벌로 묘사된 TGLTN
그러나 PGC 내내 고전을 면치 못하던 Soniqs는 위클리 파이널에서 줄곧 2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며 끝내 위클리 파이널에 참가하지 못하는 등 해프닝이 벌어지며 그랜드 서바이벌로 굴러떨어졌다. 이후 그랜드 서바이벌 마지막 경기에서 2등의 저주가 또 발현되며 디펜딩 챔피언은 짐을 싸게 되었다.
Soniqs는 PGI.S 우승팀 이라는 명목에 맞지 않게 위클리 파이널과 그랜드 파이널을 가지 못하고 28위라는 낮은 순위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젠지 또한 우승권과는 거리가 멀었다. 젠지가 본선에서 그랜드 파이널에 진출할 수 있는 경우의 수 중 하나는 3주차 위클리 서바이벌에 살아남아 위클리 파이널에 진출, 우승을 거머쥐어 그랜드 파이널 직행 티켓을 따내는 방법이었고, 젠지는 이를 해내며 반전 드라마의 서막을 알렸다.
젠지는 3주차 위클리 서바이벌 마지막 매치인 매치 16에서 극적으로 치킨을 획득하며 Danawa e-sports, GHIBLI Esports, MaD Clan에 이어, 한국 팀으로는 네 번째로 위클리 파이널에 합류했다.
이노닉스의 다대일
하지만 폼을 회복한 팀의 어태커 이노닉스와 서울을 포함한 선수들의 전반적인 폼이 좀처럼 회복되지 않으면서 그랜드 파이널에서는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했다.
◇ 각성 HEROIC과 New Happy의 우승 쟁탈전
이번 PGC 2021의 포인트룰에서 흥미로운 점은 타 e스포츠와 달리 인 게임에서 실시간 '고춧가루'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경기의 결과에 따라 진출팀의 양상이 결정되는 것에 더해 경기 내에서 하위권 팀이 우승을 목전에 둔 팀의 발목을 잡는 것이 충분히 가능하기 때문에 더욱 흥미로운 시청이 가능하다. 전반적으로 상향 평준화된 실력과 포인트룰의 시너지로 1위 쟁탈전과 3등 이하의 순위권 쟁탈전이 치열하게 벌어졌다.
우승을 차지한 New Happy는 중국에서 가장 교전 능력이 좋은 팀으로 손꼽혔고, 지수보이 해설의 원픽으로 꼽힐 정도로 강력한 팀이다. 위클리 서바이벌과 위클리 파이널에서는 뛰어난 교전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부실한 운영과 판단이 발목을 잡았고 후반부에 인원손실이 일어나는 것을 막지 못하여 인원유지를 한 팀에게 멸망당하는 그림이 자주 보였다. 이에 해설진들에게 이른바 '명품조연'으로 취급받으며 1주차에는 위클리 파이널 진출에도 실패하면서 교전만 부각되고 부진할 것이라는 예측이 많았다.
우승을 차지한 New Happy는 중국에서 가장 교전 능력이 좋은 팀으로 손꼽혔다
그러나 1주차 이후 점차 운영과 판단 면에 있어서 상당히 준수한 모습을 보이기 시작하면서 치킨을 늘려가기 시작했다. 이후 도착한 그랜드 파이널에서는 압도적인 교전 능력으로 1위로 치고 나간 Heroic을 바짝 뒤쫓아갔다.
3일차에 들어서 Heroic이 타 팀들의 집중견제를 받기 시작했다. 특유의 끼어드는 운영이 이런 제한들에 발목을 잡히면서 조기 탈락이 이어지는 한면, New Happy는 여전한 교전능력으로 킬점수를 올려나가며 1위 탈환에 성공했다.
마지막 경기인 15라운드에서 중간에 탈락했지만 Heroic 역시 자기장 외곽 능선싸움에서 주변 팀들의 집중포화를 견디지 못하고 킬점수를 먹지 못하면서 그랜드 파이널 우승을 차지하였다.
그랜드 파이널 우승을 차지한 New Happy
유럽에서는 Virtus.pro가 강세를 보여 무난한 파이널 진출이 예측되었고, FaZe Clan, Team Liquid가 관록을 바탕으로 파이널 가능성이 높게 평가받았으며, ENCE, Natus Vincere는 다크호스, 그리고 HEROIC, Team Unique, BBL Esports는 약점이 크게 존재해 중위권~하위권 수준으로 평가받았다. 그러나, FaZe Clan이 비교적 쉽게 무너졌고, 중하위권으로 분류되었던 HEROIC은 기대 이상의 성적으로 3주 연속 위클리 파이널 진출하며 그랜드 파이널행 티켓을 쉽게 거머쥐는 등 어느 정도의 변수가 터져나왔다.
특유의 정교한 운영과 판단력을 살려서 교전이 일어나는 곳에 끼어 든 Heroic
HEROIC의 경우 위클리 서바이벌까지는 다른 서구권 팀에 비해 크게 주목받는 팀은 아니었다. 그나마 준수한 운영능력과 Beami 선수의 날카로운 SR플레이가 주목받던 팀이었다. 이후 3번의 위클리 파이널에 모두 진출하면서 강팀이라는 평가를 받긴 했으나, 우승권에 있다고 여겨지지는 않았다. 그런데 그랜드 파이널에서 갑자기 각성한 경기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특유의 정교한 운영과 판단력을 살려서 교전이 일어나는 곳에 끼어들어 반파되어 있는 타팀 스쿼드들을 부수는 플레이를 선보였고, 그 플레이가 계속 통하면서 1일차 69점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단번에 1위로 치고 올라갔다.
1일차 69점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단번에 1위로!
1일차 69점이라는 대기록을 세우며 단번에 1위로!
다만 2일차부터는 쉽사리 교전 장소에 개입하지 못했다. HEROIC의 킬로그가 뜨면 곧바로 견제샷이 쏟아지는 대처가 시작된 것. 물론 팀교전 능력도 상당히 준수한 팀이고 운영 능력이나 판단력 모두 대단히 뛰어났기 때문에 악조건 속에서 치킨 하나를 따내는 모습을 보여줬다.
HEROIC PaG3 하이라이트
이후 매치 6,8,10에서 각각 3점, 2점, 4점을 획득하면서 NH, TSM에게 밀려 3위에 안착했다. 3일차에 들어서 다시 특유의 정교한 팀 교전과 끼어들기 플레이가 폭발하면서 NH와 우승 경쟁을 할 정도의 점수로 치고 올라가는 데에는 성공했지만, 마지막 매치 15에서 New Happy를 본인들 손으로 쓸어담았음에도 자기장 외곽에서 굽이진 능선을 타고 들어가야 하는 상황에 여러 각에서 쏟아지는 포화를 견디지 못하고 2위를 기록하며 아쉽게 우승을 놓쳤다.
목 놓아 외친 2억짜리 수류탄
무엇보다 대회 내내 상성이 좋지 않은 GEX에게 마무리를 당하면서 우승이 좌절됐기 때문에 더욱 아쉬운 상황이 연출됐다.
경기 내용도 상당히 흥미로웠다. 미라마에서 시작된 마지막 매치 15에서는 HEROIC과 NH가 같은 포인트에 낙하하면서 단두대 매치가 시작될 뻔 했으나 HEROIC이 조금 더 빨리 자리를 잡으며 NH가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1위를 노리는 HEROIC과 NH의 경우 끝까지 살아남아 킬캐치를 통해 포인트를 쓸어담는 것이 중요한 상황이었다.
이후 앞서 언급했듯 세 번째 자기장에서 접전이 벌어지던 중 HEROIC이 직접 우승 경쟁자인 New Happy를 몰살시키며 반전의 반전이 지속됐다. 최후의 순간까지 우승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1, 2위의 순위 변동은 잦았다.
순식간에 전멸당한 NH는 일찌감치 매치 15에서 사라졌고, 최종 159포인트로 경기를 마무리하게 됐다. HEROIC은 남은 5포인트를 챙기면 최종 우승을 가져가는 상황까지 도달했다. 점수가 더 필요했던 HEROIC은 순위 방어를 위해 이동하기 시작했다. 끝까지 생존에 매달리던 HEROIC이지만 대회 내내 발목을 잡았던 GEX와 NAVI를 뚫어내지 못하며 New Happy에게 우승을 내주었다.
전반적으로 다양하면서 극적인 스토리들이 PGC 2021을 관통했다. 평소라면 주목도가 떨어졌을 법한 '바텀 식스틴'에 유력 우승후보들이 대거 포함되어 있던 것부터 시작해 그랜드 서바이벌, 마지막 경기까지 우승을 점칠 수 없던 그랜드 파이널까지 한 순간도 눈을 뗄 수 없는 양상들이 펼쳐지며 관중들의 눈을 사로잡았다. 비록 대서사시는 우승후보 젠지의 미라클런도, 언더독 HEROIC의 반란도 아닌 New Happy의 역전 드라마로 막을 내렸지만 2022년이 더욱 기대되는 출중한 경기력으로 마무리되어 많은 팬들의 기대감을 끌어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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