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이낸셜뉴스] '사법농단 의혹'으로 재판에 넘겨진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기소 4년 11개월여 만에 무죄를 선고받았다. 무죄가 선고되자 양 전 대법원장은 당연한 결과라는 입장을 내비쳤고, 검찰은 항소 여부를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35-1부(이종민·임정택·민소영 부장판사)는 26일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등 혐의로 기소된 양 전 대법원장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함께 기소된 박병대·고영한 전 대법관에게도 무죄가 선고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선고를 마치고 취재진에게 "당연한 귀결이라고 본다"며 "이렇게 명쾌하게 판단을 내려주신 재판부에 경의를 표한다"고 말했다.
"법적 판단과 별개로 부적절한 처신이라는 비판이 있는데, 이에 대해 할 말은 없는가", "검찰 수사가 무리했다는 비판이 있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등의 질문에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고 법원을 떠났다.
양 전 대법원장은 지난 2011년 9월부터 6년간 대법원장을 지내면서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혐의로 2019년 2월 구속기소됐다.
검찰이 공소사실에 기재한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는 47개에 달한다. 죄명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공무상비밀누설 △허위공문서작성 및 행사 △직무유기 △위계공무집행방해 △특정범죄가중처벌법상 국고손실 등이 적용됐다.
양 전 대법원장은 역점사업이었던 상고법원 도입 등을 위해 각종 재판에 관여한 혐의를 받는다. 검찰은 양 전 대법원장이 일제 강제동원 피해자 손해배상청구 소송, 국가정보원 대선 개입 사건 등 박근혜 정부의 '관심 재판'에 개입해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봤다.
또 파견 법관을 통해 헌법재판소 내부 정보와 동향을 수집하게 하고, 특정 판결에 비판적인 의견을 낸 판사들의 명단,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를 작성해 인사상 불이익을 준 혐의도 있다.
'사법농단 의혹'의 핵심 쟁점은 직권남용 권리행사방해 혐의 성립 여부였다. 그간 재판부는 관련 사건에 대해 '직권 없이는 직권남용도 없다'는 법리로 무죄를 선고해왔다. 법원행정처 법관들이나 수석부장판사 등에게 일선 재판부의 판단에 개입할 권한이 없고, 각 재판부는 법리에 따라 합의를 거쳐 판단했을 뿐, 권리행사를 방해받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날 재판부도 양 전 대법원장의 혐의마다 "범죄 혐의사실에 대한 증명이 없다"고 판시했다. 임종헌 전 법원행정처 차장 등 하급자들의 혐의가 일부 인정된다고 하더라도 "검찰이 제시한 증거만으로는 공모했다는 사실이 입증되지 않았다"고 봤다.
검찰은 항소 여부를 검토할 방침이다. 서울중앙지검은 "1심 판결의 사실인정과 법리판단을 면밀하게 분석해 항소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한편 검찰은 지난해 9월 결심공판에서 양 전 대법원장에게 징역 7년을, 박 전 대법관과 고 전 대법관에게 각각 징역 5년, 징역 4년을 구형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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