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관진 前 국방부장관 6년 만에 언론 인터뷰
김관진 前 장관, 박민식 보훈부장관·백선엽 장군 장녀와 좌담회 -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전쟁기념관에서 열린 ‘백선엽 장군 재평가’ 좌담에 참가한 박민식(맨 왼쪽) 국가보훈부 장관, 김관진(가운데) 국방혁신위원회 부위원장, 고(故) 백선엽 장군의 장녀 백남희 여사가 대화하고 있다. 김 부위원장 뒤로 보이는 탱크는 6·25 전쟁 당시 실제 전선에 투입된 미군 M4A3E8 셔먼 전차다. /고운호 기자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은 본지 인터뷰에서 “AI 첨단 무기가 개발되고 전쟁 양상도 바뀌어가지만 중요한 건 선명한 대적관, 강인한 전투 의지 등 정신 전력”이라고 밝혔다. 그러면서 “군 선후배 사이에서 이런 정신이 답습되고 전통으로 이어져야 싸워 이기는 군대가 된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이 언론 앞에 선 것은 2017년 이후 6년 만이다. 인터뷰는 지난 19일 용산 전쟁기념관에서 이뤄졌다. 백발이 늘었지만 꼿꼿한 허리와 단호한 어투는 그대로였다. 그는 지난달 10일 대통령 직속 국방혁신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된 데 대해 “강한 군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는 게 남은 소임”이라고 했다.
김 전 장관은 “현실을 직시해보면 6·25 때 적이 지금도 적”이라면서 “그때 북한을 지원했던 중국·소련(러시아)이 지금도 북을 지원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무기 체계가 어떻게 바뀌든 누가 적인지를 바로 알아야 한다”면서 “이게 잡혀야 과학기술 발전으로 대두되는 새로운 무기 체계로 어떻게 싸울지가 의미 있다”고 했다.
김 전 장관은 “지금도 북한의 대남 적화 통일 전략은 변함이 없다”고 했다. 그는 “북한은 한국이 전쟁을 준비하고 강력한 군이 되면 뭘 해도 안 되니 아예 전쟁 준비를 안 하는 분위기를 우리 군에 조성하려 한다”면서 “싸워 이길 수 있는 강군이 되려면 끊임없이 훈련해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한미 동맹이라는 자산과 6·25에서 나라를 지킨 선배의 전투 경험과 훈련을 통해 더 강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했다. 그는 “국방혁신위원회에 있으면서 당장에라도 싸울 수 있는 군이 되도록 준비하는 동시에, 첨단과학기술을 군사작전 개념에 접목해 작지만 강한 대한민국 군이 되도록 전력을 다하겠다”고 했다. 정부와 군은 병력이 빠르게 줄어드는 데다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에서도 나타났듯 유·무인 복합 무기 체계와 함께 사이버 전쟁이 가속화됨에 따라 우리 군 체계를 획기적으로 전환하는 군 선진화 작업을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통령이 위원장으로 있는 국방혁신위원회가 김 전 장관을 중심으로 이 선진화 작업의 밑그림을 그리고 있다고 한다.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은 “호국은 나라를 지켰다는 뜻으로 사회적으로 가장 높이 쳐줘야 하는 가치"라면서 "하지만 이상하게도 언젠가부터 우리 사회에서 호국을 이야기하면 ‘꼰대’로 비꼬고 비아냥대는 문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이날 전쟁기념관에선 김 전 장관, 박민식 국가보훈부 장관, 고(故) 백선엽 장군의 장녀 백남희 여사가 한자리에 모인 본지 주관 좌담회가 진행됐다. 박 장관은 “백 장군은 나라 정체성을 보여주는 징표이자 정수(精髓) 같은 인물”이라면서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에 영웅을 영웅이라 부르기 인색하거나 정치적 의도를 가지고 일부 사실을 침소봉대해 이를 막으려는 사람들이 있는 것 같다”고 했다. 그러면서 “호국은 나라를 지켰다는 뜻으로 사회적으로 가장 높이 쳐줘야 하는 가치인데 이상하게도 언젠가부터 호국을 이야기하면 ‘꼰대’로 비꼬고 비아냥대는 문화가 생겼다”고 했다. 그는 “미국은 100% 완벽하지 않더라도 조지 워싱턴, 토머스 제퍼슨 전 대통령 등 업적을 남긴 인물들의 동상을 도시 곳곳에 세우고 긍정적인 면을 배우려 한다”면서 “우리 사회가 눈여겨볼 점”이라고 했다.
백 여사는 “생전에 아버지는 간도특설대 활동으로 친일 논란에 휩싸이면 속상해하는 저에게 ‘역사는 바로잡힐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기다리면 역사가 평가해 해결해줄 것’이라고 했다”고 했다. 그러면서 “아버지는 1920년 일제 시대에 태어나 그야말로 나라 없는 설움과 가난을 겪으며 만주 군관학교 등 그 당시의 학교에 들어가 공부를 한 것”이라고 했다.
김 전 장관은 “백 장군은 임관 후 간도특설대에서 2년도 채 근무하지 않았다”면서 “이것이 친일파 행적으로 비난받아야 하는 성격인지 분명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고 했다. 그는 “당시 간도특설대 임무가 뭐였나 살펴보면 중국 공산당이 지원하는 팔로군과 동북항일연군 등에 대한 추적 및 토벌 작전이었다”고 했다. 그러면서 “참고로 알아야 할 것은 백 장군이 간도특설대에 부임한 1943년은 이미 만주 일대 독립군들이 해산돼 없어지고 소련 각지로 퍼져 나간 뒤였다는 것”이라면서 “이 사실이 진작에 알려졌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해 아쉽다”고 했다.
백선엽 장군의 장녀 백남희 여사는 “생전에 아버지는 간도특설대 활동으로 친일 논란에 휩싸이면 속상해하는 저에게 ‘역사는 바로잡힐 테니 너무 걱정하지 마라. 기다리면 역사가 평가해 해결해줄 것’이라고 했다”고 말했다. /고운호 기자
이날 좌담회는 6·25 당시 실제 사용된 미군 M4A3E8 셔먼 전차, 미 F-51 무스탕 전투기, 북한군의 소련제 T-34-85 전차 등이 있는 대형 유물 전시실에서 진행됐다. 김 전 장관은 전시 무기들을 가리키며 “같은 군인으로서 백 장군의 전투를 볼 때 가장 빛나는 순간은 다부동 전투”라면서 “백 장군은 당시 1사단장으로서 북 인민군에 밀리고 밀리던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다부동에서 낙동강 전선을 지켜내 구국의 영웅이 됐다”고 했다. 그는 “다부동에서 무너지면 대구가 함락되고 부산도 넘어가 나라가 끝날 상황이었는데 여기서 그가 ‘내가 두려움에 밀려 물러서면 나를 쏘라’며 사단장으로서 반격에 앞장을 섰다”면서 “이건 지휘관으로서 큰 도박을 한 것”이라고 했다. 박 장관은 “백 장군의 그 일장연설로 장병 전투 의지가 바로 서 낙동강 전선을 사수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김 전 장관은 장관 재임기나 군 지휘관 시절 미국 방문 때나 주한미군 부대를 찾았을 때 미군들이 먼저 ‘제너럴 팩(General Paik)’ 이야기를 꺼내며 대화를 시작해 놀랄 때가 잦았다고 한다. 그는 “백 장군은 한국보다 미국에서 더 존경받는다”면서 “군사 선진국인 미국은 결코 쉽게 전쟁 영웅이라는 칭호를 주지 않고 객관적이고 명확한 자료로 평가하는데, 백 장군은 영웅이 되기에 충분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오래전부터 미 군사학교에선 백 장군의 저서 ‘군과 나’가 교재로 쓰이고 있다”고 했다.
김관진 전 국방부 장관은 지난달 10일 대통령 직속 국방혁신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된 데 대해 “강한 군을 만드는 데 보탬이 되는 게 남은 소임”이라고 했다. /고운호 기자
☞김관진은 누구
1949년 전북 임실 태생으로 서울고, 육군사관학교(28기)를 졸업했다. 합참 군사전략과장, 35사단장, 2군단장을 거쳐 노무현 정부에서 대장으로 진급해 3군 사령관, 합참의장을 역임했다. 이명박 정부였던 2010년 11월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로 안보 위기가 커지자, 그해 12월 국방부 장관으로 전격 발탁됐다. 그는 “북한이 도발 대가를 뼈저리게 느끼게 할 것”이라는 취임사를 시작으로 “쏠지 말지 묻지 말고 선(先)조치하라”는 대응 지침을 내렸다. 이후 ‘북한이 가장 무서워하는 장군’으로 불렸다. 북한이 그의 사진을 붙여 놓고 사격 훈련을 하는 모습을 공개하는 등 반발하긴 했지만 무력 도발은 하지 못했다. 박근혜 정부 때 국방장관에 유임됐으며 이어 국가안보실장도 지냈다. 윤석열 정부에서는 국방혁신위원회 부위원장에 임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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