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15년, 현대자동차의 고성능 서브 브랜드 ‘N’이 출범할 당시에만 해도 곳곳에서 비웃음이 쏟아졌다. “현대차 따위가 무슨 고성능이냐“, “브랜드 이름부터가 BMW M 짝퉁 느낌 난다”, “로고 디자인도 조잡하네” 등의 조롱이 이어졌지만 첫 주자인 i30 N이 유럽 시장에서 가성비 고성능 모델로 극찬받으며 인식을 조금씩 바꿔 놓기 시작했다.
이후 꾸준히 출전한 월드 랠리 챔피언십(WRC)에서 여러 번 우승컵을 들어 올리는가 하면 월드 투어링카 컵(WTCC)에서는 무려 27회 우승으로 제조사 부문 최다 우승 타이틀을 쟁취하기도 했다. 모터스포츠 무대에서 갈고닦은 노하우를 양산차에 녹여내 벨로스터 N과 아반떼 N 등 진정 운전 재미를 위한 모델을 출시하며 고성능 국산차의 입지를 다져낸 지금, 충격적인 소식이 팬들을 혼란에 빠트렸다.
글 이정현 기자
알버트 비어만 고문
“i30 N 단종될 수도”
호주 자동차 전문 매체 ‘카 엑스퍼트(Car Expert)’의 17일(현지 시각)에 따르면 알버트 비어만 현대차 기술고문은 “i30 N 모델에 탑재된 2.0L 4기통 터보 엔진은 2025년 도입될 유로 7 배출가스 규제로 인해 N 브랜드 라인업에서 제외될 예정이며 새로운 C 세그먼트 전기 N 모델이 해치백 자리를 대체할 수 있다”고 밝혔다. 내연기관 모델이 순수 전기 모델로 변경될 가능성을 암시한 것이다.
또한 틸 바텐베르그(Til Wartenberg) N 사업부 책임자는 타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앞으로 6~8년 내 더 많은 시장으로 진출할 것으로 예상된다”며 “N의 브랜드 철학에 맞는 전기차와 소비자들의 요구 등을 충족할 수 있을 때까지 현재 판매 중인 i20 및 i30 N 중 한 모델의 수명을 연장할 수도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해치백 인기 줄었다
줄줄이 없애는 추세
한편 비어만 고문은 지난 9월에도 i30 N의 단종 가능성을 암시한 바 있다. 그는 당시 외신 인터뷰에서 “i30 N이 언제까지 판매될지에 대해 구체적으로 확인된 바는 없으나, 해치백의 인기가 예전보다 못하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다. 이어 “일부 시장에서는 전기차 수요가 눈에 띄게 높아지고 있고, 어떤 지역에서는 SUV가 인기를 얻고 있다”며 “각 시장에 맞는 과제와 전략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밝혔다.
한 업계 관계자는 “한국, 미국뿐만 아니라 해치백의 인기가 높았던 유럽에서마저 수요가 줄어들고 있는 상황”이라며 “신형 코나(SX2)가 i30를 대체할 것이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최근 많은 완성차 제조사들이 해치백 라인업을 정리해나가는 추세다. 포드는 피에스타를, 쉐보레는 스파크와 아베오를 단종하기로 결정했으며 르노는 메간 후속 모델을 크로스오버 전기차로 대체하겠다고 밝혔다.
아반떼 N은 신형도 내연기관
하이브리드 탑재 여부가 변수
한편 세단 모델인 아반떼 N은 차세대 모델까지 내연기관을 얹게 될 전망이다. 비어만 고문은 “유럽 시장에서는 i30 N을 포함한 내연기관 N 모델을 더 이상 판매하지 못할 가능성이 크지만 아반떼 N은 차세대 모델에 새로운 가솔린 엔진을 탑재할 것”이라고 말했다. 여기에는 크게 두 가지 시각이 존재한다. 첫 번째는 현대차가 WRC 머신 ‘i20 N 랠리1’에 적용한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 기술을 양산화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두 번째는 현재 쏘나타 N 라인에 탑재되는 2.5L 4기통 터보 가솔린 엔진을 차세대 아반떼 N에 얹을 것이라는 예측이다. 새로운 가솔린 엔진 탑재가 기정사실화된 만큼 2.5L 터보 엔진이 그 후보로 가장 유력하다는 분석이다. 현행 아반떼 N에 적용되는 2.0L 터보 엔진은 최고출력 280마력, 최대토크 40.0kg.m이지만 2.5L 터보 엔진은 쏘나타 N 라인 기준 290마력, 43.0kg.m으로 소폭 높은 성능을 발휘한다.
순수 내연기관 N의 끝?
수동변속기도 사라지나
만약 아반떼 N 후속 모델에 하이브리드 파워트레인이 적용된다면 수동변속기 없이 DCT만 적용될 가능성이 크며 코나 N 또한 이를 따를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현재 판매 중인 N은 순수 내연기관과 수동변속기 옵션이 제공되는 마지막 모델이라고 볼 수 있는데, 현재까지 출시된 라인업을 간단히 살펴보자.
앞서 언급한 아반떼 N은 2.0L 직렬 4기통 터보 가솔린 엔진과 수동 6단 및 8단 DCT가 탑재된다. DCT 사양의 경우 0-100km/h 가속을 5.3초에 끊을 수 있으며 최고속도는 두 사양 모두 250km/h다. 코나 N은 아반떼 N과 동일한 엔진이 탑재되나 변속기는 8단 DCT만 적용된다. 0-100km/h 가속은 5.5초, 최고속도 240km/h를 발휘한다.
운전 재미 강조해온 N
초심 얼마나 유지될까?
본격적인 N이 부담스럽거나 데일리 운행을 고려하는 소비자들을 위한 ‘N 라인‘도 존재한다. 아반떼와 코나 외에도 쏘나타, 투싼까지 제법 다양한 라인업이 갖춰져 있다. 아반떼 N 라인은 이들 중 유일하게 수동변속기를 선택할 수 있으며 쏘나타 N 라인은 상기한 대로 아반떼 N, 코나 N보다 강력한 엔진이 탑재된다. e-LSD가 적용되지 않아 토크 스티어가 상당하다는 평가도 있으나 100km/h 이후 후반 가속은 아반떼 N과 대등한 수준이다.
전동화는 언젠가 맞이할 수밖에 없는 미래지만 N이 그 절충안으로 하이브리드 엔진을 도입하길 바라는 팬들은 많지 않을 것이다. 브랜드 출범 당시부터 무엇보다 운전 재미를 최고 가치로 강조해온 N인 만큼 향후에도 초심을 유지하길 기대해보며, 굳이 구형 모델로 위안 삼을 필요가 없도록 해주길 바라며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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