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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핀오프 옥경혜랑 드라마 후의 이야기_32_32.여기서 나가자.

정갤러(221.145) 2025.02.10 10:14:40
조회 523 추천 21 댓글 22



32.여기서 나가자.


우리는 공연장 건너 작은 까페에 앉아있다.

큰 유리창 너머로 비가 내리는 거리가 보인다.

우산 쓴 사람, 우산 없이 뛰는 사람…


나는 에스프레소와 얼음을 넣은 위스키를 한 잔 시켰다.

혜랑은 언제나처럼 뜨거운 커피를 시켜놓고

우린 10분째 말이 없다.


처음으로 입을 연 건 혜랑이었다.

-술도 약하면서.

-어…긴장되서.

-긴장 돼?

-우리 너무 오랫만이잖아.

-그렇지. 5년만인가?

-거의…


-잘 지냈어, 혜랑아?

-덕분에.


나는 ‘덕분에’라는 혜랑의 말에 조금 무게가 느껴져서 위스키를 한 모금 마신다.

목을 태우며 내려가는 위스키 한 모금에 이내 긴장이 조금 풀리는 것 같기도 하다.


-...어떻게 된 거야? 창극단으로 옮긴거야? 영서랑 같이?

-아냐. 이번에 자명고 원작자 선생님이 각색하시면서 새 배역을 나한테 제안하셨어.

자명고 초연이 매란이라서 매란과 협업을 하면 의미가 있다고 생각하신 것 같아. 선생님이 나 예뻐하셨잖아. 영서 추천도 있었던 것 같고 .

그래서 창극단 객원으로 참여하게 되었어. 한국에서도 공연 일정이 있어.


-그래, 잘 됐네.

-넌?

-난 영어공부도 하고…영화도 하고…

-여기서 영화를 해?

-응 그럴 기회가 생겼어. 아주 작은 역할이지만.


또, 무작정 시간이 흐른다.

나는 남은 위스키 잔의 얼음이 녹는 것을 지켜보기만 한다.

은재에 대해 물어보려고 하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말이 쉽게 나오지 않는다.


그걸  눈치라도 챈듯 혜랑이

-은재는 일본에 갔어. 은재 아빠가 재혼했거든.

-언제? 

-이제 일년 쯤 됐어.

-그럼 혼자 지내?

-그렇지 뭐.…


혜랑은 커피잔을 만지작거리며 말한다. 

-기사 봤어. 둘이 그런 사인줄 몰랐어.

-그런 거 아냐. 기자들 잘 알잖아. 


또 긴 침묵이 흐른다.

-한국에는 언제 들어와?

-모르겠어. 지금 하는 일은 1년 안에 끝날 것 같은데. 여기 좀 더 있어볼까 하고. 

-그래, 좋아 보여.

-그래?

-편안해 보여.


혜랑이 묻는다.

-나랑 있을 때 힘들었니? 옥경아.

-모르겠어...그랬던 것 같아.


-옥경아,

-응?

-나 이번에 은재를 보내면서 알게 됐어. 은재를 너무 보내기 싫은데, 그래도 보내는 거야. 내가 엄마잖아. 그 아이를 위해서, 내가 보내기 싫은데도 보내더라. 그런데…


그녀는 잠시 말을 멈추었다. 

-나는 넌 못 보냈어. 못 보내겠더라. 그래서 알게 됐어. 나는 너보다는 나를 위하는 사람이구나…내가 그런 사람이었어.그게 널 힘들게 했나봐. 


-아직…날 보내지 못했어?

나는 설명할 수 없는 아픔을 느낀다.


-그런 것 같아. 

혜랑이 대답한다.

-그래서 힘들었어…지금도. 좀 그래.


그 아이가 힘들다고 말하니 마음이 아파왔다.


나는 혜랑에게 나지막히 속삭였어.

-나도…떠나지 못했어.


우리는, 

5년 전 분장실에서 한 걸음도 나오지 못했음을 나는 문득 알게 되었다. 

나는 너를 떠났고, 너도 나를 보낸 줄 알았는데.

나도 널 떠나지 못하고, 너도 날 보내지 못했구나.

우린 아직 거기 있어.

아직 서로를 보내지 못해서 우리는 서로를 붙든 채, 

그곳에서 이렇게 서로를 기다리고 있었구나. 


그래서였어. 혜랑아.

내 생각의 끝은 항상 너였어.

항상, 기억의 끝은 너.

너로 돌아가서 너를 떠올려야지만 나의 생각이 끝나고

나의 기억이 끝나고, 나의 하루가 끝나고.

그래야 잠들 수 있었어.


-혜랑아, 나 보내지 마…


나는 혜랑이 대답도 하기 전에 일어나 테이블 위의 놓인 혜랑의 손에 손을 포개고

입을 맞추었다.

위스키 때문인가, 혜랑의 차가운 입술에 비해 나의 입술이 뜨겁다고 느껴졌다.

처음에는 놀라는 것 같던 혜랑이 한 손으로 

내 옷깃을 쥐고 나를 더 가까이 끌어당기는 것을 느낀다.


이제 알았어.

우리, 손을 잡고 여기서 나가자.

우리의 서툴고 아프고 슬펐던 기억은 그곳에 남겨두고,

우리 함께 여기서 나가자.


나는 그녀의 손을 잡아끌며 말했다.

-우리, 여기서 나가자. 


밖에 나오니 비가 잔뜩 내리고 있었어.

그런데 혜랑의 손을 잡은 내 손이 얼마나 뜨겁던지,

차가운 비가 하나도 차갑지가 않았어.


혜랑이 머물던 숙소로 올라가는 승강기에서

나는 혜랑의 몸이 나를 자석처럼 끌어당기는 것 같아서

몸에 힘을 주지 않으면 똑바로 서 있을 수가 없을 정도였어. 

그러지 않으면 나는 금방이라도 그 아이의 어깨에 얼굴을 묻고

그 아이에게 취해서 깊은 잠에 빠져버릴 것 같았어.


-혜랑아…

내가 그 아이를 안는지, 내가 그 아이에게 흡수되어버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그 아이가 나를 끌어당겨.

내 시선을, 내 몸을, 내 마음을, 내 영혼을.

그래서 내가 사라져버리는 것 같아.

사라진 내가 바람이 되어 

그녀를 어루만지는 것 같아.

 


뉴욕의 비좁은 호텔에서 나는 혜랑이와 함께 있다.

창밖으로 비가 내리고 늦은 오후의 해가 비에 가려 보이지 않는다.


-언제 출국해?

-주말 공연 끝나고 월요일. 

-오늘이 목요일인데…빡빡한 스케줄이네.

-그렇지. 아무래도 단체로 움직이니까.

-또 보기 어렵지.

-아마도. 공연 시간도 있고. 너, 영서한테 고마워해야 해. 오늘 영서가 언니집에서 자고 오지 않았으면 그나마도 없었어.

-무슨 소리야, 뉴욕에 호텔이 얼마나 많은데. 

-좀 가봤나보다?

-가봤으면? 같이 갈 수는 있고?


혜랑이 내 어깨에 얼굴을 묻은 채,  내가 그 아이의 곁에 있는 것이 믿어지지가 않는다.

-너무 좋아…..

-나도.


문득 혜랑이 말한다.

-옥경아.

-응?

-꼭 돌아오지 않아도 돼.


난 자리에서 일어나 앉아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게 무슨 말이야?

-우리집, 나는 거기 있을게. 너는 앞으로 가.


-혜랑아…

혜랑은 일어나 나를 물끄러미 바라보다 내 얼굴을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옥경아. 나 너 묶어놓는 그런 사람 되기 싫어. 너 떠나고, 난 국극도 다시 못할 거라 생각했는데, 오늘 나..너 없이도 국극 했잖아.

-...

-네가 꿈꿨던 거, 네가 원하는 거, 다 해. 나 때문에 돌아오지 않아도 돼. 나도 내가 원하는 거 하면서 거기 있을 거야.


나는 울 것 같은 얼굴이 되었다. 

그러나 그녀의 말에 싫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우린 이미 삶을 통해, 각자의 길이 있다는 것. 

각자가 걸어야 하는 여정이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나도 그녀의 삶을 그곳에 두고 이곳으로 오라고 말하기 어렵다는 걸. 

알고 있기에.


-그런 표정 하지 마. 미국 한번 와 보니까 별 것 아닌 걸? 자주 오가면 되잖아. 

-그래도 보고 싶으면 어떡해…이렇게 안고 싶을 땐 어떡해.

-그럴 땐 참았다가, 이렇게 한꺼번에 모아서 하면 되지. 


혜랑이 말했다.

-그래서 옥경아. 정말로 다 됐다 싶으면 와. 정말 그만 가도 되겠다 싶으면. 나는 거기 있을 거니까, 알지?


나는 그녀의 말이 맞고, 

내가 다른 선택을 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눈물이 흘렀다.

혜랑이도 울었다.

우리는 무릎을 맞대고 앉아 한참을 서로 마주 보았다.

우린 울었지만 더 이상 슬프진 않았다.


사랑해, 옥경아. 너는 앞으로 가. 나는 거기 남을게.

사랑해, 혜랑아. 길이 끝나면, 꼭 너에게 돌아갈게.


사랑해.

사랑해.

사랑해.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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