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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감돌고정닉
유럽여행 38일차 - 바르셀로나 가우디 투어, 몬주익 분수쇼.
오전 7시 반 투어라 6시 전에 일어났다. 전날 과음하긴 했는지 좀 힘들었다. 전날 준비한 케밥으로 아침을 먹고 씻고 출발했다. 형님들이 순례 끝나고 살이 도로 찌고 있다고 집결지까지 걷자고 하셨다. 약 2.7k 였나 오랜만에 전투적으로 걸었다. 힘차고 빠르게. 그랬더니 무릎이 시큰하더라. 돌아가면 MRI는 꼭 찍어봐야겠더라. 당일 투어 사람만 약 서른명이 넘었다. 형님들이 투어 예약할 때 사람이 많아 예약을 못한게 몇 번이라더라. 다 한국인 근데 좀 가는데 또 다른 한국인 투어도 바글바글 스페인, 포르투 어딜 가든 동양인의 95%는 한국인이었다. 다들 이렇게들 여행 많이 다니는구나... 나만 방구석에서 시간을 보냈어... 가는 길에 하늘이 이뻤다. 오늘 날씨 최고 첫 건물. 이름이 뭐였더라 내부가 이뻤다. 옥상 디자인이 재밌었다. 이걸 보고 스타워즈의 배경이 만들어졌다 카드라. 가이드님의 설명이 귀에 쏙쏙 꽂혔다. 말씀 잘하시더라. 때 맞춰 지중해 뒤로 해가 떳다. 일출이 예술이었다. 난 계속 이것만 봤다. 저 멀리 오늘 마지막으로 갈 곳도 보이고. 한글 문장이 이렇게나 정교히 적혀 있다니... 두 번째 방문한 건물. 입장료가 20유로가 넘더라. 좀 심한거 같다. 한 15여 년 전만 해도 잘 모르던, 김정은? 묻던 쪼매난 나라에, 아주 적은 인구의 사람들이 대체 얼마나 많이 여행하는 걸까. 난 사실 가우디가 누군지도 모르고 예술에 조예가 없어서 잘 느끼지 못하지만 그 생각은 했다. 우리나라 초가집에 소 끌고 밭 갈던 시대에 얘들은 이런걸 만들었다는게 대단했다. 중간에 커피 타임을 주셨다. 사장님이 이탈리아 사람이더라. 이탈리아 남자는 여름이든 겨울이든 무조건 긴팔 셔츠에 양복을 입는다더니 그렇더라. 남자가 봐도 멋있었다. 커피 타임이 끝나고 모여서 그 때서야 보이는데 한국인 분들 모두 이쁘고 멋있게 차려 입었더라. 화장하고 코트에 스커트에 젊은 사람들 유행하는 스타일에. 그러고 나를 보는데 웃겼다. 그지도 이런 상그지 꼴이 없다. 순례자들은 하나 같이 짐 줄인다고 한 달을 옷 두 벌로 버틴다. 그 옷도 등산복&운동복 베이스에 낡고 헤진 등산화. 게다가 워낙 험하게 다뤘으니 다 찢어지고 나풀거리고 꼬라지도 정리 안되서 막 자란 털들과 장발의 머리카락, 시커멓게 탄데다 씻어도 변함없는 꾀죄죄한 얼굴. 뭐 잘 보일 사람도 없고 이미 순례 복장이 제일 편하고 유럽이라고 옷 쫙 빼입고 킹쁜 사진 남기고 싶은 마음도 없고. 신경 안쓰기로 했다. 다만, 나 같아도 이런 그지꼴인 사람과 가까이 하고 싶지 않을 것 같아서 사람들과 거리를 좀 벌렸다. 여기 저기서 목소리가 들렸다. 옷에 실밥 났어 짜증나 나 이 코트 가면 드라이해야 할 것 같아 나 오늘 머리 괜찮아? 등등 많이들 신경 쓰고 있구나... 무신경한 내가 웃겼다. 하기사 지금 이 꼬라지라 그런게 아니라 난 원래 그렇다. 공원에 왔다. 가이드님이 농담으로 이 공원 이름은 박구엘이에요~ 했는데 공원 이름은 생각 안나고 박구엘만 기억난다. 여기도 가우디가 디자인 했다고. 공원에서 보는 풍경은 이뻤다. 시간만 되면 저 해안가에 가보고 싶었는데 아쉬웠다. 남는게 시간인 놈이 시간이 안된다니 거참 투어 마지막 장소인 파밀리아에 왔다. 사실 성당은 지겹고 흥미 없어서 정말 관심 없었지만 마지막이라고 생각하고 왔다. 가이드님께서 조각 하나 하나 설명을 다 해주셨다. 역시 알고 보니까 흥미롭더라. 관심 있게 봤다. 오늘 투어는 만족스러웠다. 당일 투어가 1시 40분에 끝났다. 큰 형님이 약 보름 전 쯔음부터 노래를 부르던 짜장면을 먹으러 가기로 했다. 한식당에서 짜장면도 팔더라. 짜장은 한식이긴 하지. 형님들은 짬뽕에 짜장면을 시키고 나는 개인사로 외식할 때 중식을 피하는 편이라 제육볶음. 여기 사장님은 10년 전에 차려서 자리를 잡으셨다고 했다. 대화를 좀 나눴다. 사장님이 참 친절하고 사려 깊으셨다. 오늘 저녁에 가기로 예정한 분수쇼에 대해서도 알려주셨는데 100년 전에 지어졌다고 했다. 서울이나 라스베가스 같은 최근에 지어진 화려한 분수쇼에 비하면 보잘 것 없지만 그게 100년 전에 지어진 것이라고 생각하고 보면 좋을 거라고. 밥을 먹고 나서 숙소까지 또 걸어 갔고 형님들은 시에스타를 한다고 하셨고 난 나와서 좀 걸으려고 했는데 침대에 누워 있다가 잠들었다. 6시 반이 넘어서 다시 나왔다. 처음으로 스페인 지하철을 타봤다. 파리에서 표 끊을 때 엄청 복잡하고 힘들었는데 여긴 쉬웠다. 나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일 도전해보기로 했다. 택시 타려고 했는데 대중교통을 이용해보기로 마음 먹었다. 분수쇼가 한다는 곳 기다리는 동안 근처에서 간단히 저녁을 먹었다. 어제 오늘 달이 무척이나 크고 밝았다. 슈퍼문인 듯 분수쇼 자체는 막 대단하진 않았지만 이게 100년 전에 만들어진거라고 하니 특별하게 느껴졌다. 어떻게 100년 전에 이런걸 만들 생각을 했을까... 참... 현 세상은 백인이 이끌었고 백인이 세웠다. 진실이다. 관람객끼리 호응하고 서로 모여 기쁨을 나누고 난리였다. 찐특 인프피라 섞이진 못하고 쳐다만 봤지만 기분이 좋았다. 난 축제 분위기가 좋아. 나까지 들뜨고 행복해져. 돌아가는 길도 화려했다. 새로 산 배터리가 뭐가 문제인지 3시간 째 충전했는데 여전히 두 칸이었다... 제발 아무 문제 없길 빈다... 30유로라고... 형님들과 마지막 밤을 보냈다. 가볍게 먹었다. 형님들은 내일 인천으로 가신다. 사실 나도 지치기도 했고 더 돌고 싶은 마음도 없고 형님들 따라 돌아갈까 생각했는데 보고 싶은 사람이 있었다. 약 세 달 전, 미국 서부 패키지 여행을 갔을 때 성격이 정말 나이스한 친구를 만났었다. 런던에 거주한다고 했었는데 당시에 농담식으로 말했다. 두 달 뒤에 순례길을 갈건데, 끝나고 놀러가도 되냐고. 당시 그 친구는 환영했다. 근데 그 순간은 그럴 수 있고 당일이 되면 다를 수 있겠다 싶어 연락을 못했었다. 연락을 할까 말까, 나를 반길까, 그냥 해본 말 아닐까, 연말이라 바쁘고 불편할텐데 그냥 하지 말까 등등 찐특 인프피 답게 카톡 메세지 하나에 고민 정말 많이 했다. 근데 이상하게 같은 서울경기 하늘 아래면 더 어려울텐데 해외니까 그럴 수 있지 싶은 생각도 들었다. 용기를 내서 카톡을 보냈다. 친구가 환영해줬다. 이틀 전 뜬금없는 연락에도 반겨주는 그가 고마웠다. 그 자리에서 6일 영국 런던행 비행기표를 끊었다. 동선 그런건 중요하지 않았다. 어짜피 날아가는데 뭐. 고마웠다. 그리고 보고 싶었다. 친구가 여전히 유쾌할 것 같았다. 친구는 나에 비해 8살 어렸지만 우리의 정신연령은 비슷했다. 아니 친구가 더 높았다. 난 친구에게 배울 점이 많다. 좋은 친구다. 친구와 또 다시 한 잔할 생각에 기분이 좋아졌다. 런던에 뭐가 있는지도 모르고, 보고 싶은 것도 없지만 친구가 있다. 내 영국 런던의 컨텐츠는 친구다. 갈 이유는 충분했다. 처음으로 혼자 숙소를 예약해봤다. 마이리얼트립에 들어가 검색해서 런던 도미토리로. 뿌듯했다. 나도 할 수 있잖아? 쉽잖아! 옛날 같으면 상상도 할 수 없는 방을 예약했다. 사진 보니 순례길 알베르게에 비하면 호텔로 느껴졌다. 여긴 1층 침대에 화장실 변기에 변기 커버도 있어!!! 산티아고 순례길은 사람을 참 만사에 감사하게끔 만들어준다. 어제 과음으로 피곤하셨는지 형님들은 쉬시고 나는 스페인이 조금 아쉬워서 혼자 나왔다. 숙소 근처 바에 와서 맥주 두 잔 때렸다. 오늘이 정말 진짜 마지막 스페인이다. 내가 순례길을 다시 오지 않는 한 앞으로 영원히 없다... 제대로 된 빠에야를 한 번은 먹어보고 싶었는데 38일동안 제대로 된걸 한 번도 못먹어본게 아쉬웠다. 근데 직접 하는 집은 죄다 2인분 이상에 비싸서...사장님이 물었다. 재패니즈냐고. 머리카락이 길고 복장이 자유로워서 그런가. 보는 외국인마다 일본인이냐고 묻는다. 기분이 오묘하다. 한국인들은 잘 입고 멋지다고 믿는다던데 일단 그럼 나는 한국인은 아니다 판단하는거잖아 ㅋㅋ 아무튼 숙소로 새벽에 돌아왔다. 편안한 밤이었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압델고정닉
싱글벙글 역사상 최악의 독재자 12명
니콜라에 차우셰스쿠루마니아의 대통령이자 사실상 신처럼 군림했던 독재자로겉으론 인민의 영웅이라 불렸지만 정작 그는 국민을 굶기고감시하고 침묵하게 만들었음1965년부터 무려 24년 동안 권력을 놓지 않았고모든 언론을 통제, 사람들의 대화를 도청하며정권에 반대하는 자들은 모조리 숙청해버림그 결과 경제는 파탄났고, 국민은 식량 배급으로 겨우 연명함마오쩌둥중국 초대 주석으로 중국 현대사의 아버지라 불렸지만그의 이름은 수천만의 희생과 함께 기억되는 인물로마오쩌둥은 1949년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운 뒤위대한 도약을 선언하며 대약진운동을 시작하게 됨철을 더 생산하겠다고 농민들을 제철소로 몰아넣은 결과식량개혁 실패로 3천만 명 이상이 굶어죽게 된다이후에는 문화대혁명으로 사회 전체를 뒤흔들게 되는데지식인은 숙청, 고서적 불태우기, 자식이 부모를 홍위병에게고발하는 시대가 시작되었음그는 자신 스스로를 신격화하며 그 누구도 자신에게 대적할 수없도록 폭압적인 조치를 함폴 포트캄보디아의 총리인 그는 완전한 평등이라는 이름 아래자국민을 직접 학살한 독재자로 1975년 정권을 잡은 그는모두가 같은 옷, 같은 밥을 입고 먹는 사회를 만들겠다며도시를 폐쇄하고 모든 국민을 강제로 시골에 이주시켰음학교는 문을 닫았고 화폐는 폐지됐고 의사,교사,공무원 등은부르주아로 낙인 찍혀 처형당했다안경을 썼거나 책을 읽었다는 이유만으로 수천명의 사람이끌려가서 다시는 돌아오지 못했음킬링필드라 불리는 학살터엔 200만명에 달하는 희생자가 묻힘이는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4분의 1이 사라진 수준이다아우구스토 피노체트칠레의 군사독재자인 그는 쿠데타를 일으켜 수천만명의반대파를 체포했고 국립경기장은 임시수용소와 처형장으로바뀌게 됨 강제실종, 고문, 언론탄압은 일상이 되었고피노체트 정권에 의해 희생된 사람은 3천명이 넘는다그는 반대하는 자를 공산주의자로 몰았고 그 명분 아래 폭력을정당화했음 한편으로는 시장경제를 도입해 칠레 경제를 성장시켰지만그 혜택은 일부 계층에게만 집중되었음철저한 감시사회, 겉으로는 안정돼 보였지만 속은 점점 썩어갔다피델 카스트로쿠바의 독재자인 그는 혁명을 성공시킨 영웅으로 불렸지만누군가에겐 나라 전체를 감옥으로 만든 독재자였음1959년 쿠바 정권을 잡은 피델 카스트로는 사회주의를 선언하고반대파를 하나씩 제거하기 시작했음정당은 단 하나, 언론은 국영만 존재했고, 반대 의견은국가전복 선동으로 처벌받았음학생은 입 조심을 해야했고 이웃 간의 고발이 장려되던사회가 되었음가택 감시는 일상으로 이루어졌고 정치범 수용소에서는고문과 강제 노역이 자행되었다수많은 암살시도를 피하며 50년 가까이 권력을 내려 놓지 않았음프란시스코 프랑코스페인을 36년간 지배한 독재자인 그는 1939년스페인내전에서 승리한 뒤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파시스트 군부독재를 세우게 됨정적은 체포되거나 추방되었고 반대파 가족까지 감시대상이되었음 비밀경찰에 의해 수만 명이 실종됐고정치범의 경우 재판도 없이 수감되었다언론은 침묵을 강요당하고 학교에서는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배움국가의 수호자를 자처했지만실상은 철저한 통제와 공포의 지배였다그가 남긴 상처는 아직도 스페인 역사 속에 깊이 남아있음사담 후세인이라크의 철권 통치자인 그는 정권을 잡자마자정보기관과 군을 장악해 공포정치로 나라를 통제하였음정적은 숙청당했고 의심만으로 가족 전체가 사라지게 됨그는 쿠드루족을 화학무기로 공격해 수천명을 한꺼번에몰살시키기도 했음안팔라 작전이라고 불리는 이 작전은 역사상 최악의인종탄압 중 하나로 기록됐다이라크 전역에 감시망이 퍼졌고 시민들은 집안에서도속삭이며 말해야 했음 그럼에도 자신을 국민의 아버지라고부르며 권력의 중심에 섬1990년에는 쿠웨이트를 침공해 국제사회의 분노를 샀고걸프전 이후에도 정권을 유지하였지만 2003년 대량 살상 무기를이유로 미국이 침공에 나서게 된다 이라크는 분노한 미국에 의해 순식간에 나라가 무너졌고수도가 함락되기 전 자취를 감췄음이후 수개월 간 은신하며 버텼지만 한 병사에 의해 발각되면서그의 도피극은 끝이 나게 됨이후 재판에 넘겨졌고, 자국민 학살 등의 혐의로 사형됐음김정일북한의 2대 세습 독재자인 그는 겉으로는 인민의 아버지를자처했지만 정작 수백만 명을 굶주리게 만든 인물이였다1990년대 북한은 소련 붕괴 등의 이유로 극심한 식량난에빠지게 되었고 최대 300만 명이 아사한 것으로 추정되었음그 와중에도 그는 프랑스 와인, 스위스 치즈, 외제차로사치스러운 삶을 즐겼다국가 전체를 감시체계로 묶고 말 한마디로 사람의 운명을 바꿨음정치범 수용소에서는 고문과 강제노동, 공개 처형이 자행됐고심지어 어린아이도 부모의 죄로 함께 끌려갔다외부와 철저히 단절된 사회는 그의 선전 영상만을 진실로받아들여야만 했음베니토 무솔리니파시즘의 창시자이자 일명 “두체”라고 불렸던이탈리아의 파시스트 독재자, 그리고 한때 히틀러의 우상이자충직한 조력자였던 그는 로마 진군을 통해 국왕에게 총리직을임명받았고 국민에게 위대한 로마 제국을되살리겠다고 약속했지만 결국 남긴 건 피와 폭력 뿐으로무솔리니는 언론을 틀어막고 반대파를 국가의 적으로 몰았다그의 명령 한마디면 사람들은 잡혀가 흔적도 없이 사라지게 됨한편 역사상 모든 독재자 중에서 대규모 우상화를 최초로자행한 독재자라고 할 수 있으며, 우상화의 질적 수준도엄청났음 1930년대까지만 해도 대다수의 이탈리아인들은진심으로 두체를 신이 내려준 최고의 지도자라고 여겼을 정도결국 무솔리니 치하 이탈리아는 2차 세계 대전에 추축국으로참전했지만 연이은 졸전으로 인해 국민들은 점점 싸늘한 시선을보내게 되었고 1943년 연이은 전쟁 패배와 경제 붕괴 속에서국민의 분노는 그야말로 폭발하게 됨 그의 측근들조차 더 이상그를 감싸지 않았고 자신을 임명했던 국왕에게 직접 해임당했다무솔리니는 체포되어 구금됐지만, 그에게 아직 애정이 남아있던히틀러가 보낸 독일군 공수부대에 의해 구출 된다그리고 이탈리아 북부에 독일의 괴뢰국인 살로 공화국을세우게 됨 하지만 그곳엔 충성도, 영광도, 무솔리니 본인의 의욕도 남아있지않았으며 패전 직전 1945년 4월 스위스로 도주하던 중이탈리아 파르티잔들에게 사로 잡혀 다음 날 광장에서 총살을당하고 시체가 거꾸로 매달려 조롱 당하였다도조 히데키제 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 제국의 육군, 내각총리대신이자 군국주의를 상징하는 인물로 그의 이름은 곧 침략과 학살,전쟁 범죄의 또 다른 말이였음도조는 아시아 전체를 일본의 지배 아래 두겠다는 야망을 품고그가 총리로 있던 시절 일본군은 중국과 동남아 전역을무차별 공격했다 1937년 난징 대학살에서는 30만 명 이상의중국 민간인들이 광기에 빠진 일본군들에게 무참히 도살되었음포로들은 생체 실험 대상으로 쓰이거나 해부를 당하였음그는 이런 군의 만행을 알면서도 눈감았고 오히려 독려했다던기록도 남아있다 이후 1941년에는 미국을 선제공격 한다는 정신나간 발상의진주만 공습을 명령하여 태평양 전쟁을 개전시켰고황군은 신의 군대라며 일본군의 절대적 정당성을 강조했지만패전이 다가오자 그의 위치도 흔들리기 시작함1945년 일본이 항복하자 미국은 도조 히데키를 A급 전범으로사형선고를 내렸고 1948년 교수형에 처해졌음이오시프 스탈린러시아 혁명의 후계자에서 20세기 최악의 공포정치로 이어진이름, 소련의 초대 서기장인 그는 국부 레닌의 뒤를 이어소련의 권력을 장악했고, 인민의 나라를 만들겠다며국민을 감시와 숙청 대상으로 만들었음5개년 계획으로 산업화를 밀어붙혔지만그 대가는 기근과 과로, 굴라그(수용소)였고우크라이나 대기근, 일명 홀로도모르에서는 최대 400만 명이굶어죽었다반대파는 물론, 잠재적으로 위협이 될 수 있다는 이유만으로사람들은 체포됐고 시베리아로 보내졌음고문과 강제 노역이 반복되는 군락 수용소엔수백만 명이 갇혀있었다 군 장교, 예술가, 학자, 심지어 동료 정치인까지 그의 명령 몇 마디로 사라졌음엄청난 편집증으로 인해 자신이 키운 충신조차 언제든 적이 될 수 있었다 그는 죽는 순간까지 의사도 믿지 않았고자신을 치료하던 의료진마저 반역 혐의로 체포하였는데1953년, 침실 바닥에 쓰러진 그는 업보라도 존재하는지며칠 간 방치되었고, 침대 위에서 말도 못한채 서서히 죽어갔음장례식에서 수십만 명이 몰렸지만 그의 죽음이 남긴 건 슬픔이아닌 그가 만든 체제의 공포였다권력은 누구보다 강했지만 마지막은 누구도 감히 손대지 못한외로운 죽음을 맞이하게 된 인물이다아돌프 히틀러“20세기 최악의 이름” 수천만 명의 죽음을 초래한 악마보다도더 악랄한 나치 독일의 총통(퓌러)인 그는제 1차 세계대전 패전 이후 혼란스러웠던 독일에서민족주의와 반유대주의를 외치며 사람을 홀리는 수준의 엄청난선동적 연설으로 대중의 지지를 받고 권력을 잡게 됐음1933년 총리에 오른 뒤 의회를 해산하고 언론을 장악하며나치 독재체제를 완성했다 그는 유대인을 비롯한 수많은소수민족을 탄압했고 그 결과, 역사상 최악의 대학살홀로코스트(인종청소)로 이어지게 됨600만 명 이상의 유대인들이 조직적으로 마치 공장에서일을 처리하듯 학살됐고 정치범, 지체장애인, 성소수자 등도강제수용소에서 죽어가게 됐다그 밖에도 국방군, SS(무장친위대) 등에게 점령지에서민간인, 군인을 가리지 않고 전부 죽여버리라는 명령을 내려가장 유명한 동부전선에서 약 3천만 여명의 슬라브 인종이열등 인종으로 분류 된 채로 어두운 운명을 받아들이게 되었다역사상 최대 규모이자 최악의 세계대전을 일으킨 침략전쟁으로전세계 사망자 수는 7000만 명에 달한다말 그대로 20세기 초 전세계를 지옥으로 몰아넣은 인물이었다그러나 1945년에 이르러서 전세는 완전히 뒤집혔으며영미연합군은 서쪽에서, 소련군은 동쪽에서 베를린을 포위했고히틀러는 정신병에 걸린 채 지하 벙커에 숨어버림그곳에서 그는 현실을 부정하며 마지막까지 이길 수 있다는환상에 붙잡히게 된다 믿었던 측근들이 그를 배신하게 되고군대는 패배하고 있었지만 끝내 항복을 거부하는 역대급자존심을 부려버린 뒤 4월 30일 연인 에바 브라운과 결혼식을치르고 바로 다음날 지하벙커에서 권총으로 함께 생을 마감한다당연하지만 장례도, 기념비도, 묘지도 없는 결말,그가 만든건 무너진 독일과 사라진 수백만의 생명, 그리고분노한 소련군의 보복행위에 당한 무고한 민간인들의 신음소리뿐이였음히틀러의 최후는 그가 저지른 일에 비해 지나치게 조용했지만그 이름은 지금까지도 전 인류가 반드시 기억해야 할역사적 경고이자 교훈으로 남아있다
작성자 : ZI존다크마스터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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