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사 봉급 200만원 공약 논란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지난 3일 110대 국정 과제를 발표하면서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병사 봉급 200만원’ 공약을 오는 2025년 실현하겠다고 밝혔다. 2025년 병장 기준으로 봉급과 자산 형성 프로그램을 합쳐 월 200만원을 지급하겠다는 것이다. 자산 형성 프로그램은 병사들이 일정 금액을 적금으로 부으면 국가에서 일정액을 보전, 적립금을 불려 전역할 때 목돈을 마련해 주는 제도다.
하지만 이에 대해 이른바 ‘이대남(20대 남성)’을 중심으로 ‘취임 즉시 병사 봉급 200만원 지급’을 공약했던 데서 후퇴한 것이라는 반발이 나오고 있다. 인수위 측은 이에 대해 “공약 파기는 사실이 아니다”라며 “현재 편성 중인 2023년 예산에 바로 반영해 2025년 병사에게 월 200만원이 지급되도록 할 것”이라고 해명했다. 반면 징병제 국가에서 병사들에게 봉급 200만원을 지급하는 것은 과도하며 군 초급 간부를 비롯한 다른 공무원 봉급에도 ‘나비효과’를 초래해 예산 추가 부담이 천문학적 규모로 늘어날 수 있는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나비효과’로 엄청난 추가 예산 부담
올해 병사 봉급은 이병 51만89원, 일병 55만2023원, 상병 61만173원, 병장 67만6115원이다. 병장 봉급 기준으로 최저임금(월 191만원)의 3분의 1을 약간 넘는 수준이다.
인수위는 오는 2025년까지 병장 봉급을 150만원으로 단계적으로 인상하고, 전역 때 지급하는 적금(장병내일준비적금) 지원액을 현재의 월 14만원에서 55만원으로 인상한다는 계획이다. 봉급과 적금 지원액을 합치면 205만원으로 ‘봉급 200만원’ 공약을 지킬 수 있다는 생각이다.
전문가들은 병장 봉급을 200만원으로 올릴 경우 하사·소위 등 초급 간부는 물론 경찰·소방 공무원, 공무원, 교사 등의 초봉(1호봉)보다 높아지는 ‘역전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해왔다. 올해 기준 하사 1호봉은 169만9000원, 소위 1호봉은 174만9000원이다. 순경·소방사와 9급 공무원은 168만6000원, 교원 초봉은 170만원이다. 여기에 수당은 빠져 있다. 각종 수당까지 포함하면 대부분 실제 봉급 총액은 월 200만원이 넘는 것으로 알려졌다.
2025년 병장 순수 봉급이 200만원이 아니라 150만원 수준으로 낮아진다 하더라도 초급 간부 봉급에 조금 못 미치는 수준이다. 한 예비역 장성은 “초급 간부는 징병제로 입대한 병사들과 달리 직업군인으로 장기간 훈련을 받고 임관한 뒤 상당한 업무량와 책임감에 시달리게 된다”며 “병사들과 비슷한 월급을 받는다면 누가 초급 간부로 지원하려 하겠는가”라고 밝혔다.
전력 증강, 다른 군 복지에 악영향 우려
육군 부사관은 극심한 취업난에도 경쟁률이 2018년 3.6대1, 2019년 3.5대1, 2020년 2.9대1로 해마다 낮아지고 있다. 초급 장교(소위)의 70%를 차지하는 ROTC(학군사관후보생)는 더 심각하다. 2015년까지만 해도 경쟁률이 4.8대1이었지만 해마다 떨어져 2020년엔 2.7대1로 추락했다. 서울 지역 일부 대학은 정원 미달 사태까지 종종 발생한다. 군 내에선 초급 간부 확보를 위해선 병사 봉급 인상에 상응하는 간부 봉급 인상도 불가피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병사 봉급 인상 나비 효과는 공무원·경찰·소방공무원 등까지 영향을 끼치고 있다. 일부 공무원 노조에서 인수위의 병사 월급 인상 방침에 대해 “형평에 어긋난다”며 반발 기류를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당초 윤석열 정부 출범 직후 ‘병사 봉급 200만원’ 공약 실현을 위해선 매년 5조1000억원가량 예산이 더 필요할 것으로 예상됐다. 2025년까지 단계적으로 인상하는 계획에 따라 한동안 예산 추가액은 줄어들게 됐지만 얼마가 들지 국방부는 함구하고 있다. 정통한 소식통들에 따르면 국방부는 내년에만 2조7000억원 이상이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고 한다. 단계적 인상분을 감안하면 그 비용은 내년부터 2025년까지 계속 증가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향후 3년간 최소 8조1000억원이 더 필요하다는 얘기다.
올해 국방 예산은 54조6112억원으로, 2조7000억원은 올해 국방비의 4.9% 수준이다. 올 국방비 중 전력 증강비(방위력 개선비)는 30%이고 인건비 등 전력 운용비는 70% 수준이다. 인수위는 기존 국방비 외에 추가 증액으로 병사 봉급 인상 추가 예산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방침이지만 예산 부처의 반대 등 현실적 장애물이 적지 않다. 인수위에선 부인하고 있지만 다른 장병 후생 복지 예산에서 전용할 가능성이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일각에선 인건비 증액 예산을 고조되는 북핵 위협 대응 등 전력 증강에 투자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연간 2조7000억원이면 매년 F-35 스텔스 전투기(900억원 기준)는 30대, 이지스함(1조원 기준)은 약 3척, 현무2 탄도미사일(20억원 기준)은 1350발을 도입할 수 있는 규모다.
모병제 하는 일본·대만보다 높아
징병제 국가에서의 봉급 200만원은 일부 모병제 국가보다도 많아 지나치게 높은 수준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나라와 같은 징병제 국가인 이스라엘 병장 월급은 58만원으로, 우리나라 병장 현 월급(67만원)보다 낮은 수준이다. 모병제 국가(2021년 기준)는 병장 기준 봉급이 미국 277만원, 독일 322만원, 일본 193만원, 대만 151만원이다. 200만원 기준으론 일본·대만보다 높은 수준이고, 150만원 기준으론 대만과 비슷하다.
이에 따라 군 복무 가산점이나 취업 준비 적금, 군 복무 중 학점 인정제 등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도 나온다. 김일생 전 병무청장은 “과도한 봉급 인상은 초급 간부와 공무원 등에 대한 나비효과로 부작용이 클 수 있다”며 “장병들에게 봉급은 실비(實費) 수준만 지급하고 복학 장려금 또는 취업 준비금 같은 형식으로 다양한 지원책을 마련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말했다.
[’병사 봉급 200만원’ 공약, 어떻게 나왔나]
‘취임 즉시 병사 봉급 200만원’ 공약은 지난 1월 초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이 페이스북에 ‘병사 봉급 월 200만원’이라는 한 줄 공약을 올리며 공식화됐다. 인수위 관계자들에 따르면 여기엔 현역 복무 병사들이 인생 황금기에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데 정당한 보상을 받지 못 하고 있다는 윤 당선인의 평소 생각이 반영됐다고 한다. 지난해 9월 윤 당선인이 예비역 병장 12명과 간담회를 했을 때 여러 참석자들이 “최저임금에도 못 미치는 병사 월급은 문제가 많으니 올려줬으면 좋겠다”고 건의한 것도 영향을 끼친 것으로 알려졌다.
윤석열 대선 캠프는 당초 여가부(여성가족부) 폐지와 병사 봉급 대폭 인상 문제를 연계, 추가 예산 확보(연간 5조1000여억원)에 큰 어려움이 없을 것으로 판단한 것으로 전해졌다. 여가부 폐지에 따라 여가부 예산(올해 1조4600억원)과 성인지 예산(2021년 35조원) 중 여가부 몫 8800억원 등을 합쳐 병사 봉급 인상 추가 소요액으로 활용할 계획이었다고 한다. 하지만 여가부 폐지가 보류되면서 추가 예산 확보 문제가 난관에 봉착, 결국 단계적인 인상으로 바뀌었다는 것이다. 이종섭 국방장관 후보자도 4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적극적으로 추진하려고 많은 고민을 했는데 재정 여건이 여의치 않아 일부 점진적으로 증액하는 것으로 조정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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