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용원의 밀리터리 시크릿]
한·미 정보당국, 김정은 추적·확인 막전막후
野의원 "金, 말 탄다는데…", 정경두 "다 확인해"
美, 5~10㎝크기 식별하는 정찰위성·U-2기 투입
RC 계열 통신감청 정찰기, 조인트스타스도 동원
원산의 김정은 동향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진 미 KH-12 정찰위성. 수백km 상공에서 5cm 크기 물체도 식별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DB
“원산 별장에서 김정은이 승마를 즐긴 정황이 있다. (김정은 혹은 주변 사람들이) 제트스키를 타고 논다는 보도가 나왔는데 한·미가 이 정도 정보를 식별할 능력이 있습니까?”(하태경 미래통합당 의원)
“특이 동향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말씀드렸는데 의원님께서 말씀하신 그런 내용들을 저희가 다 확인을 하면서, 다양한 그런 정보 자료들을 확인하면서 정부 입장을 그렇게 밝힌 것입니다.”(정경두 국방장관)
지난달 29일 열린 국회 국방위에서 미래통합당 하태경 의원의 질의에 대해 정경두 국방장관은 이렇게 답변했다. 김정은 사망설·유고설이 확산되는 가운데 일부 언론에 ‘미 정찰위성이 원산에서 말 탄 김정은과 김정은 또는 주변 사람들이 제트 스키를 타는 모습을 포착했다’는 보도가 나오자 하 의원이 이에 대해 정 장관에게 물어본 것이다. 정 장관의 답변 내용은 하 의원 질문 내용이 사실상 사실이라고 확인해주는 듯한 표현이었다. 이는 매우 이례적인 일로 여겨졌다.
보통 민감한 대북 정보사항에 대해선 “확인해줄 수 없다”거나 부인하는 게 관행처럼 돼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 장관의 답변은 언론의 주목을 받지 못했고 김정은 사망·유고설은 더욱 증폭됐다가 지난 2일 북한 관영매체들이 김정은의 공개활동을 보도하면서 수면 아래로 가라앉는 분위기다.
오산기지에서 거의 매일 이륙해 대북 감시활동을 펴는 주한미군 U-2S 정찰기/조선일보DB
◇우리에겐 ‘원산의 김정은 얼굴 확인’ 정찰수단 없어
정부는 김정은 신변이상설이 불거진 뒤에도 줄곧 “특이 동향이 없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김연철 통일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가 ‘북한 내부에 특이동향이 없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한 것은 기술 정보를 포함해 복잡한 과정을 거쳐 정보 평가를 한 것”이라며 “정부는 특이 동향이 없다고 자신 있게 얘기할 수 있을 정도로 정보 역량을 갖추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정부 고위당국자의 단호한 언급도 이례적인 일이었다. 정보분야는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열어두는 것이 기본 속성이다. 보고서에 “A일 수도 있고 B일 수도 있다”는 식으로 표현해 지휘관이나 정책 결정자들이 짜증을 내는 경우도 많다. 그래서 ‘추정’이라는 표현을 많이 쓴다. ‘확인’ ‘자신 있게’ 등의 표현을 쓰는 경우는 드물다. 더구나 북한 내 특급비밀인 김정은 동선이나 생사와 관련된 정보는 그렇다.
김 장관은 뭘 믿고 자신있게 김정은에 이상이 없음을 단언했을까? 전문가들은 김 장관의 ‘기술 정보’라는 표현에 주목한다. 기술 정보는 정찰위성이나 정찰기, 통신감청 등 하드웨어를 활용해 수집한 정보를 의미한다. 인간정보(휴민트)는 제외되는 경우가 많다. 한·미 정보당국은 지난달 13일 이후 김정은이 계속 원산에 체류해온 것으로 파악했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가 원산에 있는 김정은의 생사나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감시정찰 수단을 갖고 있다는 얘기일까? 전문가들은 인간정보(휴민트)를 제외하곤 현재까지 우리에게 원산의 김정은 얼굴을 확인할 수 있는 감시정찰 수단은 없다고 말한다. 우리가 인간정보를 통해 김정은이 원산에 있고 신변에도 별문제가 없다는 걸 확인했다면 이 정보가 공개되는 순간 고급 인간정보망이 노출되고 붕괴될 수 있다. 엄청난 후폭풍을 가져올 사안인데다 김 장관도 ‘기술 정보’라는 표현을 썼기 때문에 가능성은 희박하다. 즉 미국에서 받은 기술정보일 것이라는 얘기다.
한국이 갖고 있는 주요 정보수집 수단은 정찰위성으로도 활용되는 아리랑 다목적위성, 금강(영상)·백두(통신감청) 정찰기, 정찰포드를 장착한 KF-16 전투기, 무인기, 통신감청 시설, 정보수집선 등이다.
이중 통신감청 수단들은 교신을 통한 김정은 주변 동향 정보를 수집할 수 있을 뿐 김정은의 상태를 직접 확인할 수는 없다. 아리랑 다목적위성은 가장 성능이 좋은 것이 55㎝의 해상도를 갖고 있다. 55㎝의 해상도로는 김정은 얼굴을 식별할 수 없다. 영상 정찰기인 금강은 평양 이남 지역에서 농구공 크기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DMZ(비무장지대)에서 원산은 약 100㎞가량 떨어져 있다. 농구공 크기 식별 능력으로도 원산의 김정은 얼굴 판독은 어려운 것으로 평가된다. KF-16 전술정찰기 등은 DMZ 인근의 군사동향 등을 파악하는 게 주임무이기 때문에 후방지역 움직임을 알 수 없다.
한국군의 금강 정찰기. 평양 이남의 농구공 크기 물체를 식별할 수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조선일보DB
◇미 정찰위성, 북한 더 촘촘하게 감시
전문가들은 미 정찰위성이 김정은 건재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유력한 수단이라고 말한다. 미국의 영상 정찰위성은 KH-12 계열이 대표적이다. 10~20여년 전만 해도 KH-12의 해상도는 15㎝급이었다. 지상 400~500㎞ 고도에서 이 정도 해상도를 갖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다. 하지만 카메라 렌즈 및 영상분석 기술의 향상으로 이젠 5㎝급으로 해상도가 향상된 것으로 알려졌다. 5㎝급이면 김정은 얼굴과 체형 식별이 가능하다.
미 정찰위성은 하루에 서너 차례씩 북한 수백㎞ 상공을 돌며 사진을 찍는다. 사각시간 및 사각지대가 있을 수밖에 없다. 북한 핵·미사일 위협이 높아진 뒤 북한을 감시하는 미 정찰위성 숫자가 늘어나 사각시간이 줄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 인해 지난 2017년 북한의 화성-14·15형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발사 때 미국은 사전에 비교적 정확히 예측할 수 있었다.
오산기지에서 거의 매일 이륙하는 U-2S 정찰기도 유력한 대북 정보수집 수단이다. 고해상도 카메라를 장착해 최대 150㎞ 떨어진 곳의 10㎝ 크기 물체를 식별할 수 있다. U-2기는 영상정보의 경우 보통 평양~원산 이남 지역의 정보를 주로 수집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미국은 주한미군에 배치돼 있는 RC-12X ‘가드레일’, 오키나와 가데나기지에 배치된 RC-135 V/W ‘리벳 조인트’ 등 통신감청 정찰기들과 E-8C ‘조인트스타스’ 지상감시 정찰기 등도 자주 출동시키고 있다. 하지만 이들은 김정은에 대한 간접 정황정보 등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겠지만 결정적인 정보를 수집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한다. 통신감청의 경우 북한이 90년대 말 이후 주요 통신망을 광케이블로 지하에 매설, 감청이 매우 어렵게 됐기 때문이다.
일각에선 “미국이 정말 김정은의 건재를 정찰위성 등을 통해 확인했다면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이나 폼페이오 국무장관이 왜 애매하고 헷갈리는 언급을 했는가”라는 의문도 제기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김정은 상태를 자세히 알고 있다” “김정은 상태를 모른다. 그가 잘 있기를 바란다”고 상반되는 언급들을 했다. 폼페이오 장관은 “우리는 지난달 11일 이후 김정은을 본 적이 없다”고도 했다. 이에 대해 한 소식통은 “미국은 정찰위성 등 정보수집 능력이 노출되는 것을 극도로 꺼린다”며 “두 사람은 그런 점에서 보안을 지키면서 북한 등을 헷갈리게 하는 심리전을 폈을 수 있다”고 말했다.
김정은이 지난 1일 순천인비료공장 준공식에 참석했다고 북한 매체들이 2일 보도했다/노동신문
김정은이 지난 20일 동안 실제로 아무런 이상 없이 건재했다면 왜 침묵을 지키고 있었을까? 한·미 정보당국은 우선 코로나 확산을 우려해 피신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고 있다.
미 워싱턴포스트는 지난 1일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4월 중순 가까이에 있는 부하들이 발열 증세를 겪은 것을 알게 된 뒤 원산의 해변 휴양지로 피신 가 있었던 것으로 한·미 당국자들이 믿고 있다’고 보도했다. 일각에선 코로나 사태 속에서 완전히 사그라지다시피한 김정은에 대한 국제사회의 관심을 불러 일으키는 게 ‘은둔’의 목적이었고 이번에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둔 것으로 보고 있다. 북한 내 유고설 확산에 따라 숨죽이고 있던 반체제 세력이 노출되면 이를 일망타진하기 위한 고도의 술책이었다는 주장도 나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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