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남시현 기자] 지난 1월 6일, 네이버가 북미 1위 C2C 패션 플랫폼인 포시마크(Poshmark)에 대한 인수를 완료했다. 총 인수 가격은 약 12억 달러(약 1조5천억 원) 규모며, 인수 절차가 완료돼 네이버의 계열사로 편입됐다. 네이버 최수연 CEO는 “네이버의 커머스 사업 방식은 중·소상공인(SME, Small and Medium Enterprise)에 대한 롱테일 거래(하위 80% 고객이 상위 20%보다 더 큰 매출을 가져온다는 법칙)를 지원하는 것이며, 이 방식이 수많은 사용자간에 자유롭게 거래가 이뤄지는 C2C 서비스와 유사하다고 보고 있다”라면서, “이에 시장 초기단계부터 장기적으로 글로벌 C2C 포트폴리오를 구축해오고 있으며, 포시마크 인수는 북미 시장 진출을 위한 전략”이라고 말했다.
미국 샌프란시스코에 위치한 포시마크 오피스에서 네이버 경영진과 포시마크 임직원이 사내 설명회를 진행했다. 출처=네이버
한편 네이버는 11일, 스페인의 중고거래 플랫폼 ‘왈라팝’에 7천500만 유로(약 1천 6억 원)를 추가로 투자해 총 30.5%의 지분을 확보했다. 왈라팝은 스페인의 중고거래 서비스 중 시장 점유율 63%를 차지하고 있는 대표 기업이다. 네이버는 앞서 2021년 2월에 왈라팝에 1억 1500만 유로(약 1천550억 원)를 투자해 지분을 10% 확보한 바 있는데, 이번 투자를 통해 최대 주주로 등극하게 됐다. 이외에도 네이버는 유럽 시장의 베스티에르, 일본의 빈티지시티 등의 C2C 기업 지분을 확보한 상태여서 글로벌 시장에서 C2C 장악력은 한층 더 높아질 전망이다.
‘리셀’ 시장만 해도 2026년까지 16배 성장··· 가능성에 투자하는 네이버
출처=엔바토엘리멘트
네이버가 C2C 시장 확장에 나서는 이유는 시장의 성장 가능성 때문이다. 미국의 시장조사기관 스태티스타가 집계한 2020년 미국 의류 시장 규모는 약 3천790억 달러(약 472조 원)다. 여기서 중고 의류 시장의 규모는 2019년 280억 달러(약 34조 원)에서 2029년이면 800억 달러(99조 7천억 원)로 3배 이상 가치가 증가할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2019년 중고 의류 시장의 성장세는 기존 의류 소매업의 성장세보다 21배나 높았다.
중고 의류 시장의 성장세는 앞서 패스트 패션이 겪었던 성장 곡선과 관련이 있다. 패스트 패션은 2020년대 초반 등장한 의류 트렌드로, H&M이나 유니클로 등 저렴하고 간편하게 입을 수 있는 의류를 내세우는 비즈니스 모델이다. 패스트 패션은 지난 20년 간 빠르게 성장했지만, 의류 소비 풍조와 자원의 지속 가능성에는 나쁜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가 나오면서 사양 산업이 되어가고 있다.
네이버는 크림 이외에도 베스티에르, 빈티지시티 등 다양한 중고거래 플랫폼을 통해 영향력을 높히고 있다. 출처=네이버
빠른 패션이 저물면서 대체제로 떠오른 게 바로 중고 의류 시장이다. 소비자들 사이에서 중고 의류를 사서 입고 다시 되파는 패션 플리핑이 유행함과 동시에 포시마크, 트레세디(Tradesy) 등 재판매 플랫폼이 등장해 시장을 형성했다. 게다가 코로나 19로 시작된 경제 위기로 인해 소비자들이 더 저렴한 비용으로 질 좋은 의류를 살 수 있는 중고 거래에 관심을 갖기 시작한 점, 의류 폐기물을 줄이면서 자원의 지속 가능성에 성공적인 생태계인 점도 성장세를 견인하는 핵심 요인이다.
중고 명품 시장의 성장세도 같은 맥락이다. 같은 값에 더 나은 품질의 명품을 구하고자 하는 수요가 중고 명품 시장을 형성했고, 더리얼리얼(TheRealReal), 베스티에르 같이 중고 명품의 정품 여부를 판단하고 유통까지 맡아주는 플랫폼이 수요를 받쳐줬다. IT 기업인 네이버가 한정판 거래 플랫폼 크림(KREAM)을 출범했던 이유도 성장 가능성이 확실한 시장으로 영역을 넓히기 위함이었다.
네이버, IT기술과 전자상거래, C2C까지 모두 엮는 데 집중
하지만 네이버가 포시마크나 왈라팝 등을 인수하는 이유는 단순히 중고 의류 시장 점유율을 높이기 위한게 아니다. 현지 시간 9일, 미국 샌프란시스코 포시마크 오피스에서 네이버 경영진과 포시마크 직원들 간의 상견례 자리에서 나온 인수 이후 비전과 통합 방향성에서 조금 더 내용을 알 수 있다.
포시마크 타운홀에서 직원들의 질문에 답변 중인 네이버 최수연 대표. 출처=네이버
포시마크 마니시 샨드라 최고경영자는 ”C2C 기업들은 성장 잠재력이 높으나, 아직 초기단계의 사업으로 주로 스타트업들이 뛰어든 만큼, 기존 인터넷 기업 대비 기술적 역량에 대한 목마름이 큰 상황”이라며, “이제 팀 네이버의 일원이 된 포시마크는 네이버의 기술, 사업적 역량을 포시마크에 더해 혁신적인 C2C에 특화된 기술을 개발, 접목하는 등 C2C 서비스 모델의 다음 페이지를 제시해 나갈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포시마크 사내 설명회에서 대화를 나누고 있는 네이버 최수연 대표와 포시마크 마니시 샨드라 CEO. 출처=네이버
네이버가 가진 인공지능과 전자상거래 기술력을 통해 플랫폼의 경쟁력을 한층 더 강화하고, 이를 토대로 시장 영향력을 강화하는 게 핵심이다. 네이버 스마트렌즈를 통해 새롭게 추가될 ‘포시 렌즈’ 기능만 하더라도 이미지만으로 제품을 찾을 수 있어 검색 만족도를 높일 수 있다. 차별화된 기술을 통해 더 많은 경쟁력과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은 물론, 네이버의 결제 시스템이나 수수료 등을 폭넓게 적용하는 게 목표라고 할 수 있다.
네이버, 체질 개선에 더 힘 실을 듯
2022년 3분기 네이버 실적을 살펴보면, 네이버의 서치플랫폼 매출액은 2021년 3분기 대비 -1% 감소했고, 1년 전과 비교하면 8%만 성장했다. 반면 커머스 시장에서는 크림의 호조와 검색 광고가 성장세를 견인해 2021년 3분기 대비 4.3%, 1년 전과 비교해서는 19.4% 성장했다. 또한 페이 서비스, 디지털 금융 등이 포함된 핀테크 매출은 1년 전과 비교해 22.5% 올랐고, 스노우와 웹툰 등 콘텐츠 매출도 1년 전과 비교해 77.3%나 성장했다.
네이버의 중고거래 플랫폼 진출은 서치플랫폼 사업으로 확보한 역량을 통해 또 다른 미래 먹거리를 만들고자 하는 노력이다. 출처=네이버
서치 플랫폼 매출이 박스권에서 등락을 거듭하는 것과 다르게 다른 시장에서의 매출은 큰 폭으로 성장하고 있다. 즉, 네이버 입장에서는 가장 큰 수입원인 서치 플랫폼의 수입을 통해 다른 시장에서의 수익성을 끌어올려야 하는 상황이다.
결국 네이버가 중고거래 플랫폼 기업을 인수하는 이유는 문어발식 확장이 아니라, 현재 가진 기술과 서비스를 활용해 가장 우수한 시너지를 발휘할 수 있는 방향으로 체질을 개선하는 과정이라고 보면 된다. 특히 중고거래 시장을 통해 창출되는 지속 가능성이 ESG(환경, 사회, 지배구조) 경영과도 직접적으로 관련돼 있다는 점도 핵심이다. 이번 인수를 통해 네이버는 한국과 일본, 유럽, 북미 시장 전체에 이르는 C2C 주자로 자리매김하게 됐는데, 지금까지의 행보를 살펴보면 충분히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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