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무원 총격 살해 사건, 북한에 끌려다니는 듯한 모습...정보의 왜곡 우려
2차대전 당시 악명 높았던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과 2002년6월 월드컵 열기가 한창 뜨거웠을때 북한 경비정의 기습공격으로 침몰한 참수리 357호정.
2002년6월 월드컵 열기가 한창 뜨거웠을때 북한 경비정의 기습공격으로 침몰한 참수리 357호정. 당시 고속정에 타고 있던 6명의 승조원이 전사했다. 357호정은 뒤에 인양돼 평택 2함대에 전시돼 있다. /조선일보 DB
북한의 우리 해수부 공무원 이모씨 총격 살해 사건에 대한 청와대와 군 당국의 대응이 북한 주장에 끌려다니는 듯한 모습을 보이면서 ‘정보의 왜곡과 실패’ 가능성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우리 군 당국이 감청 등 한·미 정보수집 수단으로 파악된 각종 첩보를 종합해 북한이 이씨를 총으로 쏴 죽이고 시신을 불태운 사실을 확인했지만 북한이 통지문을 통해 다른 주장을 편 뒤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선 ‘군 당국의 발표는 확인된 정보가 아닌 첩보 수준’이었다는 언급까지 나오고 있다.
국방부는 지난달 24일 안영호 합참 작전본부장이 공식 발표한 입장문에서 “우리 군은 다양한 첩보를 정밀 분석한 결과 북한이 북측 해역에서 발견된 우리 국민(해수부 공무원 이모씨)에 대해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했다”며 “우리 군은 북한의 이러한 만행을 강력히 규탄하고 이에 대한 북한의 해명과 책임자 처벌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었다.
◇국방부, 북 총격 살해 및 시신훼손 이례적으로 ‘확인됐다' 공식 발표
정보 당국은 웬만큼 확실하지 않은 사안에 대해선 ‘확인됐다’는 표현 대신 ‘추정된다’는 표현을 주로 써왔다. 때문에 당시 국방부의 ‘확인했다’는 공식 발표는 첩보를 여러 차례 교차확인(크로스체킹)한 ‘확실한 정보’ 수준의 내용인 것으로 평가됐다. 하지만 국방부도 지난달 25일 북한의 통지문 전달과 정부의 공동조사 방침 발표가 이뤄진 뒤 북한의 ‘사실’과 다른 주장에 대해 반박하기는 커녕 청와대와 일부 정치권의 눈치를 보는 데 급급한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국방부는 정치권 등에서 흘러나오는 북한의 의도적 총격 사살 및 시신 훼손 정황(통신감청 정보 등)에 대해 “당시 우리 군이 파악한 첩보중엔 사살, 사격 등의 용어는 없었다”며 일부 언론 보도에 법적 대응을 검토중이라는 공식 입장문도 이례적으로 잇따라 내고 있다.
이에 따라 군 안팎에선 이번 사안에 대해 강도 높은 재조사가 이뤄질 경우 지난 2002년 제2연평해전이나 2차대전 때 독일군 기습을 허용한 스탈린처럼 정보 왜곡에 따른 정보의 실패 상황이 벌어질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북한이나 현 정부이 불편해 할 정보 사안에 대해 현정부 수뇌부나 청와대가 거부감을 나타낼 경우 군 정보기관이 북한의 도발 가능성 등 민감한 대북 정보를 사실 그대로 수뇌부에 보고할 수 있겠느냐는 것이다.
2002년10월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철용 5679부대장(통신감청부대장)이 비밀문서를 들어보이며 군 수뇌부가 북한의 도발 첩보를 무시해 제2연평해전때 북 경비정의 기습을 허용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 2002년6월29일 월드컵 4강 진출로 온나라가 들떠 있을 때 벌어진 제2연평해전은 우리 군 정보사(情報史)에서 교훈적인 사례로 꼽힌다. 제2연평해전은 2002년 6월 29일 오전 10시쯤 서해 연평도 인근의 북방한계선(NLL)을 남하한 북한 경비정이 우리 해군 참수리급 고속정 357호정에 85㎜ 함포 등을 기습적으로 발사하면서 벌어진 해상 전투다.
당시 북 경비정의 집중 포격을 받은 참수리 357호정의 승무원 30명 중 윤영하 소령 등 6명이 전사하고, 19명이 부상했다. 참수리 357호정은 복귀 중 침몰했다.
당시 대북감청 부대(일명 쓰리세븐 부대)장이었던 한철용 5679부대장(육군소장)은 그해 10월 국회 국방위 국정감사장에서 김대중 정부의 군 수뇌부가 대북 도발 징후를 묵살했다는 주장을 폈다가 사실상 강제전역당했다. 제2연평해전이 발생하기 이틀 전인 2002년 6월 27일 그는 대북감청 부대장으로 북한 해군이 “발포명령만 내리면 바로 발포하겠음”이라고 교신하는 등 결정적 도발 징후가 있다고 상부에 보고했지만 당시 군 수뇌부는 이를 묵살했다고 한다.
◇한철용 “북 도발징후 첩보 군 수뇌부가 받아들였다면 제2연평해전 막았을 것”
예비역 육군소장인 한씨에 따르면 당시 정부는 북한의 결정적인 도발정보(SI·특수정보)를 두 차례나 접하고도 이를 의도적으로 묵살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는 “당시 군 수뇌부는 북한 경비정의 의도적 침범을 단순 침범으로 평가하라 했었다”며 “사전 도발징후 첩보를 군 수뇌부가 받아들였다면 제2연평해전은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당시 청와대는 제2연평해전 발생 이튿날 ‘금강산 관광선이 계획대로 출항한다’고 발표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전사자 조문도 하지 않은 채 한·일 월드컵 결승전을 관람하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다.
국방부도 해전의 성격을 ‘우발적’ ‘북한 경비정의 단독행위’ 등으로 평가했다. 당시 청와대 임동원 외교안보특보는 “아랫사람끼리 한 일”이라면서 북한을 옹호하기도 했다. 하지만 미군 측이 항의하자 마지못해 ‘최소 북한 8전대사령부까지 개입했다’고 평가했다. 당시 군 수뇌부가 ‘햇볕정책’으로 불리던 대북 유화정책 코드에 맞춰 정보를 무시하거나 왜곡하다보니 북한 경비정의 기습 공격을 허용했다는 게 한씨의 분석이다.
2차대전 당시 악명 높았던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 독일의 소련 침공이 임박했다는 정보 보고가 잇따랐지만 이를 무시, 독일의 기습 공격을 허용해 대표적인 '정보의 실패' 사례로 평가돼왔다. /조선일보 DB
2차대전 당시 독일의 침공 정보들을 무시해 독일군 기습을 허용했던 스탈린의 경우도 정보의 왜곡·실패에 있어 대표적인 교훈 사례다. 2차대전 때 전세계에서 발생한 전체 사상자 4400만명의 절반에 해당하는 2130만명(군인 1360만명, 민간인 770만명)이 소련의 피해였다. 피해 대부분이 전쟁 초기 6개월 동안에 발생했다.
독소전쟁 개전 5개월만에 독일군 전·사상자는 74만명이었지만 소련군은 그 3배인 210만명에 달했고, 약 300만명이 포로로 잡혔다. 이는 독일군의 효율적인 전격전과 소련의 전쟁준비 부족 등이 영향을 끼쳤겠지만 결정적인 원인은 스탈린 정권의 정보실태 때문이라는 평가다.
제1차세계대전부터 사이버전쟁에 이르기까지 전쟁의 승패를 가른 비밀을 다룬 ‘정보전쟁’(박종재 지음)에 따르면 독일의 소련 침공계획 ‘바르바로사’ 작전에는 엄청난 병력과 장비가 동원돼야 했기 때문에 사전에 각종 징후가 곳곳에서 노출됐다. 이 징후들은 소련이 독일 각지에 심어놓은 첩보원들에 의해 모스크바로 속속 보고됐다.
◇소련 정보기관 책임자들, 스탈린 확신에 반대되는 정보 보고 두려워해
KGB 창설에 관여하다 영국으로 망명한 미트로킨은 1941년 초 독일 공격이 임박했음을 시시하는 정보를 KGB가 수없이 보고했다고 증언했다. 군 정보기관인 GRU도 공격 임박 징후를 여러 차례 상부에 보고했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정보들은 스탈린에게 거의 사실대로 보고되지 못하거나, 보고됐더라도 스탈린에 의해 무시됐다.
일본에서 활약한 전설적인 간첩 리하르트 조르게가 위험을 무릅쓰고 수집해 모스크바에 보고한 독일군 침공 임박 징후도 군 정보기관 GRU 책임자 골리코프 장군에 의해 무시됐다. 스탈린이 독일 공격 징후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 데엔 소련 정보기관 책임자들이 스탈린을 두려워해 사실대로 보고하지 못한 것이 큰 원인이었다고 한다.
스탈린은 병적으로 상대를 의심한 폭군으로 유명했다. 이런 그의 성향 때문에 정보기관 책임자들은 독일이 소련을 당분간 공격하지 않을 것이라는 스탈린의 확신에 반대되는 정보를 보고하기를 무척 두려워했다.
지난 24일 안영호 합참 작전본부장이 북한이 우리 해수부 공무원에 대해 "총격을 가하고 시신을 불태우는 만행을 저질렀음을 확인했다"고 발표하고 있다. /조선일보 DB
이밖에도 6.25전쟁과 진주만 기습, 9.11 테러사건 등 정보의 왜곡과 실패와 관련된 역사적 교훈 사례들은 적지 않다. 이런 역사적 교훈들은 지금의 한국군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이번 공무원 총격 살해 사건의 경우 군 당국은 공무원 피살 당시의 급박했던 상황을 감청을 통해 실시간으로 파악하고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국방부는 공무원 이씨의 총격 피살 당시 우리 군의 감청 내용에 ‘사살, 사격’ 등의 용어는 없었고 “총격했을 정황, 불태운 정황들은 단편적인 여러 조각 첩보들을 종합 분석해 얻은 결과이며, 이는 상당한 시간이 경과한 후에 재구성해 얻은 내용”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하지만 국방부와 합참의 보고를 받은 국회 국방위 여야 의원들에 따르면 22일 밤 9시40분쯤 이씨가 총격 사살되기 40분쯤 전인 9시 조금 넘어 북한군 상부와 현장 지휘관이 돌연 ‘설왕설래’한 정황이 우리 군의 감청에 잡혔다고 한다. 북한 해군사령부를 통해 사살하라는 명령이 하달되자 대위급 정장이 지시 내용을 되물었고, 9시 40분쯤 현장에서 사살했다는 보고가 윗선에 올라갔다는 것이다.
◇외부 압박으로 군 정보판단 결과 바뀌면 정보의 왜곡.실패 재현 우려
군 당국은 이씨가 사살됐다는 사실을 청와대 등과 즉시 공유했지만 이 사실이 문재인 대통령에게 대면 보고로 전달된 것은 이튿날인 23일 오전 8시 30분쯤이었다. 민주당 소속인 민홍철 국방위원장은 최근 tbs 라디오에 출연해 “그러면 (북한 해군 정장이) ‘어떻게 처리할까요?’ 보고하는 과정 속에서 갑자기 ‘사격을 하라’ 그래서 고속단정이 와서 사격을 했다고 저는 보고받았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감청을 통해 북한군의 사살 명령과 명령 이행 사실을 실시간 확인했다면 이를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당시 서훈 청와대 국가안보실장 등은 23일 새벽 1시에 서욱 국방부 장관, 이인영 통일부 장관 등이 참석한 긴급 관계장관회의를 열었지만 문 대통령에게는 7시30분 뒤인 이날 오전 8시30분에야 보고했다.
군 소식통은 “향후 청와대나 정치권의 압박에 의해 우리 군당국의 총격 및 시신훼손에 대한 정보판단 결과가 바뀐다면 제2연평해전 등 역사적 교훈으로 남아있는 정보의 왜곡·실패 사례가 되풀이될 수 있기 때문에 매우 신중하게 접근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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