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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알중의 스코틀랜드 도보 여행기 5.스트라스아일라, 캠벨타운 이동
[시리즈] 한 알중의 스코틀랜드 도보 여행기 : · 한 알중의 스코틀랜드 도보 여행기 : 프롤로그 · 한 알중의 스코틀랜드 도보 여행기 1.에버펠디, 블레어 아솔 · 한 알중의 스코틀랜드 도보 여행기 2.글렌모레이, 벤리악, 글렌그란트 · 한 알중의 스코틀랜드 도보 여행기 3.아벨라워, 스페이번 · 한 알중의 스코틀랜드 도보 여행기 4.글렌피딕,발베니,맥캘란 이 날은 스페이사이드 지역의 마지막 날로 스트라스아일라 증류소를 방문했다가 캠벨타운까지 이동하는 날으로 순수 이동시간만 약 12시간 가까이 소요되는 지옥의 일정이 있던 날의 기록입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여기는 더프타운 시계탑 정류장으로 아침 7시부터 꽤 많은 사람들이 36번 버스를 기다리고있었다. 오늘은 우선 더프타운에서 엘긴을 거쳐 키스로 가야한다 이 과정에서 버스를 한번밖에 갈아타지 않지만 거리가 멀어서 비용이 비싸므로 Moray Dayrider 패스를 끊도록 하자 이게 더 싸다. 원래라면 숙소에서 든든하게 아침밥을 먹었을텐데 오늘은 일찍나오는 바람에 가는 길에 편의점에서 음식을 사먹어야했다. 그래서 엘긴에서 환승하는 시간에 편의점에서 스시를 팔길래 그냥 대충 샀는데 이거.. 애초에 스시도 아닐뿐더러 내용물,맛 모두 스코틀랜드에서 먹었던 음식중 워스트 1위를 찍었다 세상 어떤 스시가 안에다가 파프리카와 오리 다진거를 넣는가.. 무튼 이렇게 2시간동안 버스를 타면 키스에 도착하게 된다 정류장에서 내려서 스트라스아일라 증류소로 가다보면 글렌쪽쪽 증류소가 보인다 아쉽게도 여긴 비지터센터도 없는 증류소라 그냥 겉에서만 보고 지나갔다. 쪽쪽 증류소를 지나 조금 더 걷다보면 스트라스아일라 증류소가보인다 시바스의 심장이자 로얄샬루트를 만드는 메인 증류소중 한곳이다 되게 아기자기한 증류소의 모습인데 좌측 노랑창문있는곳이 팟스틸들이 있는 공간이다. 내가 예약한 투어는 22파운드짜리 기본 투어로 오전 10시부터 11시 30분까지 진행되는 투어인데 증류소도 10시에 맞춰 문을 연다 30분 일찍 도착해서 미리 증류소내부를 구경하려고했는데 아직 문을 열지 않아서 어쩔수없이 밖에서 조금 대기했다. 9시 55분쯤 증류소직원이 나와 철문을 열어주시면서 비지터센터 안으로 들어갔다 안내데스크 우측에는 술과 굿즈들을 판매하고 있었고 데스크 뒤쪽에는 바가 있었다 먼저 투어시간이 다 된 관계로 캐리어를 맡기고 투어를 하고나서 비지터센터를 더 구경하기로 했다 오늘도 투어는 나 혼자였다.투어가 시작되면 먼저 조그만 방으로 이동해서 스트라스아일라의 역사?가 담긴 영상을 시청한다 근데 이게 좀 내용이 긴데 옆에서 가이드분이 대본을 읽고 더빙해주시는데... 이게 조오금 그렇다 영상속에 사운드를 넣는게 어땠을까 싶은.. 영상 시청을 마치고선 역시 위스키 제조과정에 설명해주시는데 밀링과정에 대해 설명해주시는데.. 뭐 다른 증류소들이랑 별 차이있는건 없다 매쉬튠 사진.. 워시백 사진.. 투어를 하두 많이보다보니 별 감흥이없었다 하지만 프라이빗투어이니 리액션을 안할수가없다 ㅋㅋ.. 한가지 인상깊었던 점은 스트라스아일라 증류소와 글렌키스 증류소는 맥아를 공유하기도 하고 우측에 강 위에있는 증류소간 이어진 파이프를 통해 글렌키스 증류소의 증기를 받아와서 생산과정에 이용하기도 한다고.. 여러모로 스트라스아일라에게 도움이 되는 증류소란다. 흔한? 팟스틸 사진 이렇게 생산과정을 슥 훑고나면 웨어하우스까지 구경하러간다. 무수하게 많은 스트라스아일라 캐스크들이 있는데 인상 깊었던점은 스트라스아일라는 포필캐스크는 잘 사용하지않는다고하는데 이유는 역시 나무가 빨릴대로 빨려서 그렇다고한다. 스트라스아일라는 다른 증류소들의 캐스크들도 많다고한다 진짜 글렌버기,달무냑,스카파,글렌리벳,롱몬 등등 다양한 증류소의 캐스크들도 꽤 많았다. 무지하게 비싸다는 로얄샬루트 캐스크들 상상이상으로 가격이 비싸다고.. 이걸들은 창고안에서도 따로 케이지안에 특별 관리되고있었다. 이렇게 웨어하우스까지 보고나면 테이스팅룸으로 와서 테이스팅을하는데 라인업은 스트라스아일라 11년 DE, 시바스리갈 라이캐스크, 로얄샬루트 21년이다. 맛은 스트라스아일라 > 로얄샬루트 > 시바스리갈 순으로 좋았는데 이때 시간도 없기도하고 바를 구경하고싶어서 서둘러 마셨더니 확 취기가 올라왔다. 스트라스아일라는 바에서 조금씩 시음하는거는 무료라고한다 그래서 음.. 18년 조금 맛볼수 있나요? 하니까 21년과 16년 꼬냑피니쉬도 한잔씩 그냥 맛보라고 주셨다. 개인적으로 18년이 풀셰리라서 한국에서 직구로 살까할정도로 기대를 많이했었는데 기대치가 너무 높았던건지 그정돈 아니였고 꼬냑피니쉬가 제일 맛있어서 한병 사고싶었으나 품절이라고.. 스트라스아일라 11년 DE로 만든 칵테일도 한잔 시켰다 이게 10파운드 언저리했던거 같은데 사과주스 맛나니 맛있었다 스트라스 아일라 증류소가보게되면 시켜 마셔보자. 이건 팔고있는 바틀들 18년을 살까 말까 고민을했었는데 가격이 비싸서 패스했다 물론 한국에서 이 가격이면... 사진은 못찍었지만 로얄샬루트미니어쳐부터 수많은 로얄샬루트들도 팔고있었다 이렇게 바틀들까지 구경하고 서둘러 증류소에서 나왔다 오늘은 갈 길이 매우 멀다. 키스에서 캠벨타운으로 가기 위해선 먼저 에버딘으로 가야한다 (12.1파운드) 스트라스아일라 증류소에서 5분거리에있는 Keith역까지 가서 미리 앱으로 끊어놓은 기차표의 코드를 기계에 입력하면 이렇게 생긴 표를 준다 이 표는 수시로 검사하니 챙겨두자. 에버딘역에 부거킹이있길래 사먹은 더블치즈버거 (5400원) 여기서 글래스고로 가는 다른 기차(24.1파운드)로 환승해야한다. 사실 이때 스트라스아일라에서 너무 빠르게 술을 때려박고 기차를타서 그런지 멀미로 너무 힘들었다 약 4시간을 기차에서 죽어가며 도착한 글래스고 여기는 인버네스나 엘긴이랑은 비교가 안될정도로 큰 도시였다 여기서 약 2시간의 환승 대기시간이 있었는데 이때 저녁을 먹었어야해서 살기위해 근처 한식당을 찾았다. 그렇게 찾아간 글래스고 역에서 도보 10분거리에있는 한식당 서울 김치찌개는 군대에서 먹던 김치찌개 맛이였으나 이거라도 먹으니 이제서야 피가 좀 도는거 같았다 가격은 13파운드다. 디저트로 졸리비에가서 치킨 한조각과 그레이비소스를 주문해서 먹었는데 이거 왜 맛있어하는지 모르겠던.. 치킨은 딱딱하고 그레이비소스는 묽어서 맛 없드라. 이렇게 저녁까지 먹고나서 글래스고 뷰캐넌 버스정류장에갔다 여기서 우린 캠벨타운으로 가는 926번 버스(왕복 29파운드)를 타야한다 전광판을 잘 보면 탑승해야하는 탑승구 번호가 적혀있으니 확인하고 타자. 그렇게 저녁 10시 15분이 되어서야 도착한 캠벨타운.. 장시간 이동하다보니 이때쯤 몸이 내 몸같지 않다. 캠벨타운 버스정류장에서 도보로 5분거리에 있는 캠벨타운 백패커즈 호스텔 하룻밤 35파운드라는 나름 착한 가격으로 선택했다 남자방 여자방 따로 분리되어있는데 이 날 남자는 나 한명밖에없어서 요 방을 혼자 다 썼다 단점은 완전 겨울은 아니였는데도 밤에 좀 춥다 그것빼곤 다 괜찮던 호스텔 내일 아침에 스프링뱅크 오픈런을 해야하기때문에 서둘러 씻고 침대에 기절했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홍염고정닉
실버애로우의 역사를 배워보자(중)
https://youtu.be/v5JSjCkHnMc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formula1&no=3200211편2차 세계대전은 독일의 패배로 끝났다. 히틀러가 자랑하던 독일의 기술력은 승전국들의 타겟이 되었고 이는 실버애로우도 피해갈 수 없었다. B.I.O.S.(영국 정보부 개별 분과 위원회) 소속 엔지니어 카메론 얼에 의해 1934-39년간 활동했던 독일의 그랑프리 레이스카는 낱낱이 분석되었다.그리고 이 보고서가 책으로 출판되면서 상대적으로 열세였던 영국의 소규모 레이싱 팀들은 추축국과의 격차를 빠르게 좁힐 수 있었다. 하지만 실버애로우의 영광을 재현하기에 그 설계도는 너무나 화려했다 (왼쪽부터 파리나-파지올리-판지오. 3F라 불리며 알파로메오에서 활동한 이들은 50년대 최고의 트리오였다) 그래서 전후 초기 그랑프리 레이싱은 이탈리아의 독무대였다. 독일만큼은 아니지만 이탈리아가 보유하고 있던 인프라는 영국과 프랑스의 아마추어들이 따라갈 레벨이 아니었다.스쿠데리아 페라리는 신생팀이지만 인맥빨로 알파로메오의 핵심 기술진과 드라이버들을 영입해 바로 우승 경쟁에 합류했고, 그나마 영국의 BRM이 멀린의 기술을 빌려 원심식 트윈 슈퍼차저 V16을 선보였으나8000rpm 이하에선 출력이 반의 반토막이 나는 심한 터보랙과 극악의 정비성 때문에 직접적인 상대는 되지 못했다. (딱 봐도 쥰내 복잡해보인다) 거기에 알파로메오 워크스팀 마저 F1에서 철수하자 스포츠 관리 기관인 CSI는 월드 챔피언쉽을 유지하기 위해 1952년부터 F1을 750cc 슈퍼차저 or 2000cc 자연흡기로 운영되던 F2과 통합시켰다.그 말인즉슨 겨우 자리를 잡은 V16 BRM이 나갈 수 있는 레이스는 이제 굿우드 힐클라임 뿐이라는거다.그래도 치시탈리아와는 달리 달려라도 봤으니 이 부분은 인정해야겠다. 한편 경쟁자가 사라진 페라리는 명기 람프레디 L4 엔진을 내세워 1952-53년 F1을 지배했다. 아스카리는 9연승이라는 압도적인 기록을 세우며 2년 연속 월드챔피언에 등극했고, 한동안 페라리의 독주는 계속될 것처럼 보였다. 1954년,CSI는 레이스가의 배기량을 2000cc에서 2500cc로 늘리는 새로운 규정을 발표했다.그리고 패라리는 쥰내 쳐맞았다실버애로우의 영광을 찾아서 (중)-Post war 1940년 전쟁이 터지면서 레이싱은 중지되었다.엘리트 엔지니어였던 실버애로우 개발진들은 메서슈미트 전투기의 엔진을 제작하기 위해 개발부서로 넘어가게 되는데다만 울렌하우트는 영국 이중국적자이다 보니 게슈타포의 감시를 받게 되었다. (잡지 들고 있는 사람이 루디 울렌하우트 박사) 그래도 다임러 벤츠의 핵심인재라 큰 제재 없이 DB603 같은 항공기 엔진 개발에 참여했고전쟁이 끝난 후 울렌하우트는 소규모 레이싱 팀에서 잠시 일하다 1948년에 다시 벤츠로 복귀하여 양산차 개발 책임자가 되었다 지구 주딱의 버거나눔 덕분에 유럽 경제가 안정되면서 다임러-벤츠는 여유를 되찾았다먹고살기 괜찮아지자 시민들은 빵 만이 아니라 놀이도 원하고 있었고이는 빤쓰도 마찬가진지라 서서히 부활하는 유럽 모터스포츠에 다시 눈길이 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메르세데스의 영광을 되찾아야 한다는 알프레드 노이바우어의 꾸준한 설득 끝에 1951년 6월, 다임러-벤츠는 그랑프리 레이싱 복귀를 선언했다. 선언과 동시에 R&D 헤드 프리츠 날링거, 핵심 엔지니어인 울렌하우트, 팀 매니저 노이바우어로 이루어진 드림팀 역시 다시 결성되었다. 다만 바로 F1 참가를 준비한 건 아니고 그 전에 테스트 해볼 겸 한창 재규어가 C-타입으로 재미보던 스포츠카 챔피언쉽에 먼저 도전장을 내밀었다. 300SL 타도 C-타입을 선언한 모터스포츠 팀. 그러나 그들에게 남은 시간은 9개월. 울렌하우트의 주도하에 레이싱 부서는 부랴부랴 최신 세단이었던 300을 베이스로 새 스포츠카를 제작했다. (응애)W194라는 개발명이 붙은 이 프로토타입은 세단과 비교해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데먼저 엔진부터 살펴보자면 시간상 새로운 엔진을 제작하는건 무리기에 그들은 엔진을 좌측으로 50도 기울여 배치했고, 윤활 시스템으론 드라이 섬프 방식을 적용하여 후드 높이를 최대한 낮췄다. 또한 베이스가 된 300이 무거운 대형세단이다 보니 섀시도 바꿔야했다. 다임러 벤츠로 돌아오기 전 울렌하우트 박사는 친분이 있었던 영국 대령의 요청으로 소규모 팀에서 레이스카를 제작한 적이 있었는데레이스카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그는 스틸 파이프를 삼각형 패턴으로 이어 입체적으로 조립한 멀티 튜블러 스페이스 프레임을 시도하게 된다. (치시탈리아 D46 스페이스 프레임) 기존에도 치시탈리아 같은 레이스카에서 스페이스 프레임은 시도되어 왔지만 울렌하우트 버전은 비틀림 강성과 무게에서 훨씬 우수했다. 그의 초기 아이디어는 그대로 프로토타입에 적용 되었으며 섀시 무게를 68kg 까지 줄이면서도 X-오벌 튜블러 프레임 방식의 W154보다 비틀림에 강했다. (W154의 섀시) 그러나 문제는 예상치 못한 부분에서 있었는데, 문짝을 달 곳이 없었다. 콕핏 전체를 감싸고 있는 튜블러 프레임 때문에 일반적인 형태의 문짝을 다는건 불가능했고, 그렇다고 1인승 모노포스토로 개조할 수도 없는 것이 WSC 규정상 일정 크기 이상의 문짝을 반드시 달아야 했다.그래서 나온 해결책이 걸윙 도어 문이 열릴때 마치 갈매기가 날갯짓하는 모습과 닮아 붙은 별명으로 이 특이한 디자인은 곧바로 이 차의 상징이 되었다. Sport Light의 약자 SL이 붙은 새로운 300의 데뷔전은 1952년 밀레밀리아에서 치뤄졌다. 1000마일 길이의 도시간의 경주는 처녀에게 너무나 가혹한 행위였다.그래도 칼 클링과 30년대의 전설 카라치올라는 이탈리안을 위한 잔치에서 각각 2위, 4위로 통과하며 선전했다. 하지만 베른에서 치뤄진 두번째 레이스에선 고질적인 뒷브레이크 락업 때문에 카라치올라가 사고로 은퇴하기도 했다. 전설을 잃었지만 이후 신속한 업데이트로 메인 이벤트인 르망 24시에서 새 버전을 준비할 수 있었고그들은 원-투 피니쉬를 기록하며 재규어를 확실하게 누르는데 성공했다.https://youtu.be/isw9fKWFYMM300SL은 신대륙에서도 대단히 빨랐다.그 악명높은 까레라 파나메리카에서도 1-2 피니쉬를 놓치지 않았다.그러자 이 은색 갈매기는 미국인의 눈에 들어오기 시작하는데 그 중의 한 명이 미국에서 폭스바겐을 수입해오던 딜러 맥스 호프만단숨에 300SL의 가치를 알아본 그는 스포츠카를 상용차로 만들어오면 1,000대를 수입하겠다고 다임러-벤츠에게 제안했다. 그전까지 다임러-벤츠에게 SL은 그저 그랑프리를 준비하기 위한 몸풀기에 불과 했지만달러냄새를 제조사가 어찌 거절하랴부랴부랴 다임러-벤츠는 300 SL을 쌍용차로 개조해, 1954년 뉴욕 국제 모터스포츠 쇼에서 공개했다. 호프만의 예상은 맞았다. 공개 되자마자 300 SL은 단연 이 모터쇼의 헤드라이너 였으며, 걸윙도어는 셀럽들 사이에서 새로운 유행이 되었다.약 1400대의 SL 중 1100대 이상이 미국으로 팔렸으니 이는 북미 시장에서 메르세데스의 첫 성공이었다.300SL의 성공적인 데뷔로 모터스포츠 효과를 생생하게 경험한 다임러는 레이싱 부서에 막대한 지원을 약속했고이제 울렌하우트의 레이싱 부서에는 메르세데스가 자랑하는 핵심 인재들이 모두 모였다.과거의 위상을 재현하기 위한 단 하나의 목표를 위해 (하) 편에서 마무리예전에 썻던거 다듬어서 재업
작성자 : TheProdigy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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