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커피핀이라는 물건... 애매합니다.. 드립도 아니고 인스턴트도 아니고.. 원두를 대충 갈아서 꾹꾹 채워넣은 다음 뜨거운 물만 붓고 기다리면 된다는 거죠. 드립처럼 공기빵에 신경쓸 필요없이 냅다 부어주기만 하면 됩니다. 연유를 담은 컵 위에 커피핀 올려놓고 뜨신물 부으면 모든 과정이 끝... 로부스타... 역시 애매합니다. 보통 원두 커피라고 하면 그 원두커피만의 특징이 어느정도는 포함되거든요. 독특한 풍미라던지, 신맛이나 쓴맛이 강하다던지, 기타등등.. 그런데 이건 그런게 없습니다. 커피가 공통적으로 갖는 기본적인 맛과 향. 딱 그것뿐입니다. 특징이 없는게 특징이라고나 할까요.. 그러다보니 맛과 향은 인스턴트 커피랑 비슷한데, 인스턴트 커피의 냉동 건조과정에서 사라져버린 그 무언가를 잃어버리지 않고 꾹 간직한듯한 느낌입니다. 인스턴트 커피와 고급 원두커피의 중간쯤...이라는 애매한 위치에 서있는 맛이라고나 할까요. 그런데 이 애매함의 의외로 마음에 드네요. 연유와 섞여서 '그까이꺼 대충' 식의 개념이 만땅 들어간 가벼운 느낌이 왠지 베트남 길거리의 카페를 떠올리게 합니다. 생활의 일부로 자리잡았지만 인스턴트 커피의 지나친 간략함보다는 무거운, 카페에서 주문해서 마시는 커피이지만 그 한잔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지 않아도 될 정도로 가벼운. 이 무게야말로 제가 베트남의 카페를 보면서 진정으로 부러워 한 커피의 무게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