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타임스=김우선 기자] 고3, 고2 수능을 준비하는
아들들을 둔 덕에 4가족이 함께 무언가를 같이 하기란 쉽지 않다. 외식을
같이 하기도 왠지 미안할 지경인데 하물며 두 시간이 넘는 영화를 함께 보기란 웬만해선 엄두가 나질 않는다.
4가족이 영화를 함께 본 건 지난해말 세간의 이슈였던 영화 <서울의 봄> 이후 4개월만이다. 이때도 역시 용기가 필요했다. 공부해야 할 시간을 뺏는 것 같은
미안함이 앞섰기 때문이다. 하지만 ‘좌빨’스러운 고백이지만 수능 문제 한두 개 더 맞는 것보다 우리의 역사를 아는 게 더 중요하다는 생각에 아들들을 영화관으로
이끌었다.
<서울의 봄>이
국내 영화 사상 최초로 12.12 쿠데타라는 뼈아픈 현대사를 담고 있기에 당연히 관람했고, <파묘>는 일제 시대 항일에 대한 근대사를 역사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고 해서 티켓을 일찌감치 예약했다. 두 영화 모두 흥행가도를 달렸다. <서울의 봄>은 개봉
65일만에 1300만 명이 넘게 관람했고, <파묘>는 개봉 18일만에 800만명을
돌파했다. <파묘>가 <서울의 봄>을 너끈히 앞서 2천만 명까지 가지 않겠냐는 전망이다.
파묘는 결코 오컬트 영화가 아니다. 사진=영화사
각설하고, 영화 <파묘>는 언론에서 흔히 말하는 귀신이나 샤머니즘을 그린 ‘오컬트(Occult)’ 영화가 아니다(굳이 저런 어려운 용어를 붙여야 하나
하는 서운함이 있다). 그렇다고 반일영화나 좌파영화로 평가하기도 애매하다. 물론 일반인들이 보기엔 귀신영화나 공포영화쯤으로 충분히 치부될 수 있다. 영화를
보고 난 후 “신기한 한국판 스릴러”, “뭔가 난해한 영화”라는 두 아들들의 반응에서 볼 수 있듯이 말이다. 나 역시도 영화를
보기 전 덕후들의 평을 통해 등장인물들의 이름이라든지 차량 번호 등 여러 곳에 역사적 진실이 숨겨져 있다는 사실을 알고 봤음에도 영화를 보는 내내
전혀 알아채지 못했으니 말이다.
줄거리를 잠깐 보자. 무당 김고은이 미국에 사는 한국인 갑부(친일파 자손) 집안에서 벌어진 알 수 없는 재앙을 무속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하면서 이야기는 시작된다. 자손에게까지 이어지고 있는 재앙의 원인이 조상의 묫자리에 있다고 점괘를 내면서
파묘(조상의 묘를 파서 이장하거나 화장하는 행위)를 해야
재앙이 해결된다며 파묘를 하는 과정에서 벌어지는 미스터리한 사건을 그려내고 있다.
이 영화는 만물이 ‘기(氣)’로 이루어져 있고 땅도 지기(地氣)로
이루어져 음양과 오행, 주역의 논리에 따라 땅에도 길흉이 있다는 ‘풍수지리’를 모태로 하고 있다. 묘지를 쓸 때 잘 못쓰면 자손들까지 대대로
재앙을 받을 수 있다는 논리다. 그래서 잘 사는 집안은 양지 바른 터에 조상들의 묫자리를 쓴다. 나 역시도 어머니 돌아가셨을 때 흔한 납골당보다는 경치 좋은 곳에 수목장을 선택한 것 역시 풍수지리는 모르지만
뇌리에 박힌 미신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일본에도 사무라이 시대부터 ‘음양사’라는
사람들이 백제로부터 전래된 음양오행설을 설파하면서 주술적인 능력으로 풍수지리를 강조한 것으로 전해진다. 영화에서
언급되는 기쓰네라는 일본 스님이 바로 음양사인 것으로 보인다. 일본의 음양사들이 조선의 기를 끊기 위해
한반도의 허리에 해당하는 땅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산에만 26개의 쇠말뚝이 박혔다고 한다. 영화에서도 만 명의 목을 베어 죽인 일본 무사의 관을 쇠말뚝처럼 꽂아 넣어 영원히 지배하려고 했다는 게 <파묘>의 모티브였다고.
엄밀히 말하면 영화 <파묘>는
매국노 이완용의 파묘 사건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이완용의 묘는
1926년 사망한 후 끊임없이 훼손의 대상이 되어 왔다. 이완용은 자신의 죽음에 대비해
전북 익산시의 산중턱을 묫자리로 선택했고 죽음 이후 훼손되어 오다가 1979년 증손자에 의해 파묘되어
화장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영화 <파묘>는 이러한 사실을 바탕으로 국가와 민족에 대한 배신의 결과가 얼마나 참담할 수 있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일재 잔재를 과연 파묘해낼 수 있을까? 사진=영화사
일제강점기에 일제는 풍수지리에 입각해 서울의 기를 끊었다. 사방으로
현무, 청룡, 백호, 주작의
풍수에 맞춰 설계한 서울의 기를 끊기 위해 일제는 현무 위치에 있는 북악산 앞에 조선총독부를 세워서 경복궁을 눌러버렸고 주작의 위치인 남산에 조선신궁을
건립했다. 청룡과 백호에 해당하는 인왕산과 낙산에는 그 정상에 쇠말뚝을 박았다.
영화에서 기억에 남는 단어 중 하나는 ‘정령’이다. 무당 김고은의 배후에 수호령 할머니가 있는데 그 할머니의 영혼은
혼령이다. 하지만 일본의 신들은 정령이 되어 모든 만물에 붙어 존재한다고 말한다. 한반도 백두대단의 정중앙에 수직으로 박혀있던 관에 서려있는 악한 정령이 일종의 쇠말뚝이었다.
영화에서 쇠말뚝은 결국 찾질 못했다. 하지만 정령이 깃들어 있는 귀신
쇠말뚝은 뽑아냈다. 이 영화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친일파
집안으로 일컬어지는 토착 왜구들의 정신 속에 뿌리 깊이 박혀 있는 쇠말뚝을 뽑고 싶어했던 것은 아닐까? 실체
없는 혼령이 아니라 현존하고 있는 친일파 속에 있는 ‘정령’을
쫓아내야 한다고 말하는 건 아닐까?
여전히 서울의 한복판에서 일왕의 생일 축하연이 기미가요 제창과 함께 벌어지고 있고 매년 삼일절마다 보수단체들은
서울 시청광장에서 성조기와 일장기를 흔들어대는 세상 아닌가. 법복을 입은 판사들은 일제 강점기 시절
강제 징용된 사람들에게 일본 기업이 피해 배상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결을 내리고 있는 게 대한민국의 현실이다. 심지어
현 정부는 독립운동 영웅들의 흉상을 철거하고 일본의 후쿠시마 발전소 방사능 오염수가 안전하니 걱정하지 말라며 수십 억의 돈을 들여 광고까지 한다.
억지스러운 주장일수도 있지만 영화 <파묘>는 여전히 활개치고 있는 사람들 속의 친일 정령들을 ‘파묘’해야 한다고 말한다. 아수라판으로 변질된, 아니 어쩌면 처음부터 아수라판이었을지 모를, 영화보다 더 ‘오컬트’적인 현실을 깨부수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ansonny@revie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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