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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갤문학] 가박사가 샌즈 괴롭히는 글

ㅇㅇ(212.89) 2024.09.18 20:56:29
조회 204 추천 4 댓글 1










*

눈을 감으면 무수한 것들이 머릿속을 비행했다. 주기율표, 십자수, 벡터값, 그 옆을 빽빽하게 메운 이진수와 그것들로 그린 기분 나쁘게 일그러진 미소 하나. 해골은 그게 그리 달가운 경험이 아니라는 것을 알면서도 종종 눈을 감곤 했다.

눈을 뜨면 하얀 벽이 보인다. 그 중심엔 검은색의 카메라 렌즈가 보란듯이 박혀 있고, 해골은 그저 그것을 눈인 것마냥 빤히 바라보곤 했다. 대략적으로 10분쯤 그렇게 불멍하듯 응시하고 있으면 그제서야 어딘가 숨겨진 스피커에서 자조적인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S-01, 제자리로 복귀해라.

그 말을 듣고 첫번째로 뻔뻔하게 영문을 모르겠다는 순진한 눈길로 렌즈를 바라보고 있노라면, 완전히 똑같은 톤의 기계적인 음성이 다시금 반복된다. 그 뒤에도 그 둥그스름한 렌즈의 둘레를 찬찬히 눈으로 훑고 있노라면, 한숨 소리가 들리운다. 그 검은 원이 상상 속에서 점점 커지고 커져 하얀 방을 전부 뒤덮을 지경이 되노라면.

그제서야 벌컥, 하고 문이 열렸다.

- 오늘은 또 무슨 불만이 있어서 그런가, S-01.

- ······파피루스, 어디 있습니까?

- 파피루스?

그 길쭉한 형체는 팔짱을 낀 채로 잠시 손가락을 턱에 괴었다. 해골은 저 치가 이미 무슨 소리를 하는 지 불보듯 뻔히 알면서도 저렇게 군다는 것을 이미 잘 학습한 뒤였다.

- ···아, S-02를 말하는 게로군. 하하-, 영 익숙치 않은 별칭이야. 어울리지도 않고.

아무리 실험체의 신분일지라도, S-01은 방 곳곳에 도청 장치가 가득 깔렸다는 것을 모를 정도로 멍청하진 않았다. 아마 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의견을 강조하려 부러 모른 척 시미치를 딱 떼는 것이리라.

그 박사, W.D. Gaster, 줄여서 가스터는 그런 괴물이였다. 모든 어휘, 행동, 숨소리 하나까지 수차례의 계산을 마치고서도 치밀하게 가장 효과적인 답안을 골라 내놓는 괴물. 아이들끼리 장난식으로 불러대는 글벌레라거나, 조금 과하다 싶은 괴짜라는 말도 부족한 괴물. 정상이라는 단어조차 그에게는 평균값의 일부였다.

그런 천재적이고 기구한 박사의 역작이라 부를법한 생명체, 실험체, 그리고 임시 조수인 해골의 정식 명칭은 S-01-2358였다. 완벽한 01을 만들어내기 위해 희생된 2357개의 프로토 타입들은 그저 4자리 숫자로 남아 현존하는 완성작의 꼬리표로도 남지 못했다. 그 창조주조차 S-01, 간단하게 축약하여 부를 뿐이였으니까.

인간의 그릇으로 빚어진 껍데기에 죽어가는 괴물의 영혼을 투입한 결과물. 인간에게는 괴물이고, 괴물에게는 인간인 모호한 경계선 사이의 존재. S-01은 살아가는 이유도, 주말마다 팔등에 꽂는 주사의 성분도, 그 뒤에 손에 떠밀리듯 쥐여주는 사탕의 맛도 알지 못했다. 그냥 이것은 단 맛이로니, 쓴 맛이로니 하는 박사의 말마따나 그러려니 할 뿐이였다.

그런 S-01에게 유일한 지표이자 약도가 되어준 괴물은 S-02-13이였다. 애착 대상이 되기 위한 실험군. S-01-2359를 시도하는 것보다도 가스터가 흥미를 가진 부분이 바로 그것이였다. 누군가를 지키고자 하는 힘, 누군가를 사랑하고자 하는 힘. '의지'를 스스로 만들어낼 수 있을까? 죽음을 모르는 괴물에게 죽음을 두려워하도록 가르칠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위한 수차례의 시도 중 하나.

그리고 그 방법은 놀라울 정도로 잘 먹혀들었다.

- ···예, 이제 알려주시죠. 어젯 밤에 무슨 일이 생겼는지, 왜 제 동생이 소각소로 이송됐다는 말을 제가 들어야 했는지도요.

- 누가 보면 내가 꼭 일부러 그런 짓을 한 것처럼 들리겠군, S-01. 우연의 일치라는 생각은 들지 않던가?

- 그렇게 허술한 괴물이 아니라는 생각이 먼저 들던데요.

- ······역시 영민하군, 자네는 소거되기엔 아까운 작품이야.

자네는? 그 말을 들은 해골은 찬찬히 머리를 굴린다는 생각 따윈 진즉에 집어 치웠다.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추론을 해야한다, 질문을 하자. 그 까짓 것들을 생각하기엔 아직 S-01은 어렸다. 나이로만 따지면 고작 5살배기 아이 수준이였다.

순식간에 날 벼린 뼛조각들이 박사에게로 달려 들었다. 예상치 못한 결과물이 아니였음에도 때 묻지 않은 하얀 가운에, 그 발치에, 그리고 손에 둥글게 난 구멍을 꿰뚫고 벽에 박히도록 둔 것은. 가스터에게 그건 과연 실수였을까.

- ·········죽였습니까?

- 죽였다고 하면 내가 너무 나쁘게만 보이지 않나.

- ···그저 버렸다고 해주게.

웅웅거리는 소리가 방 안을 메웠다. 침묵만이 들끓던 공간엔 이제 정체 모를 불안함이 계속 진동하고 있었다. 그 소리의 근원지는 용각류의 유골을 닮은 머리였다. 그리고 그 쩍 버린 아가리에 새하얀 빛이 모이기까진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 저번에 투약한 약물이 효과를 보이는군. 예상한 것과 조금 다른 모습이긴 하다만, 성능은 여전히··.

와중에도 중얼거리며 머리를 굴리던 가스터는, 종이와 펜을 가져오지 않음에 아쉬워하고 있었다. 이 현상을 구체적으로 기록해서 자료로 남겼어야 하는데. 그렇게 한탄을 하면서도 허공에 뜬 여럿의 손 중 하나는 태연하게 검지와 엄지를 맞물려 딱, 소리를 냈다.

박사의 하얀 안광이 그에게로 향한다. 언제 그랬냐는 듯 말끔하게 사라진 그 흉측한 머리와 뼈들은 S-01을 당황하게 만들기 충분했다. 허나, 그럴 틈도 주지 않겠다는 듯 그의 입이 즐겁게 말을 내뱉었다.

- 겨우 이것 뿐인가? 내가 부여한 능력을 내게로 돌리다니, 멍청한 생각이군.

- ·········.

- ···안 그런가, 샌즈?

갑작스레 푸르른 안광이 해골의 눈에서 번쩍였다. 그 사이로는 얼핏 노란 빛이 보이는 것 같기도 했지만, 가스터는 그 사실을 관측할 기회조차 갖지 못했다. 아까 보았던 그 끔찍한 두개골들이 사방에서 자신을 향하고 있었으니.

- 정말 흥미로워, 이건···. 기대한 보람이 있어.

이 또한 하나의 실험으로 여기기에 여념이 없던 박사에게, 이내 눈이 멀어버릴 정도로 밝은 광선들이 쏟아졌다. 잠시간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큰 굉음은 그 뒤에야 이어진다.

······.

어두워, 어두워져.

아직 어두워.

············.

S-01, 샌즈가 정신을 차리자 보이는 것은 하얀 천장이였다. 그러나 검은 렌즈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낮고 담담한 목소리가 해골의 귓 속을 파고 들었다.

- 이제야 일어났군. 얼마나 무리했으면 탈진까지 한건지. 미리 회복약을 준비해뒀기에 망정이야, 안 그런가?

- ·········.

- 정신 차리도록, 다음 실험이 15분 뒤니까.

- ······미친 놈.

지나가던 연구원들이 얼핏 뱉은, 의미도 모르는 욕을 내뱉은 샌즈는 머리를 감싸 쥐고 싶은 충동을 겨우 참아냈다. 더 이상의 반항은 용납되지 않는다는 걸. S-01의 몸뚱아리는 지나치게 잘 알고 있었다.

- 칭찬으로 듣겠네, 샌즈.

알 수 없는 음조를 흥얼이며 해골의 팔목에 감긴 제어 장치를 하나씩 풀어내던 박사가 답했다. 속박이 풀리자마자 이글거리는 눈빛으로 저를 노려보는 샌즈에게, 가스터는 이제야 막 생각났다는 듯 천연덕스럽게 히죽거리며 말을 던졌다.

- S-02는 살아 있으니 걱정 말고. 알고보니 소거일이 오늘이 아니라 다음 주였다는군 그래.

- ······.

- ········아, 파피루스라고 불러야 했던가?

얄궃은 웃음은 가시지도 않고 박사의 얼굴에 만연하게 남아 있었다. 샌즈는 충격 받은 것도, 자포자기한 것도 아닌 그 어딘가의 표정을 지은채로 비틀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회복을 목적으로 둔 약물이 꽂혔던 팔이 욱신거렸다. 고집스럽게 접혀 있던 손에 쥐여진 사탕은 레몬 맛이였다. S-01은 처음으로 죽고 싶다는 생각과, 죽고 싶지 않다는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뼈에 긁혔음에도 생체기조차 나지 않은 말끔한 가운을 바라본다. 그 길다란 형체가 일정하게 보폭을 두어 멀어지고, 문고리를 당겨 나가는 것을 응시한다. 검은 원 대신, 다른 무언가가 시야에 가득 번진다.

살아야 할 이유가 생겼다.













갑자기 가스터에 확 빠져서 1시간 동안 저 노래만 들으면서 바로 써냈음

한국에서는 라면광 윙딩러인데 외국에서는 막 시리어스하고 악역인게 맛도리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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