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찾는 겨울 여행자의 절반 가까이가 한라산 등산객이라니 과연 겨울산행 1번지라 할 만하다.
제주로 이주해오기 전, 서울에 살 때도 곳곳의 산들을 자주 갔었는데, 여름엔 너무 더워서, 눈내리는 겨울에는 혹여 안전상 문제가 발생할까 싶어 등산은 기피했었다.
그런데 제주로 이주를 하고 보니 겨울만 되면 일부러 한라산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다.
대체 이유가 뭘까?
직접 올라 두 눈으로 확인하고 나서야 그 이유를 알게 됐다.
한라산 어리목 코스
한라산 어리목 코스
한라산의 설경은 다른 국립공원이나 다른 지역의 높은 산들에서 만나는 설경과는 많이 다르다 한다. 여러 지역의 겨울산행을 자주 했던 친구에 따르면 눈이 많은 강원도의 산들은 대부분 눈이 뭉텅이로 나무 위에 내려앉는데, 한라산에선 천상의 눈꽃을 볼 수 있다는 것.
(겨울산은 한라산밖에 안 가본 나로서는 다른 지역의 산은 알 수가 없다. ㅎ)
과연, 폭설 수준으로 많은 눈이 내린 바로 다음날 쨍한 햇빛과 파란 하늘을 보며 한라산으로 달려가니 동화 속 같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런 날엔 바람도 거의 없기에 그리 춥지도 않고, 위험 요소도 적어 아이젠과 스틱 정도만 챙기면 된다. 하지만, 잠시 찾는 여행자가 원하는 날씨에 겨울 한라산을 오르는건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한라산 어리목 코스
겨울 한라산 등반 코스, 그리고 안전을 겨울 산행을 위해 챙겨야 할 것들을 정리해본다.
겨울 한라산, 어느 코스가 좋을까?
한라산 등반 코스는 정상인 백록담이 목적이라면 성판악 또는 관음사 코스로 오르면 되고, 겨울 산행의 정취만 가볍게 느껴보고 싶다면 윗세오름만 올라도 충분하다.
한라산 등반 코스
1,950m의 백록담으로 향하는 성판악 코스의 입구는 약 750m, 관음사 코스의 입구는 약 615m에서 시작하니 백록담 코스는 1,200~1,335m 정도의 산행을 하게 된다. 눈길이 아니더라도 8~10시간 정도가 소요되는 만만치 않은 산행이다.
폭설 다음날 백록담
폭설 다음날 성판악 코스
폭설 다음날 성판악 코스
관음사 코스의 눈꽃
폭설 다음날 관음사 코스
이와 달리 영실 코스는 해발 1280m, 어리목 코스는 970m 지점에서 산행이 시작된다. 따라서 산행이 익숙하지 않은 사람이거나 굳이 백록담을 오를 필요 없이 겨울산만 즐기고 싶다면 영실 코스를 통해 정상인 윗세오름(1,700m)에 오르는 걸 추천한다. 어리목 탐방로 입구에서 오를 수 있는 짧은 코스인 어승생악도 있지만, 이 코스는 짧게 한라산을 즐기는 코스이지 백록담이나 윗세오름으로 향하지는 않는다. 거리도 1.3km (편도) 정도로 짧다.
영실 또는 어리목 코스로 윗세오름에 오른 후 남벽까지 갔다가 되돌아오지 않고 돈내코 방향으로 하산하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돈내코 코스는 탐방로가 9.1km로 성판악 코스(9.6km) 다음으로 길고, 탐방객도 많지 않아 야생 멧돼지나 들개를 만날 수 있는 가능성도 적지 않다. 뿐만 아니라 대중교통도 불편해 하산 후 등산로 입구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약 1.1km 정도를 걸어야 하고, 버스도 자주 오지 않는다.
영실 코스로 오를 계획이라면 주차는 가장 먼저 만나는 주차장인 제1주차장에 하는 게 좋다. 제2주차장이 있는 등산로 입구까지 2.5km를 걸어올라가야 하지만, 하산 후 날씨가 어떨지 예측하기 어려우므로 제1주차장에 주차하는 게 안전하다고 할 수 있다. 눈보라가 살짝 흩뿌리던 날 영실 코스를 올랐었는데 등산을 시작할 때만 해도 멀쩡하던 도로가 하산하고 나니 얇게 얼어있었다. 이날 별다른 대비 없이 제2주차장에 차를 세웠다가 제1주차장으로 내려오는 길에서 미끄러져 곳곳에 처박힌 렌트카가 여럿이었다.
체력이 충분치 않은데 동화속 세상 같은 눈꽃만 보고 싶다면? 굳이 정상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어리목이나 영실 입구에서 약 1시간 정도만 올랐다 내려와도 된다. 더 올라가면 또다른 눈 세상이 펼쳐지지만 눈꽃과는 다른 풍경이다.
영실 코스에서 보이는 전망
폭설 다음날의 윗세오름
영실 코스는 제1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가는 게 안전하다.
다른 계절과 달리 겨울 산행은 안전을 위해 준비해야 할 것들이 적지 않다.
안전한 한라산 겨울 산행을 위한 준비는?
1. 필수로 챙겨야 할 등산용품
- 겨울 등산화 : 눈길을 밟고 올라가야 하니 방수가 되는 겨울 등산화는 필수다. 첫 겨울산으로 영실 코스를 올랐었는데, 겨울용 등산화가 아닌 걸 신었더니 바람도 술술, 눈보라도 술술 신발을 관통한다. 긴 코스라면 동상 걸리기 딱 좋다.
- 아이젠 : 겨울 산행이라면 등산로 초입에서 눈이 보이지 않는다고 방심하면 안 된다. 겨울 산행에 아이젠은 필수품이다. 외줄짜리 아이젠보다는 신발 전체를 감싸는 아이젠을 추천한다. 겨울 산행 경험이 없는 사람들 중에는 간혹 한라산 국립공원 직원들이 입산 전 등산객들의 복장과 장비까지 점검해주지 않느냐고 묻기도 한다. 하지만 아무도 등산객들의 장비를 점검해주지는 않는다. 나의 안전은 스스로 챙겨야 한다.
- 등산 스틱 : 한라산은 계단 구간이 많고, 탐방로에 잡을 수 있는 줄도 있어 등산 스틱을 필수 용품이라고까지는 할 수 없지만, 간혹 눈이 얼어 얼음 상태가 된 곳들이 있다. 이런 구간을 미끄럼으로 내려가는 사람들도 있는데, 얼음 구간에서 미끄럼 타기는 다른 사람들의 안전을 위협하는 행위가 될 수 있으니 하지 않아야 한다. 이런 결빙 구간에선 등산 스틱이 상당히 유용하다.
- 스패치 : 폭설이 내린 후 바로 다음날 한라산 산행을 하는 게 아니라면 스패치까지는 필요치 않을 수도 있다. 등산로는 사람들이 이미 오간 흔적이 있기에 눈 속에 발을 담글 일이 거의 없다. 하지만 탐방로 옆 눈밭에 들어가보고 싶다면 스패치를 챙기는게 좋다.
2. 방한용품
- 귀를 가리는 털모자, 장갑, 그리고 여분 양말 : 햇빛이 쨍한 날이라면 귀를 가리는 털모자까지는 필요치 않을 수도 있다. 하지만 눈보라가 조금이라도 있다면(위로 올라갈수록 눈보라는 심해진다) 눈만 내놓고 얼굴을 꽁꽁 싸매는 게 좋다. 털모자와 함께 장갑도 필수. 눈 속에 발이 빠지거나 할 경우 양말이 젖을 수도 있으니 여분 양말도 하나 챙기는 게 좋다.
- 옷차림 : 옷은 두꺼운 옷 한 두 개보다는 여러 개를 껴입는 게 좋다.
- 썬글라스 : 흰 눈에 비치는 햇빛은 일반 평지에서보다 강렬하다. 햇빛이 쨍한 날이라면 썬글라스가 필수다.
- 핫팩 : 추위를 많이 탄다면 필요할 수 있지만 필수 품목은 아니다.
3. 도시락 및 간단한 먹거리 : 한라산 입구 또는 정상(백록담, 윗세오름 모두)에서 먹거리나 생수를 판매하지는 않는다. 전에는 윗세오름에서 컵라면을 먹을 수 있었지만 지금은 전혀 없다. 관음사 탐방로 입구에는 김밥, 생수 등을 파는 휴게 편의점이 하나 있다. 물을 충분히 가져오지 않아 하산길에 주변 사람들에게 물을 얻어 마시는 사람도 간혹 봤었다. 다른 계절과 달리 겨울 산행은 시간도 더 많이 소요되니 체력 유지를 위해 초콜릿, 에너지바 등 간식거리도 챙기는 게 좋다.
4. 신분증 (성판악 또는 관음사 코스) : 성판악 또는 관음사 코스에서는 입구에서 예약 확인과 더불어 신분증도 확인한다. 예약 문자가 올 때 관련 사항이 함께 기재돼 있지만 제대로 읽지 않고 갔다가 입산도 하지 못한 채 돌아서는 사람들도 간혹 있다. 영실과 어리목 코스는 별도의 예약이 필요 없으므로 신분증을 챙길 필요가 없다.
한라산, 2024년 1월 1일 새해맞이 야간산행 특별 허용
2024년 1월 1일 새해맞이 해돋이를 볼 수 있도록 한라산 야간산행이 특별 허용된다.
백록담으로 향하는 성판악과 관음사 코스는 1월 1일 새벽 1시부터 입산이 가능하며, 윗세오름으로 향하는 어리목과 영실 코스는 새벽 4시부터 입산이 가능할 예정이다.
<성판악 & 관음사 코스 새해맞이 일출 예약>
- 성판악 코스 : 예약 가능 인원 1,000명
- 관음사 코스 : 예약 가능 인원 500명
- 예약 시스템 오픈 : 2023년 12월 1일 오전 9시부터 1인당 4명까지 예약 가능 (https://visithalla.jeju.go.kr/main/main.do)
- 산행시 신분증 지참 필수. 방한복, 장갑, 랜턴, 아이젠, 비상식량 등 준비 철저
<영실 & 어리목 코스 새해맞이 일출>
- 예약 필요 없음
- 새벽 4시부터 입산 가능
<lala_dimanch@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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