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동아 남시현 기자] 지난해 말 출하된 중앙처리장치(Central Processing Unit, 이하 CPU) 4개 중 3개는 인텔이, 1개는 AMD가 판매한 것으로 조사됐다. 시장조사기관 머큐리 리서치(Mercury Research)가 집계한 2021년 4분기 x86 시장 점유율 조사에 따르면, 인텔의 시장 점유율이 74.4%, AMD는 25.6%로 나타났다. AMD의 x86 프로세서 점유율은 11분기 동안 꾸준히 늘고 있으며, 점유율 25%를 돌파한 것은 15년 전인 2006년 이후 처음이다.
AMD 최고경영자 리사 수 박사가 지난 1월 초 열린 CES2022에서 AMD 라이젠 7000 시리즈 CPU를 소개하고 있다. 출처=AMD
AMD가 점유율을 끌어올릴 수 있었던 배경은 2019년 출시된 AMD 라이젠(RYZEN) 3000 시리즈와 2020년 11월 출시된 AMD 라이젠 5000 시리즈가 데스크톱 시장에서 호평을 받으며 고정 사용자층을 형성한 점, 코로나 19로 비디오 게임기(콘솔) 수요가 증가함과 동시에 마이크로소프트 엑스박스 시리즈 X와 소니 플레이스테이션 5가 동시에 출시하면서 이뤄진 결과다. 엑스박스 시리즈 X와 플레이스테이션 5 모두 AMD의 프로세서가 사용된다. 아울러 코로나 19로 디지털 전환이 가속화하며 전세계 서버 시장 규모가 전반적으로 확대된 점 역시 영향을 미쳤다.
x86 시장점유율, 노트북과 보급형 프로세서가 갈랐다
2020년 4분기 및 2021년 3분기, 4분기 x86 CPU 전체 출하량 비율. 출처=머큐리리서치
머큐리리서치가 발표한 x86 CPU 전체 출하량 비율은 2020년 4분기에는 인텔이 78.3%, AMD가 21.7%로 8:2에 가까운 비율이었으나, 2021년 4분기에는 각각 74.4%, 25.6%로 점유율 격차가 좁아졌다. 해당 통계는 일반 컴퓨터뿐만 아니라 차량, 가전 등에 해당하는 사물인터넷(Internet of Things) 센서와 시스템온칩(SoC)을 모두 포함한 비율이다. 하지만 서버 시장 점유율과 데스크톱 CPU 점유율, 모바일 CPU 점유율을 각각 비교하면 여전히 격차는 큰 상황이다.
2020년 4분기 및 2021년 3분기, 4분기 데스크톱 x86 CPU 출하량 비율. 출처=머큐리리서치
2020년 4분기 데스크톱용 x86 CPU 시장 점유율은 인텔 80.7%, AMD 19.3%였고, 2021년 3분기 82.9% 및 17.0%, 4분기에는 83.8%, 16.2%까지 점유율 격차가 커진 상황이다. 인텔은 지난해 10월, 10나노 기반의 12세대 인텔 코어 프로세서(코드명: 엘더레이크)를 출시하며 그간의 부진을 털어냈고, 올해 1월에는 보급형 라인업까지 모두 공개하며 전방위적인 시장 대응에 나선 상황이다. 가격대도 최소 6만 원에서 최대 70만 원으로 안정적인 데다가, 선택권이 넓은 점도 점유율 확보에 긍정적이다.
반면 AMD의 보급형 프로세서는 일부 OEM 브랜드에만 한정적으로 제공됐고, 소비자가 선택할 수 있는 제품은 최소 25만 원에서 83만 원으로 제한적이다. 이미 인텔의 보급형 프로세서 라인업이 본격적으로 시장에 출시된 상황인 만큼, 올해 1분기 데스크톱 x86 프로세서 점유율 격차는 인텔 쪽으로 더 기울 전망이다.
2020년 4분기 및 2021년 3분기, 4분기 모바일 x86 CPU 출하량 비율. 출처=머큐리리서치
노트북 프로세서 시장에서는 경쟁이 더욱 첨예해지고 있다. 2020년 4분기까지만 하더라도 인텔의 점유율이 81%, AMD 점유율이 19%로 차이가 났다. 하지만 2021년 3분기에는 인텔 78%, AMD 22%로 AMD가 점유율을 끌어올렸다가 2021년 4분기에는 다시 인텔이 78.4%, AMD가 21.6%로 소폭 변동됐다. 이 같은 점유율 경쟁은 신제품 출시 주기와 맞물린다. AMD는 작년 1월 젠3 아키텍처 기반의 고성능 프로세서(코드명:세잔)을 공개했고, 이후 저전력 프로세서(코드명: 루시엔)을 출시하며 노트북 시장 공략에 나섰다. 덕분에 3분기까지는 AMD가 점유율을 소폭 확보할 수 있었다.
하지만 3분기 중 출시된 11세대 인텔 코어 프로세서(코드명: 타이거레이크)가 세잔보다 게이밍 성능에서 앞선다는 평가를 받고, 또 11세대 인텔 저전력 프로세서가 ‘인텔 이보(Intel Evo) 플랫폼을 앞세워 프리미엄, 비즈니스 노트북 시장을 꽉 잡았다. 여기에 인텔은 올해 1월, 10nm 기반 공정을 채용한 고성능 프로세서인 12세대 인텔 코어 프로세서(코드명: 엘더레이크-H)를 내놨고, 1분기 중 저전력 프로세서까지 내놓을 예정이다. 노트북 시장에서의 경쟁은 AMD가 지난 1월 공개한 노트북용 AMD 라이젠 6000 시리즈의 시장 평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2020년 4분기 및 2021년 3분기, 4분기 서버 x86 CPU 출하량 비율. 출처=머큐리리서치
서버 시장에서는 점유율 경쟁을 넘어 인텔과 AMD 모두 승리자다. 점유율은 2021년 4분기 기준 인텔이 89.3%, AMD가 10.7%다. 2020년 4월과 비교하면 AMD의 점유율이 7.1%에서 10.7%로 늘어났다. 인텔 입장에서는 점유율이 소폭 감소한 셈이지만 시장 전체의 파이가 커지고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아니다. 시장조사기관 IDC가 집계한 2021년 x86 서버 시장 규모는 906억 달러(한화 108조 5천억 원)였는데, 올해에는 코로나 19로 억눌린 수요와 노후 장비 교체 주기가 맞물려 13.7%의 성장세를 기록할 것으로 전망된다. IDC는 인플레이션 해소와 공급망 안정세만 확보될 경우 2025년까지 시장 규모가 매년 6~9% 성장해 약 1274억 달러(152조 6500억 원)까지 클 것으로 보고 있다.
불안한 반도체 수급, 향후 점유율에 영향
2022년 이후의 x86 시장 경쟁에서 가장 큰 영향을 미칠 요소는 반도체 수급 여부다. 코로나 19 이후 전 세계 반도체 시장은 공급이 수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으며, 이는 만성적인 재고 부족과 가격 상승으로 이어지고 있다.
이 부분에서 인텔과 AMD의 차이가 드러난다. AMD는 반도체를 설계만 하는 팹리스(Fabless) 기업이며, 현재 대만 TSMC에 반도체를 수탁생산(파운드리, Foundry)하고 있다. 하지만 TSMC의 생산 부족과 가격 상승이 AMD의 마이크로 프로세서의 발목을 잡으면서, AMD의 점유율과 시장 전략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생산 역량에 한계가 있다면 AMD 입장에서는 결국 부가가치가 높은 서버 및 고성능 프로세서에 집중할 수밖에 없고, 보급형 및 노트북 프로세서가 소외되면서 점유율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2021년 중반부터 AMD의 x86 데스크톱 시장 점유율이 소폭 하락한 이유도 보급형 시장의 부재와 무관치 않다. AMD가 TSMC는 물론 삼성전자로도 공급망을 확보하려는 이유가 이 때문이다.
작년 7월 열린 인텔 액셀러레이티드 행사에서 팻 겔싱어 최고 경영자가 인텔의 새로운 패키징 공정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출처=인텔
반면 인텔은 반도체를 직접 개발하고 생산하는 통합 장치 제조(Integrated Device Manufacturers, IDM) 기업이다. 판매할 반도체를 직접 제조하기 때문에 시장의 수요에 맞춰 원활하게 공급하는 것은 물론, 제품 라인업에 따라 제조 전략을 수립하는 것도 가능하다. 작년 3월에는 ‘통합 장치 제조 2.0(IDM 2.0)’ 비전을 발표하고, 미국 시장에만 200억 달러(한화 23조 원)를 투자해 반도체 생산 공장을 세우겠다는 계획을 세운 수립했다. 유럽 반도체 제조 시장에도 향후 10년 간 800억 유로(한화 110조 4천억 원)를 투자하는 계획도 병행한다.
아일랜드 레익슬립(Leixlip)에 있는 인텔 Fab 34 공장에서 근로자들이 칩 제조 도구를 이송하고 있다. 해당 공장은 2023년 가동을 시작해 인텔 4 공정에 투입된다. 출처=인텔
지난 1~2년 간 AMD가 괄목할만한 성장세를 이뤄온 건 사실이지만, 고전을 면치 못하던 인텔이 파운드리와 새로운 나노공정을 토대로 새 판을 짜기 시작하면서 시장의 흐름이 인텔쪽으로 기우는 분위기다. AMD가 시장의 요구에 적극 대처하지 못한다면, 장기적으로는 공급망이 완성되는 인텔의 영향력이 커질 수 밖에 없다. 향후 반도체 공급 불안 해소와 전망을 어떻게 해결하는가에 따라 현재 75:25의 점유율 격차가 70:30이 될지, 80:20이 될지 결정 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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