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 2013년 롤 챔피언스 코리아 써머에서 한 관중이 캐릭터 ‘리신’처럼 눈을 가리고 경기를 관람한 것이 화제를 모은 뒤, 하나의 밈(meme)이 된 문장이다.
해당 밈은 ‘오직 소리로만 영화를 판단한다.’, ‘오직 소리로만 게임을 판단한다.’ 등의 다양한 파생 문장으로도 활용되곤 했다. 하지만, 단순한 밈이 아닌 현실에서도 소리로만 내용을 판단하고 진행해야 하는 게임이 있다면 믿을 수 있겠는가?
바람의 리그렛
이런 실험적인 시도는 1997년, 세가 새턴용 게임으로 발매된 와프의 ‘리얼 사운드 - 바람의 리그렛 (リアルサウンド風のリグレット, 이하 바람의 리그렛)’을 통해 크게 알려졌다.
‘바람의 리그렛’은 화면 없이 소리만으로 게임이 진행되는 것이 특징인 게임으로, 이용자는 인 게임에서 들리는 소리와 음성을 따라 스토리를 추적하고 선택지를 골라가며 이야기를 전개하게 된다. 좌우 버튼을 눌러 선택지에 해당하는 내용을 듣고, A버튼을 눌러 해당 분기로 진입하는 식이다. 게임을 플레이해 본 이용자의 후기로는 인터랙티브 오디오 드라마와 유사하다고 한다.
바람의 리그렛 오디오북
한편, 게임은 지난 18일 오디오북의 형태로도 세상에 공개된 바 있다.
2011년 iOS 기기로 출시된 공포 오디오 게임, 썸띵 엘스(Somethin' Else)의 ‘파파 상그레(Papa Sangre)’도 있다. ‘비디오가 없는 비디오 게임’으로도 불리는 이 게임은 사랑하는 사람의 영혼을 구하기 위해 파파 상그레 궁전을 탐험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파파 상그레
파파 상그레 게임플레이 화면
이 게임도 오직 소리만으로 진행이 가능한데, 화면에는 발 모양의 버튼 두 개와 방향 전환을 돕는 핸들 같은 반원이 전부다. 발 버튼을 눌러 앞으로 가고, 반원을 움직여 방향을 바꾸는 형태로 활용하면 된다.
이어서 2013년에는 후속작인 ‘파파 상그레2’가 출시됐는데, 해당 게임은 자이로스코프가 엔진에 적용되면서, 소리가 나는 방향으로 몸을 돌리기만 하면 되도록 시스템이 진화했다.
게임을 플레이한 한 이용자는 “소리로만 하면 재미없을 것 같다고 생각했는데 착각이었다. 오히려 아무것도 안 보이니까 무섭고 바짝 몰입하게 됐다. 공포게임이라는 장르와 잘 결합된 사례 같다.”라고 후기를 남겼다.
플로리스 다크니스
놀랍게도 국내에서도 비슷한 시도를 한 적 있다. 2023년 얼리액세스로 출시된 올드아이스의 ‘플로리스 다크니스’가 그 주인공이다.
‘플로리스 다크니스’는 플로리스 다크니스는 시각장애인과 그렇지 않은 사람들 모두가 같은 플레이 경험을 할 수 있도록 기획된 게임으로, 시각적 요소 없이 소리를 통해서만 게임을 플레이할 수 있다. 인 게임 화면에는 오로지 ‘헤드폰을 쓰고 소리에 집중해 주십시오. 눈을 감거나 가리는 것을 권장합니다’라는 문구만 표시된다.
플로리스 다크니스
게임을 시작하면 이용자는 빛이 들지 않는 미로에서 레이더, 신호 발생기, 검 등의 도구를 활용해 괴물과 함정 등의 위협을 피해 탈출해야 한다. ‘쿵’하고 둔탁한 발소리를 내는 굶주림 괴물의 위치를 파악하고, 타이밍에 맞춰 검으로 공격하는 식이다.
이외에도 줍기 전까지 소리를 내면서 왔던 길을 알려주는 ‘신호 발생기’, 독가스 함정을 밟은 뒤 중독 정도를 알려주는 ‘기침 소리’ 등 게임을 플레이하면서 마주하게 되는 모든 상황을 ‘소리’로 파악하게 된다.
올드아이스의 관계자는 “시각장애인이 아닌 사람들을 위해 GUI 등 시각적 요소가 있으면, 그 순간부터 플레이 경험이 달라지기 때문에 만들지 않았다.”라며, “시각장애인 모두가 앞을 전혀 볼 수 없는 것은 아니지만, 전맹이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은 정말 드물기 때문에 그들도 플레이할 수 있는 게임을 만들었다. 이 게임에선 앞을 잘 볼 수 없는 것이 불리한 것이 아니기에 다른 게임과 달리 편하고 재밌게 즐길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라고 설명했다.
‘플로리스 다크니스’는 ‘2023 대한민국 게임대상’에서 굿게임상을 수상한 바 있다.
게임업계의 한 관계자는 “이런 오디오 전용 게임은 시각장애인뿐만 아니라 라식/라섹 등으로 화면을 바라보기 어려운 이용자, 몰래 게임을 즐기는 이용자 등 다양한 상황에서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어 보인다.”, “음향 기술이 발달하면서, 소리의 ‘깊이감’이 생기고 있는 요즘인 만큼, 이런 오디오 전용 게임도 나날이 발전할 것이라고 본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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