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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든링 파쿠리 TS 웹소 3화까지 썼는데 읽어볼 사람?

ㅇㅇ갤로그로 이동합니다. 2024.11.07 12:34:05
조회 76 추천 0 댓글 3

다크판타지의 미소녀 네크로맨서


다음 생에는 재능충 미소녀로 태어나길 빌었다.


그런데 세계관이 좀 이상하다.



0.


  죽기 전에는 어머니를 떠올린다고들 한다.


  그런데, 어머니 없이 자란 나는 어쩌나.


  자동차에 치여 의식을 잃어가면서도,


  '다음 생에는 재능충 미소녀로 태어나고 싶다'-


  따위의 생각이나 하는 나는.


1.


  "아이샤! 아이샤!"


  "네, 가요!"


  지금의 내 이름은 아이샤.


  이 몸으로 전생을 자각한지는 2년이 되었다.


  아직 열 살인데도 인형처럼 아름다운 소녀, 아이샤.


  은빛으로 새하얀 머리카락 아래 투명한 벽안이 반짝인다.


  외모가 이렇게 아름다운 건 좋긴 한데.......


  문제는 처해 있는 환경이 그리 우호적이지 않다.


  우선 이 몸이 태어난 곳은 명목상 고아원이지만, 실제로는 집창촌.


  초경이 시작되면 손님을 받아야 할 거라고 한다.


  원래 이 몸의 주인이었다면 초경이니, 손님이니 하는 말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을 거다.


  시키는대로 살다가 이름없이 죽거나 했겠지.


  "시킨 일은 다 해뒀냐?"


  "다 했어요. 검사해보셔두 돼요."


  시킨 일이란 별 건 아니고 청소와 빨래.


  지금 당장은 그렇게까진 괴로울 게 없다.


  최고의 상품이 될 잠재력이 있다보니, 편애받는 중이라 해야 하나.


  얌전하게 시키는 말만 잘 들으면 그럭저럭 편의를 봐주는 중이다.


  아마 무리하게 '그쪽 일'을 시키지 않는 것도... 죽어버리거나 하면 손해라서겠지.


  정리해둔 걸 검사받은 다음 방으로 돌아간다. 다섯 명이 함께 사는 작은 방이다.


  습기와 곰팡내가 한가득 안긴, 벌레나 쥐가 나오는 방.


  그마저도 특별 대우인 셈이라, 나보다 취급이 나쁜 애들은 이만한 방에 열두 명씩 구겨 넣는다고.


  문을 닫은 다음 주변을 살펴본다. 지금 나보다 먼저 와 있는 친구는 없다. 나는 한숨을 휴, 내쉬면서 연습을 시작한다.


  "영혼이여."


  인상을 쓰며 호흡을 조절한다. 손바닥 위로 창백한 불꽃이 일렁인다.


  '영기'를 다루는 연습.


  '강철왕 카림'이나 '바르제라드' 같은 고유명사 덕에 알게 되었다.


  여기가 다크 판타지 RPG인 '모어닝 렘넌트'의 세계란 걸.


  그리고 지금의 나, 아이샤는 정신 나간 수준의 재능충이다.


  열 살의 나이에 영기를 능숙히 다루고, 사용한 영기를 자연스럽게 회복할 수 있다.


  이런 집창촌이 아니라 기사단 같은 곳에서 자랐으면... 본편에서도 네임드로 등장하지 않을까.


  일단 나는 게임을 플레이하며 아이샤라는 이름의 인물을 만난 적 없다. 몇 회차씩 플레이해본 게임이니 놓친 것도 아니다.


  이정도의 재능으로도 조건이 안 맞다면, 그냥 이름없이 죽을 뿐이라는 것의 방증이겠지.


  여기는 그런 세계다.


  죽음이 너무 만연해서 당연한 것이 되어버린 세계.


  고아들을 모아 운영하는 집창촌 정도면, 그나마 상식적인 편인 동네에서 태어난 거다.


  괴수로 전락해버린 여섯 왕의 제물이라거나... 역병왕의 영토에 태어나 살지도 죽지도 못한다거나.......


  그런 케이스에 비하면 스타팅 포인트가 괜찮다.


  내가 잘 하기만 하면 돼.


  2차 성징이 본격적으로 오기 전까지 영술을 최대한 숙달한다.


  몇 번의 실험 끝에 알게 된 건, 지금의 나는 사령 계통에 가장 강하다는 것.


  이 세계에서 영술이란 하나의 학문이다. 내적 논리를 만들고 복잡한 연산을 거쳐야 시전할 수 있다.


  하지만 지금 내 몸은 아니다.


  아이샤의 사령은 직관을 통해 모든 계산 과정을 초월한다. 답이 이미 나와 있고, 논리는 그 후에 붙는 형식.


  컨트롤하던 영기를 뼛더미에 불어넣는다. 언젠가 붙잡아 실험용으로 써먹은 쥐의 유해.


  유해는 곧바로 형체를 갖추더니 자그마한 해골 병사가 된다. 이런 방식이라면 인간을 사역하는 것도 어렵지 않다.


  지금도 이미 어디 가서 맞고 다닐 수준은 아니지만... 당분간은 조용히 지낼 생각이다.


  내가 태어난 왕국은 바르제라드. 원작 게임의 첫 지역이며 그런 만큼 문명이 꼴은 갖추고 있다.


  지배자인 '강철왕 카림'이 완전히 괴수화하며 본편이 시작되는데, 아직 왕은 그정도로 전락하지 않았다.


  수도 바르제라드에서 오는 손님들이 있으니까... 지금 이 나라는 그럭저럭 안전하단 거다.


  즉, 숨어 지내며 힘을 키우기엔 적기겠지.


  "아이샤!"


  등 뒤에서 날 부르는 소리에 깜짝 놀란다. 나는 바로 해골 병사를 소환 해제하고 영기의 흔적을 지운다.


  "닐루파르?"


  뒤돌아보면 목소리의 주인이 보인다. 내 예상대로 닐루파르.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하얀 아이샤와는 달리, 피부 색이 약간 황색인 소녀. 머리카락은 검고 눈동자는 녹빛이다.


  "역시 제일 먼저 와 있었네."


  "응... 그런 셈이구나."


  "진짜. 다들 아이샤만 편애한다니까?"


  "아하하......."


  나보다 두 살 많은 - 명목상 그렇게 되어 있지만 진짜 나이는 아무도 모르는 - 닐루파르.


  조숙한 편이라 곧 손님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 던가.


  ...웬만하면 구해주고 싶은데, 지금 내 코도 석자라서.


  이 세계가 짐덩어리 소녀를 책임질 만한 세계는 아니다.


  그런 애매한 정으로 행동하다간, 순식간에 죽어버릴 걸.


  세이브 로드가 되는 주인공 방랑자 정도나 선하게 살 수 있다.


  이곳 주민들 입장에선 그야말로 위대한 영웅이겠지. 배신 루트를 타지 않는 한.


  "뭐 하고 있었어?"


  "그냥, 쉬는 중."


  나는 연습을 포기한 채 닐루파르와 잡담을 나눈다. 어린애랑 놀아준다, 는 감각이면 나쁘지 않다.


  닐루파르도 예쁜 편이라... 나름 대접을 받거든. 부족한 자원을 갖고 싸워야 하는 처진 아니다.


  한참을 떠들다 보면 다섯 명이 모두 모인다. 우리는 해가 지자마자 바로 잠든다.


  해가 진 뒤로도 떠들었다간, 끌려나가 매질을 당할지도 모르니까.


  *


  일 년이 지난다.


  닐루파르는 손님을 받기 시작했고, 체념한 듯한 눈빛으로 자기 처지를 받아들인다.


  그애를 위해서 해줄 수 있는 일은 없다. 나는 괜한 오지랖을 부리는 대신 힘을 키운다.


  중급 수준의 사령술인 '혈사포'를 구상화해낸다. 당장 필요한 '영마 소환'과 영기로 허기를 채우는 법도 익힌다.


  허기, 갈증을 영기로 해소하는 건 원작에선 최후의 수단이지만... 영기의 자연 회복이 되는 나에겐 아니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미친 재능인데, 이런 애가 어떻게 네임드조차 되지 못한 거지.


  지금 나정도면 쪼렙 지역인 바르제라드에선 백작급은 돼야 적수 아닐까-


  하며 안심할 때쯤 그런 소문이 돌기 시작한다.


  내가 '선량공 지브릴'의 양녀로 팔려갈 거란 소문.


  팔려가기 전에 소문부터 들어서 다행이다. 그제야 나는 아이샤가 어떻게 '소모'되었는지 알게 된다.


  선량공의 저택 지하에서 등장하는 실험체 보스, '백색 지네'.


  흰 머리카락을 늘어뜨린 채 사령술을 쓰던 괴수. 뒤틀린 사지가 수십 개씩 박혀 있는 살덩어리.


  그 괴수에게는 소녀의 형상이 전혀 없어서, 선량공의 이야기를 듣기 전까진 짐작도 하지 못했다.


  이정도로 아름답고 재능 있는 소녀가- 그런 허접스런 기형체가 되어 주인공에게 죽는 거구나.


  소문이 확신이 되는 순간 나는 바로 탈출 계획을 세운다. 아직 수련이 부족하지만 당장 살고는 봐야 하니.


  그날 새벽 곧바로 탈출하려 깨어나 있는데, 닐루파르가 나를 불러 세운다. 짐작지도 못한 목소리라 깜짝 놀란다.


  "아이샤."


  "어, 어?"


  "떠나려는 거지?"


  "응."


  "함께 갈 순 없는 거야?"


  "미안."


  "...알고 있었어. 너는 뭔가 특별하다는 걸. 이런 소굴에서조차 반짝반짝 빛이 났으니까."


  "미안해, 닐루파르."


  "미안해 할 필요 없어. 그냥 난, 너처럼 빛나진 못하는 애라. 똑똑하지도 예쁘지도... 강하지도 않은."


  "나도 별로 강한 사람은 아니야."


  "헤헤. 괜한 위로 할 필요 없어. 네가 나한테 많은 걸 알려줘서... 난 즐거웠어. 여섯 왕과 공작들에 대한 이야기... 위대한 영웅들의 서사시... 넌 그런 걸 어떻게 알고 있었던 거야? 어디 귀족 가문의 아가씨였어?"


  "..."


  "답하기 곤란하면 그만 가 봐. 소중한 내 친구, 아이샤."


  입술을 짓씹으며 발걸음을 옮긴다. 가슴이 무겁다.


  사람과 사람은 언제 친구가 되는 걸까.


  이런 집창촌에서 만난 소녀들끼리도, 친구가 될 수 있는 걸까.


  그러나 지금의 나... 아이샤로서의 나는 몹시 냉정하다.


  인간적인 감정과 별개로 할 일은 해야만 한다는 판단.


  지체없이 남자 어른들이 있는 숙소 쪽으로 향한다. 도망치는 아이가 있나 감시하는 보초가 나를 발견한다.


  물론, 지금의 내 상대가 되진 못한다. 그가 소리지르기도 전에 영기 단검을 소환해 목에 발사한다. 유예도 절망도 없는 깔끔한 죽음.


  그의 시체로 해골 병사를 하나 일으킨다. 첫 살인인데도 감정이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살인죄는 사형, 무기 또는 5년 이상의 징역이던가? 그런 것치곤 뭔가 허무하네.


  이 몸- 아이샤의 심리는 항상 이랬다. 이용할 수 있다면 이용하고, 죽여야 한다면 죽인다.


  곧 도착하는 어른용 숙소. 그래봤자 나무판자를 대충 엮어 지은 부실한 집이다.


  목표로 삼는 건 소대 수준의 해골 병사를 만들기. 어른들에게 별 유감은 없으나 - 어차피 이것들, 죽어도 좋은 쓰레기잖아?


  쓰레기 같은 세상에 태어나서, 십대 초반 여자애들에게까지 매춘을 시키는.


  여기가 무너지면 닐루파르는 어떻게 될까, 걱정되긴 하지만.


  모르겠다. 이왕 정을 주지 않기로 했으니 끊어내야만 한다.


  해골 병사를 시켜 하나하나 남자들을 살해한다. 비명이 퍼져나가면서 난리통이 된다.


  물론, 잡졸들은 아무리 날뛰어도 내 털끝 하나 건드릴 수 없다.


  암흑 시야로 사물을 분별하며 나간다. 한 명의 남자를 제외하곤 모조리 죽이는 데 성공한다.


  남은 하나는, 이 집창촌의 대장. 자히르.


  육대 계통의 영술을 쓰진 못하지만, 영기로 신체를 강화할 줄은 아는 녀석이다.


  그래봐야 뭐, 이 대륙의 진짜 괴물들에 비하면 피래미지만.


  나는 피식 웃으며 자히르를 상대하기 위해 나아간다.


2.


  내 얼굴을 확인한 자히르가 깜짝 놀란다. 설마 기습해온 적이 나일 줄은 몰랐겠지.


  기사단에서 집창촌을 '정리'하러 나온 거라 생각했을 텐데. 선량공 지브릴이 아이샤의 구매비용을 지불하는 대신.


  뭐, 이러나 저러나 정리당하는 건 마찬가지 아닐지. 지브릴은 호칭만 선량공일 뿐 개새끼라서.


  나는 자기정당화를 시작한다. 그러니 닐루파르가 죽는 것도 내 탓은 아니다.


  자히르가 허탈하다는 웃음과 함께 묻는다.


  "아이샤... 이게 무슨?"


  "미안하네요, 대장님. 대장님은 쓰레기지만 나한텐 나름 잘 대해줬는데."


  "믿을 수 없군. 정말로, 정말로 네가 벌인 짓이냐?"


  "네. 대장님의 물건이 필요해서요."


  "하하, 꿈은 아닌 모양이야. 이 쥐새끼 같으니, 그래서 원하는 게 뭐냐?"


  "영혼 지도요. 대장님 수준의 잡졸이 갖고 있기엔 아까운 물건이라."


  "...미친 자식. 네 팔다리를 잘라 들개 먹이로 줘야겠다. 키워준 은혜를 이렇게 갚다니."


  "은혜라뇨? 어차피 선량공 같은 개새끼한테 날 팔아치웠을 거면서."


  "뭐? 그걸 어떻게......."


  "전 사령술사거든요. 파리 시체를 되살리면 웬만한 얘긴 다 귀에 들어오죠. 영기를 안 들키게 하느라 상당히 애먹긴 했어요."


  "..."


  현실을 부정하는 듯하던 자히르가 도끼를 제대로 잡는다. 그래봐야 가소로울 뿐인데.


  물론 영기를 다룰 수 있는 만큼 해골 병사들 따위야 쉽게 상대한다. 하지만 나는 박살난 해골을 재생시킬 수 있는 수준에 도달했다고.


  자히르가 나름대로 무위를 뽐내며 복도가 무너져내린다. 뼈가 박살나고 사방으로 비산한다.


  그러나 그것도 한계는 있다. 영기가 금방 소진되는 자히르와 달리 나는 자연 회복이 가능하다.


  해골 세 마리로 혈사포를 쏘면 한방컷도 가능하지만, 그에게는 물어야 할 게 있거든.


  자히르는 무한히 재생하는 해골들의 포위망을 뚫지 못한다. 서서히 지쳐가기 시작하는 그의 몸엔 상처가 늘어난다.


  피가 흐른다. 자히르가 마구잡이로 휘두르는 팔다리를 따라 혈액이 비산한다.


  뼈와 나무와 피의 바람.


  그 바람은 오래지 않아 끝난다. 완전히 전투력을 상실한 자히르가 바닥에 널부러진다. 나는 도도하게 그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영혼 지도, 어디 있어요?"


  "내가 너한테 그걸 알......."


  해골 병사 하나가 뼈칼을 그의 팔에 박아넣는다. 콰드득, 하고 칼날이 비틀리는 소리가 난다.


  "살려줄 수도 있는데. 빨리 말해봐요."


  "크, 미친 년, 도대체 이게... 크하악!"


  "진짜 말 안해줄 거예요? 죽여버린다?"


  "금고, 금고에 있다. 집무실 서랍 뒤에 숨겨져 있어. 열쇠는......."


  "필요 없어요."


  콰직, 하고 해골 병사의 칼이 목을 관통한다. 자히르는 단말마도 지르지 못한 채 죽는다.


  역시 잡몹은 잡몹인가- 하긴 스타팅 포인트의 보스가 너무 세면 안 되지.


  이 친구의 실력은 딱 평범한 기사 정도다. 잡몹이 기사 급인 것만으로도 대단하긴 해.


  나는 자히르의 시체를 되살린 다음 집무실을 뒤진다. 거짓말은 아닌지 서랍 뒤에서 엉성한 금고가 나온다.


  귀찮으니 영기로 비틀어 연다. 그리 야무진 물건이 아니라 쉽게 열린다.


  안에 든 건 역시나 영혼 지도. 자히르가 가지고 있다는 소문을 들었다.


  주인공 방랑자가 사용하는 지도기도 한, 꽤 편리하며 귀한 물건이다.


  효과는 간단하다. 영기를 불어넣으면 소유자의 위치와 방향을 표시해준다.


  자히르가 가진 건 바르제라드 남부만 나오지만, 애초부터 그거면 충분하다.


  당분간 선량공이 날 추적할 거거든. 자기 실험체가 도망친 셈이니까.


  선량공의 추적을 피해 달아나는 정도면 지도의 쓸모는 끝이다.


  나는 자히르의 시체를 중심으로 해골 병사를 모두 희생시킨다. 불러내는 건 상급 언데드인 영마.


  지금의 내 수준으론 꽤나 무리인 소환이라... 의식이 성공한 뒤에도 온몸이 바르르 떨린다.


  도박수긴 하지만 어쩔 수 없다고. 선량공의 추적을 뿌리칠 방법은 이거 하나야.


  도보로 이동했다간 흔적이 남는다. 지상 위를 가볍게 떠서 달리는 영마라면 그럴 걱정은 없다.


  후, 하고 숨을 몰아쉰 나는 지도에 영기를 불어넣는다. 집창촌의 위치는 거의 중부 사막에 가깝다.


  빌어먹을. 나는 지금 남쪽으로 내려가야 하는데.


  인게임에서의 축척과는 스케일이 아예 다를 거다. 최소 백 배 정도는 더 멀다고 봐야 한다.


  '모어닝 렘넌트'는 게임의 한계로 인해 오픈월드 규모가 상당히 축소되어 표현되니까.


  설정상의 규모라면... 영마를 타고도 남쪽으로 닷새는 내려가야 해안에 닿을 것이다.


  판단을 마친 나는 재빨리 영마에 탑승한다. 그리고 집무실 벽을 영마의 발길질로 박살낸다.


  "미안해 닐루파르. 너를 버리고 떠나서."


  넋두리처럼 마지막 말을 남기자 영마는 달리기 시작한다. 달린다기보단 그림자처럼 미끄러진다- 는 표현이 더 어울리려나.


  물론 제때제때 영기의 흔적은 지운다. 그런 초보적인 실수를 허용할 순 없다.


  *


  이틀에 걸쳐 왕국을 남하한다. 사람의 발이 닿을 만한 지역은 피한다.


  처음 예상보다도 해안가는 더 멀리 있다. 이정도 축척이라면 일주일은 달려야 하지 않을까.


  선량공의 추적이 어떻게 펼쳐질진 모르겠다. 하지만 당장은 집창촌이 박살난 것조차 모를테니, 영마의 속도를 따라잡진 못할 거다.


  이 세계관엔 마법적인 통신 수단이 있지만... 남부에서 기사급이 움직이진 않겠지.


  남부 연합은 기본적으로 선량공과 미묘한 관계다. 추적대를 파견하긴 해도 기사를 희생하진 않을 거다.


  기사급이 포함되지 않은 추적대라면, 언데드 소환을 위한 제물일 뿐.


  ...아니다.


  안일한 마음으로 사태를 생각하면 안 된다.


  자히르가 당한 걸 알게 된다면, 당연히 기사급이 포함된 추적대를 보낼 거다.


  열한 살에 기사급을 압도한 천재. 그런 이레귤러가 나왔으면 남부 연합도 긴장하겠지.


  당연히 모든 수단을 다 써서 슈퍼 루키를 제거하려 할 거다. 이 세계는 죽거나 아니면 죽이거나거든.


  제기랄.


  지금 수준으로 기사단이랑 맞붙으면 백 전 백 패인데.


  일 대 일이야 상급 기사도 쉽게 이길 수 있다. 영주급의 강자가 아니라면 내 상대는 못될 거다.


  상성과 전장을 포함해도 그건 변하지 않는다. 하지만 기사단과 맞붙는 건 자살행위다.


  인게임에서도 가장 무서운 적은 보스나 네임드가 아니다. 주인공이 지나치게 눈에 띄면 붙는 기사단의 추적.


  초반엔 무조건 도망쳐야 하는 이벤트나 다름 없다. 후반에 양학용 기술을 배우고 나서나 겨우 상대가 될까.


  지금의 나는? 고위 언데드 소환이나 광살포를 배운 것도 아니니 무리다. 그 경지까지는 아직도 한참이나 남았다.


  최대한 안 들킨다는 마인드로 움직여야 한다. 영기를 지우고, 흔적이 덜 남는 산길을 따라 남하한다.


*


  해변가에 거의 도달했을 때 남부 연합의 기사들과 조우한다. 주변은 허허벌판인 평야고, 눈에 뜨일 수밖에 없는 지형이다.


  다행히 기사단 규모는 아니다. 복식으로 봐서 상급기사 하나, 평기사 둘. 그리고 여섯 명의 병졸들.


  멍청하게도 병졸이 끼인 무리라 다행이다. 희생시킬 병졸이 없다면 질 확률이 높지 않았을까.


  물론 무시하고 지나가는 방법도 있지만, 그랬다간 대대적인 추적이 붙을 거다.


  그들이 본부로 전구를 보내기 전에 선공한다. 영기 단검을 소환해 잡졸들에게 박아넣고, 곧바로.


  사령술로 해골을 되살린다. 기사들은 해골을 무시한 채 내쪽으로 육박해 들어온다.


  상급기사 레벨이 되면 보통 제대로 된 영술을 다룰줄 안다. 바르제라드에서의 계통은 투영.


  허공에 소환된 칼날이 내게로 쏘아진다. 제대로 된 보호술을 배우기 전이라 매우 위협적이다.


  "윽!"


  칼날 하나가 어깨를 스친다. 이를 악문 채 아픔을 참는다. 나는 영마를 움직여 투영된 칼날을 피하는 것에 전력을 다한다.


  그나마 평야인 덕에 어찌어찌 회피는 가능하다. 나는 투영을 방해하기 위해 영기 단검으로 응사한다.


  일 대 일이라면 원거리전으로도 해결이 됐겠지만... 포위망을 좁혀 들어오는 평기사 둘이 문제다. 그쪽으로 견제가 새야 하다보니 움직임이 불안정하다.


  일발역전이 없으면 당한다. 혈사포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해골의 코스트는 셋. 병졸로 만든 해골은 여섯.


  두 발 안에 해결해야 해.


  냉정하게 때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기회를 잡았다고 생각하는 상급기사가 돌진해올 때-


  혈사포.


  영기를 끌어올려 회피하지만, 바로 세 마리를 더 희생시켜 쏘아낸다.


  핏빛 광선에 직격당한 상급기사가 뒤로 픽 고꾸라진다. 맞추긴 어려워도 위력 하나는 확실한 기술이거든.


  그치만 영혼이 타들어가는 것처럼 고통스럽다. 지금 연발로 사용하는 건 진짜 무리인가.


  입가를 타고 피가 흐른다. 나는 입술을 짓씹으며 고통을 참는다.


  지금 기절이라도 했다간... 이 세계에선 곱게는 못 죽는다 봐야 해.


  죽은 상급 기사에게 최소한의 영기를 흘려보낸다. 남은 두 기사는 원거리 능력이 없으니, 지구전으로 이끌어 가면 내 승리다.


  영마를 타고 도망다니면서 단검을 쏘아낸다. 상급 기사로 만든 해골은 평기사를 상대로도 버틸 정도가 된다.


  한참 후, 난타전에 가까운 전투가 끝나고 기사 둘이 쓰러진다. 그들의 사체는 영마와 해골의 손상을 회복하는 데 소모한다.


  상급 기사제 해골은 영마 뒤에 태운다. 다시 남쪽으로 달려가며 가쁜 숨을 몰아쉰다.


  "하아... 하아......."


  어떻게 이겼는지도 모르겠다. 내가 이정도로 잘 싸울 수 있다는 게 믿기지 않는다. 현실감이라곤 하나도 없는 싸움.


  ...한 가지 확실한 건, 아이샤의 재능이 비상식적인 수준이란 건가.


  목숨을 건 사투 속에서 순식간에 영기가 성장하지 않았다면... 혈사포를 연발로 쏘거나, 그 뒤에 상급 기사로 해골을 만들진 못했을 거다.


  나는 추가적인 추적대와 마주하기 전에 해안가의 절벽에 도달한다. 막다른 길목처럼 보이지만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3.


  바르제라드 남부는 깎아지르는 절벽이다. 하지만 사령 계통을 탄다면 초반에 꼭 들러야 하는 지역이 있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섬. 흑색공 차크의 무덤.


  일종의 히든 에어리어인 셈인데- 사령 계통 말고도 바르제라드 근처에는 비슷한 지역들이 있다.


  초반부의 단서를 충실히 모으면, 결국 계통에 따라 도달하게 되는 지역.


  거기서는 초반부를 날먹할 스펙의 아이템이 나온다. 특히 꽁꽁 숨겨진 흑색공의 무덤은 더더욱 좋은 걸 주고.


  원래라면 이런저런 서브던전을 돌아 단서를 수집해야 하지만.


  나는 섬으로 향하는 조건을 안다. 영마를 탄 채 특정 위치의 절벽에서 뛰어내리기.


  게임과 현실이 똑같을진 잘 모르겠다. 하지만 기사단의 추적을 허용해도 죽는 건 마찬가지다.


  숨을 꾹 참은 채, 영마를 몰아 뛰어내린다. 자유낙하하는 속도에 머릿속이 새하얘지다가-


  어느 순간 둥실, 하고 떠오른다. 흑색공이 무덤으로 가는 길을 만들어둔 영술.


  영마를 타고만 건널 수 있는 떠오름의 다리다. 게임에서도 이미 몇 번씩이나 건너본 투명 다리.


  휴, 안도의 한숨을 쓸어내린다. 여기서 비명횡사하는 것만큼은 피했군.


  게임 주인공들은 절벽에서 떨어져 쉽게도 죽는데, 현실에서 그러면 얼마나 뻘짓인지 모른다.


  나는 영마를 몰아 나가려다 살짝 주저한다. 지금 실력으로 과연 뚫어낼 수 있을까?


  앞에 있는 지역은 바르제라드 남부에 비하면 꽤나 살벌하다. 흑색공의 영기를 나누어 취한 야수들이 어슬렁거리는 동네니까. 심지어 반쯤 사령화까지 된 상태로.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도 기사단에 꼴아박는 거에 비하면 양심적인 난이도다. 어차피 여기서 주저하다간 추적대에 발각될 거고. 가야한다. 가야해.......


  "읍, 하아, 윽."


  입에서는 신음에 가까운 한숨이 나온다. 일주일을 꼬박 달린 데다 격전을 치른 뒤라서.


  지치지 않았다면, 역시 거짓말.


  "으, 그래도, 가야, 해."


  다짐하듯 오기를 내어 말한다. 속으로도 몇 번이나 읊조린다.


  여기는 안전한 대한민국이 아니야. 망설임은 곧 죽음일 뿐.


  나도 누군가의 자식이었을 사람들을 마흔씩이나 죽였다. 더 강해지지 않는다면 내가 그렇게 죽을 것이다.


  그저 한 순간 소모되기 위해 존재하는 엑스트라처럼. 삶도, 추억도, 가족도 아무 것도 아니라는 듯이. 무정물이나 다름없는 텅 빈 눈동자로.


  그렇게 되긴 싫다.


  강해져서, 살아남을 것이다.


  이미 망가졌고 점점 더 지옥이 되어가는 세계일지라도.


  나는 영마를 움직여 앞으로 나아간다. 물길 위를 가르며 그림자처럼 몸이 미끄러진다.


  흑색공의 무덤까진 의외로 꽤 시간이 걸린다. 발각되는 건 아닐까 두려움에 떨며 말을 몬다.


  게임과 축척이 다른 거, 여러모로 불편하다. 대신 추적조가 기사단 규모로 움직이진 못하는 모양이지만.


  얼마나 영마를 몰았을까. 까마득한 절벽이 원경으로 보일 정도가 되어서야 섬에 도착한다.


  이정도면 기사들에게 발각당할 범위는 벗어났겠지. 당장 죽을 위기는 넘긴 셈인가.


  "흐으......."


  저도 모르게 안도에 찬 소리가 나온다. 지칠대로 지친 상태라 잠시 쉬어가려는데,


  섬의 초입부터 예상 외로 곤란한 적을 마주한다.


  인간 찌꺼기.


  사람과 야수의 형체가 뒤섞인, 비쩍 마른 새까만 괴수 녀석들. 타르가 흘러내리는 듯한 비주얼이 기괴하다.


  그래픽과는 완전히 느낌이 다르다. 오물이 흘러내리며 번들거리는 모습은 매우 혐오스럽다.


  인게임에선 조금 강한 잡몹인 종류. 하지만 현실에선 꽤 귀찮은 능력을 지니고 있다.


  [------------!!]


  "컥, 크흡......."


  음파공격.


  영기를 끌어올리면 열한 살의 몸으로도 맞을 만하지만, 도저히 회피할 수 있는 공격이 아니다.


  게임에서야 적당히 시각적 이펙트로 처리될 뿐. 인간이 음파를 눈으로 보고 피할 수 있을 리가.


  일단 영마를 몰아 최대한 엄폐할 수 있는 지형으로 간다. 나는 바위 뒤에 숨은 채 상급기사제 해골을 보내 견제한다.


  오래 숨어 있을 순 없다. 짜증나게 유사 지성 정도는 있는 괴수라, 해골을 보내봤자 본체인 내쪽을 공격해 들어올 거다.


  바위를 돌아오는 녀석들의 영기를 추적하며, 영혼 단검을 던져 견제한다. 실수로 한 마리의 기척이라도 놓치면 그땐-


  [------!!!!]


  "크, 윽......."


  거의 즉발이나 다름없는 음파공격. 고통에 이를 악물며 생각한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서라도 빨리 영혼 방패를 안정화해야겠다고.


  흑색공의 유산을 빼내는 데 성공하면, 아마 충분히 시전할 수 있지 않을까.


  음파 공격이 귀찮을 뿐 본체는 어쨌든 잡몹이다. 뒤틀리는 속을 가라앉히며 단검으로 계속 응사한다. 머리를 맞추면 일격에 죽는 정도.


  도합 여덟 마리의 인간 찌꺼기를 쓰러뜨린다. 해골이 쓰러뜨린 게 셋, 내가 쏘아 죽인 게 다섯.


  그것들을 희생해서 부상을 치료한다. 정확히 말하면 생기를 빨아먹는 개념에 가깝다.


  소환물을 더 늘리고 싶지만, 그랬다간 열한 살 소녀의 몸이 못 견딜 것 같다. 영기를 다룰줄 알긴 해도 어쨌든 팔다리는 젓가락처럼 가느다랗다.


  이런 몸으로 잘도 여기까지 싸워냈네, 싶다. 그만큼 선량공에게 끌려가긴 싫었던 탓일지.


  가벼운 정비를 마친 다음 다시 영마에 오른다. 뛰진 않고 호위하는 해골과 함께 서서히 전진.


  그제서야 섬의 풍경을 둘러볼 여유가 난다. 역시 그래픽으로 보는 것과는 완전히 다른 느낌인가.


  살아 있는 거라곤 풀 한포기조차 보이지 않는 바위섬. 흑색공의 영기에 물들어 하늘은 불길한 검붉은 빛으로 빛난다.


  지형이 복잡해서 괴물들의 눈에 띌 가능성은 낮지만, 어디서 뭐가 튀어나올지 알긴 어렵다.


  조심하며 계속 전진.


  보스룸... 그러니까 흑색공의 무덤으로 향하는 길에는 그리 강한 야수와 마주치지 않는다. 시체 까마귀처럼 무시무시한 녀석이 나왔다면 사활을 걸어야 했을 텐데.


  튀어나오는 적은 인간 찌꺼기 수준의 잡몹들. 나는 그것들을 희생하며 해골의 수를 불린다. 사령술사 입장에선 잡몹이 많이 나오면 오히려 편하다.


  섬의 끝부분에 도달했을 때 컨트롤중인 해골은 도합 스물 정도. 지금 수준에서 감당하기에는 이 규모가 한계다. 영마 하나, 상급 기사제 해골 하나, 잡병 스물.


  보스를 상대할 수 있을까? 무덤 지역 보스는 뼈의 벌레 우쿨. 사기의 브레스를 뿜어대는 거대한 해골 지네인 그것은, 히든 에어리어 보스답게 바르제라드 남부의 어지간한 영주보다 강하다.


  게임과는 파워밸런스가 다를 것도 염두에 둬야 한다. 게임에서야 강철왕 카림은 중반부 보스지만, 거의 반신이나 다름없는 왕이 그렇게 약할 리가 없다.


  즉 바르제라드라는 이유로 적을 과소평가했다간 큰 코 다칠 수도 있단 거지. 최소한 왕이나 공작급, 아니면 그에 버금가는 괴물들은 게임보다 더 강할 거다.


  하지만 우쿨은 그정도 급이 아니다. 게임상의 이유로 약화되어야 할 만큼 설정이 거창하지도 않고.


  생각을 정리해본 나는 결국 섬 최심부의 공동으로 들어간다. 인게임에서의 보스룸.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일단 부딪혀보자. 죽치고 앉아 수련이나 하기엔 이 섬은 너무 위험한 장소다.


  검은 벽면이 하늘로 솟은 공동 내부. 군세와 함께 발을 들이자 땅이 진동하기 시작한다.


  팍, 하고 지면이 갈라지며 솟아오르는 것은- 수천 수만 개의 검은 뼈로 이루어진 벌레.


  인간의 뼈가 지네 다리처럼 빼곡히 박힌 그것은 징그럽다. 머리가 있어야할 부분에는 녹아내린 두개골들이 뒤엉켜 있다.


  흑색공의 사체가 세계와 함께 뒤틀려버린 말로. 하지만 그것은 그저 공작의 잔재일 뿐, 흑색공 그 자신의 격에 비한다면 짐승이나 다름없는 존재다.


  녹아내린 두개골이 포효하기 시작한다. 나를 적으로 인식한 건지 텅 빈 안와가 일제히 쏘아본다.


  사실상 이 세계에 와 처음 치르는 보스전인가. 무시무시한 모습임에도 신기하게 마음은 차분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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