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재집권은 안보 재앙일까
그래픽=김성규
“앞으로 1년 반 정도가 우리에게 주어진 ‘골든 타임’이다. 확장억제를 ‘작전계획화’하고 핵운용 체계를 제대로 숙지할 수 있게 실무 협의에 속도를 내야 한다.”
윤석열 정부 초대 국가안보실장을 지낸 김성한 고려대 국제대학원 교수는 지난해 8월 한 콘퍼런스에서 “미 대선 예비주자 중에는 미국 우선주의와 동맹 경시적 사고를 가진 인사들이 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의 발언은 트럼프 전 미 대통령의 재집권 가능성에 대비해 워싱턴 선언으로 합의된 확장억제 강화책 ‘굳히기’를 서둘러야 한다는 경고로 해석됐다.
오는 11월 미 대선을 앞두고 트럼프 전 대통령의 지지율이 바이든 대통령을 앞선다는 보도와 분석이 잇따르면서 트럼프의 재집권이 우리에게 ‘안보 재앙’이 될 수 있다는 우려도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말 트럼프가 재집권에 성공하면 북한이 현재 보유 중인 핵무기를 용인하되 새 핵무기를 생산하지 않는 조건으로 경제제재 완화를 추진할 수 있다는 미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의 보도는 이런 우려에 기름을 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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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재집권은 동맹국에 재앙”
박인국 최종현 학술원 원장은 지난해 12월 미 버지니아주에서 열린 ‘트랜스 퍼시픽 다이얼로그’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재선 가능성과 관련해 “한국인들 마음속에 트럼프 트라우마가 남아 있다”며 “트럼프의 당선 가능성은 미래 한반도 안보 지형의 불가측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 트럼프 전 대통령이 재집권할 경우 실제 한반도 안보에 초래될 도전(위험) 요소는 무엇일까? 송승종 대전대 교수의 분석에 따르면 미국 동맹체제에 대한 회의, 자유무역 반대, 푸틴·김정은·시진핑 등 권위주의에 대한 호감 등으로 대표되는 트럼프의 세계관이 큰 도전 요인이 될 수 있다. 송 교수는 “트럼프의 세계관은 동맹국들에 재앙인 반면 적대국들에 축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폴리티코 보도도 있었지만 북핵 문제를 비롯,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분야에서 많은 도전과 진통이 예상된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지난해 12월 아이오와 대선 유세에서 “내가 김정은을 ‘리틀 로켓맨’(Little Rocket Man)으로 부르며 처음에 사이가 나빴지만… 핵무기와 다른 많은 것을 보유한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이 좋다”며 북한을 핵보유국으로 인정하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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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북 핵보유국 인정?
주한미군 문제와 관련, 트럼프 전 대통령은 재임 시절 여러 차례 철수 필요성을 언급하고 임기 끝까지 이런 생각을 굽히지 않은 것으로 미 언론 보도와 저서에서 나타나고 있다. 마크 에스퍼 전 미 국방장관은 2022년 발간한 회고록 ‘성스러운 맹세’(A Sacred Oath)에서 북한의 ICBM(대륙간탄도미사일) 시험 발사 이후 트럼프가 ‘주한미군 가족 대피령’을 하달하려 했지만 참모의 강력한 만류로 계획을 접었다고 공개했다. 트럼프가 주한미군 철수를 고집하자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국무장관은 “(주한미군 철수는) 두 번째 임기 때 우선 계획으로 두는 게 어떨까요?”라고 건의했고, 이에 트럼프는 미소 지으며 “맞아, 두 번째 임기에 하자”고 답변했다는 일화도 있다.
방위비 분담금은 우리에게 가장 확실하게 ‘재앙’으로 다가올 분야로 꼽힌다. 트럼프 행정부 1기 시절 기존 분담금보다 5배나 올려달라고 요구해 장기간 한미 간 갈등 요소가 됐다. 박원곤 이화여대 교수는 “동맹을 비용편익 측면에서 접근해 한국, 일본, 나토 동맹국에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토록 압박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트럼프 재집권 시 미 항공모함 전단, 전략폭격기 등 전략자산의 한반도 출동 비용이나 연합훈련 비용 부담을 요구할 가능성도 높다. 이는 윤석열 정부의 대표적인 안보 성과인 ‘워싱턴 선언’에도 상당한 부담을 줄 수 있다는 지적이다. 워싱턴 선언 때 합의된 확장억제 강화책에 따라 미 전략자산의 한반도 출동이 크게 늘어나 결과적으로 우리에게 상당한 비용 부담이 초래될 수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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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스타일 활용한 ‘빅딜론’도
하지만 전문가들은 트럼프의 재집권이 우리에게 위기뿐 아니라 기회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지금부터라도 대비 전략을 치밀하게 세워 ‘전화위복’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고 지적한다. 통 큰 트럼프 스타일을 활용해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증액하는 등 미측 요구사항을 전폭 수용하는 대신, 한미 원자력협정 개정과 핵추진 잠수함, 핵무장 잠재력 등에 대한 미국의 양보를 받아내는 이른바 ‘빅딜론’도 제기된다. 특히 윤석열 대통령과 트럼프 전 대통령은 성격상 ‘케미’가 통할 수 있어 빅 딜이 가능할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안보 측면으로만 접근하면 미측의 거부감과 반발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경제산업적인 측면에서 접근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박인국 원장은 지난해 말 특별공급망 콘퍼런스에서 ①원자로 핵연료용 농축 우라늄의 한미 또는 한·미·일 공동 개발·생산·판매 컨소시엄 구성 ②핵추진 잠수함 등 해군 함정 건조 분야 한미 컨소시엄 파트너십 구축 ③저궤도 위성 등 우주안보 분야 한미 협력체제 구축 등 세 가지 제안을 했다.
우리나라는 현재 25기의 원전을 가동하기 위해 전 세계 5위권 규모의 농축 우라늄을 소비하고 있는데 미국은 최근 우라늄 농축을 하지 않고 있고 유럽도 감소하고 있는 반면, 러시아는 전 세계 농축 우라늄 공급의 46%를 차지하고 있다고 한다. 박 원장은 “심각한 글로벌 우라늄 공급망 불균형을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주요 원전 국가인 한국과 미국의 공동 농축 우라늄 컨소시엄을 위한 공조체제 현실화가 시급하다”고 밝혔다.
핵추진 잠수함 등 해군 함정 건조 분야에서도 미국은 우리나라와 ‘윈-윈’(Win-Win) 모델을 만들 수 있다는 평가다. 가열되는 미·중 패권 경쟁 속에서 미국은 이미 중국에 양적으로 뒤처진 해군 함정 건조를 서두르고 있지만, 미 조선 인력 부족과 비용 상승으로 한국과 같은 동맹국의 우수한 조선 능력을 활용할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트럼프는 진짜 북한을 때리려 했을까?
북한이 6차 핵실험을 실시하고 화성-14·15형 ICBM(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했던 2017년은 당시 트럼프 대통령이 실제로 북한 폭격을 지시할 것인가가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며 한반도 위기가 최고조에 달했었다.
2019년 6월 판문점에서 군사 분계선 북쪽으로 넘어가고 있는 트럼프 미 전 대통령과 그를 맞이하는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모습. /AFP 연합뉴스
2017년 9월 북한의 6차 핵실험 직후 미 B-1B 전략폭격기와 전투기, 공중급유기 등 20여 대의 항공기가 심야에 극히 이례적으로 동해 NLL(북방한계선)을 넘어 깊숙이 북상했다. 이 중 일부는 풍계리 핵실험장 130여㎞까지 근접해 무력시위를 벌였지만 북한은 알아채지 못했다. 그해 11월엔 사상 처음으로 미 항모 3척이 동시에 동해로 출동해 우리 해군과 연합훈련을 벌였다.
미국의 저명한 언론인 밥 우드워드는 2020년 그의 신간 ‘격노(RAGE)’에서 2017년 북핵 위기가 실제 전쟁 직전까지 갈 정도로 심각했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당시 제임스 매티스 국방장관은 북한이 한미의 미사일 발사 대응에도 전혀 압박을 느끼지 않자 북한 항구를 실제 폭격하는 방안까지 고려했다고 우드워드는 ‘격노’에서 공개했다.
하지만 당시 트럼프 대통령과 미군 수뇌부는 김정은과 북한의 극단적인 도발을 억제하고 비핵화를 유도하기 위해 실제 북한을 때릴 것처럼 압박 수위를 최대한으로 올린 것이지, 실제 북핵 무력화 등을 위한 대규모 폭격을 하려 한 것은 아니라는 분석도 적지 않다. 당시 위기 상황에 정통한 고위 정보 소식통은 “트럼프는 타고난 사업가로 많은 돈이 들어갈 대규모 공습이나 확전(擴戰) 가능성에 대한 실제 의지는 없었던 것으로 안다”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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