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1월 우크라이나 예비군들이 러시아군의 침공에 대비해 목총을 들고 훈련하고 있다. /로이터=뉴스1
달력을 보면 정말 많은 기념일들이 있는데요, 지난 1일이 무슨 날이었는지 아시는지요? 많은 분들이 만우절로만 아실텐데요, 제55주년 예비군 창설 기념일이기도 했습니다. 1968년 북 특수부대 청와대 기습사건, 미 정보함 푸에블로함 납치사건 등 북한의 고강도 도발이 잇따르자 박정희 대통령 지시로 예비군이 창설된 날이 1968년4월1일이었습니다.
◇ 러시아,우크라이나 모두 미흡한 예비군 동원체제 등으로 고전
지난해 2월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에선 드론, 전차·전투기들을 잡는 휴대용 대전차·대공미사일, 하이브리드전 등이 주목을 받고 있지만 1년 넘게 장기전 양상으로 변하면서 실제로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은 우크라이나군이나 러시아군 모두 예비군이라고 하는데요, 오늘은 우크라이나 전쟁이 우리 예비군, 예비전력에 주는 교훈에 대한 말씀을 드리려 합니다.
지난 2월 우크라이나전쟁 개전 1주년을 맞아 한국국방외교협회는 세미나를 개최하고 ‘우크라이나 전쟁의 시사점과 한국의 국방혁신’이라는 430여쪽 분량의 책자를 발간했습니다. 여기에 장태동 국방대 예비전력 센터장께서 ‘우크라이나 전쟁 관련 예비전력 평가와 우리의 대응’이라는 흥미로운 논문을 게재했는데요, 그 주요 내용을 소개합니다.
2022년 9월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푸틴의 동원령에 반발한 청년 시위대를 경찰이 진압하고 있다. 러시아는 1917년 10월혁명 이후 푸틴의 강압정치 아래서 ‘4번째 겨울’을 겪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 뉴시스
현재까지 투입된 총병력은 우크라이나가 정규군 20여만명, 러시아가 주변 우방국 병력 포함 22만여명이고 예비군은 우크라이나가 100만명 이상, 러시아가 200만명 수준이라고 합니다. 우크라이나전 개전 초기 일각에선 우크라이나 예비군 시스템과 훈련이 잘돼 있어 우크라이나가 선전한 것으로 평가했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았고 양측 모두 미흡한 동원체제와 평시 훈련이 제대로 돼있지 않았던 예비군 관리 및 유지 시스템으로 어려움을 겪었다는군요.
◇ 우크라이나, 100만명 이상 예비군 동원해 국가총력전으로 대응 중
즉 양국 모두 평시 예비전력 육성에 관심이 매우 부족해 예비군 숫자만 유지했을 뿐 적정 규모의 예비전력을 상황에 따라 동원하고 전선에 투입하는 예비전력 운용계획은 제대로 돼있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나라에도 그대로 적용될 수 있는 얘기라 할 수 있겠지요. 우크라이나 예비군이 강력한 전의를 갖고 러시아군에 맞섰지만 장비와 물자의 부족으로 나무총을 갖고 사격술을 배우는 모습은 우리에게 충격을 주며 많은 것을 생각하게 했던 장면이었습니다.
다만 예비전력 운용개념에 있어선 양측에 차이가 있다는데요, 러시아는 전체 2500만명의 예비군 중 일부만 부분 동원해 상비전력 부족분을 채우겠다는, 즉 상비군의 보조 전력으로 예비군을 운용하는 개념이랍니다. 반면 우크라이나는 20여만명의 상비 전력은 대러시아전 초기 대응에 주력하고, 국가 총동원령 선포를 통해 100만명 이상의 예비군을 총동원해 국가 총력전으로 대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북한이 2021년9월9일 정권수립 기념일 73주년을 맞아 자정에 남쪽의 예비군 격인 노농적위군과 경찰 격인 사회안전무력의 열병식을 진행했다고 조선중앙통신이 보도했다. 열병식에서는 농기계인 트랙터도 122㎜ 방사포와 불새 대전차미사일 등을 싣고 행진했다. /연합뉴스
우크라이나는 러시아 공격을 받고 나서야 동원령을 선포하는 등 초기 대응에 실패했고, 전쟁 개시 후 추가 소요되는 자원에 대한 동원 즉응태세가 정립되지 않았다는 것이 문제였다고 장 센터장은 지적했습니다. 예비군 관리와 훈련이 부실했고, 무엇보다 예비군용 장비와 물자, 무기 비축량이 절대 부족해 실제 전쟁이 발발한 후에는 국토 방어를 위한 예비군 역할이 필요했지만 즉각 활용할 수 있는 예비군 무장 및 훈련 수준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 북 예비전력, 남한 비해 규모는 2배, 훈련시간은 10~20배
이런 우크라이나전 상황을 한반도 상황에 적용해보면 너무 걱정돼 식은땀이 흐를 정도입니다. 장 센터장의 논문을 인용해 남북한의 예비전력 역량과 장단점을 몇 개 항목별로 비교해 보겠습니다. 북한은 총 762만명의 예비전력을 갖고 있다는데요, 이는 남한 예비전력 310만명(예비군 275만명+전환복무자 35만명)의 2배 이상 숫자입니다. 예비전력 교육훈련 기간은 비교가 안될 정도인데요, 북한은 연간 30~60일간 훈련을 시키는데 이는 남한(연간 3~4일)의 10~20배에 달하고, 훈련 강도도 정규군 수준으로 우리보다 훨씬 센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평시에 높은 편성률로 전시(戰時)체제를 갖추고 있는 것도 북 예비전력의 강점으로 꼽히는데요, 교도대, 노농적위대, 붉은청년근위대 등을 편성해 훈련을 하고 있고 교도사단의 경우 평시에 30%의 편성률을 유지한다고 합니다. 이는 우리 동원사단의 평시 병력이 8%에 불과한 것에 비해 22%나 높은 수준입니다. 북한군 열병식에는 노동적위대 등 예비전력이 트랙터에 방사포(다연장로켓)를 끌고 나오는 경우도 종종 볼 수 있지요.
예비군들은 아직도 구형 M16 소총으로 훈련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 뉴시스
우리 예비군의 심히 걱정되는 실태를 상징적으로 잘 보여주는 것이 바로 예산과 장비들인데요, 올해 국방비 중 예비전력 사업 예산은 2616억원으로 전체 국방비의 0.45%에 불과한 ‘쥐꼬리 예산’입니다. 국방부와 군 수뇌부가 말로는 예비전력의 중요성을 되뇌이고 있지만 아직도 예비전력 사업 예산이 국방비의 1%에도 못 미치고 있는 것입니다.
◇ 예비전력 예산, 국방비의 0.4%에 불과한 ‘쥐꼬리 예산’
예비군 장비에 대해선 국회 국정감사에서 한 국방위원이 “우리 예비군은 전쟁사 박물관”이라는 표현까지 쓴 적이 있을 정도인데요, 동원(예비군) 부대가 운용하는 전차, 장갑차, 견인화포, 박격포, 통신 등 대부분의 장비가 내구연한을 초과한 상태이기 때문입니다. 이 중에는 제2차 세계대전 때 제작된 155mm 견인포 등 70년 이상 경과된 장비도 일부 있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마침 국방대학교 예비전력연구센터가 예비군 창설 55주년을 맞아 3일 육군회관에서 ‘예비군제도 선진화 방향’ 세미나를 개최했다는데요, 장 센터장 등은 “현역은 초기 전투에서 제한적 역할을 하고 결국은 예비군이 전쟁수행 핵심 역할을 한다는 것이 우크라이나전의 교훈”이라며 “(한국군의) 상비병력 감축은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과정으로 여기에서 오는 전력 공백을 메우는 핵심은 예비군을 정예화하는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 비상기획위 사실상 부활 등 동원체계 개선, 법령 보완 등 서둘러야
인구절벽에 따른 급격한 병력감축, 우크라이나전 교훈 등으로 이제 우리 예비전력(예비군) 제도는 일대 변화와 혁신이 불가피해졌습니다. 동원체계 개선, 관련 법령 보완, 동원 전쟁연습 체계 구축 등 분야별로 세부과제를 도출해 조속히 추진해야 할 것입니다. 현재 행정안전부 1개국으로 축소·약화된 국가 비상대비 전담조직도 과거 국가 비상기획위원회 수준으로 확대 개편하고, 예비군을 국군조직법에 포함시키는 등 법령 개정도 적극 추진할 필요가 있다고 봅니다.
출처: 유용원의 군사세계 [원본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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