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ttps://www.nicovideo.jp/watch/sm37389491
오오츠카 타카시 - 스마일 프리큐어, 원피스 스탬피드 감독 등.
코마츠다 다이젠 - 부부키 부란키 감독, 에바 파,Q,신극 부감독 등.
· 코마츠다 : 옛날부터 그림을 자주 그리셨나요?
이타오카 : 아뇨 잘 안그렸어요. 대학은 치바대학 교육학부에 다녀서 일단 초등학교와 중학교 미술교사 면허를 따긴 했을 뿐, 그렇다고 선생님이 되고 싶은 것도 아니었고, 넥타이를 매고 샐러리맨을 하고 있는 나를 전혀 상상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 "그림을 그려서 먹고 살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라 생각이 들었어요.
코마츠다 : 에!?!? 그림을 그려오지 않았는데 왜 그렇게 생각했나요?
이타오카 : 그려온건 아니지만, 그림을 그리는거 자체는 싫지 않았어요. 그래서 나도 할 수 있지 않을까 하고.
다만 바로 일 할수는 없을거고, 그 일을 할 수 있을만큼 그림을 잘 그리려면 항상 그려야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선 항상 그리는 일을 하자. 그럼 계속 그릴 수 있는 일이 뭐있지?"라 생각해 "그래 애니메이터가 되자!" 생각했어요.
그게 애니메이터를 의식하게 된 계기였어요.
· 이타오카 : 그렇게까지 애니를 본건 아니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신세기 에반게리온이나 카우보이 비밥은 봤지만, 캐릭터에 빠지진 않았고 오히려 게임을 더 좋아했어요. 특히 세가 게임을 엄청 했습니다.
코마츠다 : 저는 에바 1화를 보고 "우오~! 감독이 되고 싶으니까 애니메이터를 할 수 밖에 없어!"하며 의욕을 차지시켜 그림연습을 시작한 스타일이었는데, 이타오카 상은 그런 느낌이 아니었군요.
· 이타오카 : 애니메이터가 되기로 정한 후 우선 전문학교에 가볼까 싶어서 신문장학생을 하며 당시 있었던 토에이 애니메이션 연구소에 다녔습니다.
다만 거기서 토에이 애니메이션인 프리큐어로 이어진건 아닙니다.
오히려 그 곳에서 아시다 토요오 상과 하야마 준이치 상을 만나게 됐는데, 그게 저한테 굉장히 중요했다고 생각합니다.
우선 하야마 상은 게스트 강사로 와줬는데, 무슨 과제에서 제가 이상한 이펙트를 그려서 움직였더니 엄청 칭찬해주셨어요. 그 일이 굉장히 인상 깊었어요.
그때까지는 "그림을 잘 그리기 위해서 일단 애니메이터가 되서, 그림을 많이 그리고, 일러스트레이터가 된 다음 책의 삽화같은걸 그리며 먹고살거야"란 루트를 상상했지만
하야마 상의 말이 계기가 되서 "그림을 움직이는거 재밌어. 애니메이터 일을 계속 해나가는 것도 가능할거 같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아시다 상은 1년 후기때 수업 강사로 와주셨습니다.
반에서 애니를 좋아하는 사람이 "아시다 상은 마신영웅전 와타루를 만든 사람이야"라 가르쳐줘서 "그렇구나 유명한 사람이 오는구나"라 생각했는데, 막상 만나보니 독특한 분위기를 풍기는 매력적인 분이었어요(웃음).
코마츠다 : 아시다 상은 애니메이터와 캐릭터 디자이너로서도 위대하지만, 오리지널로 다양한 그림을 그린 완전 임팩트 있는 분이시죠.
이타오카 : 맞아요. 엄청 비상한 분이라 "이런 재밌는 사람이 경영하는 회사라면 분명 재밌을거야"라 생각해 스튜디오 라이브에 들어가고 싶었습니다.
그 후 매주 아시다 상의 수업때마다 "이번에는 이런걸 그렸습니다!"하며 1주일동안 그린걸 매번 가져가고, "라이브에 넣어주세요!"라 계속 말해서 최종적으로 "알았어 넣어줄게"하며 인정해주셔서 라이브에 동화맨으로 입사하게 됐습니다.
코마츠다 : 아시다 상의 인품에 끌려서 진로를 정하신거군요. 라이브에 들어간건 몇살때?
이타오카 : 4년제를 나오고, 그 후 전문학교에 갔으니까 26살 정도?
고용 형태는 프리랜서에 가까웠던거 같아요. 급료는 기본적으로 거래대금제로, 라이브가 가져온 일을 모두가 분담하는 식이었네요.
저는 "이 작품 그림을 그리고 싶다" "이 캐릭터를 그리고 싶다"란 욕구가 없는 타입이라, "잘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 보다 많은 매수를 처리하고 싶다." 같은 모티베이션을 가지며 일단 온 일을 닥치는대로 한 느낌이었습니다.
오오츠카 : 굉장하네요. 저는 1년동안 동화를 했는데, 모르는 작품은 전혀 흥미가 생기지 않아서 "뭐야 이거"하며 하고 있었습니다.
참고로 매수적으로는 얼마나 해냈나요?
이타오카 : 평균 월 500~700장 정도일까요. 한번, 나는 얼마나 할 수 있을까 싶어서 시험해봤습니다만 그때는 월 1000장 정도였던거 같습니다.
코마츠다 : 굉장해.....
이타오카 : 그렇지만 1000장 그려도 그림이 전혀 좋아지지 않아서. "동화에서는 그림실력이 뛰어나지지 않는구나"란걸 실감해 "빨리 다음 단계(원화)로 올라가는게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역시 다른 사람이 그린 뛰어난 그림을 아무리 트레이스 해도 그림 실력이 좋아지진 않죠.
오오츠카 : 동화와 원화는 기교가 다르니까요. 원화가 된건 언제쯤인가요?
이타오카 : 입사하고나서 10개월 정도였다고 기억합니다.
다만 원화 시험에 합격한건 아니고 "사람이 부족하니까 그려라!"였단 흐름이었고(웃음)
처음 원화를 한 작품은 더 파이팅이었는데, 그림이 좋지 않았기 때문에 교육담당이었던 요시다 다이스케 상이 전부 고쳤어요.
코마츠다 : 이타오카 상한테도 그런 시대가 있었구나......그러면 당시 수입이나 생활면은?
이타오카 : 원화가 막 됐을 무렵에는 전혀 벌지 못했다고 기억합니다.
원화는 동화와 다른 스킬이 필요해서 컷 수도 못올려서.
다만 저는 돈에 별로 흥미가 없었고, 신문장학생으로 있던 2년동안 돈을 모았기 때문에 생활은 그다지 힘들지 않았어요.
그림만 그렸기 때문에 돈도 거의 안썼고. 게임센터에서 100엔짜리 동전을 넣는 정도였습니다(웃음).
· 코마츠다 : 프리큐어 일을 하게된건 언제인가요?
이타오카 : 처음 참가한건 두 사람은 프리큐어! Max Heart 31화였던거 같아요.
토에이 애니 연구소 시절 친구인 자코 아키후미 군이 콘티 연출을 한 화수에요.
스튜디오 라이브에서 받은 일이 아니라, 자코 군이 저한테 직접 의뢰한 형태였습니다.
친구의 부탁인 것과, 프리큐어 시리즈가 재밌을거 같다 생각했던 것도 수락한 이유중 하나였어요.
그 이후에 제가 지금만큼 프리큐어를 하게 될거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오오츠카 : 그때는 라이브에서 일하면서 단발성 일로서 맡은 느낌이었지만, 지금은 라이브에 소속된 상태에서 토에이 애니메이션에 자리를 잡고 프리큐어 반에 들어가게 됐죠.
그렇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이타오카 : 우선 30대 중반쯤에 라이브 밖으로 나가려고 했어요.
라이브는 아늑한 회사이긴 하지만, 반대로 말하자면 너무 아늑했기 때문에 다른 환경에 몸을 담아보려고 라이브에 자리를 둔 채 선라이즈로 출장갔습니다.
그 당시 제 마음속에서 "장래적으로 애니메이터를 계속하면서, 나는 무엇을 주축으로 삼아야 할까"란 생각이 있었어요.
선라이즈에서는 배틀 스피리츠 시리즈 현장에 참가했는데, "곧 있으면 40세가 되는데, 그림쟁이로서 이름이 알려지지 않으면 미래가 없는게 아닐까"라 생각되서, 배틀 스피리츠 현장은 제가 가고 싶은 길과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배틀 스피리츠는 애들용이니까, 좀처럼 작화가 주목받지 못하거든요.
코마츠다 : 그렇군요. 로봇물의 경우에는 아이뿐만 아니라 어른들도 보니까, 예를들어 "합체뱅크 원화는 누구누구"란 말이 나오기도 하지만, 어른들은 카드 게임 등의 허비 애니를 잘 안보니까, 아무리 작화가 눈에 띄어도 크리에이터 개인 이름은 주목받기 힘들다, 고.
이타오카 : 맞아요. "일단 보는 사람이 많다" "매주 쭉 방송되고 있는 오리지널물" 그리고 "여자애가 귀여운" 작품을 하고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 "그러면 프리큐어밖에 없잖아!" 생각하게 되서.
· 이타오카 : 원작물 작품 중 오래 지속되는 시리즈도 많지만, 원작물의 경우 애니메이션이 히트해도 주목받는 것은 원작자고, 애니 크리에이터는 이름이 잘 드러나지 않잖아요.
그래서 오리지널 작품을 하고 싶다고 생각했어요.
그리고 사실 전문학교 시절에 "내가 애니메이터가 된다면 이곳을 목표로 하자"고 생각했던거 두 가지가 있는데, 그 중 하나가 "크레용 신짱 영화", 그리고 또 하나가 '변신 뱅크'였어요.
막 그런 생각을 하게 됐을 때 자코 군이 "극장판 토리코 미식신의 스페셜메뉴"를 하는데 도와달라고 말을 걸어줘서 토에이에 가게 됐어요.
오오츠카 : 자신의 꿈과 목적이 맞아떨어진게 프리큐어였군요.
참고로, 왜 크레용 신짱이 목표 중 하나였나요?
이타오카 : 제 마음속에 영화 신짱은 "그림을 움직이는" 일의 최고봉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림 그 자체는 굉장히 심플하지만, 그걸 엄청 움직이잖아요.
저는 유아사 마사아키 상이 맡은 신짱 극장 시리즈를 보고 "역시 애니는 재밌어!"라 생각해서, 그 일을 언젠가 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전문학교 시절 하야마 상한테 칭찬받은 경험에서 온거라고 생각합니다.
당시에는 작화감독과 캐릭터 디자이너에 일절 관심이 없어서, 어쨌든 그림을 움직이는걸 파고들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애니메이터는 "움직이고 싶은 사람"과 "캐릭터를 그리고 싶은 사람" 두 종류가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전 완전 전자에요.
· 코마츠다 : 처음 한 변신뱅크는 뭔가요?
이타오카 : 잠시 단발로 토에이 애니 일을 하던 중, 일이 비었을때 "뭔가 일 없어?"라 토에이 애니 제작한테 물었더니, 건네받은게 스위트 프리큐어 큐어 뮤즈 변신 뱅크였어요. 그게 처음이었네요.
다만, 이건 저 혼자서 전부 다 한게 아니라 몇명이서 나눠 했지만요.
뱅크를 하게 됐을때는, 시다 나오토시 상과 타나카 히로노리 상을 목표로 삼았습니다.
둘이 그린 뱅크 영상을 대강 전부 다 본 결과 "역시 뱅크라 하면 1콤마우치지!" 하며 마음대로 제한을 정해서(웃음).
그래서 제가 그리는 뱅크가 1콤마우치인건 그 영향이에요.
그 다음 스마일에서 필살기 뱅크를 하고, 다음해에 두근두근! 프리큐어에서 큐어 로제타의 변신 뱅크를 처음으로 혼자서 해냈습니다.
그 후 매년 하고 있는데, 올해는 원더풀 프리큐어!의 큐어 냐미가 첫번째네요.
코마츠다 : 스마일 때, 오오츠카 상 입장에서 본 이타오카 상의 인상은 어땠나요?
오오츠카 : 일단 그림을 많이 그릴 수 있는 사람이었죠.
스케쥴이 힘든 가운데 이타오카 상은 일단 손이 빠르고, 게다가 많이 그려주고, 여러 아이디어도 내주셔서 정말 도움을 받았습니다.
이쪽에서 무언가를 추가하기보다는 오히려 다른 부분과 밸런스를 맞추기 위해 그림을 정리하고 솎아내는 일이 더 많을 정도.
큐어 뷰티의 "뷰티 블리자드"라는 필살기 뱅크를 해달라고 했는데, 뷰티가 처음 등장하는 5화는 스케줄도 빡빡해서 숨이 턱턱 막힐 지경이었어요.
그런 상황에서 "적어도 뱅크는 좋은걸 틀 수 있어!"란 안정감이 정말 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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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타오카 : 지금 되돌아보면, 그 뷰티 뱅크는 너무 움직였지(웃음). 눈 결정을 죽을만큼 세세하게 그렸던 기억이 나요.
오오츠카 : 저런 세세한 움직임과 작화는 매수 수고가 들기 때문에, 보통이라면 애니메이터 분들이 싫어하거든요.
그래서 이쪽에서 그려달라고 좀처럼 말하기 힘들지만, 이타오카 상은 멋대로 그려와요(웃음).
정말 고마웠던 기억이 납니다.
그리고 인상적이었던건 43화죠. 타나카 유타 상이 연출한 레이카 유학회.
이타오카 : 그 화는 스스로 "참가하고 싶다"하며 직접 영업했습니다.
뷰티 블리자드를 그려서 뷰티에 애정이 있었기 때문에 "다시 그릴 기회 없을까요?"하면서.
사실 전 스위트의 뮤즈 뱅크를 하기 전에, 영화 하트캐치 프리큐어 꽃의 도시에서 패션쇼에도 참가했고,
그때 츠보미가 뒷골목에서 우는 씬을 맡았어요.
그게 조감독을 한 유타 군의 인상에 남았나봐요.
그 흐름으로 스마일 43화에서는 레이카가 우는 씬을 하게 됐습니다.
코마츠다 : 여러 일을 보면서, 저는 이타오카 상의 작화 원류에 시다 상의 영향이 있지 않을까 계속 생각했어요.
그래서 아까 말을 듣고 납득했습니다.
이타오카 : 역시 토에이 애니에서 프리큐어를 하면, 시다 상의 영향을 받게 되죠.
시다 상은 스마일에서 프리큐어 레인보우 버스트 기술뱅크를 했는데, 그건 시다 상의 마음속에서도 최고 걸작이라는 말을 들은 적 있습니다.
오오츠카 : 저건 콘티 단계에서 시다 상이 아이디어를 꽤 내주셔서, 보통은 "이런 힘든 콘티를 그리면, 대체 누가 원화를 하고 싶겠어!"라 제작 분에게 혼나는걸, 시다 상이 혼자서 그려주신거죠.
정말로 굉장한 마무리였죠.
덧붙여 이타오카 상한테 그런 보람이 느껴진 뱅크가 있나요?
이타오카 : 제일 힘들었던건 틀림없이 마법사 프리큐어 변신뱅크네요.
둘에다가 손도 잡아서 "(시리즈 디렉터) 미츠오카 마사토 군은 얼마나 제한을 만드는거야!"라 생각했습니다(웃음).
다만 그건 단순히 매수가 많아서 힘들었단 이야기라서, 보람이라 하면.....저 나름대로 매년 업데이트 하고 있기 때문에, 지금이라면 최신작인 큐어냐미일까요.
나머지는 본 사람이 정해주면 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 이타오카 : 로제타 뱅크 원화를 담당했을 때 "적어도 10년은 연속으로 한다"며 자신한테 제약을 걸었는데, 그게 (애니를 잘 모르는 사람도 누가 그렸는지 알아봐주는) 노림수였어요.
아무리 질 높은 변신 뱅크를 한번 그려도 좀처럼 기억에 남지 않아요.
그렇지만 10번 이상 계속하면 역시 기억할 수 있죠?
게다가 변신 뱅크는 한번 원화를 그리면 만족하고 배불러져서, 몇번이나 계속해주는 사람이 없어요.
그렇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하지 않는걸 하는 것에 의미가 있다, 하고.
"변신뱅크 장인"이란건, 굉장히 니치한 포지션이니까요(웃음).
어느 의미로 살아남기 위한 전술이에요.
· 코마츠다 : 이타오카 상의 뱅크는 어디까지가 콘티고 어디부터가 작화의 애드립인가요?
예를 들어 스타 트윙클 프리큐어의 큐어 밀키가 볼을 부풀리는건 콘티에 있었나요?
이타오카 : 저건 제 애드립이에요.
코마츠다 : 역시!
이타오카 : 밀키는 여태 프리큐어에서 없는 색이었기 때문에, 색으로 인기가 있을지 미지수였어요.
그래서 인기를 내기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다 해보자! 라는 식이었어요.
제작 측에서도 그걸로 저한테 뱅크를 맡겼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하면 재미있지 않을까?"라고 생각한 것들을 넣었습니다.
최종적으로 그게 잘 통해서 다행이었습니다.
코마츠다 : 이렇게 많은 작품을 하다 보면 애드립를 넣더라도, 다른 캐릭터와 겹치지 않게 생각하는 것도 힘들 것 같아요. 그런 아이디어는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이타오카 : 문득 떠오르는 경우가 많아요. 하지만 그건 딱히 특별한건 아닌데요.
아마 (다른 사람들도) 아이디어는 떠오르지만, 번거롭고 힘드니까 하지 않는 경우가 많을 것 같아요.
예를 들어, 표정을 조금만 바꿔도 원화가 2~3장 늘어나고, 그렇게 되면 작업 시간도 몇 시간 더 늘어나게 되니까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하지 않아도 되는 일을 늘리지 않는 편이 좋다" 가 되요.
그렇지만 저는 "하는 편이 재밌을거 같으니 한다"라는, 단지 그것 뿐이에요.
떠올린걸 넣지 않는건 아까우니, 기본적으로 덧셈 사고로 만들어나갑니다.
오오츠카 : 10년 연속 변신뱅크 노르마를 이루셨죠. 영화 신짱에도 매년 참가하고 있고.
두 목표가 이루어진 지금은 어떤걸 목표로 하고 있나요?
이타오카 : 지금은 프리큐어 캐릭터 디자이너를 하고 싶습니다.
콘티 연출부터 작화까지 전부 스튜디오 라이브에서 하는 화를 만들고 싶은게 하나의 목표일까요.
라이브는 정말 레벨 높은 회사거든요. 그 레벨을 세상 사람들이 더 알아줬으면 해서.
코마츠다 : 캐릭터 디자인인가요! 옛날에는 디자인은 흥미가 없었다 들었는데, 어떤 심경변화인가요?
이타오카 : 이것도 크리에이터로서 전략적인 이야기인데..................... 역시 원화맨으로 먹고 살기에는 한계가 있어요.
저는 아마 죽을 때까지 그림을 그리겠지만, 그렇다고 해도 액션 애니메이터는 체력이 있기 때문에 나이의 한계는 반드시 와요.
그럴 때, 그림쟁이로서 제대로 먹고 살 수 있는 루트나 스킬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해서.
저는 애니메이터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이 만든 캐릭터 그림을 그리기 때문에 "내 그림"이라고 말할 수 없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가 이 캐릭터를 만들었습니다"라 말할 수 있는 무언가를 갖고 싶다는 것이, 제가 캐릭터 디자인을 하고 싶은 이유에요.
오오츠카 : 디자이너를 한다면 프리큐어가 아니여도 괜찮다?
이타오카 : 역시 프리큐어를 하고 싶습니다. 이 정도의 역사와 지명도를 가진 작품은 현재의 일본에는 독보적이라 생각해서.
10년, 20년의 세월이 흘러도 캐릭터가 아직 팬들 사이에서 살아있고, 그것은 30주년, 40주년이 되어도 변함없을거 같아요.
그리고 그때마다 캐릭터가 몇번이든 피쳐받아요. 그런 작품의 오리지널 그림을 그린다는건, 분명 그림쟁이로서 큰 무기가 되죠.
그런 의미에서 작년에 개봉한 프리큐어 올스타즈 F에서 게스트 캐릭터 두명을 디자인 한건 굉장히 보람찼죠.
· 이타오카 : 저는 원래 디자이너로서 특별히 매력적인 그림을 그릴 수 있는 재능이 있는 것도 아니고, 매년 감성이 풍부하고 프레시한 젊은 인재들이 속속 등장하잖아요.
그 사이에 어떻게 하면 내 이름을 회의 테이블에 올려놓을 수 있을까, 그리고 여러 후보들 사이에서 50세 아저씨인 내가 어떻게 선택받을 수 있을까.
그러기 위해서는 아직 상당한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 코마츠다 : 최근을 말하자면, 애니메이터가 되고나서 바로 작화감독이 되서, 스스로 원화를 그리지 않게 된 사람도 많잖아요.
그런 가운데 이타오카 상은 쭉 원화를 그리고 있고, 그 압도적인 파워가 화면에서 전해져요.
그런 에너지를 가진 채로 계속 달리는 이면에는, 어떤 원동력이 있을까요?
이타오카 : 뭘까요? 심플하게 "그림을 움직이는건 재밌다"일까요.
그리고 내가 움직이는걸 본 사람이 좋아해주는게 기쁘죠.
· 이타오카 : 도중에 잠깐 언급했지만, 저는 "이 캐릭터를 좋아한다" "이 작품을 하고 싶다"는 욕망은 별로 없어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말하는 "작품애"와 조금 다른 형태일지도 모르겠지만...역시 프리큐어를 보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지 리액션을 많이 받는게 모티베이션이 되네요.
그리고 프리큐어 스태프 룸의 중심에 들어가서 일하는게 재미있어요.
일개 원화맨인데도 아프레코 견학을 가거나 부서를 넘어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이름을 기억해 주는건 한 현장에 오래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죠.
하지만 결국 가장 큰건 "한 가지를 정하면 계속 그 일을 하는" 저 자신의 기질적인 면이 큰 것 같아요.
· 이타오카 : 저는 신인 시절 아시다 상한테 "업계에 들어와서 한사람 몪이 되려면 5년은 걸린다"는 말을 들었고, 실제로 스스로 "이렇게 그리면 되겠구나"란게 보이게 된 것도 역시 10년이 걸렸어요.
하지만 그게 완성형이 아니라 앞으로도 더 잘할 수 있을 것이고, 평생 계속 추구해 나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계속 그리지 않으면 절대 거기에는 도달할 수 없으니까요.
오오츠카 : 계속하고, 계속 나아가기 때문에 보이는 것이 있다고. 훌륭하네요!
요즘 세상은 계속하는 것에 그다지 가치를 두지 않는 경향도 있지만, 저는 이타오카 상의 생각이 굉장히 공감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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