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거정전

제 2장 승리의 기록

T거는 개념이나 성능만 모호 게 아니라, 7티어에 오기 전까지 어느 땅크에서 넘어왔는지도 알 수가 없었다. 게다가 팀원들은 고기방패가 필요할 때나 곯려 줄 때만 T거를 생각할 뿐 다른 때는 관심도 없었다. T거는 프리미엄도 없이 일반 차고 안에서 살았다. 게다가 고정된 라인도 없이, 이 팀 저 팀에서 크레딧 앵벌을 하며 한판 한판을 살아 나갔다. 그래서 팀원들은 질때면 T거를 생각하지만, 이기면 까맣게 잊어버리곤 하였다.

그런데 T거 또한 자존심이 매우 강해서 얼땅러들 따위는 안중에도 없었다. 심지어 7티어에 딱 한 대밖에 없는 돌머리 티이구에게까지도 웃어 줄 가치조차 없다고 여기는 형편이었다. T거의 말대로 하면, 2차대전 때에 그는 ‘잘 쐈고 장갑도 두꺼웠으며 못 하는 게 없는’ 거의 완벽한 땅크였다는 것이다.

그건 그렇다 치더라도 어쨌든 지금 그에게는 체질상으로 약간의 흠이 있었다. 그의 정면 장갑이 수직이라는 것이었다. 그래서 그는 ‘물장갑’이라는 말을 몹시 싫어했다. 뿐만 아니라 그것이 점점 확대되어 나중에는 ‘얇다’라는 말도, ‘물’이라는 말도 싫어하게 되었다. 급기야는 ‘라인’이나 ‘몸빵’ 같은 말까지도 금기로 했다. 그리하여 그 금기를 어기는 자가 있으면, T거는 그 수직장갑이 시뻘게지도록 화를 냈다. 상대에게 욕을 퍼부으며 쏘려고 덤벼들었다. 하지만 어찌 된 영문인지 T거는 혼을 내주려고 덤벼들었다가 되레 차고로 사출당하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그래서 T거는 그에 대한 대응 방법을 바꾸기로 하였다.

얼땅 땅크들은 T거를 볼 때마다 “야아, 찰지겠는걸! 이제 보니 크레딧 앵벌감이 여기 있었군.” 하고, 그의 장갑을 숭숭 뚫어주곤 했다. 그들은 T거가 단단히 혼쭐이 났으리라고 생각했지만, T거는 십 초도 안 되어서 승리감으로 의기양양해졌다. 자신을 짐짓 충처럼 하찮은 존재로 생각해 버리는 것이었다. 그렇게 되면 땅크들은 결국 벌레를 곯려 준 꼴이 되는 것이니까.

‘네놈 따위가 뭐야. 나는 버러지야, 버러지라구.’

T거는 자신을 경멸할 수 있는 첫 번째 땅크는 바로 자기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거기에서 자신을 경멸한다는 말을 빼 버린다면 남는 것은 ‘첫 번째 땅크’라는 것뿐이었다. 어디에서든 ‘첫 번째’는 좋은 것이었다. 이렇게 묘한 방법으로 승리를 하고 나면 T거는 금방 기분이 좋아졌다.

서장은 생.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