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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전실 선배와 후배5.txt

시갤러(218.233) 2024.09.01 16:16:04
조회 860 추천 21 댓글 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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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리실 선풍기가 고장났다.

뜯어서 고쳐야 하는 것을 선배가 멀뚱멀뚱 보고 있다.

실무깡패 8년 경력의 선배는 자신만의 빅데이터로 다양한 문제 해결을 하는 만능 해결사다.

이른바, 올라운더다.

보통 의사가 의대 6년, 펠로 4년의 경력인 것을 보면, 선배의 8년 경력은 기기계통의 준 전문의라고 볼 수 있겠다.

물론 국가가 인정해주는 종이쪼가리따윈 취급하지 않는다.

그는 어엿한 '무수기'이다.


"떱디가 있어야 허는디"

"거기 있잖아요"

"야가 영어를 몬 익나 요게 떱디여?"


HD-60, ANTI-RUST, LUBRICANT, SPRAY

녹방지, 방청 윤활제 HD-60캔은 20개들이 박스가 2박스나 있었다.


이마를 짚게 만드는 대사에도 난 무덤덤하다.

"점심시간에 사오면 되죠"

"야, 거 돈은 니 주머니에서 내줄래!"


법인카드를 과장이 들고 가버렸기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멀뚱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윤활문제인지, 모터문제인지, 콘덴서문제인지 베어링문제인지, 축문제인지, 전원문제인지.

정말 아ㅏㅏㅏㅏㅏㅏ무것도 알아낸 게 없다.

떱띠떱띠 오전 하나를 이걸로 죽치고 있는 것이다.


"일단 까보죠"

"얌마! 그거 풀렀다가는 너 조립 순서 알긴 허냐!"

본인이 못하겠다고 물러나서 캐터필러팬 온도퓨즈 교체한게 나였던 걸 3주도 안되어서 까먹은 모양이다.


"흠."

팔짱을 끼고 엔지니어의 두뇌는 빠르게 작동한다.

과장에게 받은 지시. 선풍기 수리의 책임자로 임명된 그는 여느때와 달리 진지하다.


그는 선풍기에 대해 통달한 듯했다. 눈으로 보는 것만으로도 문제 진단이 가능한, 기기의 명의다.

30분간 노려보다가 내린 결론은 방청윤활제를 구동계 앞뒤로 뿌려주는 것.

하지만, 분해를 해두지 않는 것을 보니 팬이 달린채로 뿌리려는 건가.


나도 군대에서 들은 말이 있다.

사람에게는 빨간약, 기계에는 WD.

그의 중심에 강한 군인정신이 깃든 듯했다.


진단을 마쳤으면 처방을 해야지.

전화를 건다.


"소장님, 떱디가 없어요. 올때 떱디 사와주실 수 있으세요? 제가 자리를 못 비워서요."


"네. 진짜 없어요."


"예? 이거 떱디라고요? 에이치디인데"


손오공의 금고아가 머리통을 조여올때 이런 고통이던가.

관자놀이가 존내 땡겼다.


그는 전화를 끊고 아무 말도 없이 선풍기를 분해하기 시작했다.

분했던 것일까.

누구를 향한 화일까.

그게 떱디라고 말한 나일까, 그게 떱디라고 말한 과장일까.


얼마전 구입한 임팩으로 마구 분해를 시작했다.

"너 이거 씻고 와. 손으로 대충하지말고 솔로 깨끗이 씻어."

날개와 케이스를 내게 건넸다.


그의 분통은 내게로 향했지만 엄연히 나는 부사수인 고로, 그의 말대로 했다.

그런데 갑자기,

"야 잠깐만."

뒤돌던 나를 불러세웠다.

"이거 회로도 그려봐."


콘덴서에 연결된 회로를 그리라는 것이었다.

"너 이런 거 연습해야돼. 이런 거 못하면 어디가서 대접 못 받아. 전기기능사 딸려면 이런 거 무조건 연습해야돼."

"근데 자격증 없어도 된다고 하지 않았어요?"
"그건 나고. 너는 너고. 넌 꼭 공부하라고 하면 지랄하더라? 너 이러는 거 하극상이야. 토달지 말고 회로도 그려. 내가 업무 준거니까."

그의 말이 맞는 듯했다.


"너무 오래 걸리면 수리를 못하지 않아요?"

"오래 걸리든 말든 하라고."

어떻게든 안 하려는 나를 몰아세웠다.


나는 그대로 멍하니 휑한 선풍기 뒤통수를 보며 15분을 죽쳤다. 물론 펜을 든 손은 움직이지 않았다.

답답했는지 먼저 말을 건다.

"어렵지? 그래서 연습해야된다니까. 전기는 기호가 생명이야"

내 펜을 빼앗아 종이에 뭘 그리기 시작한다.


콘덴서를 일단 사각형으로 그리고, 거기서 선을 몇 가닥 그린다.

전원과 점프선이 2가닥 있는데 아무것도 접점이 없다.

이 조악한 회로도는 뭘까.


"여기서 포인트는 선이 붙으면 안되고, 이게 뭔 뜻이야. 선이 붙으면 합선이잖아 쇼트나."

합선돼서 쇼트가 난다.

그렇구나. 합선은 원인이고 쇼트는 결과인가?

그는 선이 교차되면 붙어버리기 때문에 띄엄띄엄 그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너무 복잡한데요?"

"그러면 회로도가 단순할 줄 알았냐?"

"전기 너무 어렵네요"

"그나마 이거라도 따야 뭔가 일적인 대화를 할 수 있는거야"


대화가 오가는 사이에 과장이 들어왔다.

"뭐하는데?"

"애 가르치고 있었어요"

"뭔데?"


선풍기 수리 하나 붙잡고 오전 3시간을 때웠다.

과장이 출타하면 낮잠 거하게 때릴 명분이 생겼다고 생각하겠지.


"어디 봐"

"그려보라고 했더니 못그리길래 제가 해준 거예요"

"이게 뭔데?"

"선풍기 회로도요"


의기양양한 그 말을 듣자마자 과장 표정이 썩어버렸고, 한숨을 푸 내쉬며 말했다.

"너 공부해야 된다. 진짜로. 너 걱정돼서 하는 말이야"

그 말을 남기고 들고 온 커피를 그대로 들고 식당으로 가버렸다.


점심때가 얼마 남지 않아 빠르게 방청제와 그리스를 바르고 마무리 하려는데, 동작이 되지 않는다.

"엇, 뭐가 문제지? 보통 이러면 다 되는데"

저절로 이가 꽉 깨물린다. 죶같은 주먹구구식 해결책은 보통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분해해서 보죠."

"너 조립하는 순서는 아냐고"


간섭하지 말라는 뜻이다. 나태한 인간이기에 일거리를 빼앗기는 두려움은 아닐테고.

자존심 문제로 변질되었다고 판단했다.


"그러면 전 먼저 밥 먹으러 갈게요."

"그래라."


내가 더 늦게 갔으니 오래 쉬겠다는 그의 뻔뻔한 멘트는 익숙하다못해 지겹다.

다만, 그가 맡은 바 임무를 수행할 수 있을까라는 불안감.

기술자라고 뽑아놨더니 그것 하나 해결 못하냐는 비아냥과 조롱에 대한 불쾌감.

앞으로 몰려올 그런 것들이 슬슬 간지럽혀온다.

힌트를 줘야했다.


"그냥 까면 되지 않아요?"

"글쎄, 분해하고나서 조립이 문제라니깐?"

"동영상으로 찍으면서 분해하면 되죠."

"아, 그러네!"


이새낀 결국 일의 순서를 몰라서 이러고 있었던 거다.


"야, 밥먹고 공장들 좀 돌아보고 떱디 있으면 좀 빌려와라"

결국 끝까지 못 믿었다.


밥을 먹고 돌아와보니 결합이 되어 있길래, 스위치를 눌러보니 당연하게도 동작은 되지 않았다.

똥닦아주는건 예삿일이니 그대로 해주기로 했는데

뭘까.

그대로 분해했고 윤활문제는 아니었다.

콘덴서 테스트. 아니었다.

전원불량도 아니었다.

결국 모터를 분해했고 자세히 보니 퓨즈 끝부분 코일이 니퍼에 찢긴 흔적이 보였다. 에나멜이 큼직하게 잘려져있었다. 적어도 10가닥은 나갔다.

퓨즈교환하려고 나일론 실을 자르려다가 그대로 죽어버린 것이다.


환자는 의료사고로 그대로 사망했다.

하지만 그에게 면허 정지란 없다.

애초에 '무수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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