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타임스=최봉애 기자] 고려시대 대형 누각인 삼척 죽서루와 밀양 영남루가 국보로 지정된다.
문화재청이 지방자치단체의 삼척 죽서루와 밀양 영남루에 대한 국보 지정 요청에 따라 보물인 2개의 누각을 국보로 지정 예고한 데 따른 것이다. 이후 이들 대형누각 2건에 대해 30일간의 예고 기간 동안 의견을 수렴한 후, 문화재위원회 심의 절차를 거쳐 국보로 지정할 예정이다.
삼척 주서루
삼척 죽서루(삼척시 제공)
삼척 죽서루(竹西樓)’는 고려 명종(1171∼1197)대에 활동하였던 김극기가 죽서루의 풍경을 시로 썼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적어도 12세기에는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조선전기에 재건된 이후 여러 차례 보수, 증축된 기록이 잘 남아있으며, 조선후기 증축된 이후의 모습이 현재까지 잘 보존되어 있다.
죽서’란 이름은 누의 동쪽으로 죽장사라는 절과 이름난 기생 죽죽선녀의 집이 있어 ‘죽서루’라 불렀다고 전해진다.
죽서루의 규모는 현재 정면 7칸‧측면 2칸으로 정면 5칸‧측면 2칸이었던 것을 증축한 것으로 보인다. 지붕의 형태는 팔작지붕으로 맞배지붕이었던 것을 증축하는 과정에서 팔작지붕으로 바꾼 것으로 추측된다. 누 하층에는 17개의 기둥이 있으며 그 중 9개의 기둥은 자연 암반 위에 세우고 나머지 8개의 기둥은 석초(石礎) 위에 기둥을 세웠는데 17개의 기둥 길이가 모두 다르다는 특징이 있다. 누 상층에는 20개의 기둥이 세워져 있고 지붕은 팔작지붕으로 되어 있다.
누각 전면에 걸려 있는 ‘죽서루(竹西樓)’와 ‘관동제일루(關東第一樓)’는 1711년(숙종 37) 삼척부사 이성조(李聖肇)의 글씨, 누 안쪽의 ‘제일계정(第一溪亭)’ 글씨는 1622년(현종 3) 부사 허목(許穆)의 글씨, ‘해선유희지소(海仙遊戲之所)’는 1837년(헌종 3) 부사 이규헌의 글씨이다.
또한, 죽서루의 절경을 표현한 정철의 ‘관동별곡’, 겸재 정선의 ‘관동명승첩’을 비롯해 김홍도, 강세황 등 고려부터 조선시대까지 시인, 묵객 등 다양한 계층이 죽서루를 소재로 수많은 시문, 가사와 그림 등을 남겼다.
위치 : 강원 삼척시 죽서루길 44 (성내동)
밀양 영남루
밀양 영남루 (문화재청 제공)
밀양 영남루는 통일신라 때 세운 '영남사'라는 절에 있던 작은 누각에서 시작됐다. 이후 고려 공민왕 14년(1365)에 밀양군수 김주(金湊)가 통일신라 때 있었던 영남사라는 절터에 지은 누로, 절 이름을 빌어 영남루라 불렀다.
임진왜란 때 객사와 함께 모든 부속 시설이 소실되었으나 1844년 이인재가 밀양부사로 재임할 당시 대루를 확장하면서 많은 부속건물을 지었고, 관원들과 지방 빈객들을 접대하는 객사로 사용하였다.
이 건물은 조선시대 밀양도호부 객사에 속했던 곳으로 손님을 맞거나 휴식을 취하던 곳이다.
규모는 앞면 5칸·옆면 4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기둥은 높이가 높고 기둥과 기둥 사이를 넓게 잡아 매우 웅장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으며, 건물 서쪽면에서 침류각으로 내려가는 지붕은 높이차를 조정하여 층을 이루고 있는데 그 구성이 특이하다. 또한 건물 안쪽 윗부분에서 용 조각으로 장식한 건축 부재를 볼 수 있고 천장은 뼈대가 그대로 드러나 있는 연등천장이다.
밀양강 절벽의 아름다운 경관과 조선시대 후반기 화려하고 뛰어난 건축미가 조화를 이루고 있는 누각이다.
위치 : 충남 천안시 동남구 삼룡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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