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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오시현을 버릴 수 없다모바일에서 작성

ㅋㅁㄴ(110.70) 2014.11.18 23:36:36
조회 106 추천 0 댓글 1


싸늘한 가을의 바람은 말라비틀어진 나뭇잎들을 속에 품은 채 교내를 휘감아 돌았다.
무거워진 몸을 조금이라도 가볍게 하려는 듯, 산 속으로 흘러가는 바람은 몸에 달라붙은 나뭇잎들을 마구 길바닥에 내팽개쳤다.
생명의 불모지인 모래밭 위에 떨어진 채 땅의 양분조차 되지 못한 나뭇잎들이 학생들의 발걸음에 짓이겨 썩어가는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 한구석에서 쓸쓸한 마음이 용솟음치는 것은 어쩔 수가 없었다.
정부의 정책으로 말미암아 이 학교로 억지로 떠넘기다시피 전학을 오기는 했지만, 사방 천지에 낯선 수인들이 가득한 이곳에서 이전의 학교 다니듯 제대로 생활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깨끗하게 다려진 교복 여기저기에는 자리에서 몸을 일으킬 때마다 고양잇과 수인들의 털이 한 움큼씩 떨어지기 마련이었고, 수인 특유의 체취가 머리를 어지럽히기도 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수인 혐오자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는 법.
교과서에서나 보던 수인의 모습을 직접 마주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우락부락하고 커다란 수인을 보면 자연히 어깨가 움츠러들고 눈치를 보게 되곤 했지만, 상대적으로 아담하고 수염을 까딱거리는 작은 수인들은 그냥저냥 봐줄 만은 했다.
그러나 문제는 내게 호감을 보이는 것이 전자의 수인이라는 것에 있다.
그들이 장난삼아 손바닥을 어깨 위에 툭 올려놓을 때면 난 비석이라도 얻어맞은 것마냥 휘청거리기 마련이었고, 딱밤 치기라도 당하면 나는 저 멀리 날아가는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한 연유로 사글사글한 수인들을 제치고 내가 도착하는 곳은 항상 운동장의 벤치뿐이었다.
그 아이를 처음 만났던 날도 마찬가지였다. 나는 가을의 정취가 물씬 풍기는 벤치에 앉아 동아리에 대한 가벼운 고민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 : 하... 역시 뭘 해야 할지 감이 안 잡히는구나.


각 동아리에 가서 열심히 할 자신도 없고, 딱히 특출난 것도 이 상태에서 아무 생각 없이 뭔갈 고른다면 학교 생활이 흐지부지 될게 뻔했다.


### : 잠깐 유예기간 받긴 했지만, 역시 뭘 정하긴 해야...



그 순간, 무언가가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귓속을 파고들었다.

감시당하고 있었다는 막연한 공포감에, 나는 혼잣말조차 끝까지 이어나가지 못한 채 소리가 들려온 플라타너스 나무쪽으로 재빨리 고개를 돌렸다.


### : “뭐야... 저거...”


그곳에는 딱히 나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이나 수인은 없었다.
눈에 들어온 것이라고는 나무위로 열심히 기어 올라가는 새카만 덩어리뿐이었다.
검은 몸뚱이에 걸맞지 않게 밝은 색깔의 스웨터와 깜찍한 바지를 갖춰 입은 그것은 작은 체구에 걸맞지 않게 큰 나무를 잘도 오르고 있었다.
커다란 나뭇잎에 가려져 그 모습을 제대로 확인할 수는 없었지만, 나무를 잘 타는 것으로 보아 그는 고양잇과 수인임이 틀림없었다.
나무를 타는 것이라면 나도 인간들 사이에서는 누구에게도 뒤처지지 않을 정도다.
그러나 저런 수인을 상대로 놓으면 얘기가 달라진다.
아마 내 실력은 그들 사이에서 어린애 재롱 정도에 불과할 것이고, 이런저런 조롱을 들을 것이 뻔했다.
터무니없이 차이가 나는 인간과 수인의 육체적 능력 차이에 대해 고뇌하던 중, 나무를 타던 수인이 갑작스레 중심을 잃는 모습이 고스란히 눈에 들어왔다.


불안하게 걸쳐져 있던 양 다리가 먼저 나무로부터 미끄러진 것이 시작이었다.


그 다음은 굵은 줄기를 붙잡고 있던 오른손.


이제 아이를 지탱하고 있는 것은 왼팔밖에 없었다.

그는 마치 그네를 타듯 좌우로 흔들거리며 다시 나무 위로 올라가려 애쓰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검게 빛나는 털 사이에는 수많은 나무 조각들이 박혀 있었고, 진액에 묻어 더럽혀진 털들은 아이가 오랫동안 나무를 타느라 지쳐있다는 것을 은근히 알려주고 있었다.
설마 이대로 떨어지기야 할까 싶어 그때까지 가만히 지켜보기만 하던 나는 곧바로 벤치를 박차고 나무를 향해 달렸다.
그와 동시에 아이의 오른 손마저 완전히 펼쳐졌다.


아이는 돌풍에 휩싸인 것 마냥 공중에서 빙글 회전하며 땅으로 곤두박질치기 시작했다.
나는 두 팔을 최대한 뻗고 무서운 속도로 떨어지는 아이의 몸을 붙잡으려 애썼다.







### : 아!


??? : ...앗...


다행스럽게도, 아이의 몸은 양 팔 사이에 정확히 안겼다.
먹먹한 통증이 팔을 감싸왔지만 그런 건 아무래도 좋았다.
머릿속은 아이를 위험으로부터 구출했다는 기쁨만이 가득했다.
내 품에 안긴 어린 것은 자신이 딱딱한 바닥에 부딪칠 것이라 생각하는지 눈을 꼭 감은 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 야!


??? : ...우...


아기처럼 눈살을 찌푸리고 있던 아이는 꿈을 꾸는듯한 표정으로 눈을 떴다.
그 모습이 참을 수 없을 정도로 귀여웠다.
그러나 그때 당시에는 아이가 귀엽다는 느낌보다 어린아이 주제에 나를 긴장시켰다는 괘씸함만이 앞섰다.
나는 아이를 꾸짖는 것이 당연한 권리인 것 마냥 언성을 높여가며 아이를 훈계했다.



### : 아무리 운동신경이 좋아도 그렇지, 완전 자살이잖아 이건!


??? : 죄, 죄송해요...


### : 얼마나 걱정...

집고양이처럼 안겨있던 아이는 사지를 휘저으며 기이하게 몸을 비틀었다.
내가 깜짝 놀라 손을 놓아버린 틈을 타 아이는 땅으로 발을 디뎠다.
하얀 와이셔츠에는 그가 남긴 검은 털 몇 가닥만이 남았다.
자신의 자취를 내 옷에 톡톡히 남긴 아이는 나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옆에 선 나무를 올려다볼 뿐, 나에게는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노을에 잠긴 언덕에서 그리운 고향을 바라보는 듯한 그 눈길로, 아이는 생채기 투성이인 자신의 손과 나무를 번갈아가며 바라보고 있었다.
그 모습을 지켜보자니, 아이가 나무에 집착하는 것이 이상하게 느껴졌다.


### : ...나무에 뭐라도 있어? 왜 그렇게 집착하는거야?


??? : ...


아이는 대답 대신 몸을 돌려 달아나기 시작했다.
그는 간혹 가다 고개를 돌려 나를 빤히 바라보기도 했지만 내가 내지른 호통에 대해 원망을 품은 기색은 없어 보였다.
나는 내게서 멀어지는 수인을 바라보며 그저 오른 팔을 살짝 치켜들었다.
그것을 저 멀리서나마 확인한 어린 것은 그 자리에 선 채 복슬복슬한 팔을 들어 올려 화답하듯이 손을 살살 흔들었다.
나름의 인사를 마치자, 아이는 곧바로 어딘가로 달려가기 시작했다.
그의 뒷모습은 석양을 받아 잠시 일렁이다가, 이내 작은 점이 되어 학교 너머로 사라져 버렸다.







그나마 따뜻한 온기를 느낄 수 있었던 아이를 떠나보낸 탓일까.
조금 전까지 엄습해오던 쓸쓸함은 배가 되어 파도처럼 밀려들었다.
그렇잖아도 답답한 기분은 모래라도 뒤집어 쓴 듯 한없이 낮게 가라앉았다.
이제 내게 남은 것이라고는 거대한 플라타너스 나무밖에 없었다.
시골에서 살았던 어린 시절, 당시의 나로선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잡념이 생길 때가 있었다.
그런 잡념의 대부분은 가족 간의 불화로부터 비롯된 것이었으며 어린 아이의 애교로도 막을 수 없는 싸움이 존재하기 마련이었다.
그럴 때마다 나는 아무런 생각 없이 마당에 있는 나무에 기어오르곤 했다.
남들보다 높은 자리에 올라서서 마치 인형사라도 된 것처럼 두 검지를 휘저으며, 내 손가락질대로 모두 움직이면 좋겠다는 철없는 생각을 주워섬겼던 기억이 망각의 장막을 걷고 시나브로 되살아났다.



그래, 지금 이 시간이야말로 나무를 탈 시간이다.



막연한 자신감이 불끈 솟아올랐다.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일이 생겼으니, 예전에 했던 대로 나무를 타보고 싶었다.
나는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핀 뒤, 겁 없이 나무에 달라붙었다.
이곳저곳 가지가 깔끔하게 잘려나간 플라타너스 나무는 곳곳이 손잡이가 되어주는 덕에 딱히 오르기 어려운 종류는 아니었다.그러나 이 나무는 학교에서 제일 늙은 연장자답게 쉽게 오를 기회를 넘겨주지 않았다.수인도 힘겹게 올라가는 나무인데 나같은 평범한 인간이 쉽게 올라갈 수 있을 리가 없었다.
그러나 고진감래라고 하였던가, 나는 아까 전에 보았던 아이의 실수를 반면교사 삼아 드디어 나무 위까지 오를 수 있었다.
나는 승리자를 위해 나무가 내어준 평평한 공간에 엉덩이를 붙인 채 볼을 타고 흘러내리는 땀방울을 바람에 실어 보냈다.십수 년의 세월이 지났어도 나무를 정복했다는 묘한 쾌감은 예전과 다를 바 하나 없었다.



나는 정복자다.

이 순간만큼은 난 누구보다 높은 곳에 앉아있다.


나는 승리의 편안함을 조금이라도 더 만끽하기 위해 될 수 있는 한 편안한 자세를 취하려 애썼다.
출처모를 인형을 발견한 것도 바로 그 행동 덕분이었다.
처음엔 엉덩이 한쪽에서 느껴지는 울퉁불퉁한 것을 그저 나뭇가지라 가정했지만,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그것은 나뭇가지 따위가 아니었다.
어설프지만 갖출 것은 앙증맞게 갖추고 있는 작은 인형이었다.
나는 그것의 머리 부분을 움켜쥔 뒤, 저 멀리 던져버리기 위해 팔을 뒤로 뻗었다.


### : ... 가만...


무작정 그것을 던지려 손을 뒤집은 순간, 나는 인형 뒷통수에 붙은 작은 부적을 발견했다.
조잡하게 그려진 부적은 금방이라도 떨어질 듯 덜렁거리고 있었다.
부적 자체가 학교에서 볼 만한 물건은 아니거니와, 조금 전에 필사적으로 나무를 오르려 하던 아이의 모습이 자연히 포개졌다.
그러자 이것이 보통 물건이 아니라는 생각과 함께, 아이가 나무에 집착한 이유가 이것이라는 직감이 등줄기를 오싹하게 훑었다.
일단 이것이 그 아이가 찾던 물건이 맞다면 함부로 인형의 자리를 옮기는 것이 파렴치한 행위가 되겠지만, 그렇다고 그대로 두자니 아이가 또 나무에 오를 것 같아 겁이났다.
고민을 해결하러 올라왔더니 오히려 혹 하나를 더 붙인 셈이 되어버렸기에, 나는 곤란한 표정으로 망부석처럼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한참동안 고민을 이어간 끝에 나는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선의를 보이기로 마음먹었다.
먼저 재킷 안주머니에 있는 포스트잇을 꺼내 들고, 난잡한 글씨로 \'찾는 것\'이라는 단어를 써 넣었다.
그리고 그 종이를 인형의 머리에 꼼꼼히 붙인 뒤, 나무 아래로 그것을 떨어뜨렸다.
나중에 아이가 다시 오더라도 나무를 타지 않아 좋고, \'찾는 것\'이라 써 넣었으니 누가 함부로 가져갈 일도 없었다.
나는 나뭇 가지가 부러지지 않도록 조심스레 밟아가며 도로 땅에 내려왔다.
쓸쓸함이 완전히 가신 것은 아니었으나, 마음 한 구석에 따뜻한 기운이 샘솟는것 같아 적잖아 위로가 되는 것만 같았다.

혹시 그 아이가 인형을 보고 내가 그 선행을 베풀었다는 것을 깨달으면 좋으련만.

나는 작은 기대를 마음 속에 품고, 시린 두 손을 주머니에 찔러넣은 채 집으로 향했다.





일단 대본부터 써넣고 나중에 살릴거다

2년 전에 쓴 초안 보니까 끔찍하기 짝이 없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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