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650GS를 타고 양주에서 마산으로
오후 9시 30분, 나는 지인의 F650GS를 가지러 KTX에 올라 서울로 향하였다. 기차안은 매우 따뜻하였다. 다음날 닥칠 폭풍전야의 고요함인지 알 지 못한 채로 기대감 반 설렘 반을 가지고 복귀 루트를 상상해보았다. '양주에서 포천, 의정부, 서울, 대전 방향으로 계속 내려오면 되려나... 이정표만 보고 올 수 있겠지?' 네비게이션을 쓸 생각은 없었다. 시간은 많았고 로망은 넘쳤다.
00시 17분에 서울역에서 하차한 뒤에야 지하철이 끊긴것을 알았다. 내일 오전10시까지 양주에 도착하여야하는데, 지하철은 동묘앞역이 종점이었다. 하는 수 없이 동묘앞역전의 사우나를 찾아 잠을 청하기로 하였다.
사우나의 신발장은 라이더에게 자비를 베풀지 않았다. 부츠도 락커룸으로 넣어야 하고 헬멧도 넣으니 테트리스를 하는 기분이 들었다. "와 아저씨 짐이 다 들어가네요?" 옆에서 자신의 짐을 다 넣지 못하는 등산객 차림의 남자가 말을 걸어왔다. "네 어떻게 하니까 짐이 다 들어가긴 하네요." 남자의 짐을 보니 쉽게 들어갈 부피가 아니었다. 도와줄 기력은 없었기에 적당히 대꾸하고 나는 탕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친구랑 헤어진 이후로는 당분간 중부지방에 올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런 기회로 서울 땅을 밟게될 줄은 생각하지 못하였다.
양주는 내가 군생활을 한 포천에서 바로 옆에 붙어있는 곳이었다. 운전병 출신인 나는 양주랑 포천, 의정부 쪽 길을 자주 다녔기 때문에 길을 잘 아는 편이었다. 오랜만에 양주에 들러보니 5년전의 군생활이 기억이났다. 다시 보고 싶은 사람들이 몇명 생각났지만 갈길이 멀기에 아쉬움을 뒤로 한 채 발걸음을 돌렸다.
'덕정역에서 우측으로 10분거리라고 했는데...' 10분쯤 걷다보니 한스델리라는 간판이 보였다. 주차장쪽으로 가니 판매자분이 이미 나와 계셨다.
"안녕하세요!" 복장 덕분일까 멀리서 나를 알아보시고 먼저 인사를 건네주셨다. 30대 초반쯤 되 보이는, 남자다운 얼굴을 가진분이 웃으며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타지에서 사람을 만나게 되어서인지 반가운 마음이 커, 나도 소리를 높여 인사하였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판수형님이 말씀 하셨어요, 2종소형 강습 하시다가 알게되셨다면서요? 저는 라오스에서 만났습니다." 아. 판수님께서 말하신 라오스에서 만났구나 싶었다. "네 라오스 이야기 많이 들었습니다. 그렇게 좋은 곳이라면서요?" 듣기 전까지는 어디인지도 알 수 없는곳이었는데 설명을 듣다보니 나도 가보고 싶다는 생각이 날 정도로 아름다운 묘사가 가능한 곳이었다.
"식사 안하셨죠? 어떻게 식사라도?" 식당을 운영하시고 계신분이라 음식을 대접 해 주시겠다고 하셨다. 나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고, 식사를 못한지 오래 되었다. "예 그럼 사양않고 신세 지겠습니다." 철면피 기질이 다분한 나는 사양하지않고 식당 안으로 들어갔다.
체인점일까, 한스델리라는 상호를 몇번 본 적이 있기 때문에 금새 어떠한 유형의 가게인지 알 수 있었다. 나는 이런 가게에 자주 오지 않는쪽에 속하였다. 음식 종류들이나 분위기는 마음에 들지만 혼자나 남자랑 같이 밥을 먹기에는 오기 힘든곳이었다.
메뉴를 보고있자니 사장님께서 말씀하셨다. "지금은 아직 오픈 준비중이라서 가능한 메뉴가 많이 없어요, 덮밥 종류는 가능합니다." "그렇다면 자극이 약한 덮밥으로 부탁드리겠습니다." 라이딩용 가죽팬츠를 입은 채라 배가 아프게 된다면 상당히 곤란하다. 안그래도 400km이상의 장거리인데 배까지 아프게 된다면 제시간에 가지 못할 것 같았다.
"그럼 커피라도 한잔 하시고 기다려주세요." 사장님이 내어주신 커피를 마시고 있으니 아르바이트생이 출근 하였다. 긴 생머리를 가진 그녀는 20살 초반정도쯤 되었을까, 미모로 인하여 계속 시선이 가게만드는 사람이었다. 그녀가 일하고 있는 것을 보고있자니 문득 내 복장이 부끄러워졌다. '이런 음식점에서 이런 복장은 이상하겠지...' 잘 보일 필요는 없겠지만, 그렇다고 추잡스러운 사람으로 보이기는 싫었다.
닭고기가 올려진 먹음직스러운 덮밥이 나왔다. "많이드세요." , "네 감사합니다, 이렇게 대접까지 해 주시고. 잘 먹겠습니다." 공짜로 음식을 먹는 만큼 맛있게 예의를 갖춰서 잘 먹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천천히 맛을 음미하면서 가게 구경도 하며 식사를 하였다. 닭고기도 많이 들어있고 양념도 강하지 않아 원하는 메뉴임이 틀림 없어서 정말 맛있게 먹을 수 있었다.
밥을 먹으면서 사장님께 '아르바이트생이 정말 예쁘네요.' 하고 말하자고 생각하였지만 끝끝내 말 하지 못하였다. 왜 그랬을까, 심적으로 부담이 되었던 것일까.
식사후 연초는 불로장생이라 자기합리화를 하며 담배를 태웠다. "내려가시는길 조심하세요. 멀리 가셔야 하는데 춥지 않겠습니까?" 사장님께서 염려스러워 하셨다. "괜찮습니다. 제 바이크로는 하루에 800km씩도 잘 달립니다." 아직은 젊다는 것을 표현하고 싶었다. "그런데 나이가 어떻게 되십니까?" 사장님께서 물어 보셨다. "저는 올해 26살입니다." "아, 나이가 보기보다 있으시네요. 저는 40입니다." 나이가 보기보다 있다는 것은 생각보다 어리게 보였다는 것일까. "사장님도 상당히 동안이십니다. 저는 30대 초중반쯤으로 봤습니다. 사람의 나이를 쉽게 가늠하지 못한다고 하지만, 제 주변에 같이 바이크를 타는 사람들 대부분이 30대 초중반이라 그 나이대의 사람들은 잘 맞춰지던데 말이죠" 나는 진심으로 놀라하며 말했다.
"그럼 저는 장사 준비를 해야해서 들어가보겠습니다. 조심해서 가세요." "예 다음에 올라오게 된다면 꼭 한번 들르겠습니다." 사장님께 인사를 하고 아르바이트생에게도 인사를 하였다. "그럼 수고하세요~" "안녕히 가세요." 웃는 얼굴도 상당히 예뻤다. 아마 다음번에 올라오게 된다면 아르바이트생을 보러 한번 더 오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F650GS의 시동을 거니 도로롱 하는 단기통 빅싱글 피스톤 엔진의 우렁찬 엔진음이 들려왔다. '생각보다는 씨끄러운데.' 예열을 하며 장비를 착용하였다. 주차장의 곳곳에 얼음이 있었지만 기온은 낮지 않았다. 냉기보다 열정이 더 뜨거워서일까. 장비를 착용 하고나니 춥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클러치를 살짝 연결해보니 가벼운 토크감이 바이크를 움직였다. 스로틀을 조금만 쥐었을 뿐인데 '도로롱'하며 가벼운 느낌으로 출발하였다. '아 이게 미들급 단기통의 매력이구나.' 오로지 재미있겠다는 생각만 들 뿐이었다. 오전11시, 시간도 꽤나 여유로웠다. 익숙한 도로가 눈앞에 펼쳐지니 가볍에 마실나온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포천으로 향하는 터널을 지나며 생각했다. '여길 매주 월, 수, 금요일에 지났었지.' 송우리를 지나 아파트 단지 옆의 고등학교를 보니 운전병시절 여고생에게 인사를 받았던 기억도 떠올랐다. 불과 전역한지 4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꽤나 아련한 추억으로 남은 군생활이 생각이 났다.
그렇게 예전에 다니던 길을 한참을 달려 서울에 진입하였다. 서울부터는 길을 아예 모르므로 이정표만 보고 갈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서울의 이정표는 친절하지 않았다. 알 지 못하는 지명들만 잔뜩 써놓았을뿐, 나는 국도의 번호만 보고 갈 수 밖에 없었다. '홀수 번호의 국도는 상하, 짝수 국도의 번호는 좌우를 표시하는 것이었지.'
무작정 홀수 번호의 국도로만 달렸다. 서울 시내를 빠져나오는데 얼마나 걸렸을까. 시계는 이미 오후 1시 30분을 가리키고 있었다. 광주시로 빠지는 3번국도를 발견하고 기쁜 마음에 무조건 3번국도로 내달렸다.
휴대폰의 배터리가 방전되었다. 이정표만 보고 가면 자유로운 느낌을 받을 수 있었기에 네비게이션이랑 차이가 난다면 얼마나 나겠냐는 생각을 갖고 있었기에 충전없이 청주까지 내려갔다. 청주대학교 앞의 한 편의점에서 휴대폰 배터리를 충전하고 지도를 보니 상당히 길을 헤메면서 내려온 것을 알 수 있었다. 슬슬 체력도 떨어지기 시작하였고 날도 어둑어둑해지기 시작하였다. 출발을 하기위해 시간을 보니 오후5시, 곧 해가 질것을 예상하고 헬멧의 쉴드를 클리어 쉴드로 교체하였다. 청주대학교 앞에는 예쁜 여학생들이 많이 지나다녔다. '나는 왜 예쁜 여자만 눈에 보이는 것일까.'
네비게이션을 켰더니 5번국도 방향으로 안내하였다. 나는 온길을 30분정도 그대로 되돌아가야했다. 10분쯤 달리니 외곽으로 빠지는 길이 나왔는데 그 길은 지옥이었다. 경사가 심한 숏코너가 많은 와인딩코스 수준이었다. 그런 길이 눈도 녹지 않았고 눈 뿐만아니라 빙판조차 깔려있었다. 애초에 다른 바이크라면 지나갈 생각을 하지 않겠지만 'GS니까' 하고 지나가보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그런짓은 하지 말아야 했었다.
발을 땅에 내리고 가다가 생각보다 접지력이 있다는것을 느끼고 속도를 조금 올려보았다. 슬라이드를 하며 주행을 하니 추운것조차 모를 정도로 심하게 긴장이 되었다. '절대 넘어질 수는 없지.' 몇번 넘어질뻔 하였지만 땅을 발로 차서 위기를 모면하기도 하였고, 넘어지기 직전에 간신히 버티기도 하였다. 그런 길을 30분쯤 달렸을까. 쭉 펼쳐진 도로가 나왔고 도로는 다 말라 있었다. 지옥과 같은 산길이 끝이 났다는 생각에 신나게 달리려 하였지만 이미 해가 다 지는바람에 빠르게 달릴 수 없었고 상상이상으로 누적된 피로와 추위는 몸을 제대로 가누지도 못하게 하였다.
충전시켜놓았던 배터리도 어느새 다 닳아 네비게이션이 꺼졌다. 다행히 몇 번인가 지났었던 33번 국도를 달리고 있었다. 우측은 호수가 있었고 가로등은 없었다. 중속코너가 연속으로 펼쳐진 와인딩코스였는데 슬립이라도 하는 날에는 동사할 것만 같았다. 그러다 갑자기 우박이 내리기 시작하였다. 처음엔 비인줄 알았는데 쉴드에 묻질 않았고, 눈이라면 '따닥, 따닥' 하는 소리는 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우박 또한 미끄러운 노면의 주 원인이기에 긴장하지 않을 수 없었다.
공포감이 엄습해왔다. '넘어지면, 죽는다. 어떠한 사유던 간에 죽게 될 것이다.' 우박이 시야의 절반이상을 가렸을 때, 생과사의 경계에 있다는 것이 실감났다. 헤드라이트는 전방 10M 정도 밖에 비춰지질 않았고 차량통행은 없었다.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고 사람의 흔적은 앞으로 1시간은 더 달려야 보일 것이라는 생각이 정신을 지배했다. 정신과는 반대로 몸은 침착하게 주행하고 있는것이 신기하였다.
육체의 추위는 공포심에 밀려 느낄 새가 없었다. 한참을 정신없이 달리다보니 우박이 그쳤다. 노면이 많이 미끄럽지 않은 것을 눈치 챈 뒤에는 보이지 않더라도 속도를 올려 주행하였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고라니가 튀어나왔다. 경음기를 울리며 있는대로 브레이크 레버를 쥐었다. 다행히 충돌하지는 않을 정도로 제동이 되었고 고라니는 자신이 있던 담위로 다시 도망갔다. 만약에 충돌하였다면 어땠을까, 심장이 빨리 뛰는것을 느끼며 쉴 틈도 없이 계속 주행하였다.
고령에 진입하니 시간이 오후8시쯤 되었다. 교차로에서 신호대기를 하며 몸의 상태를 체크 해 보려고 하였지만, 이미 판단할 수 있는 정신상태가 아니었다. 시간이 늦어 빨리 도착하고 싶었으나 고령에서는 1시간30분 가까이 더 달려야 도착할 수 있었다. 교차로의 우측에 있는 파출소를 발견하고 나는 파출소로 몸을 옮겼다.
"실례하겠습니다. 죄송하지만 몸좀 녹이다가 가도 괜찮겠습니까?" 파출소에 들어가니 경찰관들의 시선이 일제히 집중되었다. "예, 그러세요." 경찰로서 시민에게 친절을 베풀 수 밖에 없는 입장을 이용한 것 같아 마음이 불편하지만 몸의 상태를 생각하여 민폐를 끼치기로 하였다. "그럼 폐좀 끼치겠습니다."
몸의 상태는 상상이상으로 심각하였다. 손가락의 감각은 사라진지 오래고 체온 자체도 상당히 떨어진 것 같았다. 난로를 끌어안았다가 위에 앉았다가 옷을 데우고 입었다가 하면서 별짓을 다 했지만 시린 감각은 사라질 생각을 하지 않았다.
"떡 좀 드세요." 경찰관 중 한명이 테이블을 가리켰다. 테이블 위에는 절편과 귤, 두부김치가 있었다. "자율 방범대에서 보름이라고 음식좀 가져왔습니다. 저희는 이미 많이 먹었기 때문에 다 드셔도 됩니다." 눈치보는것을 배려 하듯 말해주셨다. "그럼, 염치 불구하고 감사히 먹겠습니다." 이번 투어에서 벌써 음식만 2번째 얻어먹었다. 식비가 굳어 좋지만 이러다가 빈대근성이 생기는것이 아닌가 조금 걱정되었다.
몸이 녹을 기미가 보이지 않았지만 더 이상 시간을 지체 할 수 없기에 억지로 출발하기로 하였다. "신세 많이 지고 갑니다. 정말 고맙습니다." 경찰분들에게 인사를 하고 차가운 거리로 다시 나서니 남은 거리가 생각났다. 80km... 대략 1시간30분이면 도착 할 것이다. 집에 가까워졌다고 생각하니 조금은 힘이 났다.
바이크 특성상 장거리 주행이 굉장히 피곤하였다. 출렁거리는 앞 서스펜션과 단기통의 진동, 스크린이 없는듯이 짧아 주행풍이 빗발치고, 도로 흐름을 따라가려면 가속력도 편안한 수준이 되질 못했다. 체력을 갉아먹으며 정신력으로만 버티고 버텨서 5번 국도에 진입하였다. '5번국도다.' 마치 동네에 와있는 듯한 친숙한 분위기가 매우 반가웠다. 5번국도는 수십번도 더 다녀본 익숙한 길이다.
점점 집이 가까워 지는것이 체감이 되며 함안에 진입하고나서는 조금 더 속도를 올려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대기어의 마모가 심하여 자꾸 체인이 대기어에서 슬립하였다. 앞브레이크는 레버를 끝까지 당겨도 제동력이 강하지 않았다. 패드가 다 되어 밀어야 하는 공간이 늘어난 것같다.
상태가 좋지 않은 바이크를 가지고 벌써 3번을 주유하며 달려왔다. 길을 많이 헤메어 대략 500km이상 주행을 한 상태이다. 몸은 지칠대로 지쳐있었다. 마산에 도착하니 오후9시30분, 출발한지 10시간이 지난 시간이었다. 몇번이나 생사의 경계를 헤메고 몸의 상태를 자가진단 할 수 없을 정도로 정신이 피폐해져있었다.
집 근처의 산애들애라는 술집에서 석원형을 만났다. "야이 미친놈아, 너는 진짜 도라이다." 양주에서 내려왔다고 하니 다짜고짜 욕을 들었다. "뭐?, 재용이 오토바이 타고 양주에서 왔다고?" 이모와 사장님도 한껏 욕을 해 주셨다. "니 그라다 죽는다. 아이고 재용아." 구수한 사투리로 욕을 한사발 먹고나니 객관적으로 생각 할 수 있게 되었다. '체인이 대기어에서 슬립하고, 뒷타이어 마모가 심하고, 앞 브레이크 패드가 다 되어가고, 헤드라이트는 어둡고, 우박도 맞으면서 500km를 달려왔구나... 제정신이 아니긴 한가보다.' 근성의 승리라고 하고 싶었다.
석원형이 사준 라면을 다 먹고나니 어느정도 기력이 회복되었다. 오늘만 벌써 3번째 음식을 얻어먹는다.
떨어진 체온을 올리려 자연스럽게 몸이 떨려왔다. 일시적으로 틱 장애가 온 것 처럼 엉덩이 부터 등골까지 저려오며 머리까지 찡 하고 울릴정도로 몸을 떨었다. 주변 사람들이 안쓰러운듯이 쳐다본다. 하지만 무언가를 해냈다는 것에 기분이 매우 뿌듯하다. 혹독한 환경 속에서 좋지 않은 상태의 바이크를 사고 없이 잘 달린것은 내 경험이 될 것이다.
술자리에서 침을 튀기며 말 할수 있는 재미난 에피소드가 또 하나 늘었다고 생각하며 나는 F650GS를 타고 세차장 멤버들이 모여있는곳으로 갔다. 많은 사람들이 반겨주니 피곤함도 잊은채 진해루에도 같이 갔다가. 상남동까지 밤의 거리를 같이 달렸다.
F650GS를 세차장에 세워놓고 R1100RS로 바꿔타니 졸음이 밀려왔다. '아, 내 바이크가 투어러는 투어러인가 보구나' 온몸의 피로도가 주행에 지장을 주지 않는 편안함이 마치 집에온것만 같았다. 새삼스럽게 내 바이크가 예뻐보였다.
그렇게 험난한 여정을 마치고 집에 도착하니 근성이 한단계 상승한 기분이 들었다. 샤워를 하고 오늘 느낀 GS의 감각을 잊기도전에 잠이 들었다. 잠이 들면서도 나는 라이더라는것을 잊지 않았다.
'내일, 바이크 타야지.'
출처 : http://www.onroadzone.com/zboard/view.php?id=freeboard&no=95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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