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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에서 가장 막장 지역 막장 민족
범죄율도 어마어마하지만 타국가로 탈출러쉬, 내전, 성범죄, 납치어린 소녀들 상대로 인신매매,성매매,매매혼 비율도 극심함 (넷플릭스 성풍속도 가나편 참고)허나 유럽으로 탈출러쉬 시도하는건 99% 죄다 시커먼 젊은 사내들뿐이걸 전 ufc 선수 은가누가 개인 sns에 올리면서 이를 마치 숭고한 여정처럼 얘기하는데현지 사람이 보기엔 그저 혐오스럽게 생긴 그지새기들 뿐임 아무리 역사적 과오가 있다한들언제까지 수십 수백만명의 타민족을 먹여살려야 하는가아프리카 인구는 지금도 빠르게 늘고있어서 대부분 나라들이 20~30년만에 인구가 2배특히 범죄를 아무렇지않게 여기고 우리나라와서도 이태원 마약왕 사건,지금도 스캠범죄 등 전세계적으로 범죄로 악명높은나이지리아 얘네들은 02년도부터 인구가 1억이 늘음 ㅋㅋ참고로 대한민국이 그동안 인구가 400만 늘었는데 이중에 200만이 이주자,외국인들임유럽이 터져나가고 선진국 압박에 언젠간 우리도 저것들을 강제로 받아들여야만 하는 때가 올지도 모른다는거임그중엔 이태원,스캠 나이지리아 애들처럼 쓰레기들도 섞여 들어오겠지 지금도 계속해서 들어오는데 뭐https://youtu.be/p6PqdcWSwzI지금 중국인? 동남아? 중앙아시아? 인도?? 다문화 극도로 싫어하는 놈들도 얘네 본격적으로 들어오면 아 지금이 좋았구나 할거임 그래도 지금은 대부분 선량하게 일하는 외노자들이고 건설현장,중소기업 외노자들 중에 흑인 본적있냐?울집 근처 흑인 유학생들 죄다 여자나 꼬시려고 기웃거리고 길거리에 아주 여자 쳐다보면서 말하는데 여념이없더라흑인들은 동아시아 국가는 그저 유흥이나 여자 혹은 패스포트브로 목적이지 절대 성실하게 일하려고 안온다저 아프리카 애들이 대거들어오면 잘도 관리되겠다 그나마 유럽은 우파 세력도있고 피지컬좋고 자기지역 지키는 든든한 남자들이 있어서 망정이지반도애들 기질도 약하고 쌈도못하는데 가장 중요한건 인종차별 몰릴까봐 흑인 눈치나보지정말 문제가 생겨도 물리적으로 대항하거나 공권력조차도 제대로 작동안한다는게 현실임 십수년전 이태원에서 두들겨맞던 경찰이 이젠 잘도지켜주겠다?아 젊은여자들은 좋을지도 모르겠네 이성을 만나는데 있어 또하나의 별미일지도 모르니 혹은 ㅎㅌㅊ 여자들은 본능적으로 조금이라도 자기에게 관심가져주는 냄져들 숫자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 걍 신경안쓸지도 얘네들은 극혐인게 무슬림만큼이나 집단성이 강하고 백인 못지않게 우월의식이 강하단거임https://youtu.be/2z_oFEPHsF4한국정부 도움받아서 한국에서 유학생활하고 한국에서 활동하는 흑인유튜버인데 (공교롭게도 이놈도 나이지리아출신)이새기 조나단,김동현이랑 같이 유튭채널에 나온적도 있고 아무튼 꽤나 대형유튜버인데은근히 한국 까는걸 유도하는 영상을 만듬. 이새기가 만든영상이 그럴의도가 아니더라도대부분 흑인유저들 타겟으로 만든 영상이고 그 유저들이 인종차별적인 댓글을 단다는거임저 딱 두영상에서 발췌한 댓글인데...많은 나이지리아 남자들이 한국에서 여러 한국여자 거느린다고 함진짜 ㅋㅋ 허언인지 바램인지 중요한건 대만 중국 일본에선 이미 흑인남자들 바램대로 되어가고있긴함 언제까지 지속할진 의문이지만이런데도 흑인들 있는데서 혹은 흑인커플들 지나갈때 성적인거나 성기로 수군덕거리면 찌찔한놈이라고 욕하나?적어도 루저 병신 흑인남자들 스스로가 원했던 이미지고 늬들이 자처한것도 있는데같이 사귀는 여성에겐 미안한 말이지만 어느정도 견뎌야 하는게 맞다 늬들이 자처한거임근데 항상 이런 문제는 여초에서 한국남만까고 흑인을 오지게 비호하더라 아주 ㅈ같이 불공평한 세상이지심지어 저 인터뷰영상에 성기드립 치는애 지금 틱톡에 쪼꼴렛부부라고 한국여자랑 버젓이 대놓고 영상찍는 놈임거기서도 아니나다를까 성기드립 치는 댓글이 올라왔고 거기엔 또 더럽고 추하다고 한남 싸잡아 비하하는 댓글이 올라옴아니 흑인 성기드립은 도대체 누가 먼저 시작한거고 누구에게 피해가 가는거지? 한국여자 그거 알면서도 사귄거 같더만 내가인지 시켜줬으니그럼에도 사귄다면 감수해야 하는거 아닌가 늬들이 원했던 이미지잖아?그리고 아예 한국 비하하는 댓글도 있음진짜 꼭 이런거 올리고 낄낄대고 나치적인 댓글다는 놈들 죄다 처음에 소개한 저 서아프리카 출신 놈들임애초에 노예사냥(흑인이 흑인을 잡아다 팔음) 처음 시작한게 서아프리카 애들이고 북미에 건너간애들도 전부 이쪽애들임저기에 장단맞춰 놀아난 한국여자들은 저 비하댓글 마땅히 받을만해 이렇게 흑인들이 아무리 잘못을 해봤자 이런걸 지적하는 한남인 나만 욕먹고 언제나 흑인은 동정받고 옹호받는 집단이란게 존나 아이러니하고 불편한 현실임저것들, 최소한 저런 댓글이나 쓰고 패스포트 브로 쓰레기들은 내가 이땅에 살아있는한은 그냥 눈뜨고 지켜보지만은 않을거다내가사는데도 외국인 밀집지역이라 택시비 안내려고 뻐기는 러시안놈 1명이랑 여대생 희롱하는 아프리칸놈 1명 여기 10년정도 살면서 몸싸움하고 도와준적 있다쓰레기들이 들어오면 들어올수록 보럄차게 내가 할일이 많을수는 있겠네제발 저 쓰레기들까지 싸잡아서 흑인이라고 옹호하지 말자 ㅈ또 모르면서 옹호하는 것들은 저새기들한테 걍 몸대주고 이태원에서 마약나르던 한국와이프 한국여친처럼 당하고 나중에 질질짜지나 말고더군다나 요샌 무슬림+흑인 혼종들이 늘어나고 있는 추세고 ㅅㅂ 같잖게 인권,동정 ㅈㄹ하는것들은늬들 여동생,와이프 다 내주고 곳간도 내주고 해라 병신 ㅆ새기들아방금 생각났는데 또 조옷같은건 여초,인권 이새기들은 무지성으로 백인을 악으로 규정하고 흑인은 선 처럼 여기고 옹호한단거지현실은 그 반대가 더 많은데, 여성시대글 코로나 75% 백인 동양인 인종혐오 범죄 키워드로 검색해봐라복붙에서 똑같은글이 수십개가 돌아다닌다 아무리 흑인들이 동양인 패고 죽여도 얘네들은 그저 백인들이 나쁜거야!!! 우기고 싶어서통계를 날조까지하면서 그것도 지들이 그렇게 싫어하는 국힘 언론 조중당 기사를 근거로 주구장창 떠드는데아시아인 패는 흑인 영상 공포…백인의 '가스라이팅'이었다 | 중앙일보혹시나 관심있는 사람만봐라 얘네들이 우기는건 1994~2014년 통계임 장난하나 ㅋ 그시절엔 백인 인구가 70~80%쯤 됐을거다최근에 우리가 논하는건 코로나때 동양인 인종혐오 범죄를 말하는건데 병신새기들 그것도 무지성으로 빨고있음내가찾은건 https://www.voanews.com/usa/anti-asian-hate-crime-crosses-racial-and-ethnic-lines 중간에 영어원문을 해석하자면...[혐오와 극단주의 연구센터가 분석한 뉴욕경찰청 자료에 따르면 2020년 반아시아 혐오 범죄가 전년 대비 9배 가까이 급증한 뉴욕시의 경우 지난해 이들 공격과 관련해 체포된 20명 중 2명만이 백인이었다. 11명은 흑인이었고, 6명은 백인 히스패닉계, 1명은 흑인 히스패닉계였다]그저 백인들 열등감 있어서 흑인 범죄만 흐린눈하는 저 개 병신 민족반역자 같은 여성시대 쓰레기들은 그냥 길가다 흑인들에게 범죄당해도 싸다아무튼 나는 내 자녀 내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저 흑인 쓰레기들은 곱게 못보겠다 내가 인종차별자? 그럼 저 흑인새기들도 마찬가지고그리고 중요한거 한가지 페미니즘 이론대로라면 약자가 강자를 혐오할 수 없다동양인(약자)인 내가 내식구 내주변 사람들 내 이웃들을 위해 상대적으로 강자(흑인) 들을 경계하고 비하(팩트) 하는건 혐오가 아니다 그리고 우리나라에서 조선족,중국 혐오가 용인되는것처럼 인종이 아닌 '서아프리카' 라는 지역을 명시했고흑인들중에 저런 히틀러같은 우월주의 의식이나 집단성을 가진 흑인을 혐오 아니 경계하는거다 흑인보다 약체인 동양인은 인종차별자 면역이라고 ㅗㅗㅗ 찔린 블랙 아웃
작성자 : 미르고정닉
115년의 시간을 품은 론진 회중시계, 그리고 어느 독일인의 이야기
1. 도쿄에서 만난 낡은 회중시계며칠 전 일본 도쿄의 나카노 브로드웨이에서 빈티지 시계의 성지라 불리는 잭로드(Jackroad)를 방문하였다. 그곳에서 우연히 나의 시선을 멈추게 하는 시계 한 점을 발견했다. 바로 단정한 흰 다이얼의 오래된, 하지만 깔끔한 론진(Longines)의 회중시계였다.나는 매장 직원에게 이 시계를 자세히 보여주기를 요청했고, 그는 나에게 영어가 가능한 다른 직원을 데려오겠다고 잠시 양해를 구했고 몇 분 후 그의 도움을 받아 이 시계를 자세히 볼 수 있었다. 그 직원은 이 시계의 정확한 생산·판매연도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대략 1800년대 후반에서 1900년대 초반 연식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시계 판매 카드에는 아래와 같이 씌어있었다.LONGINES ポケットウォッチ 手巻き Cal.- VINTAGE 稼働はしますが精度保証はございません ※ノンメンテナンス 現状でのお渡しになりますので、ブレスレット調整は行いません。あらかじめご了承の程、お願い申し上げます。こちらの商品は保証適応外となります (작동은 하지만 정확도를 보장할 수는 없습니다. ※ 정비하지 않은 현 상태 그대로 인도하므로 줄 조정은 하지 않음을 양해 바랍니다. 본 상품은 보증이 적용되지 않습니다.)시계 전면부 덮개 외부는 임금 왕(王)자와 대문자 G가 합쳐진 듯한 문양이 새겨져있었다. 그리고 그 덮개를 열면 내가 쇼윈도에서 가장 먼저 보았던 깔끔한 흰색 애나멜 다이얼에 고전적인 아라빅 넘버 인덱스, 6시 방향의 스몰세컨핸즈와 Longines가 선명하게 새겨진 단정한 다이얼을 볼 수 있었다.그러나 진짜 이야기는 케이스 안쪽에 숨어 있었다. 전면부 덮개 안쪽을 둘러싼 원형의 문구에는 이렇게 새겨져 있었다.Gutehoffnungshütte Aktienverein für Bergbau und Hüttenbetrieb Oberhausen(오버하우젠의 구테오프눙스휘테 광업 및 제련 주식회사)그리고 중앙부에는 아래와 같이 씌어져 있었다. Herrn Johann Jansen – In dankbarer Anerkennung für 25 jährige treue Dienste(요한 얀센씨에게, 25년간의 헌신적인 근속에 대한 감사를 표합니다)이 짧은 문구만으로도 시계의 정체가 명확해진다. 이 시계는 독일의 대표 공업지역인 루르지방 오버하우젠에 위치한 구테스오프눙스휘테라는 광업 및 제련회사가 요한 얀센이라는 노동자에게 25년 근속을 기념하여 수여한 상품이었다. 후면부 덮개를 열면 에른스트 프란칠론(Ernest Francillon)이 1866년 자신의 이름을 따 만든 회사명 EF & Co.과 함께 이미 브랜드로 쓰이던 Longines가 병기돼 있다. 론진의 창업자는 오귀스타 아가시(Auguste Agassiz)이지만, 그의 조카인 에른스트가 회사를 물려받아 본격적으로 사세를 확장하였으며 당시 새로 지은 공장이 위치한 지역인 Les Longines의 이름을 따 Longines라는 이름을 사용하여 오늘날까지 이어져오고 있다. 심지어 세세한 모양의 변경은 있었지만 날개 모양의 로고도 한 세기를 훌쩍 넘어 오늘날에도 유지되고 있다. 그리고 하단부에는 이 시계가 80% 함량의 은으로 만들어졌음을 뜻하는 0.800과, 이 시계의 고유 일련번호(Serial Number)인 2412842가 새겨져있다. 무브먼트를 덮고 있는 덮개를 열면 이 회사가 파리에서 2회, 밀라노와 브뤼셀에서 각각 1회씩 4관왕 그랑프리를 수상했음을 선전하고 있다. 정확히 무슨 상인지는 알 수 없지만, 아마도 오늘날 워치스 앤 원더스(Watches & Wonders)나 혹은 엑스포와 같은 국제박람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LONGINES4 GRANDS PRIXPARIS - PARIS, MILAN, BRUXELLES 나는 준비해간 루페를 이용하여 무브먼트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내부는 놀랄만큼 깨끗했다. 매장 직원은 내부 부품 모두 (적어도 자신들 매장에서는) 교체를 한 적이 없으며, 자신들이 인지하는 한에서는 순정 부품 그대로라고 설명했다. 도금된 황동으로 추정되는 기본판 위에 내부 덮개에서 확인한 것와 정확히 일치하는 시리얼넘버가와 회사명이 각인돼있었다. 또한 시계의 진동 속도를 조절하는 레귤레이터의 AVANCE(빠르게) – RETARD(느리게) 조절방향 표시까지 또렷하게 잘 보존돼 있었다. 나는 직원의 양해를 얻어 태엽을 감아보았고, 잠시후 우렁찬 째깍 소리와 함께 시계가 작동하기 시작했다. 별 것 아니지만 왜인지 나는 이 순간 아주 잠깐 말로 표현하기 힘든 감동과 놀라움 사이의 묘한 감정을 느꼈다. 유한한 수명을 가진 대신 자가운동이 가능한 생명체로서, 그 반대로 자가 운동은 불가하지만 외부 동력이 주어지는 한 세기를 넘어서도 무한히 작동 가능한 기계에 대해 갖는 상반된 입장의 경이로움 비슷한 무언가였을 것 같다.일단 시계가 작동하는 것은 확인했으니, 간단한 타임그래퍼 측정도 해보았다. 결과는 일오차 +55초, 비트에러 9.9ms, 진동각 224도였다. 비트에러가 다소 큰 편이긴 하지만, 가장 중요한 일오차가 1분 이내로서 당시 기준에서는 실사용으로도 큰 무리가 없는 수준이다. 진동각도 시계의 연식을 고려하면 준수하다. 나는 몇 가지 사항을 추가로 확인한 뒤 이 시계를 구매하였다.2. 시계의 발자취를 따라가다다만, 상점 밖을 나서면서도 여전히 이 시계에 남은 아쉬운 점이 있었다. 당시 회사가 직원에게 근속 25주년이라는 뜻깊은 연도를 기념하여 그의 이름까지 각인해서 선물을 주었다면, 그 해가 몇년이었는지도 함께 새겨주는 것이 상식적이지 않았을까. 물론 스스로의 기억 속에서 그 연도를 인지하고 살아간 얀센씨는 정작 아무런 아쉬움이 없었을 수도 있지만, 이 시계의 정확한 족보를 갖고싶은 나로서는 여전히 풀지 않은 수학문제를 남겨둔 채 책을 덮은 심정이었다. 우선 나는 이 시계에서 입수 가능한 모든 정보, 특히 가장 중요한 시리얼넘버 2412842를 통해 그 단서를 찾아보기로 했다. 다행히 미국의 유명한 중고시계 판매 플랫폼 Bob's Watches의 칼럼에서 론진 시계의 일련번호에 따른 생산연도를 확인하는 칼럼을 발견했다. (Longines Serial Number Lookup: Your Complete Guide: https://www.bobswatches.com/longines/longines-serial-number-lookup)론진은 창업 초기 1870년부터 꾸준히 각 시계 한점한점마다 일련번호를 부여해왔으며, 내 시계 2,412,842는 1910년에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최소한 잭로드 매장 점원의 추정이 크게 벗어나지 않았음은 확인하였다. 그럼에도 여전히 나는 더 정확한 혹은 교차 검증 가능한 정보를 원했다. 다양한 경로로 검색한 결과, 론진은 자체 웹사이트를 통해 시계의 내외관 근접사진을 첨부하여 양식에 맞추어 요청할 경우 자신의 아카이브 내 판매 장부 기록을 회신해주는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다. 얼마의 비용을 청구할지는 모르지만, 일단은 아래 양식을 채워 요청은 해보기로 했다. 혹시라도 기록이 남아 있을까 하는 기대였다. 놀랍게도 단 3일 만에 이메일 답장이 왔다.This pocket watch was invoiced in 1911 to our former subsidiary in Berlin.(이 회중시계는 1911년 베를린 소재 당사의 과거 자회사를 통해 판매되었습니다.)론진의 판매기록 장부를 확인한 결과 이 시계는 1911년 베를린 자회사를 통해 판매된 것임이 확인되었다. 무려 114년 전의 판매 기록이 지금도 남아있는 것이 우선 놀라웠다. 앞서 밥스워치가 정리해둔 일련 번호를 통해 추정된 1910년 생산연도, 론진의 아카이브 장부를 통해 확인한 1911년 판매시점, 그리고 지리적으로도 독일 어느 회사의 장기 근속자에게 주어지기 위해 베를린 매장을 통해 판매된 사실 이 모든 것은 하나의 어긋남 없이 맞아떨어졌다. 기왕 알아본 김에 이 회사에 대한 정보도 찾아보았다. 전면부 덮개 내부에 씌어있던 회사명 Gutehoffnungshütte을 검색해보았다. 우선 구글 화면에서 가장 먼저 눈길을 사로잡은 것은 20세기 초 당시 이 회사의 낯익은 로고였다. 앞서 임금 왕(王)자와 대문자 G가 합쳐진 듯한 문양은 G.H.H를 합성한 표식이었다. GHH는 1782년에 설립된 유서 깊은 광업 및 제련회사였다. 지난 100여년간 수많은 인수·합병·분할을 거치며 그 명칭은 사라졌지만, 일부 사업부는 오늘날 대형 트럭으로 유명한 MAN의 일부에 해당하며, 결국 MAN이 폭스바겐 산하 기업이니 여전히 폭스바겐을 통해 이어지고 있다고도 할 수 있다.3. 마음대로 그려보는 시계와 얀센씨의 여정 루르 지방은 당시 독일 산업혁명의 심장부였다. GHH가 영위하던 광업과 제철은 산업시대 가장 중요한 업종이다. 얀센씨가 이 시계를 받은 1911년은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1914년 보다 시기적으로 조금 앞서지만, 이미 독일은 군비 증강에 열을 올리고 있었고, 루르 지방의 제철소들은 쉴 틈 없이 가동되고 있었다. 그만큼 이 기업도 호황을 맞고 있었기에 당시 기준으로 결코 저렴하지 않은 론진 은제 회중시계를 직원들에게 선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이 당시 론진은 파텍 필립, 바쉐론 콘스탄틴과 같은 최고급 시계 혹은 오메가와 같은 럭셔리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그 다음 티어로서 정밀한 무브먼트와 세련된 디자인으로 엘리트와 고소득 중산층에게 널리 사랑받은 브랜드였다. 몇 몇 통계와 추정치를 찾아본 결과 이런 은제 회중시계는 당시 고소득 기술직 근로자 임금 기준 한 달치 월급 정도에 맞먹는, 결코 저렴하지 않은 시계였다. 2020년대 대한민국 중위 월소득이 300만원 내외이며, 아마도 얀센씨를 비롯한 산업화시대 기술직의 급여는 중위·내지 평균보다 높았을 것이므로 그들의 추정 월급으로 환산하면 오늘날 기준으로도 400-500만원대의 고가 시계임을 알 수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에도 직원들에게 장기근속 포상으로서 수백만원대의 상품을 지급하는 곳은 대기업 중에서도 사실상 없다.이 시계는 탄생한지 100년이 넘는 동안 누구의 손을 어떻게 거쳐서 도쿄 나카노의 상점 쇼윈도에 오르게 된 것일까.증거는 언제나 빈 칸을 남기고, 인간은 늘 그 공백을 견디지 못하여 상상력을 동원해서 이야기로 채우고 싶은 욕구가 있나보다.전후의 혼란 때문일까. 얀센씨는 1911년 근속 기념으로 이 시계를 받은 지 불과 3년 뒤 제1차 세계대전을 맞이했고, 독일은 1918년 패전 후 베르사유 조약에 따라 막대한 배상금을 부담하게 되었다. 당시 정부는 마르크화를 무분별하게 찍어내어 하이퍼 인플레이션을 일으켰고, 많은 독일인들이 그랬듯 화폐가 아닌 이 시계와 같은 실물을 팔아 생활비를 충당했을 수도 있다. 심지어 노년에는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났으며, 중공업 기업들이 밀집한 루르지방은 연합군의 집중 포화를 맞았다. 얀센씨 혹은 그의 후손, 아니 어쩌면 그로부터 시계를 사간 다른 누군가는 이 폭격의 혼란 속에 이 시계를 잃어버렸을 가능성도 있다. 혹은 당시 그 시계의 주인이 독일군 포로였을 수도 있으며. 어느 이름없는 미군 병사가 이 시계를 습득하여 전후 일본으로 흘러간 것일지도 모른다. 시계의 역사를 중심으로 좀 더 잔잔한 스토리로 갈 수도 있다. 1900년대 초반까지 개인용 시계는 이같은 회중시계가 기본이었으며, 손목시계는 주로 여성용으로서 브레이슬릿(팔찌)에 시계를 단 정도의 개념 뿐이었다. 오늘날 우리가 생각하는 현대적 손목시계는 1904년 루이 까르띠에(Louis Cartier, 우리가 아는 그 까르띠에 맞다)가 자신의 친구인 브라질 출신 비행사 아우베르투 산투스 뒤몽(Alberto Santos Dumont)에게 선물한 산토스가 그 시초이다. 그나마도 손목시계가 본격적으로 사용된 것은 참호전이 한창이던 1차 세계대전, 전장에서 시간을 확인하기 위해 가슴에 손을 넣기조차 위험했던 상황 하에 신속하게 시간을 확인하기 위함이었다. 즉, 1910년대 중반 이후 조금씩 회중시계의 시대는 저물고 손목시계의 시대가 도래한것이다.어쩌면 20세기 중반-후반 손목시계의 시대를 살던 얀센씨의 어느 후손은 시대에 뒤떨어진 이 회중시계를 어느 딜러에게 판매했을 수도 있다. 이후 1980년대 일본은 그 유명한 버블경제 하에 넘치는 부를 바탕으로 전 세계의 럭셔리·앤티크 수집 열풍이 한창이었으며, 이 와중에 유럽산 골동품 시계 또한 주요 타겟이 되었다. 어쩌면 이 시계도 이런 경로로 대륙 반대편으로 건너왔을 지도 모른다.마지막으로, 그냥 아무 재미도 없는 버전으로서, 단순히 옛 것을 좋아하는 일본인의 취향에 따라 일본의 중고시계상이 여러 경로를 통해 유럽 시계를 매입하여 마진을 붙여 나에게 판 것일 수도 있다. 실제로 잭로드는 세계적으로도 유명한 글로벌 중고시계 유통상이다.이런 거시적 시대의 흐름에서 줌을 확대하여 인간 얀센씨는 어떤 인생을 살았을까. 1911년 근속 25년을 맞았다면 그는 1886년 그 회사에 입사했을 것이다.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중간에 이직을 했지는 않겠지.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취직을 했다는 가정 하에 그는 1866년-1870생 내외로 추정된다. 프로이센 제국 시절 이미 유럽 최대 광업·중공업 지역인 루르지방에서 태어나 여느 독일인처럼 근면 성실하게 일했을 것이다. 이 시계를 25년 근속상으로 받은 1911년에 40대 중반이었다면 1차 세계대전이 발발했던 당시에는 이미 50세에 가까운 장년이었으니, 전쟁에 직접 참전했을 가능성은 낮고 군수산업 숙련 노동자 및 감독·지휘자로서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을 가능성이 크다. 흔히 장수(長壽)는 축복이라 하지만, 그의 세대에서는 차라리 1차 세계대전이 끝나기 전에 적절한 시기에 세상을 뜨는 것이 가장 행복한 말년을 보낸 것일 수도 있다. 전후 많은 독일인들은 하이퍼 인플레이션으로 큰 고통을 받았다. 이를 잘 넘겼다 하더라도 그가 70대까지 살아있었다면 2차 세계대전을 겪었을 것이며, 특히 루르 지방에 계속 머물렀다면 연합군의 폭격으로 거동조차 불편한 노년에 직접적인 목숨의 위험을 느꼈을지도 모른다. 아무튼 정말 뜬금없이 새로운 정보가 나타나지 않는 이상 이 가운데 무엇을 진실로 믿는지는 전적으로 나의 자유다. 이런 (침해받지 않는) 시나리오의 재량권이 골동품의 매력 아닐까. 특히 시계란 물건은 여러 골동품들 중에서도 오랜 세월의 흐름에도 불구하고 전자적 동력 없이 "움직인다"는 그 사실로 인해 생명력까지 더해져 독특한 매력을 준다. 21세기의 시계는 더이상 시간을 확인하는 도구가 아니다. 시간이야 지금 당장 주머니에 손만 넣으면 초단위까지 정확히 확인할 수 있는 첨단 현대 문명의 도구가 있다. (재미있게도 현대인들이 시간을 확인하는 도구를 주머니 속에 넣고 있다는 점에서 20세기 초에 손목시계에 자리를 내주었던 회중시계가 또 다른 형태로 정확히 100년 만에 반격을 하는 중이기도 하다.) 나 역시도 핸드폰은 시간을 보기 위해, 시계는 시계를 보기 위해(?) 찬다.특히 이 낡은 회중시계는 시간을 확인하는 도구가 아니라, 어느 근면 성실한 독일인의 인생, 어느 중공업 기업의 역사, 20세기 초중반 독일과 유럽의 파란만장한 전쟁사, 그리고 일본 버블시대의 수집가들까지 이어지는 115년의 수많은 이야기들을 만들어내는 오브제이다. 끝.
작성자 : 아크바블랙티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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