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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일은 당연한 것" 이병태 교수, 이재명 선대위 합류 불발
https://naver.me/xU4btUsC "친일은 당연한 것" 이병태 교수, 이재명 선대위 합류▲ 이병태 전 카이스트 교수 ⓒ 이병태 페이스북 과거 "친일은 당연한 것"이라거나 문재인 전 대통령을 향해 "치매인가 정신분열증인가"라며 막말 논란을 빚었던 이병태 전 카이스트 교수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 naver.me - dc official App- 이병태 교수페북<이쥰석, 이쟤명 둘다한테 스카웃이 왔다>-홍준표 후보가 되서 꼭 탄핵과 계엄의 강을 넘고 싶었다 -캠프 해산 후 일본 여행 다녀오니 이준셕과 이졔명의 스카웃 제의가 왔다 -이졔명 캠프가 계속 설득을 했고 호랑이를 잡으러 호랑이굴로 가라는 설득이 있었다 -김문수 캠프에 갈 수 없는 이유는 부정선거 음모론 이번 경선에서 보여준 국힘당의 폭거와 막장 드라마 결말 : 이번 대선 이후 페북접고 은퇴의 삶을 살겠다 - dc official App- ‘홍준표 책사’ 이병태 교수 李 선대위 영입 안한다이병태 교수, 이재명 캠프 합류 무산• 홍준표 전 대구시장 캠프 경제 책사로 알려진 이병태 전 카이스트 교수의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 후보 캠프 합류가 무산되었다.• 과거 문재인 전 대통령 비난, 친일 발언 등 과거 발언 논란과 당내 부정적 여론으로 인해 민주당 선대위가 공식 영입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민주당 선대위는 이 교수의 합류 의사가 있었을 수 있으나 공식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았으며, 직책을 맡는 것은 논의되지 않았다고 밝혔다.https://n.news.naver.com/article/022/0004034895
작성자 : 행복한하루입니다고정닉
영화 역사상 최대의 제작비 TOP 10을 알아보자
겨우 2시간 남짓한 영상물을 만들어 내기 위해 오늘도 할리우드는 수천억 단위의 돈을 투자한다. 그러나 할리우드도 돈을 무한정으로 쓸 수 있는 게 아니라 한동안 암묵적인 제작비 커트라인은 2억 달러 정도였다. 다만 CG는 제작비를 엄청나게 잡아먹는 분야이기에 CG를 떡칠한 블록버스터는 그만큼 제작비도 늘어나며 여기에 인기 배우 출연료랑 시리즈물이라 흥행 성공을 확신할 수 있을 경우 다른 영화와 결이 다른 제작비를 박는 경우도 있다. 그럼 지금부터 영화 역사상 최대의 제작비 TOP 10을 알아보도록 하자. 11위(번외) <미션 임파서블: 데드 레코닝> 제작비 2억 2,000만 달러 원래 이 영화의 제작비는 2억 9,000만 달러였다. 그러니까 TOP 10 라인업에 들어갔어야 하는 영화인데 이 영화의 제작비가 증가한 원인은 코로나 사태로 제작 중단 및 지연이 좀 길게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후 보험사로부터 전액 손실 보상을 받아내면서 코로나가 잡아먹은 7,000만 달러가 제작비에서 빠졌고 원래는 예상 외의 흥행 실패작이였던 미임파7도 결국 손실 보상 덕분에 흥행 성공으로 전환할 수 있었다. 공동 10위 <한 솔로: 스타워즈 스토리> 제작비 2억 7,500만 달러 원래는 이것보다 제작비가 좀 적게 들 예정이였는데 재촬영 비용이 추가되어 라스트 제다이보다 비싸졌다. 중요한 것은 한 솔로 영화가 4억 달러도 못 벌면서 디즈니에 역대급 적자를 안겨 주었다는 사실이다. 이유는 바로 전에 라스트 제다이 나온 게 1차 원인이다. 니들이 팬덤 붕괴시켜 놨는데 이걸 보러 가겠냐? 2차 원인은 그냥 한 솔로 스핀오프에 관심이 없었다. 그래도 2차 시장에서 2억 달러 더 번 게 불행 중 다행. 공동 10위 <스타워즈: 라이즈 오브 스카이워커> 제작비 2억 7,500만 달러 전 세계 최상위권 IP인 스타워즈 시퀄의 최종편이라 디즈니에서도 시리즈 최대의 제작비를 들여 만들었고 10억 7천만 달러를 벌며 순수익을 상당히 올렸지만 사실 스타워즈가 꼴랑 10억 벌었다는 건 치욕에 가깝다. 팩트는 7편인 깨어난 포스가 20억 달러를 넘겼다는 거고 아직도 북미에선 깨어난 포스가 역대 흥행 1위이다. 근데 최종편에 와서 흥행이 반토막이 났다는 것은 얘네가 팬들을 얼마나 실망시켰는지 입증하는 자료이다. 이후 스타워즈 시리즈도 한동안 영화화를 포기하고 디즈니+ 기반의 드라마를 찍어내는 쪽으로 선회한다 9위 <인디아나 존스: 운명의 다이얼> 제작비 2억 9,470만 달러 원래 인디아나 존스 시리즈가 돈을 좀 들이긴 하지만 이번엔 코로나 때문에 제작비가 상당히 불어났고 여기에 해리슨 포드의 젊은 시절 얼굴을 구현하는 디에이징 기술에 돈이 엄청나게 들었다고 한다. 2008년에 개봉한 4편이 8억 달러 가까이 벌었으니 이번 편도 그 정도는 벌겠지 싶어서 돈을 부었겠지만 젊은 관객들은 더 이상 인디아나 존스에 열광하지 않았고 결국 4편의 반토막 흥행에 그치며 거액의 적자를 냈다. 존스의 취급도 뒷방 늙은이라서 불만이 많았던 해리슨 포드는 이 작품으로 마무리하러던 은퇴를 보류하고 캡틴 아메리카 4를 찍게되는데 그 결과는... 8위 <닥터 스트레인지: 대혼돈의 멀티버스> 제작비 2억 9,540만 달러 원래 이 영화의 제작비는 2억 달러로 알려져 있었는데 촬영 중 코로나와 잦은 재촬영 등의 사건이 터지며 기존에 편성했던 예산을 많이 초과했다 알려졌고 실제 제작비가 2억 9,540만 달러라는 이야기가 나왔다. 일단 이 영화는 마블 영화 중에서도 보기 드문 수준의 컨트롤 타워 부재 상황에서 만들어진 걸 감안해야 한다. 제작진들은 개봉 한 달 전에도 재촬영이 진행되었으며 파이기랑 수뇌부가 간섭을 뒤지게 했다는 증언을 내놓았다. 이러니 헛되이 날린 제작비만 1억 달러쯤으로 추정되는 것. 결국 영화의 평가도 관객마다 호불호가 크게 갈리게 되며 예상치였던 10억 달러 돌파에 약간 못 미치는 성적을 거뒀다. 7위 <캐리비안의 해적: 세상의 끝에서> 제작비 3억 달러 시리즈 특성상 함대 전투 등의 스케일 큰 장면이 많지만 이 영화에 아바타보다 많은 제작비가 든 이유는 따로 있다. 물 등의 계속해서 움직이는 유체는 CG로 구현할 때 가장 돈이 많이 드는 고난도 기술이기 대문이다. 그래서 디즈니도 2편과 3편 동시 촬영을 선택해 제작비를 최대한 아껴 보려 혼신의 똥꼬쇼를 했고 공식적으로 2편 망자의 함은 2억 2,500만 달러, 3편 세상의 끝에서는 3억 달러가 들었다고 한다. 이것도 원래는 4억 5천만 달러로 두 편 찍으려 했는데 3편 제작비가 엄청나게 불어나며 생긴 참사라 한다. 그래도 결과적으로 망자의 함은 10억 달러를 넘겼으며 3편도 10억 가까이 갔으니 디즈니는 이득을 꽤 보긴 했다. 6위 <저스티스 리그> 제작비 3억 달러(스나이더 컷 포함시 +7천달러) 원래 제작비는 2억 8,000만 달러로 알려졌고 이후 조스 웨던이 재촬영하며 3억 달러가 됐다고 한다. 애초에 배대슈 평가가 안 좋았어서 얘라도 살렸어야 했는데 현실은 배대슈랑 함께 밑바닥에서 신나게 떡을 치는 중이고 마블의 어벤져스급 대형 프로젝트를 갖고 배대슈보다 못한 6억 5천만 달러의 흥행을 기록하며 상당한 적자를 냈다. 이후 잭 스나이더의 저스티스 리그 공개 여론이 빗발치자 무려 7,000만 달러를 들여 HBO에 스나이더 컷이 공개되었다. 이미 한 번 만든 영화를 다시 만들어서 푸는 것도 놀라운데 스나이더컷은 재촬영까지 더해 상당히 많은 돈을 투자했다. 5위 <어벤져스: 인피니티 워> 제작비 3억 2,500만 달러 위에 놈들이 3억 달러짜리 캐비어로 알탕을 끓인 것과 달리 전성기 마블은 캐비어에서 트러플을 창조하는 놈들이였다. 영화의 평가도 상당히 좋았고 흥행도 20억 달러를 넘겨 다음 어벤져스의 우주구급 대흥행에 판을 제대로 깔았다. 포스터만 봐도 배우들 캐스팅비가 장난 아니다. 여기에 타이탄 전투에서의 수준 높은 CG 기술력과 역대급 액션씬 와칸다 전투에서의 거대한 스케일을 따져 보면 사실 이 정도 쓴 것도 제작비를 꽤 아낀 것처럼 보인다. 4위 <분노의 질주: 라이드 오어 다이> 제작비 3억 4,000만 달러 대체 뭘 하면 어벤져스보다 돈을 많이 썼나 궁금할 텐데 일단 감독이랑 빈 디젤의 의견 차이로 원래 감독이 하차하고 여기에 코로나 직격탄을 쳐맞아 안전 조치 비용에만 엄청난 돈이 들어가 제작비가 이따구로 늘어났다고 한다. 다만 극장 수익으로는 흥행에 애매하게 실패했다. 원래는 하나의 스토리를 두 편으로 나눈 중과부적 엔딩인데 10편의 낮아진 흥행으로 11편은 10편과 이어지지 않으며 제작비를 적게 들여 1편 감성으로 회귀한다는 루머가 있다 3위 <아바타: 물의 길> 제작비 3억 5,000만 달러 외계인 등 인외의 존재는 모델링 비용이 따로 들어가고 아까 말했지만 물은 CG 처리가 가장 어려운 부분이다. 그리고 이 영화는 외계인들이 물에서 노는 영화이며 현대 최고의 시각적 경험을 위한 모든 요소가 총동원되었다. 이것도 3편이랑 동시 촬영해서 그나마 제작비를 아낀 것이다. 제작비가 4억 달러 또는 그 이상이라는 루머도 존재했지만 일단 보편적으로는 제작비가 3억 5천만 달러라는 게 정설인데 이 영화의 기술력을 보면 3억 5천으로 끝낸 게 신기하다. 카메론은 흥행 15억 달러를 넘기면 4~5편을 만든다 했는데 결국 23억 달러를 찍으며 5편까지는 제작을 확정지은 상태다. CG에 돈을 엄청 써도 쓴 것 이상을 보여 주는 시리즈라 카메론 감동님 제발 오래오래 장수하셨으면 하는 심정이다. 2위 <어벤져스: 엔드게임> 제작비 3억 5,600만 달러 조금 추하게 재개봉하며 꾸역꾸역 긁어모은 수치긴 하다만 당시 전 세계 박스오피스 1위였던 아바타의 흥행 기록을 처음으로 뛰어넘고 27억 9천만 달러라는 초대박을 냈다. 제작비를 얼마나 들였든 간에 엄청나게 이득을 본 것. 아마 다음 글에 소개하겠지만 어벤져스 5편과 6편은 엔드게임보다 제작비를 더 많이 들일 가능성이 높다. 그럼 대체 물바타 엔겜보다 제작비를 많이 들인 영화가 지금 이 세상에 존재하긴 하는 건지 의심스러울 텐데... 1위 <캐리비안의 해적: 낯선 조류> 제작비 3억 7,900만 달러 젠장 또 캐리비안의 해적이야 원래 제작비는 4억 달러가 넘었는데 세금 환.급받고 겨우 이 정도 수준으로 줄인 거라고 한다. 13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공식적인 제작비 1위. 근데 소신발언하면 함대전도 없고 보물찾기나 하는 놈이 뭘 하다가 제작비를 저 지경으로 썼는지는 잘 모르겠다. 돈 들인 흔적이 안 보인다는 얘긴 아니고 기술력은 좋은데 3편보다 8천만 달러나 더 들어갈 만한 영화인가 싶다. 암튼 이것도 10억 달러를 넘겨 흑자를 내긴 했지만 이미 캐리비안의 해적은 2편부터 평가가 낮아지던 중이였고 결국 다음 5편에선 평가가 꼬라박아 8억 달러도 못 벌었지만 5편은 제작비가 2억 달러 초반이라 얘까지 결국 이득을 봤다 지금까지 영화 역사상 최대의 제작비 TOP 10을 알아보았다. 돈을 저 정도로 들였으면 다들 믿는 구석이 있었겠지만 저 중에는 재촬영이나 코로나로 돈이 더 들어간 경우도 있고 무조건 성공시켜야 할 영화를 삽질로 말아먹은 경우도 있고 인워나 물바타처럼 20억 달러를 넘기는 대박을 치기도 했다. 반응 좋으면 다음엔 캐비4,엔겜마저 뛰어넘고 제작비 마의 4억 달러에 도전하는 영화들을 가져와 볼까 한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상갤러고정닉
Never Forget, Never Forgive: KAL 858
'All aviation regulations are written in blood' '모든 항공규칙은 피로 쓰여졌다' -미 연방항공청(FAA) 1970년대, 대한민국은 동족상잔의 아픔을 겪었음에도 국가주도적인 경제정책을 통해 빠르게 발전했다. 길거리에는 빌딩이, 지하에는 하수관과 지하철이 깔렸고, 집집마다 전기와 수도가 들어오기 시작했다. 발전의 중심에 한진그룹이라는 한 재벌이 있다. 정석(靜石) 조중훈 회장, 1945년 인천에서 트럭 1대로 한진상사를 창업했다. 전후 미군 납품 수송권, 베트남전 군수물자 수송을 도맡으며 중소기업이었던 한진상사를 크게 성장시킨다. 1960년에는 고속버스 회사인 한진관광을, 7년 뒤에는 해운사인 대진상선을 설립했고, 삼성으로부터 동양화재를 인수해 금융업에도 손을 뻗었다. 1968년에는 건설업체인 한일개발을 합병했다. 1969년에는 만성적인 적자에 시달리던 대한항공공사를 인수, 대한항공으로 사명을 바꿔달고 영업을 시작한다.1969년 당시, 대한항공은 가난한 나라의 가난한 항공사였다. 보유한 기체는 단 8기, 그중에서 제트기는 DC-9 1기 뿐이었다. 옆나라의 JAL(일본항공)이 2년 전인 1967년에 런던까지 취항했던걸 생각해본다면 너무나도 초라했다. 하지만 대한항공은 빠르게 성장하기 시작해 1969년 일본제 YS-11 8기를 구매하여 국내 노선을 확충하고 외항사로부터 B-720을 대거 임차하여 국제선에 투입, 1970년에는 10개소의 해외지점을 설립한다. 그리고 1971년 6월, 대한항공은 보잉에 주문서 1장을 넣는다 기종은 B-707-3B5C, 등록번호 HL7406, 가격 970만불, 대한민국 최초의 B-707이었다. 1971년 8월 11일부터 김포~도쿄를 오가며 승객들을 태웠고 이후에는 대한항공의 미주노선인 KE 001/002편에서 활동, 수많은 한국인들에게 미국땅을 밟게 해준 기체였으며, 1980~1982년까지 대한민국 대통령 전용기로 쓰이기도 했다.HL7406이 날아오르는 동안 회사는 급격하게 커진다. 1969년, 비행기 8대로 시작한 작은 항공사는 어느덧 B-747로 미주노선을 횡단하고 있었다. 급속하게 성장했던 만큼 어두운 면도 꽤나 많았다. '빨리빨리'가 일상이었던 나라에서 안전은 부가적인 요소였다. 안전수칙들은 제대로 지켜지는 항목들이 없었다. 항공기 운항이 동네 용달회사 운영하듯 이루어져 최대이륙중량(MTOW)를 초과하는 과적이 반복되었으며, 이로 인해 수없이 많은 추락 위기를 단순히 조종사들의 기량으로 때우는게 일상이었다. 당시 대한항공은 비용 절감에 집착했다. 정비비용을 어떻게든 아끼기 위해 고장난 비행기를 그냥 무턱대고 비행시키는 것은 기본에다가, 전세화물기같은 부정기편은 영공통과 허가증조차 안받고 일단 항공기를 출발시키는 일이 비일비재했다.고장난 항공기도 안고쳐주는 회사에서 워라벨같은게 있을리 없다. 대한항공의 조종사들은 70년대의 노동자가 으레 그렇듯이 자신들의 건강을 버려가면서 비행기를 조종했고, 승무원들은 몇십시간씩 잠도 자지 못한채로 승객들을 응대했다. 통계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고 했던가, '66년부터 '82년까지 16년간 대한항공은 총 307건의 사고를 냈다. 1976년 30건, 1978년 30건, 1979년 37건, 1980년 39건, 전체 사고의 60% 이상이 76년부터 82년 사이에 발생한다.HL7406도 크고작은 사고들을 피해갈수는 없다. 1977년과 1987년, 노즈기어에서 유압계통 결함이 발생해 동체착륙하는 사고를 겪는다. 미국에서 수리와 엔진 개조를 받은 후 1987년 11월에 다시 운항을 시작한다. 858편이라는 이름으로 바그다드~김포 노선에 투입될 것이다.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사담 국제공항 대한항공 858편의 항공권을 소지한 일본인 2명이 보안검색대에서 공항 관계자들에게 붇잡힌다. 바그다드 공항의 보안검색은 꽤나 엄격하다. 당시는 이란-이라크 전쟁이 한창이었던 시기였고, 1985년에 승객 307명과 승무원 22명을 태운 에어 인디아 182편이 아일랜드 근해에서 시크교도의 폭탄 테.러로 공중폭.파된 이후 공항 보안검색이 더욱 깐깐하게 변한 탓이기도 했다. 70세의 노인 하치야 신이치(蜂谷眞一) 25세의 하치야 마유미(蜂谷眞由美) 부녀지간이라고 주장하는 이들은 총 5번에 달하는 보안검색을 거치며 짜증을 부렸다. 이들은 어디에서 왔을까, 일본인이긴 한걸까? 당연히 아니다. 이들은 조선로동당 해외정보조사부, 현 정찰총국 소속으로 북한에서 파견된 공작원들이었다. 본명은 김승일과 김현희 당시는 1988 서울 올림픽이 1년도 채 남지 않은 시점으로, 북한은 남한의 올림픽 개최를 방해하기 위해 여러 작전을 실행한다. 대외적으로는 서울-평양 공동 올림픽을 주장하거나 독재국가였던 대한민국의 혼란스럽고 불안한 상황으로는 올림픽을 열 수 없다는 논리를 내세웠으며, 물밑으로는 남의 나라 국가원수 묘소에 폭탄을 설치해 대한민국 정부 관료들을 폭사시키거나 수도 한복판에서 폭탄테.러를 일으키기도 했다. 올림픽 개최까지 1년도 채 남지않은 시점에서 대한민국 국적기 1대가 공중폭파당한다면 어떻게 될까, 미국 최대의 항공사였던 펜암은 103편 폭파 사건으로, 제 2의 항공사였던 TWA는 800편 공중분해 사고로 망했다. 대한항공이 이를 버틸 수 있을리가 없다. 미국 국무부가 대한항공 이용 자제를 권고할 정도로 별로 안전하지 않은 항공사다. 사고로 한국인 수백명이 죽겠지만 북한은 신경쓰지 않는다. 1987년 11월 12일, 북한 공작원 두 명은 평양을 떠나 소련의 모스크바로, 모스크바에서 헝가리의 부다페스트로 이동했다. 이후 헝가리에서 6일간 머물다가 11월 18일에 자동차를 이용하여 오스트리아 빈으로 이동, 이때 헝가리에 파견된 요원으로부터 일본 위조여권을 넘겨받는다. 오스트리아는 냉전 시대에 명목상으로는 중립국이었기에 북한 여권으로도 입국이 가능했지만, 북한보다는 일본 여권이 의심을 피하기엔 더 수월하다. 당시 북한인들 중에서 해외여행이 가능한 사람이 몇이나 될까, 한국조차 아직 해외여행 자유화가 이루어지기 전이다. 반면, 1986년에만 일본인 550만명이 해외여행을 떠났다. 550만명중 2명, 모레밭에서 바늘 찾기와 비슷한 수준이다. 이들은 빈에 위치한 호텔에서 9일간 숙박했지만 아무도 그들이 테러범이라고 의심하지 않는다. 이제 희생자를 찾아나설 시간이다. 2명의 공작원들은 오스트리아 항공을 이용하여 유고슬라비아 베오그라드에서 이라크 바그다드, 아랍에미리트 아부다비를 거쳐 바레인으로 가는 티켓을 구매했다. 대한항공과 코드셰어된 티켓이다. 비행기를 폭파시킨 후에 이탈리아로 도피할 계획을 세운 이들은 아부다비에서 로마로 가는 항공편 티켓도 구매한다. 11월 27일, 오스트리아로 온 다른 북한 요원이 이들에게 액체 폭발물과 기폭장치를 건네주었고, 이들은 다음날 이라크 바그다드로 떠났다. 1987년 11월 29일, 이라크 사담 국제공항 HL-7406이 이륙을 준비하고 있다. 콜사인은 대한항공(KAL) 858편, 이라크 바그다드를 출발해 아부다비, 방콕을 거쳐 최종적으로 김포에 착륙하는 노선이다. 탑승객의 대다수는 중동에서 한국으로 돌아오는 파견 노동자들, 고된 몸을 이끌고 비행기에 올랐다. 이제 몇시간 뒤면 그리운 고국땅을 밟을 수 있으리라 다시 사담 국제공항의 보안검색대로 돌아와 보자. 전쟁중인 이라크에 나타난 늙은 일본 노인과 젊은 여자, 꽤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이들을 수상하게 여긴 보안요원들은 그들의 소지품을 샅샅이 뒤진다. 총 9번에 걸친 추가적인 보안검사 끝에, 가방에서 라디오 하나가 발견된다. 이들이 소지한 파나소닉 RF-082 라디오, 사실 라디오 기종이 무엇인지는 잘 모른다. 당사자의 진술이 수없이 뒤바뀐 탓이다. 하지만 라디오의 배터리가 문제가 되었던것은 확실하다. 2년 전, 에어 인디아 182편 폭파사건에서도 테레범들은 라디오 내부에 폭약을 집어넣어 비행기를 터뜨렸다. 공항 보안요원들이 1.5V 배터리 4개를 압수하자, 마유미는 울면서 돌려달라고 애원하기 시작했다. 보안요원들은 라디오를 X레이 탐색기로 3번이나 검사하고 배터리 하나를 칼로 뜯어보기까지 했지만, 별다른 이상이 없었던 탓에 배터리와 라디오를 돌려준다. 늙은 노인과 젊은 여자, 테러리스트와는 거리가 먼 조합이다. 저들이 비행기에 해를 끼칠 수 있을까, 바그다드의 보안요원들은 아니라고 판단했다.라디오 안에는 컴포지션-4, 흔히 C-4라고 불리는 고성능 폭약이 250g가량 들어있었다. 밤 11시 30분경, 3시간의 기다림 끝에 858편의 7B와 7C 좌석에 탑승한 이들은 기내 선반에 라디오를 올려놓는다. 액체 폭발물인 PLX 700cc도 양주병에 담겨 기내로 반입된다. 타이머는 9시간 뒤로 맞춰 놓았다. 그때쯤이면 그들은 이미 로마로 향하고 있을 것이다. 858편은 주기장을 떠나 활주로로 향한다. 이제 돌이킬 수 없다. 몇시간 뒤, UAE 아부다비 국제공항에 858편이 착륙한다. 승객 15명이 내리고, 11명이 새로 탑승했다. 아유미와 신이치는 걸프에어 003편으로 환승한다. 요르단 암만으로 이동한 뒤 로마로 떠날 것이다.하지만 이들의 여행은 바레인 국제공항에서 끝난다. '빈에서 베오그라드를 거쳐 바그다드...경로가 너무 수상한데?' '여자 여권번호가 왜 MG로 시작하는거야? 이건 남자 번호잖아' 이들의 도피 시도는 처음부터 실패했다. 비자 문제로 요르단이 아닌 바레인으로 날아가야 했고, 바레인 당국은 그들의 여행 동선에 대해 의심을 품는다. 공작원들은 11월 27일부터 29일까지 5개국에 들렀다. (오스트리아, 유고슬라비아, 이라크, UAE, 바레인) 80일간의 세계일주라도 하려는 것일까, 일본인이 아니라 미국인이라도 의심가는 동선이다. 급하게 여권을 위조하느라 일련번호가 잘못 찍혔다. 여자 여권의 일련번호에 남자를 의미하는 MG가 인쇄되어 있다. 이들은 곧장 바레인 경찰에 체포된다. 한편, 858편은 아부다비를 이륙해 방콕으로 향하고 있다. 승객 104명, 승무원 11명, 이중 1명은 인도인, 1명은 레바논인이다. 고도 37,000ft(11km), 기장이 항공관제소와 교신을 시작한다. "우리는 정시에 방콕에 도착할 것으로 예상합니다." 그들은 영원히 도착하지 못했다. 한국 표준시로 오후 2시 5분경, 설정된 9시간이 지나자 라디오 내부의 기폭장치가 작동한다. 858편은 기수부가 떨어져 나가면서 공중분해되어 미얀마에서 서쪽으로 18마일(29km) 떨어진 안다만해에 추락, 탑승객 115명 전원이 사망했다. 비상상황을 알리는 교신도, 목격자도, 파편도 없었다. 최종적인 기체의 위치를 특정할 수 없다. 수색지역이 급속도로 넓어지기 시작한다. 대한민국 정부는 태국에 조사단을 급파하지만 성과는 없었다. 12월 10일, 사고 11일 후에 대한민국은 미국에 지원을 요청한다. 필리핀에서 미군 P-3C 3대가 이륙하여 수색을 시작, 12월 13일에 비행기에서 떨어져 나온 구명벌을 발견한다. FDR(비행기록장치)와 CVR(조종석 녹음장치)는 발견되지 않았다. 12월 17일, 대한민국 정부는 수색을 종료한다. 사고발생후 20일도 지나지 않은 시점이었다. 12월 10일부터 12일까지, 단 3일간 수색작업이 이루어졌다. 2009년, 에어프랑스 447편이 대서양에서 추락하자 프랑스 정부는 2011년까지 블랙박스 수색에 나섰다.1985년 에어인디아 182편이 폭파되었을때도 인도 당국은 CVR과 FDR을 발견할때까지 수색을 계속했다. 블랙박스 발견까지 2주도 걸리지 않았지만 858편보다는 길었다. 유족들이 이를 납득할 수 있을까, 1990년 3월 13일, 우연히 기체 잔해가 인양된다. 플랩, 엔진덮개, 연료탱크, 옷가지가 함께 발견되었다. 한 어부가 자신의 그물로 건져올린 것이다. 원래는 고물상에 팔아넘기려고 했지만, 선주는 어망이 끊어지고 선체가 파손되었으니 물어내라면서 한국 정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한다. 다른 파편들도 추가적으로 발견되기 시작한다. 발견 장소는 태국 어촌의 한 고물상이었다. 태국의 어떤 선원은 날개를 인양하여 기념품으로 삼았다. 아마 수많은 증거품들이 이렇게 사라졌으리라 대한민국 정부는 사고조사를 위한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태국의 어부들도 찾아내는 잔해들을 찾지 못했다. 재수색을 요구하는 유족들에게는 추락지점의 수심이 깊어 수색이 어렵다고 거짓말을 친다. 버마 사고조사위가 예상한 추락지점 수심은 50m였다. 그래도 꽤나 많은 잔해들이 한국 정부에게 인도되었다. 정확히는 당시 국정원의 전신이던 국가안전기획부에 인도된다. 안전기획부는 이 잔해들을 국과수에 감식을 요구한다. 감식을 마쳤으면 다시 되찾아가면 될 일이다. 안기부는 무려 5년간 잔해를 되찾아가지 않았다. 아니, 국과수에서 찾아가라고 전화를 해도 씹어버렸다. 유일한 증거들은 국과수 내부 규정에 의거해 폐기처분된다. 유족들이 이걸 이해할 수 있을까,바레인에서 체포된 김현희와 김승일는 청산가리로 살자를 시도했지만 김승일만 요단강을 건너는데 성공했고 김현희는 대한민국으로 압송당한다. 대법원에서 사형이 선고되었지만, 16일만에 사면되었다. 사면 이후 국정원 직원과 결혼하여 행복하게 살았다. 그녀는 유족에게 어떠한 사과도 하지 않았다. 30년간 전화 한통, 편지 하나조차 건네지 않았다. 진실을 규명하기 위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수많은 음모론의 근원지가 되어 유족들을 절망에 빠뜨렸으며, 자신을 정부에서 탄압받는 정치싸움의 희생자로 만들었다. 온갖 핑계를 들며 진실화해위의 조사에 협조하지 않았다. 도데체 무슨 이유로 사면한단 말인가? 정부는 살아있는 증거로 남겨두기 위해서라고 했다. 1급 간첩을 살려둠으로써 얻는 이익이 막대하다고 했다. 그러면서 기체 파편들을 찾아가지도 않았다. 어민들도 찾는 잔해를 수심이 깊다는 핑계로 수색하지 않았다. 2014년, 말레이시아 항공 337편 실종사건이 발생하자 국내 방송사들은 김현희를 전문가로 초빙한다. 115명을 죽인 테러리스트를 전문가랍시고 떠받들고 있었다. 2020년, 대구 MBC에서 사건 33년만에 858기로 추정되는 잔해들을 미얀마 근해에서 발견하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2021년에 발발한 미얀마 내전이 지속됨으로써 아직까지 잔해 수거는 요원한 상태다. 마지막으로, 북한의 무차별 테.러에 의해 희생된 무고한 대한민국 국민 113명과 인도인 1명, 레바논인 1명의 명복을 빌며 글을 마친다.
작성자 : 우희힝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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