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탕조폭물같은 맛이 일품이긔
무민) 불티
불티가 휘날리고 있었다. 두 소년이 낙엽을 그러모은데에 모여앉아 불을 붙이고 바람을 후- 후- 불어댔다. 하얗고 동글동글하게 생긴 소년과 까맣고 날카롭게 생긴 소년. 나이는 초등학생 저학년즈음밖에 되어보이지 않았다. 불이 활활 커져가는걸 보며 소년들은 우와아 하고 감탄사를 내뱉었다. 활활 타오르는 불을 보며 희여멀건 소년이 걱정스레 말을 꺼냈다.
"무성아, 이라모 동네 아재들한테 혼나는거 아이가."
"니는 걱정도 많데이. 여는 구석진데라 사람들 잘 안와서 괘안다."
"구석진데라도 금방 들킬기같은데.."
"암도 안온다 안카노. 승민아. 니는 걱정이 놈 많데이."
"아이 그게 아이고. 이 보면 평소 여 안오던 으른들도 몰려올 기 같은데..."
"먼데?"
승민이 가르킨건 하늘 높이 솟아오르고 있는 새카만 연기였다. 그날의 하늘은 유독 맑고 쨍쨍해서 까만 연기가 더 눈에 띄었다. 이 정도 연기면 아무리 멀리 있어도 보일 터였다. 아차 싶은 무성은 승민의 말에 동의 할 수 밖에 없었다. 니 말이 맞은기같다. 들키기 전에 자리를 뜨려는데 동네 아저씨가 소년들을 찾은게 먼저였다. 이 자슥들아, 으데서 불장나이고! 불호령이 떨어졌다.
두 소년은 부리나케 도망쳤다. 아이고 이 불을 어카노. 아저씨는 불을 끄느라 바빠 소년들을 따라갈 수 없었다. 불길은 점점 더 거세졌다. 가슴이 터지도록 달리면서도 두 소년은 천진난만하게 웃고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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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포라이터를 켜자 불이 화르륵 타오르며 그 화력을 자랑했다. 검정 교복을 입은 무성은 한 가운데에 있었고 급우들은 그 주위를 둘러싸고 있었다. 옹기종기 모인 학생들은 무성이의 제 자랑에 감탄하고 있었다.
"이게 울 아부지한테서 받은 미제 지포라이타다."
"와 윽수로 비싸보인데이."
학생들의 웅성거림에 지나가던 승민은 발길을 멈췄다. 그의 팔에는 노란색 띠가 둘러져있었고 거기엔 '선도'라고 적혀있었다. 거의 벽에 가까운 학생 틈새를 비집고 무슨 일인지 살폈다. 가운데에 무성이 지포라이터를 휙휙 휘두르고 있는 걸 보고 한숨을 푹 쉬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무성은 제 지포라이터를 자랑하기 바빴다.
"어, 승미이 왔노. 이 바라 내 을마전에 아부지한테서 받은 미제 지포라이터다. 빤딱빤딱한게 자태부터 기가맥히제?"
무성은 활활 타오르는 불을 승민의 앞에서 휙 휙 휘둘러댔다. 승민은 곤란하다는 표정을 짓고 라이터의 뚜껑을 닫아버렸다. 그리고 그 지포라이터를 뺏어 제 주머니에 넣어버렸다.
"이쁜지는 모르겠고. 이거 교칙 위반이데이. 학교 끝나고 찾아가라."
"마! 그란게 어딨노!"
"슨새임한테 바로 넘길 수 있는거, 내가 맡아주는거만 해도 많이 봐주는기라. 그니까 이따 찾아가라."
무성은 승민이 너무 냉정하다고 궁시렁 거렸다. 승민의 평소 태도를 아는 학생들은 그래도 무성의 친구라고 나름 봐준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승민은 뺏은 지포라이터를 제 안주머니에 바로 직행한 행동을 금방 후회했다. 직전까지 활활 타오르던 라이터여서 제 가슴께를 불편할정도로 뜨겁게 만들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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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앞바다 하늘에서는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땅에서부터 올라간 불덩어리는 하늘에서 팡 하고 터지고 화려하게 빛났다가 모습이 사라진다. 어린시절부터 불장난을 좋아해온 무성은 폭죽놀이 또한 좋아했다. 폭죽이 다 터지자 그는 품에서 새 폭죽을 꺼내들었다. 그리고 모래에 고정시키려고 흙을 팠다. 어두운 밤하늘 바닷바람이 거세게 불었다. 무성은 목에 힘을 주고 얘기해야 했다.
"경찰대는 재미 좀 있노."
"재밌어서 하는기가. 해야 하니까 하는기지."
"니는 참 인생 팍팍하게 산데이. 내 우리 아부지 사업 물려받으면 니 취직시켜준다 안캤노."
"낙하산엔 취미 없데이."
"그라모 팍팍하게 사는게 취미가."
"... 마음이 팍팍한거보단 몸이 팍팍한게 낫지 않겠노."
"참 내.."
무성은 선비같은 승민의 말에 핀잔을 주며 새 폭죽에 불을 붙였다. 폭죽은 피슈웅 소음을 내며 하늘로 날아가 밤하늘에 자수를 놓았다. 둘은 잠시 말 없이 그 광경을 감상했다. 이번에 입을 먼저 연건 승민이었다.
"니는 불장난이 취민기같다."
"이쁘지 않나."
"불장난이 모가 그리 재밌노. 위험하고, 뒷처리도 어렵고, 냄새는 매캐하고 귀때기도 아픈데."
"문디자슥아, 입다물고 하늘이나 봐라."
"..."
"이쁘제?"
"그르네."
"이쁘면 댄 기라. 이래 이쁜거 볼 수 있으면 다른게 다 몬 상관이고."
두 친구는 참 달랐다. 그래도 밤 하늘의 불꽃이 예쁘다는 데에 대해서는 의견이 같았다. 화려하게 빛나고 사라지는 불꽃은 강렬하고 아름다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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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밀어진 담배에, 따까리는 잽싸게 달려와서 불을 붙였다. 무성이 한숨을 내쉬자 담배연기가 포차 안으로 퍼졌다. 승민도 주머니에서 한까치 꺼내들었다. 입에 물자 무성의 따까리가 다시 달려와 불을 들이밀었다. 승민은 손을 내저으며 거절하고 제 주머니에서 라이터를 꺼내 스스로 불을 붙였다. 승민도 담배를 깊게 빨아들였다. 그 담배 빠는 모습은 제법 자세가 나왔다. 무성은 퉁명스럽게 말을 붙였다.
"아가 불 붙여준다는데 무안시럽게 와 거절하고 그라노."
"내 사지 멀-쩡 한데 와 남이 붙여주노. 내가 하면 댈 일이지."
"새끼 까탈스럽네..."
"니가 게으른기다."
"마! 내가 받기만 하는 줄 아나. 내도 남 불도 붙여주고 할거 다 한다."
"남 불 신경쓸거 없이 니 불이나 잘 챙기라."
"예나 지금이나 닌 참 빡빡하게 산데이."
"지 버릇 개 못준다 카는 옛날 말이 딱 맞다. 내가 이런걸 어카겠노."
자조섞인 승민의 얘기에 무성도 실소가 나왔다. 입에 담배를 꼬나물고 소주병 뚜껑을 따 두 술잔을 채웠다. 그리고 둘은 건배를 하고 목을 축였다. 입안에 남는 쓴맛에 무성은 몇차례 쩝쩝거렸다. 그리고 본론을 꺼냈다.
"근데.. 니 근무하는 서가 부산xx경찰서라 그랬었나?"
"일 얘기 하지마라. 술 맛 떨어진다."
"이번에 우리 회사가 새 사업 시작하는데 그쪽으로 갈 일이 많을 것 같아 가, 맞으면 오며가며 얼굴이나 볼라 캤지."
"...자꾸 그런 얘기 하면 내 술 더 못마신데이."
"몬소리고? 친구가 친구 일하는데 지나가며 인사도 못하는기라?"
"니 하는 그 사업이란거 자꾸 여기 저기서 구린 얘기 나오는거 내도 귀가 있어 다 듣는다."
"아니 친구가, 친구로서 찾아간다는데 니가 자꾸 사업얘기 꺼내는기다."
뻔뻔하게 승민의 탓으로 몰아가는 무성이었다. 억울한 척 하는 얼굴이 진심인지 거짓인지 헷갈리게 만들었다. 그러나 그것이 진심이든 아니든 밖에서 보기엔 조폭 사업가와 경찰의 결탁으로 보일 뿐이란걸 승민은 너무 잘 알았다. 술 한잔 더 털어넣었다. 탁 소리나게 테이블 위로 술잔을 내려놨다.
"그만 해라 마. 어차피 나 전근갈기다."
"전근? 그런 얘기 못들었는데?"
"없는 일이라도 만들어서 전근갈기다."
"하.. 이자슥.. 그거 아나? 닌 진짜 독할때가 있다."
승민의 고집에 무성은 기가 질렸다. 하 이자슥 진짜 독하네. 이런 고집에 더 붙잡았다가는 탈이 날 것 같았다. 어쩌면 승민 나름대로의 타협이었을지도 모른다. 전근을 가지 않는다면 오해를 차단하겠다고 아예 만나주지 않겠지. 이게 승민 나름대로의 방법일거라고 무성은 생각했다. 거리를 두고 지켜보는 것.
승민의 담배는 어느새 꽁초가 되었기에 비벼서 불을 껐다. 새 까치를 꺼내는 걸 보고 이번엔 무성이 품에서 라이터를 꺼냈다.
"우정의 불. 이것도 안받을기가."
"그런 불로 증명 안해도, 우린 친구 맞다."
민망한 무성의 손을 내버려두고 제 품에서 라이터를 꺼내서 스스로 불을 붙였다. 거절당한 라이터는 쓸쓸하게 흔들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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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촉 전구에 날벌레가 몇마리 달려들고 있었다. 뜨거운 백열등 주위를 맴돌다 타버린 벌레 시체가 널려있지만 개의치 않는다는듯이 새로운 벌레는 계속 달려들었다. 늦은시각, 무성의 병실엔 벌레타는 소리만 간간히 들렸다. 일인실 문이 열리고 꽃을 든 승민의 모습이 드러났다. 무성의 침대로 다가와 상처를 보고 심각성을 느꼈다. 그야말로 초주검같은 꼴이었다. 잘난 얼굴에도 멍이 들었고 복부에는 붕대를 칭칭 감은게 칼침을 맞았다는걸 보여줬다. 그런 중태면서도 무성은 머리에 왁스를 발라 단정한 포마드 머리를 하고 있었다.
"우야다가 이리 마이 다쳤노."
"깡패가 깡패짓 하다가 다치는기지 별거 있나."
"그 새로 한다는 사업 때문이가?"
"잘 아는구만."
"딱 봐도 무리하다 싶은 일이었는데 와 그랬노. 어릴땐 대가리 좀 굴러가는 거 같드만. 깡패짓하다가 머리 깡통 되버린기가? 뭘 해도 안전이 제일이다 이 문디자슥아."
"경찰이 깡패 이렇게 신경써줘도 되는기가?"
"헛소리 할 기력이 있는 기 보니 뒤질병은 아니고마."
무성의 농담에 승민이 질색을 했다. 환자의 가슴에 들고 온 꽃을 팍 던졌다. 으헉. 상처가 자극된 무성은 이상한 바람빠지는 소리를 냈다. 그래도 기력 넘치는 모습을 봐서 문병객은 한시름 놓을 수 있었다. 엄살은. 째려보는 승민에게 아픈건 진짜라고 환자는 중얼거렸다.
승민이 더 이상 일 얘기를 하고 싶지 않아서 그 후 둘은 그 외의 이야기를 나눴다. 일상 이야기를 하려니 둘은 새삼 각자의 생활방식이 많이 달라졌음을 느꼈다. 무성은 승민의 얘기를, 승민은 무성의 얘기를 새로운 이야기 처럼 들어야만 했다. 이야기가 헛돌자 대화 주제는 다른 걸로 넘어갔다. 친구들의 근황 이야기로. 그리고 과거로 넘어가 둘의 학창시절 얘기도 나왔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니 시간은 금방 흘렀다.
오랜만에 회포를 푸니 자연스레 마음은 홀가분해졌다. 이만 간다는 인사에 무성은 자신의 마음을 표했다.
"닌 경찰 되고나서 내로부터 도망다니기만 할 줄 알았는데 이리 오는날도 있네. 고맙데이. 이렇게 좋은 거 겪을거면 가끔씩 칼에 찔려줘야겠노."
"농이래도 그런 살벌한 소리 하지 마라. 그리고 누가 들으면 내가 이상한 사람인 줄 알겠다."
"이상한 사람인건 모르겠고 엉덩이가 무거운 사람은 맞제."
"니 응딩이가 심각하게 가벼운기라. 나 좀 그만 쫒아다니라."
"내 함 노력 해 볼게."
둘 다 큭큭거리며 농담인 척 얘기 했지만 둘 사이의 관계를 제대로 말 한 것이기도 했다. 마치 술래잡기와 같은 관계. 무성은 승민이 사라진 병실 문을 한참이나 쳐다보았다. 다 나으면 승민을 한번 더 찾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둠 속에서 만나는건 그만 하고 싶었다. 다음번엔 타오르는 햇볕이 쨍쨍한 대낮에 당당하게 찾아가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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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약 터지는 소리와 함께 총알이 빛을 내며 발포됐다. 탕! 칼을 든 범죄자는 아슬아슬하게 승민의 총알을 피했다. 추적추적 비가 내리는 날. 우산도 쓰지 않은 채 대로 한복판에서 칼을 들고 설치는 놈은 제정신이 아닌게 분명했다. 승민 또한 두 손으로 총을 쥐느라 우산을 쓰지 못했고 빗물에 젖어 흐려지는 시야를 밝히려고 계속 눈을 끔뻑거렸다. 미친놈은 약이라도 한 듯 칼을 든 손은 벌벌 떨리고 있었다. 저 칼잽이는 단단한 오해를 하고 있었다.
"니는 김무서이 그 개자식이랑 손잡은기지? 그 양아치새끼가 조폭질을 정리 할 리가 없다."
"아니라고 내 몇번을 말했노. 들을 생각이 없고마 와 자꾸 묻는데"
무슨 변덕에선가 무성은 자신의 사업체를 전부 합법화 하고 있었고 그 과정에서 조직원 일부가 반발을 한 것이다. 무성이 말로만 조폭 생활을 접는다고 하며 자신들을 밀어내고 다른 세력에게 힘을 몰아주려 한다는 오해였다. 합법화 된 사업에서 잘 적응할 수 있는 조직원만 남기고 폭력적인 조직원들은 방출시켰으니 그들 입장에선 착각 할 만 했다. 그러나 이 착각이 엉뚱하게 승민이를 향한것은 의외의 여파였다.
무성이 손을 뗀 사업과, 방출된 폭력적인 조직원들은 나날이 범행이 잔혹해졌고 경찰들의 더 강한 압박을 받게 됐다. 이런 상황에 그들은 경찰이 자신들을 압박하는 까닭은 김무성이란 방패가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피해망상에 빠진 것이었다. 특히 무성이랑 친했다는 승민이 주동자일 것이라는 짐작이 그들 사이에서 퍼졌다. 무성은 제가 싼 똥을 치우기 위해 대치 소식을 듣자마자 달려왔다. 그 또한 폭우 속을 뛰어오느라 홀딱 젖은 모습이었다.
"장xx이, 내 아니라고 몇번을 말하노. 그 칼 내리놓고. 좀 진정해보라."
"너 이 씹새끼 여가 어라고 기어나오노. 니 튀나온거 보니까 결탁한거 맞네. 니가튼 씹새끼가 이런 짭새새끼 뭐가 중요해서 이래 챙기는데. 니 깔이라도 되는기가."
"저자스기 도라도 단다이 도랐네."
다른 경찰도 몇명 대치중이었지만 섣불리 발포할 수 없었다. 훤한 대로변에서 그 생난리를 치는 중이었기 때문에 자칫하다간 시민이 맞을 위험이 있었다. 경찰들은 확성기로 그를 설득해보려 했다.
"장xx이. 지금이라도 칼 내리노라. 칼 찌르면 처벌 몇배는 더 강해진데이."
"씨팔, 지금 다 뒤지게 생겼는데 콩밥 그칸거로 협박질이노."
칼끝을 떨며 대치상태를 지속하던 그는 갑자기 인파속을 바라보더니 미소를 지었다. 그리고 순간. 사람 한 명이 튀어나와 승민의 옆구리에 재빠르게 칼질을 너댓번 찔렀다. 이새끼 뭐야! 경찰들이 현행범을 붙잡아 깔아뭉갰다. 그리고 대치중이었던 칼잽이는 인파 속으로 도망쳤다. 그 칼잽이도 붙잡으러 많은 경찰이 추적했다. 현행범 또한 방출당한 조직원 중 한명이었다.
피는 승민의 다리를 타고 흘러 빗물 웅덩이를 피 웅덩이로 만들었다. 믿어지지 않는 현실에 옆구리를 만졌지만 꿈이 아닌 현실이었다. 손에도 붉은 피가 묻어나왔다. 다리에 힘이 풀리고 그의 몸은 쓰러졌다.
"승미아-!!"
무성은 재빠르게 튀어나가 승민의 쓰러진 몸을 붙잡았다. 그리고 근처 벽에 기댈 수 있게 만들었다. 빨리 구급차 불러! 다른 경찰들이 무전치고 있는 목소리가 들렸지만 여태껏 많은 피를 본 무성은 직감적으로 알았다. 가망이 없었다. 그리고 당사자 또한 이건 살아날 수 없다는 걸 본능적으로 알았다.
살면서 칼을 찌르기도 하고 찔리기도 한 그였지만 승민의 옆구리에서 줄줄 새는 피에 손끝이 떨렸다. 구멍을 막아보려 했으나 비때문에 미끈거리는 손가락 사이사이로 울컥 울컥 피는 계속해서 튀어나왔다. 승민은 눈꺼풀이 무거워짐을 느꼈다. 무성의 얼굴이 흐릿해졌다 또렷해지기를 반복했다. 승민은 떨리는 손으로 안주머니를 더듬거렸다.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서 담배라도 피면 고통이 경감될 것 같은 기분이었다.
힘이 들어가지 않는 손으로 담배 한 개비를 꺼내 입에 물었다. 라이터로 불을 붙이려고 하는데 손가락이 계속 헛돌았다. 불을 킬 힘 까지는 없었다. 보다못한 무성이 라이터를 뺏어서 불을 밝혔다. 파르르 떨리는 눈빛으로 무성이를 올려다보았다. '이것마저 거절하진 않겠지' 하는 표정이었다. 그 꼴이 우스웠다. 승민은 살풋 눈웃음을 짓더니 허락한다는 듯이 고개를 끄떡였다.
무성은 승민의 담배에 불을 붙여줄 수 있었다. 폐에도 구멍이 뚫렸는지 제대로 쉬어지지 않는 숨을 억지로 깊게 들이마셨다. 바람 통하는 소리와 함께 울컥 피가 올라왔다. 간신히 불을 붙인 담배는 입에서 흘러내렸다. 쿨럭, 쿨럭 승민은 계속해서 피를 토했다.
승민의 주변은 시뻘건 피웅덩이였지만 무성은 개의치 않고 그 옆에 철푸덕 앉았다. 그리고 쓰러지는 승민의 몸을 다시 일으켜 제 어께에 기댈 수 있게 해 줬다. 흘러내린 담배도 다시 주워 승민의 입가에 대 줬지만 들이마실 힘도 없는지 숨만 쌕쌕거렸다. 승민의 몸이 점점 차가워지고 있었다. 어께를 붙잡은 손에 힘이 꽈악 들어갔다. 무슨 말을 해야 할 지 말을 고르다가 무성의 입에서 나온 말은 평상시랑 비슷한 말투였다.
"친구가 불 붙여주니 담배 맛 좋제?"
이 순간에 이런 얘기를 하는 게 무성이 다웠다. 티가 나지 않을 정도로 미세하게 승민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맞네... 직이네..."
아주 작은 숨소리같이 속삭이는 목소리였다.
"그 맛을 이제야 알게 됐노."
말을 이어갔지만 더 이상 들려오는 대답은 없었다. 옆에 놓인 몸에서 완전히 힘이 빠진게 느껴졌다. 담배는 피웅덩이 속으로 떨어져 불이 꺼졌다.
"오늘 운수 개같이 안좋네..."
무성은 하늘을 올려다봤다. 빗물이 그의 얼굴을 타고 흘렀다. 우중충한 하늘엔 태양도 비구름 뒤에 숨어있었다. 세상이 어두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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