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뜬금없이 모르는 번호로 연락이 왔는데

고등학교 동창인 거야

혹시 대출이나 다단계나 사이비 권유일까봐

덜덜 떨면서

내 번호는 어떻게 알았냐

무슨 일로 전화했냐고 물어보니까

졸업앨범 뒤에 인적사항 보고 연락했다고

학교 다닐 때 따 시킨 거 사과하고 싶다더라고...

솔직히 그 말 듣고 개당황함

그래서 "응? 무슨 소리야?" 그랬더니

내가 사과 안 받아주는 줄 알았는지

나 학교 다닐 때 매일 혼자 밥 먹거나

우유 당번 대타 시키거나

청소시간에 쓸고 있는 바닥에 쓰레기통 엎은 거나

지나가는 데 팔 같은 데 주먹으로 때리거나

그런 일들을 줄줄 얘기를 하더라고

그러면서 사과는 안 받아줘도 되니까

자기가 미안한 마음 가지고 있다는 것만 알아달라면서

자기 얘기만 막 하더니

씩씩하고 행복하게 살라면서 전화 끊음

통화 끝나고 나서 어이가 없더라

왜냐하면 난 내 학생 때가 나름 무난했다고 생각했거든

지금은 대학이랑 사회 거치고 나이 먹어가면서 나아졌지만

당시에는 거의 대인기피 수준의 극i였는데

남고 진학해서 초반에 어울리기 힘들어서 고생하다가

억지로 친하게 지내려고 하지 말자 맘 먹고

그냥 혼자 조용히 학교 다님

솔직히 밥은 혼자라고 하기는 뭐한 게

꼭 같은 반 애들 옆에 앉아서 조용히 먹었고

우유 당번은 쉬는 시간에 떠들썩한 반 분위기가 부담되서

자처한 부분이 크다고 생각했음

뭐 쓰레기통이나 그 외에 잡다한 놀림, 장난 같은 거는

지들끼리 놀다가 팔다리 부러지거나

실명할 뻔하거나 하는 애들이 득실거리는 사이에 있다 보니까

스스로 이 정도면

오늘도 안전하게 귀가시켜주셔서 감사합니다 하는 맘이었고

그래도 같은 반이라고 어색한데도 놀아주나 싶어서

오히려 불편하니까 그만해도 된다고 할까 그런 생각을 하긴 함

그런데 8년 만에 자칭 가해자 동창한테서 연락이 와서

사실 내가 왕따였다면서 

나한테 왕따라이팅 하는 걸 듣고 나니까

기분이 묘해짐

이걸 지금이라도 사과해줘서 고맙다고 생각해야 하나

8년 만에 나도 몰랐던 왕따 사실을 알려줘서 ㅈ 같다고 해야 하나...

어쨌든 ㅎㅅ야, 이 글을 네가 볼지는 모르지만

난 네 바람대로 씩씩하고 행복하게 잘 살고 있다

남고-공대의 저주인지 평생 주변에 남자 밖에 없긴 하지만

불행 하나 없는 삶이 어디 있겠니

나는 스스로의 삶에 굉장히 만족하고 있단다

그러니 너도 씩씩하고 행복하게 인생을 살길 바란다

되도록 드라마를 멀리 하고...

이 상황에서 직접 연락하기는 너무 어색하고

어디에 글을 쓸까 하다가

네가 이 드라마에 과몰입한 게 아닌가 싶어서

여기에 글을 남긴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ㅎㅅ야

나 왕따 아니었다 이 ㅅㅂ롬아ㅡㅡ

멀쩡히 잘 사는 사람 왕따 만들지 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