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우석 칼럼가
서울시장 오세훈이 최근 들어 엉뚱한 길을 걷고 있다. 간단한 일이 아니다. 보수 정치인 중 대권에 가장 근접한 사람인 그의 잇단 패착은 사뭇 걱정스러운 게 사실이다. 그런 징후는 우선 잘못된 사상적 모색과 엉뚱한 정책 혼선의 가지 양상으로 나타나고 있다. 우선 그는 4.10 총선 뒤부터 '따듯한 보수론'을 자신의 브랜드로 띄우고 있는데, 그것부터 잘못이다.
그는 4.10 총선 직후 조선일보 오피니언 페이지에 자기 이름을 걸고 눈에 띄는 기고문 하나를 발표했다. "힘든 토끼 위한 '따뜻한 보수'를"이란 제목이었다. 내용은 신문 부제목을 그대로 인용하면 "중산층 줄고 하위 계층 느는 한국/'운동권 심판론'보다 미래 비전을" 앞세워야 옳았다는 것이 오세훈의 목소리다. 그런데 이 무슨 얘긴가?
국힘당의 총선 참패는 586 운동권 청산론 같은 잘못된 비전을 꺼낸 탓이며, 그렇다면 이른바 '약자와의 동행'에 답이 있다는 소신에 다름 아니다. 즉 오세훈의 말은 좌우를 따지지도 묻지도 말 것, 무조건 퍼주자는 포퓰리즘 찬가로 들릴 수밖에 없다.
무엇보다 오세훈 발언은 딱 20년 전 노무현의 악명높은 발언을 떠올리게 한다. 당시 그는 "합리적인 보수, 따듯한 보수, 별의별 보수를 다 갖다 놓아도 보수는 결국 바꾸지 말자는 소리가 아니냐?"고 헛소리했다. 이후로 따듯한 보수 타령을 하거나 홍석현의 중앙일보처럼 '열린 보수'를 앞세워보니 결국 좌파 프레임에 갇히고 만다는 것을 생각이 짧은 그는 잘 모른다.
그렇다면 오세훈 기고문은 내용부터 허술했고, 정치철학으로 실패했다는 지적을 피할 수 없다. 정말 아리송한 건 13년 전인 2011년의 그는 무상급식 등 보편복지에 목숨 걸고 반대했던 사람이란 점이다. 그때 함부로 처신하다가 서울시장직을 좌파 박원순에게 덜컥 내주면서 불명예 퇴진을 하지 않았던가? 그랬던 그가 세월이 지나 보편복지와 큰 차이가 없는 '약자와의 동행' 카드를 꺼내들어서 뭘 하겠다는 건가?
정말 문제는 최근 오세훈의 연이은 헛발질로, 정말 기겁할 노릇이다. 서울 종로구 송현광장에 이승만기념관을 건립하는 문제와 관련해 한 발 물러선 것이다. 아니 "나는 모르겠다"는 식으로 나자빠진 것이다. 그는 11일 서울시의회에서 한 시의원의 질의에 "이승만기념관 건립추진위원회 측으로부터 이 장소(송현광장)가 최적지라는 요청을 받고 검토하는 단계이지만..."라고 말하면서 말꼬리를 흐렸다.
직후 "충분히 국민적 논의가 이뤄질 시간적 여유를 갖고, 논의 결과 여론이 형성되는 데에 따라 이곳(송현광장)이 가장 적지냐 하는 논의가 시 차원에서 있어야겠고, 의회 차원에서도 의견을 모아야 일이 진척되지 않겠나"라고 언급했다. 무슨 말인가? "국민적 공감대가 전제돼야 적지로 결정할 수 있기 때문에 나는 여론이 형성되는 과정을 지켜만보겠다"는 것이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20일 오후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에서 열린 제322회 서울특별시의회 임시회 1차 본회의에 참석해 업무보고에 앞서 인사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지난 2월 서울시의회에서 그가 했던 당찬 답변과 견줘보면 기념관 추진 의지를 확연히 누그러뜨린 모습이다. 더 놀랍게도 그는 불교계의 반대를 설득하는 문제도 건립추진위원회 쪽에 공을 넘겨버렸다. 번거롭고 힘든 것은 당신들이 다 알아서 하라는 말이다. 서울시는 이승만기념관 건립을 위해 앞장서 총대를 메지는 않겠다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것이다.
더욱이 자유우파 쪽을 자극한 것은 기념관이 건립되면 이승만 전 대통령의 공과를 균형 있게 반영할 것이라고 말한 그 대목이다. 그는 "모든 역사적 인물은 공과가 있다는 것을 전제로 (기념관 전시공간은) 공과 과를 50대50 비중으로 전시하겠다는 것"이라고 무책임하게 설명해 주변을 거듭 놀라게 했다.
자 이걸 정리하면 그는 자신의 말을 뒤집은 채 "나는 모르겠으니 당신들이 알아서 해달다"는 식의 최악의 유체이탈법 태도를 보였다. 그리고 건국 대통령 이승만에 대한 확신이 전혀 없는 채 좌파와 우파가 주장하는 걸 모두 수용해 산술적으로 병행 전시하겠다는 태도도 보였다. 이게 한마디로 믿었던 오세훈의 배신이며, 자유우파가 관심을 가져온 한 유력 대권후보의 탈락이다.
자유우파가 이 사태를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응할 것인가? 지난주 나는 이 자리에서 이미 밝혔다. "오세훈 시장의 기회주의적 태도도 걱정"이며, 이승만기념관건립추진위원회가 송현공원을 원하니까 마지못해 찬성만 하다가 뒤로 나자빠진 게 현 상황을 방치할 경우 백년하청이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최악의 경우 부지 선정도 못하고, 국민모금도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이 정부의 남은 임기 3년이 끝날 수도 있는 것이다. 결정적 반전의 계기가 없다면 상황은 그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 우리의 목표인 이승만기념관 건립도 위기이고, 오세훈 시장은 물론 윤석열 정부의 총체적 실패가 두렵다. 이 나라에 제대로 된 사람이 이렇게 없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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