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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르기스스탄 여행할 때 우러전 자원봉사자 만난 썰+기타전쟁잡썰
사진은 수도 비슈케크 작년 9월에서 10월로 넘어갈 때였던 것 같다 아니면 10월 중순이거나 수도에서 며칠 머물 때는 그 나라 여행 계획만 세우다가 떠나서 사진이 별로 없다 암튼 지방 도시를 갔다가 다시 수도로 돌아와 우즈베키스탄으로 넘어가기 전에 며칠동안 게스트하우스에서 묵기로 했음 게하에서 며칠째 혼자 꼬냑이나 보드카를 혼술하던 30대 중반 아재가 있었음 그 사람도 내가 몇번 보이니까 보드카를 한 잔 주더라 나는 그걸 얻어마시면서 매일 술마시는 걸 보고 걱정돼서 몸 상하니까 너무 많이 마시지 말라고 하니까 갑자기 자기 이야기 좀 들어달래 그러면서 근처 피자집으로 데려감 거기서 자기 이야기를 시작함 자기는 영국인이고 옥스퍼드에서 석사 학위를 마치던 중에 우크라이나로 참전을 했다고 하더라 솔직히 조금 놀람 여행하면서 다들 우러전 이야기를 하긴 함 그 중 스탄 국가 사람들은 우크라이나에는 정말 나치가 있고 정당하다고 생각하기도 하거든 나는 그러려니하면서 그 사람들 이야기를 들었는데 실제 참전자를 만난건 처음이라서 놀란거 ㅇㅇ 근데 그 영국인은 3달 정도 있었댔음 근처에서 너무 많이 죽어서 너무 무서웠다고 하면서 술을 계속 마심 나한테 사람과 자신을 소중하게 하라고 하더라 뭔가 영혼이 죽은듯한 사람이었음 쓰다보니 썰이 허접하네 전쟁 관련해서 한 두 세개정도만 더 씀 2. 우즈베키스탄에서 택시를 탔음 한국인이라고 하니까 택시 기사가 존나 신나하면서 자기 할아버지가 한국 전쟁때 전투기 조종사로 참전했다고 자랑함 근데 생각해보면 그 때 우즈베키스탄은 소련이었음.... 3. 또 우즈베키스탄 수도 타슈켄트에 있을 때 숙소에 나랑 독일인을 제외하면 모두 방글라데시 출신 무슬림이었음 남아시아인들이 그렇듯 엄청 시끄러움 밤새 음악틀고 소리지르고 ㅋㅋㅋㅋㅋㅋ 한 번은 새벽에 방에서 나와서 시발 3시니까 좀 조용히하라고 꼰질한 적도 있음ㅋㅋㅋㅋㅋ 근데 아침이 되니까 다들 숙연한거 그 날이 이스라엘이 하마스한티 침공당한 날임 무슬림들 바로 나랑 독일인한테 종교 물어봄 독일인은 대답을 피했고 무교인 나는 불교라고 대답함 불교는 적이 없으니까 (무슬림들한테 내가 무교라고 몇 번 말했는데 그 때마다 그러면 나보고 공산주의자냐고 되물어봤기 때문에 걍 불교라고 말하고 다녔음) 그러면서 누가 잘했니 못했니 하는 분위기가 며칠동안 이어짐 3일정도 지났나? 가자지구 병원 폭격한거 다들 기억할거임 그 때 또 난리남 어떻게 병원을 폭격할 수 있냐 파렴치한 놈들 이러면서 나한테 토론을 걸길래 하마스는 갓난아기를 목 잘라서 불태우지 않았냐, 도망치는 수많은 외국인을 죽이고 강간하고 시신을 능욕하지 않았냐고 말하니까 다들 구라치지 말래 그래서 내가 BBC 뉴스를 보여줬음 무슬림들은 그것도 충격이었음 처음 봤나봐 그놈들은 무슬림이 아니다 라면서 바로 손절 나는 개인적으로 무슬림들 존경함 많이 만나봤고 실제로 만나보면 다들 어른스럽고 또 너그럽거든 그런데 이 사건 때문에 내 생각에는 무슬림 특유의 광신성에는 알고리즘이거나 아니면 정보 차단이 있는 것 같다고 느꼈음 3. 우즈베키스탄 사마르칸트에서 만난 외국인들이랑 술마시고 놀았음 나는 다음 날 타지키스탄 판자켄트로 넘어갈 생각이었기 때문에 원없이 놀았는데 한 명이 잘 안마셔 다들 물어보니까 자기는 이스라엘 사람이고 전역한지 며칠 안됐는데 아무래도 돌아가야 할 것 같다고 새벽 세시에 비행기 타고 재입대한다는거임 좀 이따 그 사람이 먼저 갈 때 다들 그 사람이랑 포옹하면서 헤어짐 몸 건강하라는 의미에서 다음에 언젠가 또 보자는 의미에서 며칠 뒤에 그 사람 인스타 스토리에 전투복 입고 교육받는 사진이 올라오더라 근데 그 뒤로 인스타 안올라옴.... 걍 바쁘거나 보안 때문에 못올린다고 생각하고 있음 4. 중앙아시아에 젊은 러시아 남자가 되게 많이 있음 카자흐스탄에서 만난 남자는 전차병 출신인데 카자흐스탄에 돈벌려고 잠깐 오려고 했는데 1주일 뒤에 동원령 떨어졌댔음 전차병 출신이면 무조건 재입대니까 자기 진짜 뒤질뻔했다고 하더라 그 사람 거기서 막노동하다가 지금은 두바이로 갔음 또 다른 한 명은 키르기스스탄 이식쿨 호수 근처에서 만났음 원래 게임 개발자에 노래도 좋아해서 버스킹도 하는 사람이었는데 전쟁 나고 심상치 않아지자 부인은 모스크바에 두고 나중에 오겠다면서 키르기스스탄으로 와서 트럭 운전수함 푸틴은 러시아 사람 아니다 러시아 사람이라면 러시아 사람을 죽게 만들수 없어 라고 말하기도 함 그리고 러시아에 있을 때 존나 무서웠대 지금은 아쉽게도 부인이랑 이혼했대 나중에 게임 개발하면 나보고 한국어 번역을 맡아달래서 알았다고 약속했음 여행하다보니까 이런 것들이 실제로 체감이 되더라 그래서 솔직히 중동 우크라이나에서 사람 죽는 이야기 듣다가 한국 돌아와서 뉴스 보니까 같잖아진 적도 있었음ㅋㅋㅋㅋㅋㅋㅋ 썰 끝이다 늦었으니까 주무세요 중앙아시아 사진 몇 장 더 줄게 1. 카자흐스탄 2. 키르기스스탄 3. 우즈베키스탄 4. 타지키스탄 참고로 저 강 건너는 아프가니스탄이다 건너편에서 총소리 들림 진짜로 잘자! - dc official App
작성자 : 여행하는놈고정닉
1812년 러시아 원정에서의 창기병들
[시리즈] 울란 시리즈 · 좌충우돌 폴란드 기병들을 만난 나폴레옹 · 나폴레옹이 좋아했던 창기병들 1812년, 마침내 폴란드인들이 기다리던 그 순간이 찾아왔다. 나폴레옹이 길고 긴 고심 끝에 러시아를 침공하기로 결정한 것이다. 이 전쟁을 위해 프랑스는 이탈리아, 독일, 스위스, 오스트리아, 폴란드등 제국의 동맹국들에게 엄청난 병력과 물자를 요구했다, 황제는 폴란드인들에게 자신을 돕는 대가로 '폴란드-리투아니아'의 재건을 약속했다. 당연히 모든 폴란드인들이 물심양면으로 나폴레옹을 지원했다. 근위대였던 제1 창기병 연대도 5번째 대대가 신설되면서 총원 1,000명을 넘기며 벌크업했다. 폴란드 기병들은 마침내 고향을 해방 시킬수 있다는 고양감에 도취됐다. 새로 편성된 5대대는 다부 원수의 경호를 맡았고 나머지 4개 대대는 나폴레옹 휘하에 배치됐다. 1812년 6월 24일, 폴란드 기병들은 대육군의 선봉에 서서 니에멘 강(Niemen River)을 건넜다. 니에멘 강 동안에 펼쳐진 광활한 벌판은 나폴레옹과 원수들이 여태까지 단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새로운 전장이었다. 그 동안 프랑스군은 온화하고 비옥한(다른말로 하자면 '약탈할 것이 많은') 서,남,중부유럽에서만 작전을 펼쳐왔다. 하지만 러시아 땅에 들어서자 정말 아무것도 없었다. 가끔씩 나타나는 마을과 도시들은 매우 빈곤해서 수십만 대육군들의 주린 배를 채워줄 수 없었다. 러시아군의 청야전술로 인해 프랑스군과 대육군이 챙길 보급품은 하나도 건질 것이 없었다.현지약탈로 보급을 충당하는 것에 도가 텄던 프랑스군들은 약탈할 만한 것들이 전혀 없으니 어쩌질 못했다. 프랑스군이 저런 상황이니 그 밑의 라인연방 소속 독일인들, 이탈리아인들, 기타 유럽 각지에서 차출된 군대들의 상황은 불보듯 뻔했다. 수많은 대육군 소속 병사들이 먹을 것을 구하지 못해 굶어죽거나 풍토병에 걸려 죽었다. 빵 한조각, 밀 한줌을 차지하기 위해 주먹다짐이 여기저기서 벌어졌고 대부분은 귀중한 식량을 그 자리에서 혼자 먹어치웠다.러시아군은 기마민족인 카자크(Казаки)를 이용해 대육군을 괴롭혔다. 스텝초원에서 말달리던 카자크들은 정규전에는 어울리지 않았지만 추적, 기습, 게릴라전 같은 비정규전에는 타고난 재능을 발휘했다. 이들은 대육군 대열을 수시로 염탐하며 식량을 구하러 멀리 떨어져 나온 병사들을 습격하고 머스킷 탄환 사거리 밖에서 밤낮으로 야만인들처럼 소리를 질러대며 신경을 긁어놨다. 프랑스군과 동맹군들이 뒤늦게 대응하려고 하면 그 사이에 도망쳤다. 만약 어설프게 추격해온 기병들이 있다면 숲속 어딘가로 유인되어 포위 당해 전멸하는 일이 여기저기서 벌어졌다. 이런 극한상황에서 폴란드인의 활약이 두드러졌다. 러시아 초원과 똑같은 환경의 고향에서 살았던 그들에게 이번 원정은 조금 힘들 뿐이었다. 이들은 스텝지역의 거친환경에 익숙했고 러시아 농노들이 어디에 식량을 숨겨두는지 알고 있었다. 폴란드 병사들은 다른나라 병사들에게 '먹을 것을 구하면 혼자 먹지 말고 반드시 야영지로 가지고 와서 동료들과 나눠먹어야 한다'고 일러줬다. 전우애 같은 인륜적 문제가 아니라 그렇게 해야만 생존할 확률이 올라갔기 때문이다. 폴란드인들은 대육군의 다른나라 군대에 비해 4배 이상 높은 생존율을 보였다.카자크를 많이 상대해본 역사를 가진 폴란드 기병들은 다른 나라 기병들에게 '적이 나타나면 절대 추격하지 말고 거리를 두고 견제만 해라'고 충고했다. 이미 그들 조상대부터 수백년 동안 카자크와 붙어본 경험에서 우러나온 피드백이었다. 이 때문에 카자크들도 긴 창을 든 폴란드 기병들이 보이면 되도록 도발을 걸지 않았다. 슬라브어권인 폴란드와 러시아의 언어적 공통점 덕분에 폴란드 기병들은 어설픈 러시아어를 구사하며 러시아 농노들을 속일 수 있었다. 그들은 어차피 귀족 나으리들은 프랑스어를 쓰니까 러시아어가 어눌한걸 거라고 여긴 채 굽신거리며 길을 가르쳐줬다. 다음은 제1 창기병연대가 러시아에서 겪은 여러가지 일화들이다.* 리투아니아 빌리야 강(Vilija River)을 도하하던 중 강 반대편에서 카자크 한무리가 나타남. 이들을 처음 본 황제는 창기병들에게 적을 격퇴하라고 지시함. 폴란드 장교들은 카자크가 위협이 되지 않을 거라는걸 알고 있었으나 황제의 명령이니 어쩔 수 없이 실행함. 기병 1명이 급하게 강을 건너던 도중 익사하였으나 카자크들을 격퇴하는데 성공함.* 오스트로브노(Ostrovno) 전투 이후 한 무리의 카자크들이 철수하는 러시아군 주력을 엄호하기 위해 대육군 선발대 근처에서 시간을 끌려고 함. 폴란드 창기병들이 투입되어 격퇴한 뒤 3~4명을 포로로 잡음. * 호로드니아(Horodnia)에서 얀 코지에툴스키(Jan Kozietulski) 중령이 이끄는 창기병 4개 중대가 황제의 명령을 받고 반대편 고지에 주둔한 카자크들을 견제하기 위해 진격함. 카자크들은 슬금슬금 거리를 좁히더니 폴란드인들을 레치(Lachy)라고 부르며 권총을 100여발 쏘는등 도발을 감행함. 하지만 전부 사거리 밖이라서 한발도 닿지 않음. 이윽고 장교로 보이는 카자크 1명은 100보 이내로 다가와서 결투를 신청함. 코지에툴스키가 절대 반응하지 말라고 부하들에게 명령하자, 카자크는 아예 말에서 내리더니 모자를 벗고 이상한 춤(코사크 댄스)를 추기까지 함. 하지만 폴란드 기병들이 넘어오지 않자 마침내 지쳤는지 도발하지 않겠다는 뜻을 전하고 자신들 진영으로 사라짐. * 위와 같은 호로드니아에서 다른 카자크 무리가 지형정찰을 나온 나폴레옹 일행에게 접근함. 이에 경호를 담당하던 코지에툴스키의 1중대가 먼저 기동을 차단하고 접전을 벌임. 붉은 창기병대와 기마 척탄병연대(Regiment de Grenadiers-à-Cheval)가 증원왔으나 카자크들은 숫적 우위를 믿고 오히려 근위대를 삼면에서 포위하려고 시도함. 제국 근위대는 정말 필사적으로 싸운 끝에 카자크를 격퇴하는데 성공함. 코지에툴스키는 이 전투에서 기병창에 어깨가 꿰뚫리는 중상을 입었으나 황제를 보호했다는 전공 덕분에 대령으로 승진함.* 스몰렌스크(Smolensk)에서 카자크 무리가 성벽에 바짝 붙은 채로 초계를 돌아 포병사격을 견제함. 이에 황제는 1 중대장이었던 흐와포프스키(Dezydery Chłapowski)에게 포병대의 안전을 위해 카자크들을 몰아내라고 명령함. 폴란드 기병들이 성벽에서 날아올 사격에 대비하여 돌격진형 대신 일자대형으로 출격함. 곧바로 카자크들이 성벽의 러시아군들의 엄호사격을 받으며 공격해옴. 작열탄 때문에 진영에 구멍이 뚫리자 카자크들이 파고들어 왔으나, 폴란드 기병들은 전부 마상접전을 벌여 역으로 격퇴하는데 성공함. 흐와포프스키의 '카자크들은 용맹했으나 검술, 창술실력이 어설펐고 폴란드 기병 1명이 카자크 2~3명을 동시에 상대해도 압도할 수있었다'고 기록함. 카자크들이 쓰는 창은 울란용 창보다 길었으나 마상창술에는 적합하지 않았다고 함.* 보로디노(Borodino)에서 1연대는 근위대 투입을 거부한 나폴레옹의 명령으로 인해 하루종일 후방에서만 주둔했으나, 전투 막바지에는 작센 자스트로프 흉갑기병대(Zastrow Kuirassiers)를 지원하여 라에프스키 보루를 점령하는데 결정적 역할을 함.* 1연대에는 가린스키(Garlinski)라는 이름의 급양병이 있었다. 그는 말을 타진 못했지만 맛있는 음식을 만들 줄은 알았다. 폴란드 기병들은 매일 저녁마다 그들이 구해온 식량을 전부 가린스키에게 맡겼고 그는 매일 아침마다 기병대 전원에게 고기와 수프를 만들어줬다. 폴란드인들은 가린스키를 황제 다음으로 최우선 경호대상으로 여겼다.반면 제2 창기병연대였던 네덜란드 붉은 창기병대(Red Lancer)는 베르사유에서 꿀이나 빨던 부대라서 모든 면에서 미흡했다. 일단 언어가 통하지 않아 중대마다 폴란드 기병이 1명씩 배속되어 통역을 담당해줘야 했고 기마술이라던지 야전 생존술도 많이 떨어졌다. 네덜란드 창기병들은 용맹했지만 창기병으로서는 충분히 민첩하지 못했다. 이들이 타는 말은 흉갑기병에게나 어울리는 몸무게가 많이 나가고 선회력이 떨어지는 군마들이었다. 무엇보다 그들의 창술은 보완하는게 불가능했다. 러시아 침공 직전 네덜란드인들은 제1연대에게 요청하여 폴란드 기병들에게 6주간 창술 교육을 받았다. 하지만 그 뒤로 1년이 지나고도 창을 제대로 쓸줄 아는 네덜란드 기병들은 거의 없었다.네덜란드 인들은 카자크에게 대처하는 방법도 몰랐다. 이들은 카자크가 보이기만 하면 무작정 돌격을 시도했다. 바비노비츠(Babinovitz)에서는 정찰을 나갔던 붉은 창기병들이 무려 50명이나 넘게 카자크의 포로가 됐다. 이 날 이후로 카자크들은 빨간 옷을 입은 창기병들이 어설프다는걸 간파하여 집요하게 네덜란드 창기병들이 담당하는 구역을 노렸다. 그들은 붉은 창기병들을 보면 '빨간놈들이다, 잡아라!'라고 외쳤다.카자크들은 소모를 강요하였고 네덜란드 기병들은 한번 출격할 때마다 사상자가 생긴 채 돌아왔다. 그들의 말은 너무 느려서 카자크를 추격할 수도 없었다. 이에 지휘관인 콜베르(Edouard Colbert)대령은 붉은 창기병대를 1연대와 붙어서 다니도록 조치했다. 1연대의 폴란드 기병들을 차출하여 네덜란드인들 속에 배치하는 방법도 사용했다. 이 방법은 효과가 있었다. 네덜란드 기병들은 폴란드 인들로부터 여러가지 노하우를 배웠고 카자크에 맞서서 더 잘 싸우게 됐다. 심지어 두 연대의 기병들이 옷을 바꿔입고 카자크를 낚기도 했다. 하지만 모스크바를 떠나 철수길에 오르면서 폴란드 기병들에게도 점차 시련이 찾아왔다. 갈수록 추워지는 날씨와 끝도 없이 습격해오는 카자크, 러시아군들 때문에 폴란드 기병들은 쉴 틈이 없었다. 그래도 다행인 점은 이들은 혹한기 대비를 제대로 했다는 것이었다. 폴란드 기병들은 모스크바에서 다른 나라 군인들이 금은과 보석, 진귀한 물건, 가구, 고서적을 약탈할 때 오히려 모피코트와 털모자를 최대한 챙기는데 집중했다. 이것은 현명한 선택이었다. 겨울이 다가오자 수많은 대육군 병력이 얼어죽기 시작했다. 하지만 폴란드 기병들은 상대적으로 동사자가 적게 나왔다.러시아에서 후퇴하는 동안 나폴레옹은 1연대의 1개중대를 자신의 호위로 배치했다. 그들은 황제 뿐만 아니라 황제의 개인 비자금 궤짝들도 호위했다. 빌뉴스를 코앞에 두고 강추위가 찾아왔다. 나폴레옹은 자신 옆에 있던 폴란드 기병에게'난 자네들을 믿는다. 최후가 다가왔다는게 확실해지면, 나를 찔러라. 난 포로가 되고 싶지 않다.'고 털어놓았다. 이에 그 폴란드 기병은 '그 누구도 폐하를 위험에 빠뜨리도록 놔두지 않을 겁니다. 다가오는 놈들은 우리가 모두 산산조각 내겠습니다!'라고 대답했다.마침내 베레지나 강에 도착하자 그들은 곧바로 강을 건너지 않고 이틀동안 최후미에서 카자크와 싸우며 다른 대육군 병력이 도하하는 것을 엄호했다. 여기서부터 폴란드 기병들도 마침내 무너지기 시작했다. 최소 100명이 싸우다 죽거나, 낙오하여 얼어죽거나 포로가 됐다. 폴란드 기병들의 고난은 1813년이 되어서야 끝났다.제1 창기병 연대는 1,147명의 기병들과 1,109마리의 말들이 네만강을 건넜으나, 다음해 겨울 폴란드로 돌아온 병력은 단 556명 뿐이었다.
작성자 : ㅇㅇ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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