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타임스=김우선 기자] 지하철 3호선 안국역 1번
출구를 나오니 낯선 풍경이 펼쳐진다. 예전엔 이런 게 없었는데 넓다란 풀밭과 꽃들이 반긴다. 왼편으로는 높다란 건물들이 빼곡한데 여긴 별천지다. 경주의 어느
고분군을 보는 듯한 착각도 든다.
열린송현 녹지광장
서울 한복판, 그것도 사대문 안에 이런 푸르스름한 공원이라니. 마치 미국 뉴욕의 마천루 가운데 있는 센트럴파크 같다고 할까. 게다가
방문한 시각이 오후 7시쯤이라 해도 뉘엿뉘엿 떨어져 서쪽 하늘로 노을이 익고 있어 분위기 최고다.
이 곳의 명칭은 열린송현 녹지광장이다. 2022년 10월에 개장했다고 한다. 이 곳은 서울 종로구 송현동 부지에 있는
공간으로, 경복궁과 종로 사이에 위치하고 있는 광장이다. 송현동
부지는 일제강점기 식산은행 사택, 해방 후 미군 숙소, 미대사관
숙소 등으로 활용되어 오다가 1997년 우리 정부에 반환되었다.
도심 속 이런 곳이 있는 건 행운이다.
잔디가 푸릇푸릇하다.
해가 뉘엿뉘엿 지고 있다.
하지만 이후 별다른 쓰임 없이 폐허로 방치되어 높은 벽에 둘러싸여 있었다.
2022년 7월 한국주택공사로 소유권이 넘어오고 서울시로 다시 소유권이 넘어가면서 쉼과
문화가 있는 열린송현 녹지광장으로 단장하고 시민에게 개방되었다.
서울광장의 3배에 달하는데 높이
4m 담장에 둘러싸여 오랜 기간 닫혀 있던 이 공간은 돌담을 낮추고 야생화로 어우러진 녹지로 조성했다. 이로 인해 율곡로, 감고당길에서 드넓은 녹지광장을 한눈에 담을 수
있다.
남산 소나무 씨앗으로 키운 소나무
쉴 수 있는 의자
돌담장 안으로 들어가면 광장 중앙에 서울광장 잔디보다 넓은 중앙잔디광장이 펼쳐진다. 광장 주변으로는 코스모스, 백일홍과 같은 야생화 군락지가 조성되어
있다. 경복궁과 북촌은 송현동 부지가 열리면서 광장 내부로 난 지름길로 연결된다. 광장을 가로지르며 걷다 보면 청와대, 광화문광장, 인사동 그리고 북촌 골목길로 자연스레 이어진다.
경복궁 바로 옆에 있는 이 공간은 조선시대 초기엔 소나무숲인 구릉지로 경복궁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고 한다. 그래서 '소나무언덕'이라는
뜻으로 송현이라는 지명을 얻었다고 한다. 근현대화 시대를 겪으면서 폐허로 방치된 이곳에 언덕을 중심으로
소나무를 심어 울창한 숲으로 복원하게 되었다고 한다.
화려한 분수 모양 조형물
고분군을 연상케 한다.
다양한 식물이 식재되어 있다.
가을 꽃들이 많다.
녹지광장의 입구
일제강점기에 친일 반민족행위자인 윤덕영 일가의 집이 있었고, 이후
조선 식산은행 사택이, 해방 후에는 미 대사관 숙소로 사용하던 곳이다.
1997년부터 삼성생명과 대한항공이 차례로 매입하여 미술관과 호텔을 지으려고 했으나 각종 규제들로 인해 무산되는 등 100년 넘게 돌담으로 가려져 있었던 비밀공간이었다.
열린송현 녹지광장은 2027년까지 임시로 시민들에게 개방한 이건희
전 삼성 회장이 기부한 미술품을 전시하는 이건희 기증관이 짓고, 송현문화공원으로 재개장한다는 계획이다. 최근엔 오세훈 서울시장이 이건희 기증관 옆에 이승만 기념관을 검토한다는 발표에 논란의 중심에 서 있기도 했다. 이승만은 우리나라 건국 대통령이지만 전두환보다 많은 사람을 희생시킨 장본인이자 독재자이고, 종교방송 설립과 군종 장교제도 도입에 특정 종교에만 특혜를 줘 불교계에 갈등을 일으킨 점을 들어 시민단체와
불교계가 반대하고 나서 지금은 일단 후보지에서 제외된 상태다.
해지는 광장
열린송현 녹지광장 동측에는 서울공예박물관이 있다. 서울공예박물관은
고려시대부터 현대까지 시대별, 분야별 공예를 한곳에서 만날 수 있는 국내 유일의 공예 전문 공립박물관인데
조선말에 안동별궁 건물지(순종의 가례를 위해 지은 별궁)가
있었고, 이후 풍문여고가 있던 자리로 2021년 11월 29일에 오픈했다.
시내 한복판에 이런 녹지공간이 있다는 건 정말 행복한 일이다. 늦은
시간이었음에도 한바퀴를 둘러보는 동안 많은 사람들이 벤치에서, 혹은 잔디밭에 앉아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덩치 큰 SLR 카메라를 목에 건 사람들도 꽤 보인다. 꽃 천지, 별 천지다. 주변에
경복궁을 갈 수도 있고, 북촌 등으로 발길을 돌려 호젓한 카페 투어도 좋을 듯하다. 연인들에게 이보다 좋은 데이트 코스가 있을까 싶다.
<ansonny@reviewtime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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