갤러리 이슈박스, 최근방문 갤러리
연관 갤러리
프로그래밍 갤러리 타 갤러리(0)
이 갤러리가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추가한 갤러리가 없습니다.
0/0
타 갤러리 프로그래밍 갤러리(0)
이 갤러리를 연관 갤러리로 추가한 갤러리
0/0
개념글 리스트
1/3
- 초대 고지라의 열선은 어떻게 표현했나 다스캣
- 트럼프 셧다운 인터뷰 반응 매섭노ㄷㄷ ㅇㅇ
- 싱글벙글 현재 해외에서 논란인 도쿄의 어느 술집 ㅇㅇ
- 통영 퐁퐁(후기) 인터벌이 무엇?이냐 바랏두르
- 김만배 5700억·남욱 1000억 고스란히 챙겨… ‘뇌물 무죄’도 확정 ㅇㅇ
- 등붕이 대구 비슬산 다녀왔습니다 돼지곰
- 얼굴로 중국을 욕했다는 중국인들 JPG ㅇㅇ
- 싱글벙글 현재 인하대 에타에서 논란 중인거 ㅇㅇ
- 오늘 기저귀 갈면서 어떤 딸맘한테 기분 더러운 일 겪음 ㅇㅇ
- 싱글벙글 영화 프레데터 죽음의땅 촬영 사진들 수인갤러리
- 500억 넘는 국유재산, 매각시 대통령 승인 받아야 잼카
- 개추) 실시간 제우스 스토리 Chan
- 싱글벙글 어떤 남성이 흑화하는 과정 ㅁㅁ
- 너도 할 수 있다! 컬러인화!!(인화편) 후디
- 결혼시장에 넘쳐난다는 90초반 여성들.jpg 네거티장애
제마 풀코스 끝까지 뛰어본 후기
안녕하세요. 예전에 '첫 풀코스 제마 끝까지 가본 후기'를 남겼던 런린이입니다.https://gall.dcinside.com/mgallery/board/view?id=running&no=480988 (장문) 첫 풀코스 제마 끝까지 가본 후기 - 러닝 마이너 갤러리풀코스 완주가 버킷리스트여서 작년부터 러닝을 시작한 런린이입니다. (진짜 런린이)야근이 많은 직장인이라 훈련 시간이 충분치 않지만 월 100~120km 정도 꾸준히 마일리지를 쌓아오다가오늘 제마로 첫 풀코스를 도전하게gall.dcinside.com 작년 제마에서 '끝까지 가는 것'에는 성공했지만 5시간 내 완주는 실패했었기 때문에, 올해 제마에서 다시 풀코스를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개인 기록용으로 글이 길고, 편한 어투로 작성된 점 양해 부탁드립니다.) 작년의 처절했던 실패 후, 겨울부터 바로 훈련에 들어갔다. 눈이 와도 달리고 벚꽃 필 때도 달리고 장경인대염도 터졌다가 무더웠던 날도 단풍 드는 날도 지나대회 날이 찾아왔다. 바람은 쌀쌀했지만 날씨는 완벽했고, 며칠 전부터 갑자기 쎄했던 무릎(장경인대)도 나쁘지 않았다.작년 피니시 라인이 철거될 때 겨우 들어온 기록도 인정이 되었는지, 올해는 D조에 배치되었다. 사람들은 서브3다, 서브4다 도전을 하지만 나는 러닝에 그리 재능이 있지는 않았다. 오히려 '컷오프 러너'인 나는 컷오프 시간을 조금 더 벌었다는 것에 감사할 따름이었다. 0. 출발 전 작년 첫 풀코스에서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피니시 라인을 밟았지만, 제한시간 내 완주는 하지 못했다. (처절했던 작년 제마) 따라서 이번 목표는 단연 '진짜 완주'였으나, 고민이 있었다. 20km 열 번, 25km 두 번, 그리고 30km, 35km의 장거리 훈련. 마지막 30km, 35km는 중간 보급과 휴식으로 뚫어낸 거리. 이번 대회도 적절히 휴식을 섞어준다면 꿈만 같던 완주가 손에 닿을 것 같았다. 하지만 내가 마라톤을 하는 이유는 단순히 제한 시간 내에 결승선을 밟기 위함이 아니라,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하기 위함에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무모하지만 '걷지 않고 끝까지 뛰기'를 목표로 출발선에 섰다. 1. 0~20km 구간 레이스가 시작되고 D조 사람들이 출발한 후, 나는 후미에서 천천히 출발했다. 초반부는 6분 30초 페이스로 컨디션을 유지하는 게 핵심이었다. 작년에는 거의 코스 중간부터 허벅지, 종아리, 복근 경련이 일어났다. 오늘은 절대 그런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 초반에 절대 무리하지 않을 수 있도록 4시간 30분 페이스메이커 팩을 앞뒤로 두고 달렸다. 4시간 30분 페메는 6분 중반대 페이스를 예상했는데 6분 초반대로 운영하시는 것 같았고, 다행히 초반 목표심박이 유지되고 있어서 예정보다 조금 빠른 페이스로 페메 무리를 따라갔다. 병목 구간도 6분 정도로 흘러가고 있어, 흐름에 몸을 맡기고 심박수를 체크하며 발을 움직였다. 날씨도 좋고 페이스도 좋고 너무 행복했다. 2. 20~30km 구간 하프를 통과하고 24km 지점을 통과했다. 작년에 쥐가 나서 파스를 뿌렸던 장소, 다리를 주무르고 있던 길가, 복근 경련으로 주저앉았던 곳을 지나쳐갔다. '작년보다 조금은 더 성장했다.' 여기서부터 내가 달려서 나아갈 수 있는 거리만큼이, 그동안의 성장을 증명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27km쯤 슬슬 다리가 잠기는 게 느껴졌다. 한번도 걷거나 쉬지 않았기 때문인지, 장거리 훈련 때보다도 훨씬 빠르게 다리가 무거워졌다. 사점이 생각보다 빨리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28km 지점에서는 흰 깃발을 두른 분이 메가폰으로 주자들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며 응원해주고 있었다. 나도 응원을 받고 싶어 양손으로 배번표를 가리켰지만, 눈만 마주치고 지나쳐버렸다. 그런데 그분이 '앗!'하고 전력질주로 달려오시더니 내 이름을 확인하고 'ㅇㅇㅇ 화이팅!'을 외쳐주었다. 나는 '감사합니다!'하고 지나가면서 내 이름이 담긴 응원을 계속 되뇌었다. 'ㅇㅇㅇ 화이팅. ㅇㅇㅇ 화이팅.' 잠실대교를 넘어가는 길에는 확실히 다리에 총 맞은 주자들이 많이 보였다. 여기는 작년에 다리를 질질 끌며 걷뛰했던 구간이기에 이를 악물고 버텼다. 3. 30~35km 구간 쥐가 올라왔다. '올 게 왔구나.'했지만 작년에 앰뷸런스 앞에서 달렸던 잠실새내를, 올해도 절뚝이며 통과하고 싶지는 않았다. 속도를 낮추며 입에 크램픽스를 털어넣었다. 효과는 모르겠지만 맛은 강력했다. 다행히 작년에는 시작부터 '쥐 났다!!'는 느낌이었다면, 올해는 훈련 덕분인지 쥐가 '올라온다..'는 느낌으로 찾아왔다. 쥐라는 녀석이 문짝을 걷어차고 들어오는 느낌과, 정중히 노크하고 들어오는 느낌의 차이라고 할까. 페이스를 낮추고 주법을 바꿔주면서, 경련이 일어나려는 근육의 사용을 최대한 줄였다. 그리고 해당 부위를 머리로 상상하면서 '괜찮다, 괜찮아'하며 다독였다. 어떻게든 '이제 긴장하지 않아도 돼'라는 신호를 주고 싶었다. 삼전역에 도착할 때 쯤, 작년에 여기에서 "끝까지 가세요! 끝까지!"하고 응원해주신 아저씨가 생각났다. 오늘은 다시 뵙지는 못했지만 응원해주신 마음만은 그곳에 남아있었다. '오늘도 끝까지 가보겠습니다.'하고 나도 마음을 남겨두었다. 삼전 고가도로 언덕에서는 진짜 걷고 싶지 않아서 옆에서 걷고 계신 분과 거의 속도 차이가 없을 정도로, 하지만 절대 걷지는 않는다는 생각으로 다리를 굴렸다. (공포의 삼전 고가도로 업힐) 다행히 학여울역 반환 구간까지는 쥐가 조금 내려가는 듯 했고, 페이스를 낮추고 긴장을 줄여주면 '달리면서도 쥐가 풀어질 수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되었다. 그리고 사점이라는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다리가 심하게 잠기고, 호흡은 신경쓰지 않으면 바로 털려버렸다. 뇌가 그만 뛰자고 속삭였다. '작년에 20km에서 퍼졌는데 30km이면 나름 괜찮잖아?' '이 정도면 피니시 라인 철거하기 전에는 들어갈 수 있잖아?' 하며 유혹했다. 분명 달리는 속도도 느려졌겠지만, 속도보다 그냥 시간 자체가 흐르지 않는 것처럼 느껴졌다. '장거리 뛰었던 35km만 가자.' '훈련으로 35km 뛰어놓고 35km도 못가면 안되니까, 35까지만 가보자.' 하며 참았다. 4. 35 ~ 40km 구간 쥐와 사점의 경계를 달렸다. 허벅지가 괜찮아지나 싶으면 종아리에 쥐가 나고, 쥐가 나아지나 싶어도 온 몸이 무겁고 다리는 거의 다 잠겼다. 거리가 전혀 줄어들지 않고 영겁의 시간에 갇혀버린 기분이었다. 남부순환로 구간에서 4시간 40분 페메 팩에게 추월 당했다. 4시간 40분 페메는 우리조보다 5분 정도 늦게 출발했기 때문에, 내 기준으로는 4시간 45분이 되는 셈이었다. 그것도 그들을 따라갈 수 있을 때의 얘기였다. 초기의 목표였던 Sub5 완주는 반드시 해야했기에, 그들을 따라가진 못해도 최대한 천천히 벌어져야 된다고 생각했다. 수서IC 업힐은 가히 폭력적이었다. 여기서 폭력적이라는 것은 비유가 아니라, 실질적으로 데미지를 받고 있다는 뜻이었다. 길가에는 다리를 부여잡거나 걷고 있는 사람들이 많았다. 걷고 있는 사이를 달리려니, 몸도 마음도 더욱 버거웠다. 헬리오시티 앞을 지나 남은 거리 3km. 매일같이 뛰던 3km. 가끔 컨디션이 안좋을 때 '그럼 3km만 뛰자'했던 그 기본 거리였다. 하지만 삼전 고가도로나 수서 업힐보다 경사는 낮아도, 도저히 끝이 안나는 마지막 이 40km 업힐이 지옥이었다. 어제 저녁에 아내와 함께 차를 타고 이 곳에 왔었다. 사진이나 로드뷰로는 체감되지 않는 업힐을 직접 체감하면서 이미지 트레이닝을 하기 위함이었다. 미리 예행연습을 올 만큼 간절한 마음이었다. 하지만 연습은 연습이고 현실은 냉혹했다. '딱 40km까지만. 딱 이 업힐까지만 버티자.'고 생각했다. 5. 40km 이후 그동안 풀코스를 다시 준비하면서, 모든 중장거리 훈련을 (n+2)km로 연습했다. 10km를 뛸 때도 항상 8+2km로 뛰었고, 35km 훈련 때도 마지막 2km는 이 구간의 고통과 응원을 상상하면서 달렸다. 내가 영화나 드라마의 주인공이었다면, 여기서 그동안의 경험치를 폭발시켜 극적인 해피엔딩을 맞이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은 현실이다. (컷오프 후 혼자 인도를 달렸던 작년) 간신히 마지막 업힐의 끝에 닿았고 40km를 돌파했다. 남은 2km에 모든 걸 쏟아붓고 싶었지만, 나는 이미 고갈되었다. 낯선 통증과 구토감이 덮쳤다. 장경인대가 심했을 때 무릎에서 올라오던 찌릿한 통증, 근육이 한계에 도달했을 때 올라오던 둔탁한 통증, 그런것들에는 이미 익숙해졌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발을 디딜때마다 온몸으로 전기가 퍼져나가는 느낌이 들었다. 머리에서 뒷목을 타고 몸으로, 팔다리를 거쳐 손끝 발끝으로 저림과 통증이 번졌다. 생전 처음 경험해보는 증상이었다. 굳이 비유하지면 발을 디딜때마다 목디스크가 터지는 느낌이었다. 거기에다 어지러움과 구역질까지 겹쳐 컨디션이 극도로 나빠졌다. 사점에 대해선 분명 이것저것 찾아봤었는데.. 이건 일반적인 사점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들었다. 40.4km 걷지 않고 끝까지 뛰고자 했던 나의 도전은 여기까지였다. 한 발 한 발 증상이 점점 심해져 더 이상 뛸 수 없었다. 페이스를 계속 낮추다가 결국 주로에 멈춰버렸다. 이후의 구간은 기억이 뚜렷하지 않고 그닥 아름답지도 않았다. 다리를 멈추자 그동안 눌러왔던 근육들에 경련이 터졌고, 나는 통증으로 인한 신음과 불안정한 호흡을 뱉어댔다. 호흡과 심박이 안정될 때까지 쉬면서 다리를 주물렀다. 하지만 충분히 쉬고 다시 뛰어봐도 얼마 뛸 수 없었다. 신경을 타고 전류가 번지는 듯한 증상이 호전되지 않아서, 뛰다 걷다 멈췄다의 반복이었다. 그렇게 다시 한번 처절한 모습으로 올림픽공원에 도착했다. 마지막 좌회전 후, 아직 달릴 수 있는 주자들을 위해 나는 오른쪽 가장자리로 붙었다. 비록 멋지게 달리는 모습으로 응원받진 못했지만, 가장자리를 달린 덕분에 많은 분들의 응원을 받았다. 절뚝거리는 나를 향해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이름을 불러주었고, 내가 멈춰서 다리를 붙잡고 있으니 어떤 아주머니께서는 주로까지 들어오셔서 "지금 가셔야 돼요. 이제 가야 돼."하면서 보채주셨다. 그동안 42.195km라는 숫자에만 너무 집착한 나머지, 실제 주로가 이렇게 더 길지는 몰랐는데 도저히 끝이 안났다. 하지만 뛰든 걷든 멈추지만 않으면 언젠가는 닿게 되어있다. 마침내 골인지점 앞에 도착했고, 꽃다발을 들고 있는 아내가 눈에 들어왔다. 곧바로 아내에게 달려가 와락 포옹을 했다. 그리고 작년과는 달리 철거중이 아닌, 온전한 피니시라인을 통과했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러드고정닉
국산 오토바이 산업의 경쟁신화를 알아보자
안녕 최연소다오늘 알아볼 알아보자 시리즈는 바로8~90년대 대림혼다와 효성스즈키의 박터지는 경쟁의 대표주자들은 어땠을지 알아볼 것이다내가 알고있는 정보로만 만들었기 때문에 오류가 있을수 있는 점은 양해 부탁한다 shake it들아 ㅋ 이 이야기를 하기 위해서는 1962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그때 기아산업은 오토바이 부문 기아기연을 통해 혼다와 처음 기술제휴 하였고 (당시 차량부문에서는 마쓰다와 제휴)조립생산을 중심으로 하여 6~70년대 국산 바이크 시장을 독점하였다한편 1978년 효성도 오토바이 산업에 도전하게 되었고 효성기계공업이 설립된다하지만 1980년 땅1크양반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가 들어섰고신군부의 자동차공업 통한조치로 인해 기아는 울며 겨자먹기로 오토바이 사업을 대림에 매각하였다대림혼다의 탄생이었다마침 효성도 스즈키와 기술제휴로 효성스즈키 브랜드를 출범시겼고 첫 바이크를 생산한다초창기에는 경쟁 구도라고 할 만한 게 형성되지 않았으나80년대 중반으로 가며 점점 치고박고 싸우게 되었고오늘 소개할 것이 바로 이 경쟁의 산물들이다1. 모페드모페드란 전자장비와 무게를 최소화하고 엔진도 ㅈ만한 걸 얹어서 '원동기장치자전거' 라는 명칭에 제일 어울리는 장르였고 유럽과 미 대륙에서 인기가 많았다1983년 대림은 50cc 모페드 '핸디'를 출시한다핸디는 리버티라는 이름으로 해외수출이 되었고국내보다 해외에서 더 인기를 끌게 된다.1987년 효성도 대항마로 걑은 50cc 모페드 '러브' 를 출시하였으며국내에서는 둘 다 판매량이 바닥을 기어 국내경쟁은 의미가 없었으나해외에서는 둘 다 나름 선전하여 현재도 일부가 돌아다니고 있다.2. 언더본언더본 바이크 설명은 바이크 덕후라면 다 알 테니 넘어간다수퍼커브 만쒜1981년 효성이 먼저 FR50 언더본 바이크를 출시한다국내에서 보기 드문 50cc 언더본 바디였다1982년 대림 DH88 출시80cc 언더본으로 FR50을 위협했고 결국 효성보다 앞선다여기서부터 대림이 앞선 거다1980년대 중반 효성 FB100 (FM100) 패밀리아 출시모든면에서 88을 압도하였으나 잔고장이 잦았다고 전해진다(무려 1999년까지 생산한 걸로 보인다)1987년 대림 씨티100 출시이때부터 효성은 오토바이 시장에서 콩라인이 되어버렸고 이때부터 씨티신화가 시작된다국내 최다판매의 오토바이의 전설 주인공이다뭐 다 알 거다1990년 초반 효성 슈퍼윈디 출시씨티를 잡기위해 출시하였으나 심장병으로 인해 씨티를 잡지 못함 ㅠㅠ이후 대림 씨티는 시리즈가 계속 나오며 수퍼커브 수입 전까지 승승장구했지만효성은 윈디 이후 마이다스, 마스터, 에스코트 등으로 언더본 시리즈를 계속 이어가도 씨티를 단 한번도 따라잡지 못했다고 전해진다....이는 현재진행형이다3. 스포츠80년대 후반 효성은 감마를 출시하여 유선형 스포츠 바이크에 진입하였다초반엔 잠깐 반짝 하였으나....1989년~VF 등장이요~VF는 감마를 순식간에 눌러버렸다이후풀카울링의 효성 감마 C쌍라이트의 효성 TN125얘내들도 VF 견제에 실패해버림하지만....~95년 효성 엑시브 등장이요~효성이 대림을 따라잡은 유일한 바이크다4. 절망대림과 효성은 이후 2000년대 초반까지 박터지는 경쟁을 하고있었지만결국 2000년대 들어 정부의 내수산업 보호정책은 개방 위주로 전환되었고혼다와 스즈키는 제휴를 끊은 뒤 직접 한국에 진출하게 된다불행하게도 40여년 간의 독과점 상태에서 외산 바이크에게 충분한 경쟁력을 확보하지 못한 대림과 효성은 경쟁력을 상실하고 쪼그라들고 만다2025년 현재 국산 바이크는 디엔에이모터스 (구 대림) 의 씨티와 KR모터스 (구 효성) 의 아퀼라를 제외하면 경쟁력을 완전히 잃고 말았고힘겹게 버티는 상황이다한국의 오토바이 산업은 이대로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하는 걸까?댓글 한번찍만 부탁한다이상이다
작성자 : 디시최연소고닉고정닉
차단하기
설정을 통해 게시물을 걸러서 볼 수 있습니다.
댓글 영역
획득법
① NFT 발행
작성한 게시물을 NFT로 발행하면 일주일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최초 1회)
② NFT 구매
다른 이용자의 NFT를 구매하면 한 달 동안 사용할 수 있습니다. (구매 시마다 갱신)
사용법
디시콘에서지갑연결시 바로 사용 가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