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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해군 역사상 가장 치명적인 가미카제 공격..gif
https://www.youtube.com/watch?v=Xg0TerwXdH41945년 5월 11일 오전 6시 40분 기쿠스이 6호 작전에 포함된 중위 세이조 야스노리는 제 7 쇼와다이(昭和隊) 소속 지휘관으로, 제로센 4기로 이루어진 가미카제 편대를 이끌고 카노야 기지를 이륙했다. 당시 초보 파일럿들도 사용가능한 레이더 교란 전술인 저고도 비행으로 미해군 기동부대에 접근한다. 오전 10시 09분 난샤제도 동쪽 122km 지점에서 야스노리가 먼저 250kg 폭탄을 장착한 제로를 항공모함 USS Bunker Hill 비행 갑판의 선미 부분에 충돌시켰다. 이 공격으로 함선의 좌현에 구멍을 뚫었고 그에 따른 폭발로 갑판에 있던 많은 비행기가 파괴되었다. 약 30초 후 야스노리의 윙맨 파일럿 와세다 대학 출신, 22세 소위 오가와 기요시는 비처럼 쏟아지는 대공포 사이에서 "나는 돌입한다" 라는 무전 후 연기와 불길 속으로 돌진했다. 함교와 갑판 경계 근처에 거의 수직으로 충돌해 엄청난 폭발을 일으킨다. 이 두 파일럿의 공격으로 393명의 미국 해군이 사망, 264명이 부상을 입었고 벙커 힐은 전선에서 물러나게 된다. 당시 특공은 불과 3개월 남짓 훈련받은 전투 경험 없는 파일럿들로 조직되었는데 가미카제가 별다른 훈련,기술없이도 중대한 손해를 주는 능력을 갖고 있던 것이 명백하다. 당시 벙커힐엔 제58기동부대 사령관 마크 미처 중장이 타고있었는데 그는 생존했지만 참모 절반을 잃게 된다. 이후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로 옮겨타지만... 3일 뒤 1945년 5월 14일 오전 오가와의 와세다 대학 정치경제학 동기였던 22세 토미야스 슌스케는 제6츠쿠바 가미카제 특공대 소속으로 출격, 미해군을 상징했던 항공모함 엔터프라이즈에 충돌해 90명의 사상자를 내고 전선에서 몰아냈다. 미처 중장은 운좋게 생존했지만 또 다시 항모 란돌프로 옮겨타게 된다. 1945년 4월~6월 사이에 벌어진 오키나와 전투는 미해군 역대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전투였는데 이로인해 미국은 7월 규슈 상륙 작전을 취소하게 된다. 미해군 전사자 4,907명, 부상자는 4,824명. 정규항공모함 8대 대파. 경항모,호위항모 4대 대파. 전함,구축함 및 기타 함선은 350척이 파괴되고 침몰. 미해군의 공식 자료에 의하면 전쟁말 미해군의 발전한 대공방어를 상대로 가미카제는 통상적인 공격 대비 명중률이 10배이상 높았고, 명중까지 필요한 조종사 및 기체는 1/2이었다. 한마디로 조종사와 비행기를 덜 잃고 피해를 주는 효율적인 방법이었다. 그렇게 56년이 흐르고 당시 벙커 힐에 탑승한 해군 구조 잠수부 로버트 쇼크는 오가와의 비행기 잔해에서 꺼낸 유품을 자신의 물건들과 함께 보관했고 그것들은 물려받은 손주 닥스 버그는 유품을 죽은 일본인 조종사의 가족들에게 돌려주기로 결심한다. 2001년 마침내 오가와의 가족을 찾아내서 유품을 전달하게 된다. 버그는 "진심을 담아 제 가족으로부터 당신의 가족에게 드리는 선물이에요" "저는 제 할아버지를 알고 있습니다"라고 말했다. "이게 제가 하기를 바라는 일이에요." 오가와 기요시의 삶의 작은 조각들이 담긴 그 선물은 깊은 절과 눈물로 받아들여졌다. 1945년 5월 11일 오전, 출격 직전의 세이조 야스노리와 오가와 기요시 일본을 지켜주셔서 감사합니다. - dc official App
작성자 : leeloo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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