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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글벙글 2024년 기준 전세계 부자 순위 30위~1위
30위 - 제프 야스(Jeff Yass, 1958년생)미국 무역회사 서스퀘하나 그룹(Susquehanna International Group)의 공동 창업자496억 달러 (71조 24억 원)29위 - 야나이 타다시(柳井正, 1949년 2월 7일 생)유니클로(UNIQLO)를 운영하는 패스트리테일링 사의 창업자이자 대표이사 회장499억 달러 (71조 4,318억 5,000만 원)28위 - 토마스 페터피(Thomas Peterffy, 1944년 9월 30일 생)미국의 증권사 인터랙티브 브로커스(Interactive Brokers)의 창업자이자 회장537억 달러 (76조 8,715억 5,000만 원)27위 - 스티브 슈워츠만(Steve Schwarzman, 1947년 2월 14일 생)세계 최대의 사모펀드 블랙스톤(Blackstone)의 창업자 겸 회장555억 달러 (79조 4,482억 5,000만 원)26위 - 중산산(钟睒睒, 1954년 12월 생)세계 최대 생수 생산 기업인 농부산천(农夫山泉)의 창업자 겸 회장577억 달러 (82조 5,802억 4,000만 원)25위 - 가우탐 아다니(Gautam Adani, 1962년 6월 24일 생)인도의 다분야 종합 기업 아다니 그룹의 창업자 겸 회장630억 달러 (90조 1,467억 원)24위 - 자오창펑(Changpeng Zhao, 1977년 2월 5일 생)가상화폐 거래소 바이낸스의 창업자, 중국계 캐나다인648억 달러 (92조 7,223억 2,000만 원)23위 - 찰스 코흐(Charles Koch, 1935년 11월 1일 생)미국의 다분야 종합 기업 코흐 인더스트리의 회장675억 달러 (96조 5,790억 원)22위 - 데이비드 톰슨(David Thomson, 1957년 6월 12일 생)캐나다 미디어 기업 톰슨 로이터의 회장722억 달러 (103조 3,037억 6,000만 원)21위 - 줄리아 코흐(Julia Koch, 좌측, 1962년 4월 12일 생)찰스 코흐와 함께 공동 회장이었던 데이비드 코흐(David Koch, 우측)의 아내이며, 22살 연상의 남편 사후 자산을 물려받음742억 달러 (106조 1,653억 6,000만 원)20위 - 프랑수아즈 베탄코트 메이어스(Francoise Bettencourt Meyers, 1953년 7월 10일 생)프랑스 화장품 브랜드 로레알의 최대주주이자 상속녀745억 달러 (106조 5,871억 5,000만 원)19위 - 카를로스 슬림 엘루(Carlos Slim Helu, 1940년 1월 18일 생)아메리칸 모빌 등 다수의 통신 기업들을 보유한 통신재벌806억 달러 (115조 3,144억 2,000만 원)18위 - 무케시 암바니(Mukesh Ambani, 1957년 4월 19일 생)인도의 거대 재벌 릴라이언스 인더스트리의 회장1,007억 달러 (144조 714억 9,000만 원)17위 - 앨리스 월튼(Alice Walton, 1949년 10월 7일 생)월마트 창업주 샘 월튼(Sam Walton)의 딸이자 월튼 가문의 일원1,045억 달러 (149조 5,081억 5,000만 원)16위 - 마이클 블룸버그(Michael Bloomberg, 1942년 2월 14일 생)미국의 미디어 그룹 블룸버그 L.P.의 창업자이자 최대주주1,047억 달러 (149조 7,942억 9,000만 원)15위 - 마이클 델(Michael Dell, 1965년 2월 23일 생)미국의 컴퓨터 회사 델(Dell)의 창업자이자 CEO1,052억 달러 (150조 5,096억 4,000만 원)14위 - 빌 게이츠(Bill Gates, 1955년 10월 28일 생)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이자 전 CEO1,076억 달러 (153조 9,433억 2,000만 원)13위 - 짐 월튼(Jim Walton, 1948년 6월 7일 생)샘 월튼의 아들이자 월튼 가문의 일원1,123억 달러 (160조 6,676억 1,000만 원)12위 - 롭 월튼(Rob Walton, 1944년 10월 27일 생)샘 월튼의 아들이자 월튼 가문의 일원1,135억 달러 (162조 3,844억 5,000만 원)11위 - 젠슨 황(Jensen Huang, 1963년 2월 17일 생)엔비디아의 창업자이자 현 CEO1,190억 달러 (170조 2,533억 원)10위 - 아만시오 오르테가(Amancio Ortega, 1936년 3월 28일 생)패션 브랜드 자라의 창업자1,213억 달러 (173조 5,439억 1,000만 원)9위 - 스티브 발머(Steve Ballmer, 1956년 3월 24일 생)마이크로소프트의 전 CEO이자 현 NBA LA 클리퍼스의 구단주1,303억 달러 (186조 4,202억 1,000만 원)8위 - 워렌 버핏(Warren Buffett, 1930년 8월 30일 생)버크셔 해서웨이의 CEO 겸 회장1,441억 달러 (206조 1,638억 7,000만 원)7위 - 세르게이 브린(Sergey Brin, 1973년 8월 21일 생)구글의 공동 창업자1,514억 달러 (216조 6,079억 8,000만 원)6위 - 래리 페이지(Larry Page, 1973년 3월 26일 생)구글의 공동 창업자1,586억 달러 (226조 9,090억 2,000만 원)5위 - 베르나르 아르노(Bernad Arnault, 1949년 3월 5일 생)LVMH그룹의 회장1,727억 달러 (247조 818억 9,000만 원)4위 - 마크 저커버그(Mark Zuckerberg, 1984년 5월 14일 생)페이스북, 인스타그램 등을 소유한 메타의 CEO2,189억 달러 (313조 2,021억 2,000만 원)3위 - 래리 앨리슨(Larry Ellison, 1944년 8월 17일 생)미국의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의 창업자 겸 회장2,232억 달러 (319조 3,545억 6,000만 원)2위 - 제프 베조스(Jeff Bezos, 1964년 1월 12일 생)아마존의 창업자 겸 회장2,440억 달러 (349조 1,152억 원)1위 - 일론 머스크(Elon Musk, 1971년 6월 28일 생)페이팔의 창업자이자 현재 테슬라의 CEO3,676억 달러 (525조 9,620억 8,000만 원)출처 : 오늘 자 포브스 홈페이지 순위
작성자 : 싱글벙글참치캔고정닉
미국이 대영제국을 몰락시킨 방법...jpg
미국과 영국. 현재는 혈맹의 대명사라 불릴정도로 강력한 유대관계를 자랑하는 두 국가이다.그럼에도 사실상 미국이 더 우위에 있고 영국이 하위 동맹으로서 미국을 보좌하는 위치에 있는것 또한 사실.[ 1850년대 최전성기 대영제국 지도 ]그런데, 한 때 미국은 영국의 식민지였고 독립이후에도 한 동안 대영제국으로 미국을 압도했음.그렇다면 대영제국은 왜 이렇게 쪼그라든게 될 걸까. 근본적으로 바다로 영토가 떨어져 있다는 식민체제 자체의 한계가 있음.페니키아 카르타고등 이미 고대기부터 보여줬지만 바다로 떨어진 국가들은 시간이 지나면 결국 정체성 분화등으로 본국과 다른길을 갔고.[1931년 캐나다의 독립을 확정지은 웨스트민스터 헌장 ]영국과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의 관계도 사실상 그랬음. 물론 영국은 이전과 다르게 증기선, 라디오등의 교통 통신의 발전으로 그 연결망을 유지하기 더 용이하긴 했음.하지만 이런 물리적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고 그래서 관세동맹이라는 제국연방이라는 시도를 했으나 보호무역주의에 따른 식료품 물가 상승 때문에 본국내 영국인들에게 인기가 없는 정책이어서 실패.[ 2차대전 당시 대영제국 동원 병력중 500만은 영국, 63만은 캐나다, 41만은 호주. 13만 뉴질랜드 ]이런 상황에 1차 대전과 2차 대전은 식민지가 아무리 광대하다한들 전쟁에 나서는건 사실상 본국의 국력이라는걸 드러냈고 사실 평시에도 대영제국의 국방비를 혼자 88% 이상 감당했던걸 생각하면 예견된 일.[ 2차대전 이후 탈식민지화 ]그리고 양차대전에서 재정 압력을 받고, 취약함을 보여주자 안그래도 이미 흔들리던 식민제국의 균열이 가속화.그러나 전후처리에서 사실 미국이 큰 결정타를 날림. 당시 영국은 당장 국가 재정이 파탄나고 식량도 해외에서 오는걸로 의존중이였음.[ 미국이 빌려준 자금으로 영국 gdp 대비 부채가 270% 를 넘어감에도 전쟁 지속 ]여기에 손을 내민게 미국. 하지만 조건이 있었음. 국가 재정을 경영할 자금과 배급에 필요한 물자를 제공해줄테니 1. 영국 본국과 식민지간의 관세 특혜를 끊고, 2. 미국에 필요한 해외 해군기지를 양도하고3. 영국이 자국 통화 파운드 환율 통제권을 폐기하란것다시 말해 바다와 무역으로 연결된 대영제국에서 바다와 무역을 앗아감. 즉 대영제국은 해체하며 수출 및 환율 정책도 미국의 간섭을 받으란 뜻이었음.[ 당시 영국의 재정지출은 35-40억 파운드였으나 미국의 금전 및 물자 지원은 67억 파운드에 달함 ]당연히 반발이 극심했으나, 체급응 크나 인구 대부분이 가난해 구매력이 없던 인도나 인구 500-700만 수준인 호주 캐나다에게 큰 도움 받을것도 없었고. 결국 영국은 미국의 제안을 수용함. 물론 이런 미국의 도움이 없었으면 당장 독일에게 폭격 받는데다, 본국이 말라죽을 판이었고 고마운건 맞음. 그러나, 당시 세계 최고라고 자부하던 영국인들에겐 매우 자존심 상하던 일이었음.여기에 미국은 " 돈을 이만큼 빌려주니 대영제국 해외 자산도 전부 팔고 영국 국가 재정의 긴축 및 결정권도 미국에게 넘겨라 " 고 주장해서 협상에 나섰던 케인즈 ( 그 유명한 경제학자 맞음 ) 는 이런말 까지 함." 쇠락했다해도 영국과 같은 위대한 국가를, 이렇게까지 파산한 기업을 몰아붙이듯 대우할수 있나? " 며 항변게다가 케인즈가 제안했던 국제통화인 방코르는 미국의 입장에 의해 폐기되고 대신 미국 달러가 인류 역사상 최초로 전세계에 통용될 뿐 아니라, 전세계 화폐중 미국 달러만이 금과 통용이 가능한 유일 기축통화 란걸 인정하라며 영국에게 강요했고 절박했던 영국은 이 또한 수용.[ 아비규환이 된 도쿄 ]다른 강대국들은 어땠냐고? 독일, 일본은 애초에 패전국이었고 프랑스는 미국 도움으로 겨우 프랑스를 나치에게서 해방된 상황이어서 사실 입장이랄게 있을수가 없었고.[ 러시아제국 해체 이후 폭락한 교역 비중 ]소련이야 독소전쟁 회복하기도 바빴을뿐 아니라 미국이 소련 경제규모 5배가 넘는 괴물이었고 자본주의 국가들이랑 교역을 별로 안했으니 미국의 우위를 인정하고 넘어감.그리고 이게 바로 오늘날 미국의 중앙은행인 연준에 전세계가 눈치보고 전전긍긍해야하는 근본적 이유임.사실 영국에 이런 경제적 수세에 몰린 전례가 없진 않았고 영국은 그럴때 자신의 특기인 강력한 해군력과 해군력을 뒷받침하는 산업력으로 판을 뒤집은바 있음. 아편전쟁과 같이.그러나 이미 미국 해군 규모는 총톤수로 영국의 350% 수준에 미국을 제외한 전세계 해군을 합친것보다 거대했고,미국 제조업은 세계의 50% 가 넘어가는 수준에, gdp는 대영제국 전체의 2.5배가 넘는 세계의 40% 로 역사상 최대의 공업대국이자 경제대국으로 떠오른지 오래였음.게다가 당시 국제 화폐의 기준인 금 또한 미국이란 국가 혼자서 세계에 존재하던 금 70% 이상을 독점.이런 상황에서 배급제를 실시하며 겨우 국가를 굴리던 영국이 할 수 있는건 그저 미국이란 역사상 최강대국의 자비를 읍소하는것뿐이었음.사실 미국이 이렇게 크지 못하게 영국이 견제할수 있는 유일한 타이밍은 남북전쟁이었으나 미국이 노예해방의 성전으로 만들어 그걸 놓치고 미국은 그 이후 산업화를 성공적으로 마무리.[ 1920년대 주요국 gdp ]1872년 영국 본토, 1910년대 식민지를 포함한 대영제국 전체 gdp를 넘기고 1920년대에 이르면 영국 공업력 3배 수준으로 [ 영국의 이익이 미국에 침해당했을때 영국의 반응은 " 미국 공업력 영국 추월한거 안보임? 대놓고 찍어내면 대영제국 해군 제껴버릴거임. 그냥 양보해 " ]이미 영국에서는 1890년대 미국 해군 팽창 이후에 " 미국 해군력이 너무 강해져서 남북미는 미국의 영향권으로 인정 " 이라고 아예 얘기할 정도.그리고 이렇게 거대해진 미국의 손안에 있던 영국은 미국의 제안에 따라 식민지를 해체하는 수순을 밟았고 미국의 푸들이란 소리까지 들을 정도로 미국의 하위동맹으로 전락한것.[ 식민지 해체와 함께 떡락한 영국 파운드 ]이렇게 미국은 역대 최강의 생산력과 자금력으로 그 이전 모든 제국과 강대국들을 몰락시키고 세계와 인류의 운명 결정권을 쥐고 세계를 미국의 입맛에 맞게 재창조.3줄 요약:1. 대영제국은 바다로 떨어져있다는 물리적 한계와, 갈수록 커지는 재정 부담 및 연이어 터진 세계대전들로 이미 파산 위기와 제국 해체의 소용돌이로 빨려들어가고 있었음.2. 이렇게 상황이 어려워져 배급제 하던 영국에 손을 내민게 미국이었으나 그 조건은 제국내 관세 특혜 폐지, 해외 해건 기지 양도, 환율 통제권 폐기등 무역과 바다로 이어진 제국에서 무역과 바다를 앗아가는 즉 제국을 해체하라는 사망진단서.3. 하지만 절박했던 영국은 이를 수용했고, 미국은 빚을 빌려준 대가로 영국 재정에 대한 간섭까지 요구하자 케인즈가 위대한 영국을 파산한 기업처럼 다룬다고 분노했으나 이미 때는 늦어 대영제국 gdp 2.5배, 세계 공업력 50% 이상에 세계 금 보유량의 70% 를 넘기는 역대 최강국이 되버린지라 미국에 굴복.
작성자 : 학생회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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