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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토종주 다녀왔습니다
안녕하십니까 행님들 유동으로 인사드립니다저는 산에서 므틉타는 고쓰리 므틉쟁이입니다.금년, 산에서 다운힐을 즐기다가 그래블 다운힐은 어떨까 싶어 구매한 제 슾샬 다이버지와 함께의정부에서 부산까지의 국토종주를 다녀왔습니다* 코멘샬 메타 *평소에는 이런 구름성 제로 라이딩성능 -3천 므틉 타고 자도에서 아지매들한테 평속으로 따잇당하는 20kg 못난이 자전거 타고다닙니다 스페셜라이즈드 다이버지 콤프 E5 56사이즈 필자 185 / 80 셋팅이번 여행을 함께한 다이부지는 짐을 다 얹어도 17키로정도였기 때문에 꽤나 가볍게 여행하였습니다가방속에는 여벌옷 ( 2일치 ), 수첩, 예비용 튜브 2개, 보급, 보밧이 전부였습니다보급은 대충 숙박시설 근처 마트에서 할인 과자로 해결하였습니다 사실 저에게 있어서 국종은 연례행사랑 다름이 없기 때문에 이번 여행이 4회차입니다이전 여행들은 전부 MTB였기 때문에 자랑하고 싶어도 자랑을 못 해서 이번만큼은 그래블로 다녀왔습니다사진이 많이 없고, 뒤죽박죽이기는 하지만 한강에서 중국노래 빵빵하게 틀고 4열 횡대주행하는 픽도들을 보는 아량 넓은 마음으로 봐주셨으면 합니다사실 글 쓰기로 결심한게 구미 넘어서부터라서 그때부터 열심히 찍었네요라이딩은 누가봐도 마실나온 라이더 패션으로 다녔습니다쿠션바지나 저지 뭐 그런게 하나도 없어서평소 므틉라이딩 하던 패션 그대로 데님바지에 후드티 + 고어텍스 바람막이 입고 갔습니다.헬멧도 풀페만 쓰다보니 반모가 없어서 급하게 지인꺼 하나 빌려서 쓰고다녔습니다대구 통과하는 길 입니다전날 비가 꽤 많이 왔지만 낮이되니 전부 마르고 시원한 날씨가 되었습니다바람도 적게불고 주변에 볼것도 많아서 편하게 달렸습니다새벽, 모텔에서 출발하는 풍경입니다안개가 자욱하게 얹힌 멋진 겨울하늘 보며 출발했습니다이전 인증센터 사진들은 제 끔찍한 얼굴들이 담겨있어서 깔끔한 사진으로 고르다보니 달성보까지 왔습니다이때 풍속이 6~9가 평균이었고 최대 15까지 나왔는데 진짜 날라갈 뻔 했습니다원래는 40키로에 한 번씩 휴식을 취하는데 이때는 5키로 가고 쉬고 또 5키로 가기를 반복했네요이전 여정들에서는 이화령 빼고 거의 전부 우회해버려서 이번만큼은 전부 넘는쪽으로 방향을 잡았습니다근데 무심사는 이게 자전거길인지 MTB 다운힐길인지 모르겠더라구요 저는 그래도 다운힐 경험이 있어서 재밌게 내려왔는데 뒤에 따라오시던 미니벨로 타시는분은 끌고 내려오시는거 보고 무심사 우회가 왜 중요한지 알았습니다이후 구름재에서 낙서 구경하면서 즐거운 업힐했습니다.끌바 하는 순간 낙서좀 남기고 갈려 했는데 어찌저찌 끌바없이 넘어서 낙서 남기기는 실패했습니다사실 구라구요 끌바 하면서 낙서 남겼는데 별로라서 비밀로 해두겠습니다날짜가없어서 잘 모르겠지만 3일차부터 대강 110키로씩 탔습니다.1일차 2일차에는 150가량 탔던거 같네요평속은 20 ~ 25 ? 정도 였던거 같습니다MTB로 종주하면 15 ~ 19 언저리인데 확실히 지오메트리 + 타이어빨이 효과가 있네요달리고 달려서 양산까지 왔습니다이때 데크길 옆으로 흐르는 낙동강과 대나무숲이 너무 멋져서 한 30분 멍때리다가 출발했습니다여름에 다녀갈때는 더워 뒤져버릴 뻔 했는데 시원한 날씨에 오니 경치구경도 하고 좋았습니다양산 인증센터 도착했습니다 별거 없고 경치 좋아서 뽀글이먹고 출발했습니다 11월 22일 토요일 출발 후, 4박 5일간의 여정 끝에 부산 낙동강 하굿둑 인증센터에 도착했습니다보통 9월 말 ~ 10월 중순으로 장거리를 달리는데 11월 말 장거리는 처음인지라 날씨나 온도 등등... 처음 달릴 때 처럼 이것저것 신경써야 했던게 꽤나 재미있었습니다 북부는 폭설때문에 난리임에도 불구하고 국종 도전하시는 분들이 그래도 어느정도 있으셔서 놀랐습니다.카운터 누나랑 떠들다가 인증 끝냈습니다. 이후에는 부산에 있는 친구 만나서 술퍼마시고 놀았습니다총평1. 안춥다.2. 외롭다.3. 부산여자무섭다하고싶은 말은 많은데 글솜씨가 부족해서 이만 각설하겠습니다감사합니다 ^^
작성자 : 다이버지고정닉
중세 이집트를 지배한 동양인 노예왕조
이름하여 맘루크 술탄국통일 이슬람제국인 압바스 왕조 때부터 점점튀르크인 노예들을 훈련시켜서 아랍인 대신에 군사력을 맡기기 시작함. 이들 노예군인을 맘루크라고 불렀는데점점 맘루크가 정치에도 관여하더니 나중에는 칼리프(이슬람 교황겸 황제)를 시해하고 실권을 차지하는 일이 벌어지기도 함덕분에 이슬람제국은 사분오열 돼서 쇠퇴했는데그나마 모로코, 스페인, 이집트 등지에 이슬람 왕조는 건재했고 이슬람 문명은 이어지고 있었음몽골이 쳐들어와서 중동을 쑥대밭으로 만들 때 마침 이집트 아이유브 왕조의 실권을 잡고 있던 맘루크가 쿠데타로 아얘 나라를 세워버림근데 이 새끼들이 지리는게 집권하자 마자 몽골군을 계속 깨부숴서 서쪽 진출을 틀어막고, 몽골하고까지 동맹 맺으며 발악하던 십자군을 몰아내서 200년 지속된 십자군전쟁을 끝내버림그리고는 몽골군에 짖밟힌 바그다드의 칼리프를 납치해와서 카이로에 압바스 왕조를 부활시킴. 칼리프는 옛날 일본천황처럼 바지사장으로 두고 맘루크 술탄이 실권자로서 다스린 거임(쇼군처럼). 메카, 메디나, 예루살렘을 모두 지배하면서 명실상부 이슬람 세계의 종주국이 된거야초기의 맘루크 구성은 대부분 킵차크 튀르크인. 같은 계열은 카자흐족, 키르기즈족으로 얘들은 독립국가도 남아있지최고 전성기는 킵차크 튀르크 & 몽골 혼혈의 술탄 앗 나시르 무함마드. 그림 중에서 가운데 왕같이 생긴 사람이야. 맘루크 왕조가 권력암투가 극심해서 술탄 평균 재위기간이 5년인가 그랬는데 이 양반은 혼자 40년을 해먹고 자식들한테도 왕위를 물려주면서 거의 1300년대 이사람의 가문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어사실 맘루크 술탄국은 하나의 왕조가 아니라, 맘루크들끼리 뺏고 뺏기는 연속이었거든. 그러거나 말거나 일본의 바쿠후(막부)처럼 지극히 내부 다툼이었기에 민중의 삶을 크게 악화시키지는 않았고 맘루크 왕조는 엄청 경제적으로 번영했어맘루크 왕조 치하의 이집트를 방문한 외국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14세기 이집트의 수도인 카이로를 방문한 페르시아인 칼릴 알자히리는“페르시아에서 가장 큰 도시 10개를 합쳐도 카이로보다 더 작다.”라고 탄식했으며1384년 카이로를 방문한 피렌체인 레오나르도 프레스코발디는“피렌체 인구 전체를 합쳐도 카이로 시내 한 곳의 사람들보다 더 적다.”고 했을 정도한차례 중간에 왕조가 튀르크계에서 체르케스계로 바뀌고(1384년) 흑사병으로 인구도 감소하면서 쇠락했는데15세기 후반 술탄 카이트베이의 안정적인 통치하에 힘을 회복하여, 킬리키아를 두고 벌어진 오스만 제국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중흥기를 맞았대체르케스인은 튀르크어족, 인도유럽어족, 아프리카아시아어족 어디에도 안속하는 독자집단이라는대. 러시아제국에 학살당해서 지금은 몇십명 안남았어. 조지아, 아르메니아 이쪽 동네인가봐. 체르케스인이 권력 잡은 후에도 맘루크의 정체성은 망할 때까지 '튀르크어'였다고 해. 궁정에서는 튀르크어를 사용했고다만 나랏일의 대부분은(행정, 사법 등) 아랍어로 이루어졌고, 동시기 타 이슬람권에서 페르시아어와 문화가 득세할 때 맘루크는 아랍어와 문화를 보호하는 역할을 맡았다고 함 그러나 16세기에 들어 대항해시대를 맞은 포르투갈의 인도양 무역 잠식으로 심각한 경제 위기에 직면하게 되었고. 결국 1516년 신무기와 근대적 군대를 앞세운 오스만 술탄 셀림 1세에게 정복되었어다만 왕조는 멸망했어도 맘루크 군부는 건재했으며, 오스만 지배에 협력하면서도 종종 소요를 일으켰어맘루크 술탄국 때는 자식에게 맘루크 자리를 물려줄 수 없었고 술탄만 세습했는데, 오스만 통치하에서는 아얘 맘루크 가문을 형성하고 군벌이 더 막강해졌다 하더라. 오스만 총독이 암살당하거나 추방되는 일은 예사였을 정도나폴레옹의 이집트 원정 때는 냉병기를 고집하다가 사망자 30:3000으로 쳐발리면서 크게 휘청거렸고19세기에 오스만 총독 메흐메드 알리(알바니아계)가 대숙청을 자행하면서 맘루크의 씨를 대부분 말렸어겨우 살아남은 후손 중에 하나가 카이로 나일강변에 맘루크 양식으로 저택을 크게 짓고 살고 있다고 하네. 이집트 가는 게이 있으면 함 방문해봐. 현지에서는 웨딩 명소라더라지금더 이집트 사람들 중에 터키식 이름이나 성씨를 가진 경우가 상당히 많다고 해. 맘루크, 오스만 통틀어 튀르크의 영향이 거의 700년이나 지속되었으니긴글 읽어줘서 고마워!사진은 맘루크 술탄 앗 나시르 무함마드그외 맘루크의 모습들맘루크 시대 풍경과 현존하는 건축물들맘루크 왕족의 후예인 Prince Naguib Abdullah Hassan Sharkas와 그의 저택이름하여 맘루크 술탄국
작성자 : 이슬람제국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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