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처받은 이들을 위한 '사고 실험'
들어가기 전에
1.이것은 사고 실험입니다. 약간 소설과 비슷한 느낌입니다. 그것이 실제 세계에 대한 사실관계인 역사를 다루는 것이 아니지만, 각자 환경과 개성이 다른 독자에 따라 생각의 저변을 넓히거나, 상상력을 자극하거나, 또는 감동을 얻거나 하는 등 다양한 상호작용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본문은 '따라서 해보라'는 형식이지만, 선형적으로 그것을 따라하기만 할 것이 아니라, 글 구조나 개념 등에서 영감을 얻는다면 그것 또한 소설을 읽는 하나의 방법입니다.
2.해당 갤러리에 이것이 적절한 주제일까 늘 고민합니다. 그러나 스스로에게 솔직할 것을 최우선 강령으로 삼기에, 이것이 큰 범위에서 주제에 해당한다고 봅니다. 나 하나의 행위도 몰락하는 와중에 일어나는 몸부림, 괴로움에서 탈출하려는 자연스러운 경향 중 하나로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내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이면서, 타인에게 고통을 주지 않는 것에 집중합니다. 내 자유를 누리되,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는 선에서와 같은 개념입니다. 그러므로 불편하거나 고통스럽다면 당신은 언제나 읽지 않을 자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쁜 것이나 틀린 것이 아닌, 다름일 뿐입니다.
3.요리를 못하는 사람의 특징은 레시피를 따라하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이것은 컴퓨터나 스마트 폰을 잘 다루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경향이며, 이미 높은 수준으로 완성된 학술 체계를 더디게 배우는 사람에게서도 동일하게 나타나는 모습입니다. 그러므로 본문에서 설정된 조건을 잘 따라가야 의도한 결과에 도달할 것이며, 중간에 본인의 상처로 인한 반발심이나 부정적 기분이 들어 생각하는 것에 영향을 준다면 그것을 최대한 배제해야 합니다. 그것은 당신이 원하지 않았지만 당신에게 벌어진 '나쁜 사건', 그것이 당신에게 상처를 주어 남겨진 반발심, 그런 자동적 '감정'으로 발생하는 자동적 '사고'이기 때문입니다. 생각이란 것은 논리와 이성을 통해 형성되기도 하지만, 때론 강렬한 감정으로 행위를 정한 뒤 이유를 끼워맞추기도 합니다. 전 놀랐습니다. 학대받은 아이의 머리를 쓰다듬어주려고 손을 들었는데, 그 아이는 깜짝 놀라 뒤로 물러서더군요. 단지 성인 남성의 손이 올라가는 모습만 보고, 자신을 때린다 생각하여 자동적으로 반응한 것입니다. 자신이 생각하던 부정적 사건이 발생하지도 않았고, 그럴 의도조차 없었는데 과거의 망령에 사로잡혀 자동적 감정과 사고가 발생하여 행동으로 이어졌고, 이후엔 제가 때리려고 했다는 식으로 왜곡해서 현실을 재구성합니다. 제가 말하는 개념이 이런 것입니다. 이건 글일 뿐이고, 당신을 해치지 않으며, 당신이 틀리다 생각하거나, 원치 않으면 거부하면 그만입니다.
[사고 실험]
급하게 읽으면 안하느니만 못합니다. 글자를 천천히 읽어서 정확히 이해하고 넘어가세요.
1) 사람은 누구나 과거의 상처가 있습니다. 이게 세상 기준, 객관적인 고통일 필요는 없습니다. 상대적으로 자신의 주관적 고통이나 충격, 감정 요동이 크다면 해당합니다. 자신의 삶에서 가장 괴로웠고, 긴 시간 영향을 끼치는 사건들을 최대한 기억해서 시간 순서로 구성합니다. 생각하면 괴로웠던 것들, 잠들기 전에 자동적으로 그 사건이 생각나며 끊임없이 타고 이어지던 종류, 시간을 되돌린다면 그 사건만은 반드시 막고 싶다는 사건이나 경험, 주관적 생각이나 감정들, 만약 다른 누군가가 동일한 과정을 겪는다면 너무 참담한 비극이라 느끼는 그런 사건들을 시간 순서로 구성합니다. 집중력이 떨어진 상태라면 메모장 등에 적어서 천천히 정리해도 좋습니다. 진지하게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기 바랍니다.
2) 이제 당신의 어린 시절을 상상합니다. 나이는 5살이든 사춘기든 20살이든 당신이 생각하는 '스스로 방어하지 못하는 미숙한 시절', '위태롭고 취약한 시절'로 하세요. 아이가 있는 배경은 당신이 이전 단계에서 정리한 사건들이 주는 종합적 이미지로 사실관계나 실제 장소여도 좋고, 단지 이미지로 형성한 장소도 좋습니다. 자유롭게 배경을 설정하세요(제 경우는 눈 내리는 겨울 골목길에서 여름 옷을 입고 덜덜 떠는 모습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는 당신이 정리한 고통스러운 사건을 '전부' 동일하게 겪은 직후입니다. 정리한 괴로운 사건들을 연속적으로 전부 겪은 뒤, 바로 다음 순간이죠. 그 아이의 감정 상태를 자유롭게 설정합니다(저같은 경우는 현실이 아닌것 같은 느낌, 공허함, 시린 감정이 떠오릅니다). 진지하게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기 바랍니다.
3) 스스로 방어하지 못하는 미숙한 시절의 당신이자, 당신이 과거 고통스럽게 여기는 사건을 연속으로 느낀 직후의 아이 설정이 완성되었다면, 그 앞에 지금 당신이 존재합니다. 당신은 더 성숙하고 권한이 많은 어른으로서, 그 아이에게 무슨 말을 하고, 어떤 행동을 하겠습니까? 이 부분이 메인이며, 자유롭게, 천천히, 다양하게 사고해야 하는 부분입니다. 다만 매우 진지하게, 현실적으로 생각해야 합니다. 실제 물리법칙과 법, 제도, 가족관계 등 모든 인과가 작동하는 현실 세계이고, 지금 당신이 살고 있는 현실에 그 존재가 나타난 것입니다. 그러한 현실성을 고려하여 당신은 아이에게 말이나 행동을 하거나 하지 않고 무시할 자유도 있으며, 다만 자신이 어떻게 할 것인지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되므로, 오직 자기 스스로에게 가장 혹독한 수준으로 솔직하면 됩니다. 그 아이는 어린 시절의 당신이자 동일한 고통스러운 사건을 겪은 존재이므로, 당신은 그 아이의 경험과 감정을 알고 이해합니다. 당신이 어떤 말이나 행동을 하면 그 아이가 어떻게 반응할지 높은 정밀도로 구성 가능합니다. 그 아이와 잠깐의 대화를 해도 좋고, 2시간을 보내도 좋고, 하룻밤 같이 보내도 좋고, 1년을 보호해도 좋습니다. 자유롭게 해보세요. 단지 그 아이에게 어떻게 말하고 행동할 것인지, 매우 현실적으로 고려해서, 자신의 감정과 생각에 대해 극한까지 솔직해져야 합니다. 이 모든 과정은 굳이 밝히지 않아도 된다는 점을 명심하세요. 누구도 모르며, 오직 당신 스스로의 감정과 생각입니다. 누구도 판단하지 않습니다. 부끄러움도, 죄책감도, 위선도 없습니다. 그 세계는 상상이며, 현실의 모든 것이 동일하지만, 다른 세계선입니다. 진지하게 시간을 충분히 할애하기 바랍니다.
위 과정을 충분히 진행해서 구체적 답이 나온 뒤에 아래를 보세요. 이것에 정답은 없으며, 아래 내용도 단지 제 생각일 뿐입니다. 다만, 위 과정을 충분히 완성하지 않은 채 아래 내용을 본다면, 당신만의 무언가가 아닌, 제 주관적 무언가가 당신만의 것에 덧씌워질 염려가 있습니다. 그 시점에는 다시 당신만의 무언가를 찾으려고 해도 신경이 쓰여 방해받을 염려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전 단계를 먼저 진행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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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고 실험의 설정을 보면 그 아이는 당신의 기억, 감정에 해당합니다. 자기 스스로인 셈이죠. 당신이 그 아이에게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하겠다라고 선택한 것은 지금 당신 스스로에게 해야 하는 말과 행동입니다. 실제로 당신은 그 시절보다 더 많은 경험을 한 성숙한 어른이며, 스스로 행동에 자유가 있으므로 지금의 당신은 아이이자 동시에 그 앞에 서있는 어른입니다. 둘은 같은 존재입니다. 만약 그 아이가 지금의 당신처럼 생각하고 행동한다면, 당신은 권한과 책임이 있는 어른으로서 어떻게 하겠습니까?
아이가 고통스런 사건을 겪은 직후라면 따뜻한 담요를 덮어주고, 따뜻한 차를 제공하며 등을 토닥여주지 않을까요? 실제 5살 아이가 현실에서 그런 사건을 겪었다면 저는 그럴겁니다. 어디까지나 제가 그렇게 할 것이란 얘기입니다. 각자는 다를 수 있습니다.
밥을 제 때에 먹지 않는다면 맛있고 소화가 잘 되는 음식을 시켜서라도 먹이고요, 욕조에 따뜻한 물을 받아 씻겨줄 것입니다. 섬유유연제 잔뜩 넣어 세탁한 옷을 다림질해서 입히고, 없는 돈이라도 다 털어서 아이가 가지고 싶어하는 장난감, 혹은 게임 등을 마음껏 하게 제공하며, 옆에서 매 순간 잘한다, 아쉽다 추임새 넣으며 격려하고 함께 놀아줄 것입니다. 그리고 밤이 되면 아쉽지만 자야 한다고 달래주고, 내일 또 해도 된다고, 내일은 계속 온다고 머리를 쓰다듬어 줄 것입니다. 자기 전에 귀찮아도 이를 닦자며 방법을 교육할 것이고, 아이가 자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악몽으로 신음하면 안아줄 것입니다. 그 아이가 자라 성에 관심을 가지면 열린 자세로, 가치판단을 배제한 사실관계 영역의 객관적 교육을 진행하고요, 아이가 페미니즘 관련 헛소리를 물어보면 '아니라고 생각한다면 무시해도 좋다'고, 그들은 상처받아 괴물이 된 무언가라고 설명할겁니다. 오히려 그런 괴물들의 이야기가 아이에게 왜곡된 죄의식을 심지 않도록 노력할 것입니다. 아이가 자라 학교에서 싸우고 오면 남자의 권한과 책임에 대해 알려줄 것이며, 침묵의 중요성과 감정을 다스리는 법에 대해 교육하겠죠. 성적이 안나온다면 그것이 결코 중요한 것이 아니라고 진지하게 얘기할 것이며, 인간의 가치를 돈이나 권위 따위로 평가해서 타인에게 무례하게 군다면 그래서는 안된다고 단호하게 얘기할 것입니다. 스스로 자학하고 자기비하를 일삼는다면 그러지 않아도 된다고, 네 삶의 가치는 스스로 규정하는 자유란 사실을 알려줄 것입니다. 무엇보다 내가 없어도 아이가 스스로 세상을 살아가는 나침반, 권한과 책임의 비례와 황금률과 신의칙을 알려주고, 그것을 기억하게 만들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을 현재 스스로에게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무엇입니까? 저는 그런 사람들을 많이 관찰했습니다. 그들은 헌신적이고, 이타적이며, 배려심 넘치는 사람들이죠. 그들은 괴로워하는 타인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것에 주저함이 없었으며, 정성스러운 모습은 마치 천사와 같았습니다. 하지만 자기 스스로에게는 동일한 수준으로 행하지 않더군요. 자신을 가치있다 여기지 않으며, 자기 스스로를 존중하지 않는 모습입니다. 자신이 돕고 있는 타인보다, 자기 스스로가 더 무가치하다 여기는 모습입니다. 그것은 결코 완전한 이타심에 도달하지 못한 불완전한 것이며, 자신이 받고 싶었던 태도를 투사하여 타인에게 행하는 '도움 요청'입니다. 불완전함을 충족시켜 완전함에 이르는 방법은 '자기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것을 행하는 방법 뿐입니다. 그래야만 나와 타인을 동일한 기준에 놓고 일관된 생각과 행동이 나옵니다.
자기 자신을 용서해야 비로소 타인을 용서하게 됩니다. 용서라는 말은 단지 듣기 좋으니 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것은 스스로 괴로움에서 벗어나기 위한 것입니다. 자신의 실수를 용서하지 못한 자는 비슷한 실수를 한 타인에게도 같은 기준을 적용하므로, 무의식적으로 타인을 용서하지 못할 무언가라 여깁니다. 이런 사람은 괴물이 됩니다. 모든 것에 엄격하여 타인을 관용하지 못하고, 그 기준을 자신에게도 동일하게 적용하여 끊임없이 자신을 학대하다 늙고 지쳐 더 이상 그 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시기에는 자신을 무가치한 것으로 인정하고 스스로의 영혼과 정신을 죽여버립니다. 자신을 용서하지 못하면서도 타인에 대해 당신 잘못 아니라고 위로하는 모순을 보여준다면, 이런 사람은 인지부조화 상태, 끊임없이 양 극단을 오가며 정신적 괴로움을 겪게 됩니다. 사실 그 위로와 용서는 타인에게 할 말이 아니라, 자기 스스로에게 했어야 하는 말인거죠. 솔직하게 자신을 마주하고 용서했어야 하는데, 자신의 것이 아닌 외부에서 쏟아진 상처와 기억들로 자신이 소중한 존재인 것을 망각한 것입니다. 자신이 용서받을 가치조차 없다 착각하고 미뤄둔 것이며, 이윽고 용서받지 못한 자신이 너무 괴로워 자기 자신과 현실의 사건조차 왜곡해서 인식하는 '나쁜 상태'에 빠진 모습입니다.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자기 자신을 사랑해야 비로소 타인을 사랑하게 됩니다.
혹시 혼란스럽거나, 복잡하거나, 선택이 어렵게 느껴진다면 단지 편하게 여겨도 됩니다. 이것은 소설에 불과합니다. 매 순간 생각하고, 감정을 가지고, 선택하는 것은 돌이키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해보고 다시 돌아와도 그만입니다. 어떤 사람이 철봉을 잡고 매달린 상황이라 봅시다. 바닥에서 고작 1cm 떨어져 있지만, 매달린 사람은 철봉을 붙잡고 있는 손아귀만 바라봐서 그것을 모릅니다. 오직 손을 놓으면 떨어져 죽어버릴 것이라 여기며 두려워합니다. 그것은 단지 놓으면 되는 것입니다. 아무런 일도 일어나지 않으며, 매달려서 힘이 들고 괴로운 상태에서 벗어날 뿐입니다. 다시 매달리려 한다면 언제든 가능한 것입니다.
기억도 흐릿한 어린 시절, 집 앞에서 탱탱볼이라 부르던 공을 차고 놀았습니다. 그러다가 어머니가 아끼던 화분을 깨버렸죠. 너무 미숙한 시절이기에, 어머니가 실망하여 크게 화를 내고, 나를 쫓아낼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겨울에 공을 차던 것을 멈추니 몸의 열기는 빠르게 식었고, 그 어린 아이는 두 시간이나 덜덜 떨며 온갖 괴로운 상상을 펼쳤습니다. 아이가 들어오지 않자 걱정한 어머니는 나오자마자 이런 말을 했습니다. '다치지 않았니?' 결국 존재하지도 않는 허상으로 인해, 실제 물리적 세계에 괴로움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존재하지 않는 허상이 존재하는 것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면 그것은 고통이 아닌 기쁨도 가능할 것입니다. 나아가 모두 허상임을 인식한다면, 더 이상 나에게 영향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이건 단지 제 주관적 의견, 소설일 뿐입니다. 당신에게 괴로움을 주거나, 옳지 않다 여긴다면 놓아주고 흘려보내면 그만 입니다. 다만 괴로움이 없기를 바랍니다. 이 모든 것은 각자가 괴로움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알맞게 해석하고 알맞게 쓰면 족한 것이며, 그렇지 못하다면 자신의 것이 아니고, 자신과 맞지 않는 다른 것이라 여기고 흘려보내면 그만입니다.
저에게 감동을 준 석가모니의 말로 형식 없는 소설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자신에게 자비로우면서 타인에게 자비롭지 않은 자가 악인이듯, 타인에게 자비로우면서 그 자비에 자신이 포함되지 않은 자도 악인이다.
네가 타인을 용서한 것은 너 스스로를 용서한 것이며, 스스로를 용서한 것은 타인을 용서한 것과 같다.
마음을 다스리지 못하면, 그 마음이 너를 휘두를 것이다.
과거가 어떻든 너는 항상 다시 시작할 수 있다.
마지막에 중요한 건 세 가지다. 얼마나 사랑과 자비를 베풀었는지, 얼마나 품위를 지켰는지, 자신의 것이 될 운명이 아닌 것을 얼마나 고귀하게 포기했는지.
타인이 널 어떻게 느끼는지 네가 관여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바꾸려 하지 말고, 오로지 너의 인생을 살고 행복을 누려라.
타인의 삶과 비교하지 말라. 해와 달은 서로 비교하는 법이 없다. 그들은 단지 그들의 시간에서 빛나고 있을 뿐이다.
타인이 널 좋아하도록 너 자신을 바꾸지 말라. 진실한 너 자신이 된다면, 올바른 사람은 참된 너의 모습을 사랑하게 될 것이다.
모두는 모두가 생각했던 것들의 결과물이다. 마음이 모든 것이다. 모두는 모두가 생각하는 것이 된다. 이전에 그랬으니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생각, 이겨내지 못할 것이라는 생각은 곧 너를 그렇게 만든다.
하루를 용서로 마감하라.
인생의 시험지는 모두 다름에도, 공연히 타인의 답안을 흉내 내기에 낙제하는 것이다.
네가 존재하지 않으면 너에게 세상 만물은 의미가 없고 존재하지 않는다. 세상 만물을 다 합쳐도 너에겐 너 스스로가 더 귀한 것이다. 이것은 타인도 마찬가지니, 타인이 이기적이거나 이해하지 못하는 행동을 한다고 함부로 나쁘다 판단하지 말라.
행복으로 가는 길은 없다. 행복이 곧 길이다.
인간은 타인을 판단하는 그대로 스스로를 판단하게 되고, 타인을 느끼던 그대로 스스로를 느끼게 된다.
고통이 너를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니다. 네가 고통을 붙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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