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것은 한국, 혹은 한국인, 한국 문화나 사회에 적용해도 마찬가지다.
그것은 솔직함, 진실함, 스스로에 대한 성실성, 사고와 감정의 투명함이라 불러도 마찬가지다.
이러한 전형적 특징을 보이는 자가 중국인이 저열하다 욕하는 모습을 보면 실소하게 된다.
내가 아는 한, 중국인이 보이는 전형적인 특징은 솔직함이기 때문이다.
그들은 매우 솔직하다. 전화 통화를 옆에서 듣고 있자면(나도 듣고 싶지는 않았다), 때론 싸우는 것으로 보인다. 화가 나면 즉각 강한 억양으로 큰 소리를 내며, 바로 다음 맥락에서는 다시 부드럽고 상냥하게 말한다. 그것은 솔직함이다. 대화 주제에 대한 자기 감정을 진실하게 표현하는 경향이며, 서로 대화하는 상대방을 미워하거나 오해하지 않는 신뢰에 기반한 것이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대화 주제에 대해서 화남, 기쁨, 슬픔, 좋음, 나쁨을 솔직하게 표현한다.
낮은 자존감으로 상대방이 어떤 주제에 대해 감정이나 의도, 판단을 드러내는 순간 마치 자신을 부정하는 듯 받아들이는 한국인과 다른 모습이다.
중국의 무자비한 사형 제도에 대해서 중국인은 어떻게 생각하는지 물어본 적이 있다. 중국인의 대답은 '모른다'였다. 그는 사형을 당한 사람이 악인, 선인, 복합적, 사연이 있는 경우, 여러가지가 있을 수 있지만, 중국은 워낙 인구가 많아 잘 모른다 했다. 그저 자신이 그렇게 되지 않으려고 법을 지키고 바르게 산다 말했다. 그는 결코 당과 스스로를 동일시하지 않았으며, 국가와 스스로를 동일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이해관계에 밝고, 돈을 벌고 쓰는 것에 효율성과 합리성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으며, 그것은 돈에 나쁘다거나, 악하다거나 하는 불필요한 관념을 씌우면서도 행동은 오로지 돈만 추구하는 한국인과 다른 솔직한 모습이었다. 그들은 자신의 욕망과 현실마저 솔직하게 받아들인다.
일본인도 마찬가지다. 솔직하지 못한 한국인들은 자신의 모습을 일본인에게 투영한다. 일본인이 음흉하고, 겉과 속이 다르며, 뒤통수를 친다 표현한다. 내가 알기론 전혀 그렇지 않다. 그들은 다소 겸손한 경향이 있다. 겸손이란 과하지 않음이요, 그것은 객관적 자기 성찰, 스스로의 모습이 타인에게 어떻게 보이는지 인지하는 경향이며, 그러한 자신의 모습이 때론 받아들이기 힘들고, 스스로 좋지 않다 느끼더라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솔직함이다.
그래서 일본인은 조심스럽고, 천천히 하는 것으로 느껴진다. 그것은 겸손에서 출발하는 배려고, 타인과 보폭을 맞추려 하는 솔직한 모습이다. 그래서 똑같이 보폭을 맞추면 깊은 내면을 보인다. 확실한 사실은, 일본인과 긴밀한 내면의 이야기까지 도달하는 속도는 한국인의 경우보다 훨씬 빠르다는 점이다. 일본인은 마치 내 방이 아무리 어지러워도 컴퓨터 전원 버튼은 찾을 수 있는 것과 같다. 하지만 내 방에서 우라늄 연료봉을 찾으려 한다면 많은 시간을 할애해도 결코 찾지 못하며, 그것은 대부분 한국인과 마주하며 느끼는 내 감정이다.
일본인의 내면은 분명 디테일한 부분에서 나와 달랐다. 하지만 나쁘지 않았다. 그것은 내가 모르던 새로운 색을 처음 본 것과 같았다.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으며, 흉하지 않고, 인간이라면 보편 타당하게 공감하고 따뜻하게 수긍할 수 있는 종류의 어떤 것이다. 아마도 한국에서 한국인이 그런 말을 했다면 발칙하게 느끼거나, 음흉하게 느끼거나, 되바라진 생각으로 평가될 확률이 높다. 그러나 내가 느낀 감정은 '솔직함'이었다. 예를 들자면 배탈이 나서 팬티에 지린 경험을 살려 연구하고, 대처 매뉴얼이나 기술을 개발하며 이거 좋다고 웃으며 당당하게 말하는 종류의 그런 솔직함이다. 자신이 웃고 싶으면 웃고, 다만 실컷 웃다가 상대를 살피는 그런 겸손함이 존재한다.
미국인도 마찬가지로 솔직하다. 그들은 주파수, 스펙트럼이 넓은 느낌이다.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자신과 타인을 분리하여 인식하는 훈련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자신이 아닌 것에 대해 관대한 경향을 보이며, 그저 다양성, '그럴 수도 있지'라는 관점을 가진다. 더 정확한 느낌은 스스로 '내가 꼬우면 뭐 어쩔건데? 이미 존재하는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나만 괴롭고, 나만 바보가 되고, 내 관점만 좁아지는데 거부하면 뭐 어쩔건데 X밥아'라는 느낌에 가깝다.
아마도 한국 남성이 어린 시절부터 감정의 거세, 비뚤어진 강인함, 왜곡된 남성을 주입 당하는 시간에, 미국 남성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그렇지 않으면 너만 손해인데 선택은 자유니 알아서 해라'는 아버지의 훈육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구체적 사실관계는 몰라도, 나는 그런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단지 다를 뿐이므로, 자신이 아닌 것에 대해 솔직하게 표현한다. 그 뿐이다.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그들은 매우 즉각적으로, 매우 쉽게 거절한다. '난 그 주제에 관심 없어'라는 말을 그토록 쉽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자를 본 적이 없다. 그것은 마치 어린 시절부터 꾸준히 훈련을 받은 느낌이다. 그렇지 않고서 문장만 보면 매우 무례한 거절을 듣는 자가 전혀 기분 나쁘지 않게, 매우 능숙하게 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만난 어느 국가 사람들도 전부 솔직하다. 상대성을 고려한다면, 반대로 내가 속박된 것이다.
애초에 감정, 생각, 행동은 나만의 고유한 자유 아닌가? 외부의 평가 따위에 연연하며 허가를 구하고, 인정을 갈구하는 모습은 그야말로 우스꽝스러운 것이다. 그것은 노예의 모습이다. '마님, 뒷간에 다녀와도 되겠습니까?'라고 물어보며 허가를 구하는 노예 근성이다.
한국에서 가장 솔직한 종류의 사람조차 평범한 외국인 수준에 이르지 못한다. 나 또한 예외가 아니며, 오히려 나는 스스로의 기준으로 보면 솔직하지 못한 편이다. 그리고 내가 솔직하지 못하게 살아가므로, 그것을 보는 다른 한국인도 동일한 관점을 가지게 되며, 이런 양방향 피드백은 서로가 서로를 옥죄는 속박을 만든다. 이런 솔직하지 못함에 나 또한 기여한 것이다.
죄 없는 자 돌을 던지라 - 나사렛 몽키스페너
ㄴ일단 나부터 - dupe
나는 솔직하게 돌을 던진다. 그 돌에 내 대가리가 깨지더라도, 내가 기여한 바가 있으니 감수해야 하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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