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사라진 흔적"

성준은 평생을 함께할 상대를 찾기 위해 고심 끝에 베트남으로 향했다. 한국에서 연애가 어렵던 그는 국제 결혼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고, 베트남에 있는 중개업체를 통해 그녀, 린을 만났다. 린은 아름답고 밝은 미소로 성준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둘은 결혼에 대해 진지하게 이야기를 나누었고, 몇 번의 만남 끝에 성준은 그녀가 바로 운명의 상대라는 확신이 들었다.

결혼식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온 후, 린은 한국어 학원에 다니며 새로운 삶에 잘 적응해가는 듯 보였다. 처음에는 어색했던 부부 생활도 시간이 지날수록 자연스러워졌고, 성준은 결혼 생활의 행복을 만끽하고 있었다. 매일 아침 손수 차린 린의 아침상을 받아들며 그는 아내가 이방인임을 잊을 정도로 마음이 편안해졌다.

어느 날, 린은 남편 성준에게 작은 부탁을 했다.

"자기야, 나 한국 은행 계좌 만드는 게 너무 어려워. 돈 좀 보내고 싶은데, 자기 통장에 돈 좀 맡겨도 될까?"

성준은 망설였지만 린이 자신의 계좌를 못 만드는 이유가 서툰 한국어 때문이라는 이야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녀가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이란 믿음도 있었다. 그는 자신의 계좌에 린이 필요한 돈을 보내도록 허락했다.

몇 주가 지나도 린은 계좌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 듯했고, 여전히 성준의 계좌에 돈을 넣고 빼고 하는 일이 반복됐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린은 사소한 일로 친구를 만나러 잠깐 다녀오겠다고 말하고 나갔다. 성준은 평소처럼 회사에 출근했고, 저녁 퇴근 무렵이 되어서야 아내에게 문자를 보냈다.

그러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성준은 순간 불안한 느낌을 떨칠 수가 없었고, 급히 집으로 돌아갔다. 집안은 무언가 빠져나간 것처럼 쓸쓸했고, 린의 짐은 모두 사라져 있었다. 심장이 내려앉는 듯한 충격을 느끼며 성준은 통장 내역을 확인하기 위해 은행 앱을 열었다.

계좌에는 텅 빈 잔액과 함께 최근의 대량 인출 내역이 남아 있었다. 린은 성준의 모든 돈을 인출해가고, 말없이 떠나버린 것이다.

몇 날 며칠을 혼란과 상실감 속에서 보낸 성준은 마치 꿈을 꾸는 듯했다. 그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 생각해보며 한참을 자책했다. 모든 것을 함께 나누며 쌓아가리라 믿었던 결혼 생활이 결국 그가 만들어낸 환상이었다는 사실에 그는 큰 상처를 입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성준은 그제야 깨달았다. 신뢰라는 것은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쉽게 내어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는 것을. 언젠가 진정한 사랑을 다시 찾을 수 있을지는 몰라도, 그는 결코 또다시 쉽게 마음을 열지 않으리라 다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