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중의 판테온 광장, 평소에는 조용했을 그곳엔 수많은 인파
들이 몰려있었다.
“모두들, 오늘 공연에 와줘서 고마워!”
“어째서 저까지 해야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잘 부탁드립니
다.”
이유는 간단했다. 노바족 사이에서 소문만이 무성했던 전장의
아이돌,‘엔젤릭 버스터’의 첫 공연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거기에 노
바의 얼음 마녀 이데아도 함께였다.
귀여운 핑크빛 아이돌 엔젤릭 버스터와 어른스럽고 쿨한 이데
아. 누가 봐도 멋진 조합이었다.
“헬리시움 탈환도 머지않았어! 지금까지 열심히 싸워온 만큼 오
늘은 마음껏 즐기자!”
엔젤릭 버스터가 마이크에 대고 외쳤다. 관중들 사이에서 와아
아아 함성이 울려 퍼졌다. 이데아는 뭔가 못마땅스러운 눈치였지
만, 이내 모두와 동화되어 엔젤릭 버스터와 함께 열심히 춤추고
노래했다.
그렇게 열심히 노래하고 춤추던 엔젤릭 버스터는 관중 사이에
서 익숙한 얼굴을 발견했다. 자신의 소꿉친구이자 노바의 수호자
카이저, 카일이었다.
엔젤릭 버스터가 되기 전에는 항상 뒤에서 바라볼 수밖에 없었
지만, 지금은 같이 싸우고, 돕고, 이렇게 전장의 아이돌로써 마주볼 수 있게 되었다. 그 사실이 너무나도 기뻐서 그만 눈물이 나올
것 같았다. 하지만 이내 눈가를 비비고 웃는 표정으로 더 크게 노
래했다.
그 때 엔젤릭 버스터는 믿고 있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아이돌로 있을 수 있을 거라고. 모두와 함
께 싸울 수 있을 거라고.
-그로부터 몇 년 뒤.
“후우, 후우……. 하아.”
엔젤릭 버스터는 사냥터의 안전구역에서 쭈그리고 앉아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체력이 너덜너덜했다. 포션은 이미 다 떨어진
지 오래였다.
‘나는……. 어째서 이렇게 약한 거야?’
비슷한 레벨의 동료들은 별 어려움 없이 몬스터들을 해치우며
성장하고 있었다. 하지만 자신은 금세 이렇게 너덜너덜해져서 억
지로 휴식을 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다.
나태하게 지냈다든지 그런 것은 아니었다. 남들이 하는 만큼 열
심히 싸워왔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자신의 능력에는 근본적인 설계 미스가 있었다.
마나 소모가 없고 무한정 스킬을 남발할 수 있다는, 언뜻 듣기
에는 좋다 못해 사기가 아니냐고 할 정도의 능력이 있었지만 그
것도 바로 스킬을 다시 쓸 수 있게 해주는 ‘리차지’가 된다는 하
에서의 이야기다.
‘리차지’가 뜨는 확률은 그렇게 낮지 않다. 하지만 ‘리차지’가 되
지 않는, 그래서 스킬을 사용하지 못할 확률 또한 존재했다. 그렇
기에 오히려 마나를 사용하는 다른 직업에 비해 연속적인 스킬
난사에는 제한이 있었다.
그것만으로도 모자라 엔젤릭 버스터는 치명타에 의존하는 면이
타 직업에 비해 심각하게 높았다. 최소 대미지 95%, 최대 대미지
210%. 115%라는 큰 단차는 안 그래도 ‘리차지’ 때문에 확률에 의
존하는 엔젤릭 버스터의 딜링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다.
전 직업 최하위의 딜링.
그것이 엔젤릭 버스터의 현실이었다.
‘이래선 따라갈 수 없어. 다시 모두의 짐이 되고 말아. 카이저를,
쫒아가지 못해…….’
엔젤릭 버스터는 무릎에 얼굴을 파묻고 흐느꼈다. 몇 년 전의
콘서트가, 카이저와 함께 할 수 있었다고 생각했던 그 때가 마치
거짓말 같았다.
‘강해지고 싶어. 어떻게 해서라도 강해지고 싶어. 뒤처지고 싶지
않아…….’
아무것도 하지 못했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은 싫었다. 그럴
바에야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엔젤릭 버스터는 생각했다.
“엔젤릭 버스터. 무슨 짓을 해서라도 강해지고 싶어?”
줄곧 조용히 있던 에스카다가 엔젤릭 버스터에게 물었다. 평소
의 느슨한 분위기가 아닌, 어딘가 사뭇 진지한 말투였다.
“……응. 강해지고 싶어.”
“무슨 더러운 짓을 해서라도?”
“……응.”
“알겠다. 네가 그렇게까지 하겠다면, 정수를 모으도록 하자.”
“정수? 그건 지금까지 계속 모아왔잖아. 조금 전까지 하던 사냥
도 정수를 모으기 위해서 하는 것이었고. 이제 와서 무슨 새삼스
러운 이야기를 하는 거야?”
에스카다의 말에 엔젤릭 버스터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되
물었다. 그러자 에스카다는 고개를 젓고 담담하게 대답했다.
“인간의 정수를.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