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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게이트 1편 - 페라리에 헌신했던 한 영국 남자
2000년대 초, 당시 포뮬러 원은 전세계에서 내로라하는 여러 제조사들이 참가하며 일 년에 수 억 달러의 돈을 퍼붓고, 매 그랑프리마다 수십만명의 관중이 찾아오며 그 인기는 최고조를 달렸다.여러 팀들이 천문학적인 돈을 들여가며 레이스카 개발을 위해 힘을 쏟았는데, 그 사이에서 독보적으로 수많은 우승을 가져가며 챔피언을 거머쥔 컨스트럭터가 있었다.바로 ‘스쿠데리아 페라리’다.지금과는 다르게 당시 페라리는 수많은 우승을 차지하며 6번 연속 컨스트럭터 챔피언, 5번 연속 드라이버 챔피언을 차지하며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줬었다.이 같은 업적이 가능했던 이유는, 1996년 베네통에서 페라리로 이적한 미하엘 슈마허와 함께, 그의 ‘드림팀’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그 드림팀 멤버 중 한 남자가 있었는데…바로 ‘나이젤 스텝니’였다.영국에서 태어난 그는, 고등학교 졸업 후 바로 1977년에 ‘Shadow Racing’이라는 포뮬러 원 팀에 미캐닉으로 합류하여 자신의 커리어를 시작하였고, 로터스와 베네통에서도 미캐닉으로 지낸 후 1993년 페라리로 이직하였다.이직한 페라리에서 그의 직책은 30명의 미캐닉을 거느리며 그들의 급여 등을 관리하는 ‘수석 미캐닉’이자 ‘Race & Test Technical Manager’을 맡고 있었으며, 100만 달러의 연봉을 가져갈 정도로 중요한 인물이었다.그는 페라리에서 여러 업적을 남겼는데, 스플릿 휠건을 도입하고 훈련 시스템을 개선하여 피트스탑 시간을 단축시켰고, 무선 통신 시스템을 개선하고, 레이스카의 정비 체계를 개선하며 신뢰도를 높히는 것에 기여한 것 등이 있었다.그만큼 스텝니 자신 역시 페라리에 헌신적이었는데, 그 일화로 슈마허가 실수로 레이스카로 그를 들이받아 발목을 부러트려버리는 사건이 있었으나 그래도 불평하지 않았을 정도이다.한편 2004년이 지나 페라리의 연속 챔피언 기록은 끝이 나고, 때는 르노가 챔피언 타이틀을 가져가던 2006년이었다…슈마허&브런 : 저희 이제 페라리 나갑니다~그렇다, 미하엘 슈마허는 2006년을 끝으로 F1에서 은퇴한다고 발표했고, 페라리에서 테크니컬 디렉터를 맡으며 핵심적인 역할을 하던 로스 브런 역시 안식년을 갖겠다고 선언한 것이다.이는, 페라리 내에 큰 변화가 있을 것을 의미했다.스텝니 : 그러면 혹시… 이제 내가 테크니컬 디렉터?스텝니는 페라리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아왔기에, 브런을 이어 수백만 달러 규모의 연봉을 받는 페라리의 새로운 테크니컬 디렉터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하지만..페라리 : ㄴㄴ 님 아님 차기 테크니컬 디렉터는 마리오 아몬도임 ㅇㅇ 그런 줄 아셈하지만 페라리는 차기 테크니컬 디렉터로 스텝니가 아닌 아몬도를 기용했고, 아무래도 스텝니가 공학 학위가 없는 미캐닉 출신이라는 것이 가장 큰 이유로 여겨졌다.;;;스텝니는 아몬도가 팀의 전반적인 레이스카 개발을 이끌 능력이 없다고 생각했기에 이 결정에 격분했고, 페라리 관계자에게 공개적으로 불만을 표명했다. 거기에 지나지 않고, 2007년 2월 autosport와의 인터뷰에서는 “1년 동안 페라리에서 떨어져 있을 생각이다.”라고 언론을 통해 밝히기도 하였다.하지만 페라리는 어떤 팀인가?1991년, 당시 페라리 소속이었던 3회 챔피언 알랭 프로스트가 “이 차는 트럭같아서 몰기 매우 힘들다”라고 비판하지 그 해에 바로 계약 해지를 해버린 팀 아니겠는가?그런데 의외로 프로스트에게 그랬던 것과 달리 페라리 경영진은 이에 대응하지 않았고, 오히려 스텝니가 분노하여 그랑프리를 따라 다니지 않는 팩토리 중심의 직무인 ‘Head of Team Performance Development‘를 요청했을 때도 받아주었다.그러나, 여기서 끝난 것이 아니었다.페라리에서 사실상 고립된 스텝니는 일종의 배신자처럼 여겨지며 직원들은 그에게 말하기를 두려워하는 듯 했고, 실제로 스텝니는 “이탈리아에서 페라리에 반대하면, 바티칸에 반대하는 것과 같다”고 밝히기도 하였다. 사실상 해고를 안 시킨 것이지, 페라리는 그를 고립시킨 것이다.그리고 2007년 5월, 한 가지 사건이 터진다. 바로 ‘페라리 파우더 사건’.2007 모나코 그랑프리를 앞둔 5월 중순, 페라리 레이스카인 F2007 후방 연료탱크에서 이상한 가루가 검출된다. 그 즉시 페라리는 마라넬로 지방경찰에 연락하여 조사가 시작됐다. 5월 17일, 한 페라리 미캐닉이 차량 근처에서 스텝니가 서성거리는 것을 봤다고 증언한 것에 더해 CCTV 영상까지 확보하며, 경찰은 스텝니를 용의자로 특정한다.그래서 5월 18일, 마라넬로 지방경찰은 스텝니를 데려가 조사하였다. 그의 바지에서는 가루가 발견되었고, 경찰은 그의 집을 수색하여 정체불명의 가루를 조사한 끝에 연료탱크에서 발견된 가루가 스텝니가 가지고 있던 가루가 동일하다는 것을 특정해냈다. 그와 동시에, 페라리도 스텝니에 공장 출입 정지와 사실상 정직 처분을 내리며 내부 조사를 시작했다.당시 페라리의 연료 탱크는 복잡하게 설계된 다중 챔버 시스템이었고, 미캐닉이었던 그가 가루를 연료 탱크에 넣는 것이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몰랐을리가 없었기에, 이는 스텝니가 페라리에 대한 복수심을 가지고 벌인 행위로 해석된다.그리고, 이 사건은 얼마 뒤에 터지게 될 사건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었다.한편, 스텝니에게는 한 명의 매우 친한 친구가 있었다.그 친구는 로터스 시절부터 함께해 이후 베네통, 페라리 시절에서도 함께 협력하여 사적으로도 매우 친한 상황이었고, 그렇기에 2007년에도 스텝니는 그 친구와 여러 번 만나기도 하였다. 그 친구와의 만남은 얼마 안 가서 큰 파장을 불러오게 되는데, 그 이유는그 친구가 바로 맥라렌의 수석 디자이너였던 ‘마이크 코플런’이었기 때문이다.~~ 다음 편에 계속 ~~
작성자 : PREMA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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