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더운 여름과 함께

무더운 여름과 함께앱에서 작성

이다흘

2024.09.24 01:49:05

조회 65 추천 0 댓글 3

사라진 줄만 알았던 비구름은

어찌저찌 안으로 들어와

어느새 자리를 잡았나보다

항상 오던 비니까

금방 그칠 비니까

눈길조차 주지 않으려 했는데

우르르 쾅쾅

번쩍 번쩍

끝내 내 시선을 앗아내고야 만다

내 옷을 적셔버리고야 만다

아이고 우리 동물들

한우리 동물농장 동물들

비에 젖으면 안 되는데

물에 잠기면 안 되는데

진흙탕에 미끄러지면 안 되는데

죽으면 안 되는데

안 되는 게 맞긴 한 건지

가슴만 부여잡고 행동은 느릿느릿

한참을 지나서야 도착한 동물농장에는

평소같기만한 동물들

평소같기만한 땅과 풀

평소같기만한 하늘

동물들이 주인을 쳐다본다

이제 알 때도 되지 않았냐고

언제까지 그럴 거냐고

사실은 알고 있지 않았냐고

방금까지만 해도 흠뻑 젖어

무겁게 느껴졌던 옷이

한순간에 말라 가벼워졌다

마치 젖은 적이 없던 것처럼

동물들이 주인을 노려본다

어느 동물은 미쳤단 듯이

어느 동물은 불쌍하단 듯이

어느 동물은 안타깝단 듯이

어느 동물은 답답하단 듯이

여름이었다

...아니, 어쩌면 가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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