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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내 만들어지지 못한 위대한 영화 16편
듄 Dune 감독 :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 역사상 가장 유명한 미완성 영화. 1970년대 초, 실험적인 영화들이 떠오르던 시기에 칠레-프랑스 출신의 감독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는 기존 영화 제작 방식을 완전히 뒤엎을 야심찬 프로젝트에 착수하였음. 초현실주의와 신비주의를 결합한 독창적인 스타일로 유명했던 그는, 프랭크 허버트의 SF 명작 '듄'을 영화화하는 것을 목표로 했으며 기존 영화와 전혀 다른 실험적인 방식으로 '듄'을 만들려고 했음. 조도로프스키의 머릿속에 있는 '듄'은 일반적인 모양새의 영화가 아니었음. 그는 당대 최고 작가들과 배우들을 불러모아, '듄'을 시청각적인 신비 체험을 포함한 12간짜리 초월적이고 철학적인 종합 예술로 만들 계획이었음. 그러나 12시간짜리 러닝타임이라는 무리한 시도에, 70년대 기준으로 엄청난 예산이었던 2천만 달러를 선뜻 투자를 하려는 스튜디오는 별로 없었음.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과대망상에 가깝다고 여겨진 그의 비전은 헐리우드에서 받아지기 어려웠고 프랑스 투자자인 미셸 세이두가 추가 투자를 포기하면서 이 영화는 1976년 무산되었음. 그러나 이 영화의 제작 기간에 조도로프스키가 보여주었던 비현실적이고 장대한 야망은 그 자체로 엄청난 여파를 미쳤음. H.R. 기거, 댄 오배넌 등 당시 '듄'을 위해 모인 팀은 이후에 '에이리언'을 제작하였고, 이 때 남겨진 방대한 기록들. 감독의 끝없는 아이디어와 스태프들의 천재적인 비주얼 디자인, 컨셉, 세트 설계, 인물 설정 등 세부 요소들은 이후 수많은 SF 걸작의 유전자가 되어, 만들어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SF 영화 사상 가장 큰 영향을 미친 창작물 하나로 남았음. 밤하늘 Night Skies 감독 : 스티븐 스필버그 1970년대 후반, 흥행 감독으로 상한가를 치고 있던 스티븐 스필버그에게 영화 제작사인 콜롬비아 픽처스는 '미지와의 조우' 후속작을 제안하였음. 그러나 속편을 만들고 싶지 않았던 스필버그는 대신에 켄터키 주에서 한 가족이 이상하게 생긴 외계인들에게 습격당했다는 '켈리 홉킨스빌 사건'을 바탕으로 한 SF 호러 영화를 기획하였음. '밤하늘'이라는 이 영화의 시나리오는 외계인 과학자 11명이, 지구의 동물 중 어떤 종이 지능이 있는지 알아보기 위해 농장 동물을 조사하다 인간 가족을 대상으로 그 실험이 옮겨간다는 설정을 바탕으로 하고 있었음. 메인 외계인 캐릭터는 'Scar'와 'Buddy'로, 악당인 'Scar'가 손가락으로 빛을 내어 동물을 죽이는 도중에, 착한 외계인인 'Buddy'가 어린이들과 친해져 가족을 지키게 된다는 내용이었음. 스필버그는 '레이더스' 세트장에서 당시 여자친구였던 멜리사 메티슨에게 이 시나리오를 읽어주었음. 메티슨은 이런 내용보다는 착한 외계인과 아이의 우정을 중심으로 한 영화가 더 감동적일 것이라고 조언하였음. 이에 따라 스필버그는 '밤하늘'을 포기하고, 작중의 외계인 설정을 섞어서 다른 외계인 영화를 만들게 됨. 'E.T.'라는 제목으로 개봉한 이 작품은 흥행 성적을 경신하며 역사상 가장 대단한 외계인 영화가 되었음. 그 밖에도 '밤하늘'의 공포 요소는 '폴터가이스트'에, 착한 개체와 나쁜 개체라는 컨셉 및 캐릭터 디자인은 '그렘린'에 나뉘어 사용되었음. 광기의 산맥 At the mountains of madness 감독 : 기예르모 델 토로 기예르모 델 토로는 수십년동안 러브크래프트의 '광기의 산맥'을 영화화하려 했음. 하지만 수 차례 제작이 무산되며, '성공한 감독도 꿈의 프로젝트를 실현할 수 없는 경우가 있다'는 증거가 되었음. 델 토로의 '광기의 산맥'은 2004년 드림웍스에서 처음으로 제작 계획이 발표되었음. 그러나 델 토로가 '호빗'의 감독을 맡게 되면서 제작이 중단되었고, 이후 '호빗' 프로젝트에서 하차한 뒤에 이 프로젝트 역시 무산되었음. 몇 년을 표류하던 이 계획은 2010년 유니버설 픽처스에서 부활. 제임스 카메론 제작에 톰 크루즈가 주연을 맡기로 한 1억 5천만달러 프로젝트로 다시 가동되었음. 하지만 리들리 스콧의 '프로메테우스'가 제작되면서, 두 영화의 설정이 겹친다는 이유로 또 다시 무산되었음. 유니버설과 델 토로 사이의 등급 표현 문제 역시 심각한 갈등의 원인이었음. 델 토로는 넷플릭스와 협업하며 '피노키오'와 '호기심의 방'을 제작하는 도중에 '광기의 산맥'을 제안했으나 또 다시 거절 당했음. 델 토로는 아직도 이 영화를 만들고 싶어하며, 필생의 프로젝트로 아직도 마음 속에 품고 있음. 슈퍼맨 라이브스 Superman Lives 감독 : 팀 버튼 '슈퍼맨 라이브스'는 슈퍼맨을 매우 독창적이고 이상한 방식으로 재해석하려던 시도였음. 1980년대 말부터 여러 개의 슈퍼맨 영화 기획이 무산된 후, 워너에서는 코믹스 '슈퍼맨의 죽음과 부활'을 바탕으로 여러 편의 각본을 개발한 끝에 니콜라스 케이지 주연의 '슈퍼맨 라이브스'라는 프로젝트를 구체화시켜 팀 버튼에게 맡겼음. 팀 버튼은 자신만의 비주얼 스타일로 영화 제작을 시작, 기존 슈퍼맨과 전혀 다른 '아웃사이더 슈퍼맨' 컨셉을 도입하였음. 이 시나리오에서 클락 켄트는 자신이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이미 슈퍼맨이 된 후에야 알게 되는 불안하고 내성적인 캐릭터로 디자인되었음. 슈퍼맨의 아버지의 정신을 담은 인공지능 'K'가 슈퍼맨을 치료하는 슈트가 된다는 설정도 있었음. 클라이막스에서는 거대한 기계 거미가 슈퍼맨과 싸우는 장면이 나올 예정이었음. 그러나 1990년대 후반, 연달아 흥행 참패를 겪던 워너 브라더스는 이런 어둡고 실험적인 프로젝트가 경제적으로 위험한 투자라고 판단. 거대한 스케일인 이 영화의 제작비를 계속해서 줄이려고 압박하였고, 그 와중에 끊임없이 갈등이 발생해 촬영을 3주 앞둔 상태에서 팀 버튼이 프로젝트를 떠나며 중단되었음. 이 영화를 위해서 만들어진 독특한 컨셉 아트와 캐릭터 디자인은 지금도 팬들의 상상력을 끊임없이 자극하고 있음. 꿈꾸는 기계 Dreaming Machine 감독 : 곤 사토시 요절한 일본의 천재 애니메이션 감독 곤 사토시의 다섯 번째 장편. 세 명의 로봇 캐릭터를 중심으로 전개되는 판타지 어드벤처 영화로, 인간 캐릭터가 등장하지 않는 로드 무비였음. 감독이 투병 중에도 끝까지 완성하고자 했던 작품으로, 프로듀서 마사오 마루야마는 '꼭 완성해 주겠다'고 약속하였음. 2010년에 그가 사망한 이후 제작사 매드하우스는 그의 연출 메모와 스토리보드를 참고하여 제작을 이어가려 했음. 그러나 자금 문제가 발목을 잡았고, 그의 콘티를 완벽하게 구현할 수가 없어 끝내 제작이 중단되었음. 현재 일본 애니메이션 업계에서 곤 사토시와 같은 수준의 연출력을 가진 감독이 없다는 것이 무엇보다 가장 큰 이유였음. 1500개의 장면 중에서 600개만 완성된 상태로, 이후 『Satoshi Kon: la machine à rêves』라는 프랑스 다큐멘터리에서 일부 장면이 공개되었음. 예수의 여러 얼굴 The Many Faces of Jesus 감독 : 옌스 요르겐 토르센 역사상 가장 논란이 된 예수 영화. 덴마크의 작가 겸 감독 '옌스 요르겐 토르센(Jens Jørgen Thorsen)'이 기획한 영화로, 예수가 동성 및 이성과 성관계를 맺고, 은행 강도 행위를 하는 등 성경과 전혀 다른 인물로 묘사됨. 작중에서 예수는 셰례 요한 및 막달라 마리아 양쪽과 연인 관계이며, 창녀들 앞에서 옷을 벗고 "하느님이여, 우리를 구하소서! 하레 크리슈나, 할레룰야, 레드 프론트, 하일 히틀러!"라고 외친다고 함. 이런 내용은 기존 예수 영화들(류이스 브뉴엘, 파졸리니)보다도 더욱 도발적이었음. 1973년 덴마크 정부에서는 이 영화에 제작비 60만 크로네를 지원하였음. 그러나 수천 명의 기독교 신자들이 시위를 벌이고, 로마 교황 바오로 6세가 공식적으로 영화 제작을 규탄하였음. 로마 주재 덴마크 대사관은 화염병 공격을 받았고, 프랑스 정부에서도 이 영화를 비난하는 성명을 발표. 결국 기금 철회와 함께 프로젝트가 중단됨. 토르센은 영국에서 영화 촬영을 재개하려 했으나, 영국 총리 및 여왕까지 '역겨운 영화'라고 공식 발표. 감독이 공항에 도착했을 때 입국을 거부당해 추방되었음. 이후 이스라엘에서 촬영을 시도하다 입국 금지. 이에 굴하지 않고 미국에서 제작을 시도했으나 결국 자금을 마련하지 못하고 중단되었음. 이 영화가 당대에 미친 여파는 엄청나서, 제작이 공식적으로 취소된 뒤에도 이에 대한 괴담이 끊이지 않고 기독교인들 사이에서는 '예수가 게이로 묘사되는 영화가 제작 중'이라는 소문이 수십년간 떠돌았음. 토르센은 1992년에 제작 방향을 달리한 예수 영화 'The return'을 만들었으나 평가는 좋지 않았음. 스파이더맨 Spiderman 감독 : 제임스 카메론 1990년대 초중반, 스파이더맨의 판권은 제임스 카메론이 있던 '캐롤코 픽처스'의 소유였음. 카메론은 직접 각본을 쓰며 프로젝트를 진행하였음. 주연 배우로는 에드워드 펄롱과 레오나로드 디카프리오가 거론되었음. 카메론의 각본에서 메인 빌런은 '일렉트로'로, 초능력으로 인터넷을 조종해 기업 재벌이 된 범죄왕이었음. 피터 파커는 초능력을 얻은 후 생계를 위해 TV쇼에 출연한다는 설정이었음. 이를 본 일렉트로가 스파이더맨을 영입하려고 접근하여 갈등이 발생한다는 스토리. 이후 스파이더맨은 TV 방송국을 통한 음모에 의해 대중의 적이 됨. 카메론 버전의 스파이더맨은 R등급으로, 피터 파커가 짝사랑하던 여자인 MJ의 방을 몰래 훔쳐보거나, 스파이더맨 복장을 한 채 그녀와 다리 위에서 성관계를 갖는 장면이 포함되어 있었음. 당시에도 스파이더맨 판권은 여러 회사로 나뉘면서 법적 소 송이 이어지는 등, 깔끔하게 정리되지 못한 상황이었음. 결국 카메론은 '타이타닉'을 연출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떠났고 이후 소니에 넘어가면서 샘 레이미의 버전으로 완성되었음. 어둠의 심연 Heart of Darkness 감독 : 오손 웰스 1939년, 유럽에서 2차 세계대전이 한창이던 시기. 24살의 젊은 천재 오손 웰스는 단 한편의 라디오 드라마 '우주전쟁'으로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음. 그의 방송을 외계인 침공으로 착각한 인물이 속출하면서 그는 하루아침에 미국 문화예술계 최고의 인물이 되었음. 영화사 RKO 픽처스는 그에게 영화 연출 데뷔작으로 최종 편집권을 보장하는 파격적인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는 당시에 할리우드 스튜디오 시스템에서 전례없는 특혜였음. 영화 제작사와 대중들이 원했던 건 '우주전쟁' 라디오 드라마의 영상화 버전이었음. 하지만 웰스가 원했던 건 조지프 콘래드의 소설 '어둠의 심연'을 원작으로 한 모험 영화였음. 이 작품은 제국주의와 인종 차별을 탐구하는 문학적 걸작으로, 위험천만한 아프리카 강을 따라 진행되는 여정을 다루는 소설이었음. 이 내용에 반파시즘적인 메시지를 결합시키려던 게 웰스의 계획이었음. 관객이 주인공의 시점을 그대로 체험하길 바랬던 웰스는, 1인칭 시점이라는 전례없는 파격적 카메라 기법을 이 작품에 도입하려 했음. 그는 수많은 보조 작가를 통해 당시 파시즘의 실체를 분석하는 연구서를 만들었고, 수없이 각본을 수정하며 이 작품의 메시지를 강화해 나갔음. 구체적인 로케이션과 세트 디자인 및 특수효과 담당자들이 투입되어 작품 준비가 진행되었음. 그러나 정치적으로 민감한 영화에 투자하는 걸 꺼려했단 RKO는 결국 영화 제작에서 손을 떼었음. 지나치게 비싼 예산 역시 제작 무신의 이유였음. '어둠의 심연'이 좌절된 이후 웰스는 자신의 메시지를 또 다른 각본에 녹여내어 '시민 케인'을 만들었음. 아이러니하게도, '어둠의 심연'이 만들어지지 못한 덕분에 영화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이 탄생하였음. 이 영화가 존재했다면 현대 영화사의 흐름은 완전히 달라졌을 것으로 여겨지고 있음. 배트맨 : 이어 원 Batman : Year one 감독 : 대런 아로노프스키 1997년 '배트맨과 로빈'이 흥행 참패를 기록한 이후, 워너 브라더스는 배트맨 프렌차이즈를 새롭게 리부트할 계획을 세웠음. 다양한 기획이 논의되는 가운데 대런 아로노프스키를 감독으로 한 버전이 개발되었음. 이 버전은 어둡고 폭력적인 R등급 작품이었으며, 기존 배트맨과는 전혀 다른 인물들이 등장할 예정이었음. 그 설정은 다음과 같음. 배트맨 : 원작에서는 알프레드가 브루스를 키우지만, 이 영화에서는 알프레드가 존재하지 않음. 부모가 살해당한 후 전 재산을 빼앗기고 거리로 내몰리고 이후 무일푼인 상태에서 배트맨으로 거듭나야 하는 설정. 거지에 가까운 상태로 으리으리한 집이나 최첨단 장비도 없고, 가난해서 책을 읽고 혼자서 무술을 연습하며 배트맨이 됨. 배트슈트에 특수 기능 따위 당연히 없음. 캣우먼 : 매춘부로 일하며 '미스트리스 셀리나'라는 이름을 사용. 어느날 부패한 경찰이 그녀를 구타하던 중 배트맨의 도움을 받아 목숨을 건짐. 그러나 그녀는 배트맨을 기절시키고, 경찰의 시체 옆에 내버려 둠. 이후 배트맨에게 영감을 받아 캣우먼이 되며 그와 가까워지게 됨. 리틀 알 : 알프레드 대신에 나오는 캐릭터로, 자동차 정비소를 운영하는 흑인. 브루스를 기계 수리에 능한 장인으로 훈련시켜 배트모빌을 개조할 수 있도록 도와줌. 전반적인 분위기는 매우 어둡고, 배트맨 영화 중 가장 폭력적이고 잔인한 버전이 될 예정이었음. 워너 브라더스는 난항 끝에 기존 배트맨과 너무 다르다고 판단, 이 영화를 취소하였음. 아로노스프키가 주연으로 원했던 호아킨 피닉스 캐스팅 역시 받아들여지지 않았음. 이후 워너는 크리스토퍼 놀란을 섭외해 '배트맨 비긴즈'를 제작하였음. 아키라 Akira 감독 : 타이카 와이티티 1980년대에 '아키라'가 선풍적인 인기를 끈 이후 이 영화의 실사판은 헐리우드의 오랜 숙원이었음. 그러나 수십년간 난항에 빠져 아직까지도 그 실체를 드러내지 못하고 있음. 1990년대에 소니 픽처스에서 기획한 실사 영화가 무산된 것을 시작으로, 워너 브라더스에 넘어가 '블레이드'의 감독 스티브 노링턴을 기용했다 '젠틀맨 리그'가 망하면서 중단. 아카데미 단편영화상 후보에 올랐던 루이아리 로빈슨을 감독으로 진행하던 버전도 무산되었음. 이후 감독이 계속 바뀌면서 여러 가지 시나리오가 개발되었으나 그 때마다 여러가지 이유로 이 프로젝트는 진행되지 못했음. 원작의 팬들이 많아, 까다로운 캐스팅 기준을 충족시켜야 한다는 것도 문제였음. 2017년부터는 타이카 와이티티가 감독으로 들어와 제작이 진행 중인데, 원작 만화책을 기반으로 하며 백인 캐스팅을 배제하고 아시아계 청소년을 주인공으로 삼겠다고 밝혀 환영을 받았음. 그러나 '토르' 와 '스타워즈' 촬영 때문에 또 다시 연기되었고, 아직까지도 제작되지 않고 있음. The Works 감독 : 랜스 윌리엄스 70년대 후반부터 80년대 중반까지 계획된 3D 애니메이션 영화.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던 사상 초유의 시도로, 90분 길이로 계획되었지만 완성된 분량은 10분 정도임. 만약 이게 성공했으면 16년이나 빨리 3D 애니 영화가 나왔을수도 있음. 이 영화는 뉴욕 올드 웨스트버리(New York Institute of Technology, NYIT)의 컴퓨터 그래픽 연구소(Computer Graphics Lab)에서 개발되었는데, NYIT의 창립자인 알렉산더 슈어는 월트 디즈니와 같은 애니메이션을 만들기를 꿈꿨고, 컴퓨터로 2D 애니메이션을 제작하고자 하였음. 그러다 연구가 진행될수록 개발진의 초점은 3D 컴퓨터 그래픽으로 옮겨가게 되었음. 그러나 끝내 기술적인 한계로 이 작품은 원하는대로 진행되지 못했음. 연구소는 60명 이상의 직원을 고용하고 외주 작업을 병행했지만, 당시 기술로 이 작품을 완성하려면 7년 이상의 렌더링 작업이 필요하다는 사실이 드러났고 결국 프로젝트는 취소되었음. 이후 이 영화에 참여했던 멤버들은 픽사와 드림웍스에서 핵심 인물이 되었음. 에디터였던 에드 캣멀은 픽사의 공통 창립자가 되어 '토이 스토리'를 만들고 꿈을 이루었음. 이 영화의 3D 모델링, 애니메이션 기법, CG 합성 기술 등은 이후 수많은 CG 애니메이션과 그래픽 편집 툴을 만드는 데 지대한 영향을 주었음. 나폴레옹 Napoléon 감독 : 스탠리 큐브릭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의 대성공 이후 스탠리 큐브릭은 '나폴레옹'을 차기작으로 구상했음. 큐브릭은 이 영화를 완벽하게 만들기 위해 나폴레옹에 대한 276권의 책을 독파하며 그의 생애를 한 편의 영화로 압축하려 했음. 유럽 전역에 연구원을 배치해 고증을 맡겼으며, 1년에 걸쳐 완성된 시나리오는 148페이지 분량이었음. 그는 이 영화를 역사적으로 완벽하게 고증된 다큐멘터리처럼 만들고 싶어했음. 그는 나폴레옹의 전투 기록, 일기, 편지, 스케치 등 모든 문서를 분석하였고 나폴레옹이 하루동안 먹은 음식부터 조세핀이 입은 옷까지 인덱스 카드로 만들었음. 카드를 한 장 뽑아 보면 특정 날짜에 나폴레옹이 무슨 일을 했는지 다 적혀 있을 정도로 그의 데이터베이스는 철저하고 자세했음. 그러나 이 영화를 제작하기로 했던 MGM은 큐브릭의 계획이 너무 거대하다는 사실을 알고 투자를 철회하였음. 큐브릭이 원한 수만 명의 엑스트라, 수천 마리의 말, 당대 고증을 완벽하게 구현한 복식이나 세트 촬영, 엄청난 스케일의 전쟁 장면은 '워털루'의 흥행 실패로 불안감에 빠져 있던 당시의 헐리우드 영화 스튜디오에는 지나친 부담이었음. 2년간의 연구를 쏟아부은 '나폴레옹'이 좌절된 큐브릭은 당시 조사했던 자료와 촬영 기법을 이후 작품인 '배리 린든'에 활용하였음. 수십년간 잠들어 있는 이 프로젝트의 부활을 위해 오랫동안 매달려 있는 건 고인의 절친인 스티븐 스필버그임. 10년 넘게 이 작품을 포기하지 않았던 스필버그는 2023년 베를린 영화제에서, 고인의 대본을 기반으로 한 대규모 시리즈를 제작할 것이라고 발표하였음. 그에 따르면 이 드라마는 7부작이 될 것이며, HBO에서 방송될 예정이라고 함. 스타 트렉 Star Trek 감독 : 쿠엔틴 타란티노 2017년 파라마운트와 JJ 에이브럼스는 타란티노의 '스타 트렉' 영화 제안을 받아들였음. '레버넌트'의 마크 스미스가 각본가로 고용되었던 이 영화는 R등급의 성인용 '스타 트렉'으로 완성될 예정이었음. 각본가에 따르면 타란티노는 기존 시리즈보다 훨씬 어둡고 강렬한 분위기로, '펄프 픽션' 스타일의 대화와 과감한 액션이 포함된 내용을 계획하고 있었다고 함. 타란티노는 특히 1968년 '스타 트렉' 시리즈의 에피소드 'A piece of the action'에서 영감을 받았음. 이 에피소드는 마피아 스타일의 갱스터 행성이 등장하는 이야기였음. 그러나 이 영화가 순서상 타란티노의 마지막 작품이 될 수도 있다는 게 문제였음. 그는 항상 마지막 영화가 10번째 작품이 될 거라고 밝혀 왔는데, ''스타 트렉'이 과연 자신의 마지막 영화로 적절한가?' 하는 물음을 끝내 해결하지 못했고, 결국 프로젝트는 좌초되었음. 눈먼 남자 The Blind Man 감독 : 알프레드 히치콕 1960년, '북북서로 진로를 돌려라'와 '사이코'의 연속 히트로 히치콕은 절정에 있었음. 어떤 영화든 만들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던 그의 차기작은 디즈니랜드에서 벌어지는 스릴러 '눈먼 남자'였음. 이 영화의 설정은 다음과 같음. 맹인 재즈 피아니스트 '지미 시어링'은 죽은 사람의 안구를 이식받아 시력을 되찾았는데, 디즈니랜드에서 가족과 영화를 보던 도중 자신이 총에 맞는 환영을 보게 됨. 그건 사실 이식받은 원래 눈의 주인이 살해당하는 장면이었고, 그 현장과 범인의 얼굴이 눈의 망막에 남아 있었던 것. 그리고 끝내 주인공은 범인과 디즈니랜드에서 필사적인 추격전을 벌이는데.. 그러나 서스펜스 + 범죄 + 충격적인 결말까지 너무나도 히치콕 스타일이었던 영화는 만들어지지 않았음. 디즈니가 이런 영화의 촬영을 달가워하지 않아서 배경이 바뀌었고, 주연 배우인 지미 스튜어트가 스케줄 때문에 하차하며 일정에도 차질이 생겼음. 제작 지연이 계속되면서 각본가 어니스트 레만도 영화를 떠나고(이후에 히치콕과는 16년동안 작업하지 않았음), 히치콕은 공백을 가질 수밖에 없었음. 히치콕의 또 다른 명작일 수도 있었던 이 영화의 각본은 2015년에 다시 완성되어 BBC에서 라디오로 방송되었음. 하워드 휴즈 전기 영화 Howard Hughes Biopic 감독 : 크리스토퍼 놀란 2000년대 초반에 놀란은 미국의 유명한 억만장자 하워드 휴즈를 주인공으로 한 전기 영화를 구상하였음. 주연은 짐 캐리로 내정되었으며 독특한 시각으로 휴즈를 그린 예정이었음. 이 각본의 완성도는 매우 뛰어나, 이후에도 놀란이 스스로 '내가 쓴 최고의 각본이다'라고 말할 정도. 당시까지만 해도 하워드 휴즈는 많은 가십성 책의 주제였으나 영화화된 적은 없었음. 놀란은 짐 캐리와 함께 이 영화를 준비하면서 이 영화가 짐 캐리의 최고작이 될 것이라고 확신하였음. 하지만 마틴 스콜세지가 디카프리오와 함께 다른 하워드 휴즈 전기 영화인 '에비에이터'를 제작하여 내용이 겹치던 이 프로젝트는 엎어지고 말았음. '내 인생의 시민 케인이 될 것'이라고 공언했던 짐 캐리의 연기 역시 볼 수 없게 되었음. 놀란은 이 영화에서 터득했던, 실존 인물의 삶을 영화 대본에 압축하는 기법을 '오펜하이머'에서 사용하였음. 레닌그라드의 900일 Leningrad the 900 days 감독 : 세르조 레오네 '황야의 무법자'로 유명한 이탈리아의 거장 세르조 레오네는 오랜 기간동안 해리슨 솔즈베리의 논픽션 '900일 : 레닌그라드의 포위전'을 영화로 각색할 계획을 세우고 있었음. 그리고 걸작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아메리카'를 완성한 후 이 영화의 제작에 착수. 몇 년간의 자료 조사와 준비, 촬영 허가 및 제작비 조달까지 이 영화를 위한 준비를 해 나가고 있었음. 주연 배우는 로버트 드니로, 촬영은 토니노 델리콜리, 음악은 엔리오 모리코네였음. 드니로가 연기하는 미국인 카메라맨이 전쟁 발발 직후에 레닌그라드에 갇혀,러시아 여성과 사랑을 나누게 되는 내용으로, 지옥 속에서 피어나는 처절한 로맨스와 함께 독일군에 맞서는 시민들의 이야기를 다룰 예정이었음. 레오네는 이 영화를 위해 러시아에서 직접 촬영지를 답사했으며, 당시 소련 대통령이던 고르바초프의 허가까지 받았음. 소련과의 최초 합작이 될 예정이었던 이 영화의 예산은 당시로서는 상상할 수 없는 액수인 1억 달러였고 고전적인 전쟁 로맨스 물이라걸 생각하면 더욱 파격적인 금액이었음. 하지만 투자자들은 이 프로젝트의 성공을 의심하지 않았음. 그러나 세르조 레오네는 이 영화의 계약서에 서명을 하기 이틀 전, 1989년에 심장마비로 갑작스럽게 사망하였음. 이후에 '리포맨'의 감독인 알렉스 콕스가 레오네를 대신해 연출을 맡겠다고 나섰지만 투자자들은 레오네 없는 영화에는 자금을 지원할 수 없다며 포기하였음. 명감독이 일생을 쏟아부은 프로젝트이자, 걸작으로 만들어질 게 확실했던 이 영화는 그렇게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음.
작성자 : 오순이고정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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